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가 시작되었지만 오월은 산책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골목길 잿빛 담장에는 붉은 넝쿨 장미가 불타오르고 수십 년은 되었을 감나무의 녹음은 점점 진해지고 있다. 마치 신이 주는 선물마냥 이 계절, 이 시간이 오면 어김없이 하나 둘 피어나다가 어느 순간 만개하고 여왕의 자리에 오르는 장미꽃이 지천에 피었다. 색색의 꽃들이 뿜어내는 향과 그늘을 따라 걷는 산책은 걷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화려하고 눈부신 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오월의 이면은 상처투성이다. 굳은 살 박힌 오래된 상흔을 품고 통곡과 아우성을 꾹꾹 눌러 화라는 지병이 된 가슴들이 있다. 어설픈 위로는 가 닿지 못할 심연이다. 오월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그런 기억들을 꾹꾹 밟는 것이다.
발길 닿는 대로 뚜렷한 목적지도 없다. 걷기는 목이 마르고 다리가 아파지면 멈출 수 있다. 쉴 타이밍이다. 걷다가 멈추고 바라보는 그 곳에 운이 좋으면 멋진 풍경이 있다. 낡은 하늘색 지붕의 단층집,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나이 든 노부부가 어깨동무하며 살 것 같은 곳. 정갈하게 가꾼 정원을 가득 채운 꽃과 나무들 사이로 목줄에 매어진 개 한 마리가 있다. 느리게 껌벅이는 눈에 게으름이 가득한, 별천지다.
걷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그늘막이 있고, 나무가 인접하고, 번잡한 도로에서 거리를 두는 편의점이다. 요즘 편의점은 편리함을 넘어 카페의 안락함을 지향하고 있다. 고급 커피를 합리적 값에 마실 수 있고, 더불어 점주님이 애견인이라면 기분 좋음을 넘어 감동이다. 테라스 의자에, 달이, 콩이, 별이, 콩이, 토리까지 다섯 마리의 개와 여자 인간 둘이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앉아 있으면 그 자체로 그림이다. 간혹 동물에게 호의적인 분들은 걷다가 멈춰서 말을 건넨다.
그들이 품은 개에 관한 흥미로운 스토리에 호응하고 위로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과정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익숙함을 발견하고 말을 건네는 순간, 타인은 그냥 타인이 아닌 익숙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이웃사람이 된다. 소통의 조건은 열려있는 마음이다. 대화가 이루어지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비슷한 환경, 생각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외롭다는 생각을 품었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