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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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무서워서 긴장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잔인한 파국이 아니라서 안도의 숨을 내쉬는, 다섯째 아이는 행복하지 않은 소설이다. 당신들이 꿈꾸는 가정, 가족, 행복 따위는 결코 없노라고 강하게 부정하는 소설이다. 휘몰아치듯 읽은 그 섬뜩함의 기억이 오래오래 뇌리에서 메아리칠 의외의 소설이다.   




헤리엇은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척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는 어쩔 수 없는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데이비드의 변보다 그녀의 단정이 설득력 있다. 다섯째 아이까지 가기에는 그녀의 모성이 부족한 가 의문이 들 정도로, 벤을 가진 동안의 그녀의 상태는 기이했다. 어리석고 무지한 탓이라고 여겼다. 아이를 향한 그녀의 맹목적인 불안과 증오와 거부가 너무 불쾌했다. 그녀 말고는 아무도 짐작도 불가능한 불안과 공포,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온갖 죄책감에 시달림에도, 설령 그것이 <크기가 다른 두 종류의 짐승을 접목하는 실험>체일지라도, 아기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벤이 살해되도록 내버려주지 않은 여자, 그녀는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옹호했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신봉하고 지지하는 가치관으로 판단해 볼 때 그녀는 벤을 그 장소에서 데려오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158쪽)




<그 단단하고 차가운 외계인의 눈을 감고 있어서>. 헤리엇이 처음으로 정상처럼 보인 아들로서의 벤을 불쌍하다고 여길 때, 마치 사체와 다를 바 없는 작은 뭉텅이를 담요에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 때, 어리석고 바보 같은 여자, 엄마지만 가장 인간다워 감동했다. 그녀를 비난하고 멀어지는 가족들의 냉대도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헤리엇의 결단, 벤과의 다시 시작된 전쟁에 안도했다. 미친 짓. 그것은 처음부터 그랬다.




다섯째 아이라니. 자궁 속의 태아를 괴물이라고 단정하는 엄마와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생명력으로 태동하는 아기 적부터, 그들은 특별한 존재, 관계였지만 가족과는 무관했다. 무력한 가족, 화목한 가족은 적일뿐. 태어나기 위해서, 낳기 위해서 피를 말리는 정신 나간 모자 다른 별, 다른 종이었다. 가여운 헤리엇. 불쌍한 벤. <그 앤 내 애가 확실히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버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불명의 인간다움으로부터 백만 년은 떨어져있는 이질적인 존재.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원할 수가 없는 벤.




세상에 온전히 완벽한 가족은 없다는 것을 이 특별한 아이 벤을 통해 말하는 거라면 참 무시무시한 방법이다. 제각기 보이는 상처와 숨긴 비밀을 품고 그럴듯한 포장지를 씌우고 유지되는 가족들을 향한 경고. 다섯째 아이를 절대 가지지 마시오. 수억만 년 전의 어떤 기이한 유전자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특히 남보다 행복해지려는 허황된 꿈이나 욕심을 버리시오. 그저 적당히 겨우겨우 마지못한 삶을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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