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국을 끓이다. 하루 한가지 요리를 하자라는 결심이 불현듯 들면서다. 이제까지 나는 하루 한가지의 요리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노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시금치국이 요리냐 하겠으나 내게는 엄연한 요리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 요리다. 적당히 육수 만들고 된장 풀어 끓인 시금치국은 사실은 맛은 없었다. 맛은 없지만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어치울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음식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음식에 호불호는 없다. 나는 미각을 상실한 배고픈 짐승일 뿐이니까.

 

노안이 시작된 어느날 부터 책읽기는 멈춤 상태다. 안경은 세 번째 맞췄다. 눈이 아프거나 두통이 생긴다는 이유로 멋지지도 돋보기 안경이 줄줄이 세 개다. 늘어선 안경을 보면 웃프다. 나이듦을 실감한다. 여전히 적응중이다.

 

더이상 스키니진을 사지 않겠다는 결심은 결국 또 다른 스키니진을 사면서 무너졌다. 나이도, 몸매도, 삶의 질도 적당히 넉넉한 옷을 사 입어야한다고 가리키는데, 또 다시 스키니진을 그것도 구멍 숭숭 뚫린 찢어진 진을 사고야 말았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진심으로 이것이 마지막이다.

 

커피와 수다와 시간은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아무리 잿빛 하늘이 암울하고, 미세먼지로 코가 막히고 목이 아파도, 음악이 흐르는 아늑한 공간에서의 커피와 수다, 흐르는 시간은 디저트처럼 달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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