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리 동네에는 거대한 교회들이 유독 많다. 건축물로서의 교회가 가진 상징성이 있다. 유년시절 이웃 동네에 있던 딱 하나의 교회가 그랬다. 작고 낡았지만 따뜻했던 기억,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은 트리가 빛나고 소소한 다과와 선물이 기다리는 곳, 작은 오르간과 음악, 성경 구절이 적힌 작은 메모장을 손에 꼭 쥐고 달려가던 그 곳이 진심 하느님의 나라였다. 그 교회는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었다. 아무리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도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곳이었다.

 

반면 지금의 교회는 곳곳에 울타리를 치고 외부인 접근금지를 선언한다. 그중 가장 화가 나는 것은 외부인 주차금지라는 표시다. 외부인도 주차금지도 과연 이 곳이 하느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이 맞는지 의문이다. 거창하게 종교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누구의 교리가 옳은가를 두고 피터지게 싸우는 모양새도 우습다. 비종교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고 피장파장,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본질적인 진리는 안중에 없는 싸움이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다 교회 울타리 안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하루는 그 교회의 전도사라는 청년이 나와 어린아이들 어쩌고 하면서 완곡하게 금지했다. 교회와 어린이에게 강아지가 그렇게 큰 폐해일까. 모든 땅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소견도 우습고, 잠재적 위험성을 따지는 비논리와 편견에 화가 난다기 보다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증오와 용서의 기본 개념도 없는 철옹성에 순간 이런 세상이 희망이 있을까 싶었다. 무언가에 대한 대책 없는 혐오는 무섭다. 그것이 인간이건 동물이건 혐오에는 잠재적 범죄성이 있다. 교회에 들어가면 선하고 그 외는 악이라는 이분법의 극대화다. 산책하는 강아지를 몰아내는 그 전도사의 눈빛과 행위가 증오라는 악이라면, 교회 주변과 마을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아저씨의 얼굴은 사랑이라는 선이었다.

 

톨스토이 단편선 첫 째 이야기 중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는 종교와 신의 본질에 대한 아주 쉬운 성찰이다. 천사 미하일은 하느님에 의해 인간세상으로 쫓겨나 살게 되었다. 하느님은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지시고 답을 찾아 돌아올 것을 명하셨다. 첫 번째는 <인간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 가>, 두 번째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가> 였다.

 

나는 모든 인간들이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죽어가던 그 어머니는 아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 그 신사는 자기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사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살아서 신을 장화인지 아니면 죽어서 신을 슬리퍼인지 그것을 알 수 있는 힘은 허락되지 않는다. (중략)

내가 사람이 되었을 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스스로 자신의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길을 가던 한 사람과 그의 아내의 마음에 사랑이 있어 나를 불쌍히 여겨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 두 고아가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도 한 여자의 진실한 사랑이 있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그저 인간들의 착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간은 사랑의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자는 하느님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고 하느님은 그 사람 속에 계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천사가 다시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는 이 짧은 이야기는 간결하지만 명확하다. 톨스토이는 가난과 불운으로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부를 축적하고 과시하며 천국이라는 성채를 짓고 있는 대형교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우화 같은 소설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성경과 하느님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들의 장황한 설교에 벌써 질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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