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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평점 :
얇은 책이다. 소설이라고 부르지만 시라고 해도 좋겠다. 깊고 오랜 비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은 속삭임, 아니 침묵에 가까운 말들은 한없이 쓸쓸하고 고요하다. 슬프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아프다는 단어도 모자라다. 세상의 모든 흰 것들에 빗대어 생의 깊이를 재는 그녀는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닐수도 있다.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55)
어떤 소리도 없이, 아무런 기쁨도 슬픔도 없이 성근 눈이 흩어질 때(51)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59)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63)
성에, 설영, 눈의 꽃(47)
더 이상 눈을 보며 환호하지 않는다.어쩌다 짧은 일별 정도라면 몰라도. 이 소설을 읽은 후, 겨울이 왔다면 모든 눈들에 대한 기억이 달랐을 것이다, 분명, 아마도, 어쩌면.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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