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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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재미 혹은 흥미다. 흥미는 재미는 떨어져도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생태주의 소설의 효시라는 데 번쩍 손을 든 이 책은 역시나 재미보다는 인내심이 조금 많이 필요했던 흥미로운 소설이다.


<송어는 미국에서 어쩌면 가장 흔한, 혹은 미국인들과 가장 친밀한 관계가 있는 미국의 대표적 물고기...... 그래서 어느 의미에서는 미국을 상징하는 물고기라고 할 수........ 또한 송어는 현대의 미국인들이 잃어버린 미국의 꿈일 수도 있고, 기계문명이 쫓아낸 푸른 초원이라고 할 수도.........> 라는 저자의 인터뷰를 읽으며, 미국, 미국, 미국이란 단어에 살짝 거부감이 드는데. 시대가 시대고 때가 때인지라 그 위화감이라니. 리처드 브라우티건. 가난했던 그는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 배불리 먹어보려는 생각에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오리건 정신병원으로 보내 전기충격 치료를 받게 했다. 는 이력에 흥미는 돋긴 했지만  배고프고 추워 유치장을 선택했다는 사람들 얘기는 심심찮게 들은 얘기라 놀랄 일도 아니고 다만 정신병원행이라니. 이 사람 엄청 미움 받았구나 싶더라. 뭐, 표지에서부터 나 대단해요, 라는 이미지가 풀풀 날리지만.


책에 대한 정보가 미비할 때, 가장 먼저 읽는 것은 작가의 이력 그리고 해설이다. 한번으로는 부족해서 두어 번을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반복해서 읽은 듯. 오, 이런 대단한 책이었어? 군침을 흘리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미국의 송어낚시군. 혹은 미국의 송어낚시양의 이야기는 상당히 기묘하고 낯설었다. 이렇게 짧고도 우스운(?) 이야기 안에 그런 심오한 사상이 숨어있단 말이지.


글쎄다. 그가 살았던 나라, 이웃이라면 한결 공감하기가 쉬웠을라나. 도무지 아리송하고 에둘러 가는 이야기에 자꾸 딴 짓을 하게 만들지만 결국은 소설이다. 이런저런 거창한 꼬리표를 떼고 모르는 건 대충 넘어가면 술술 읽힌다. 2쿼트 분량의 쿨에이드 드링크를 1갤런 분량으로 묽게 타서 먹어야했던 시절의 가난이나. 마리와 칼라스와의 저녁 만찬과 호두케첩. 송어하천인줄 알았던 나무계단이나 노파와의 만남. 그래서 결국은 스스로 송어가 된. 알코올 중독자들을 위한 월든 호수에서 두 화가가 말하는 정신병원에의 미래 같은 거. 그리고 송어들이 싫어하는 찰스 헤이만씨는 물론이고 포토와인에 취해죽은 송어 이야기도 나름 비장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명품 ‘최후의 만찬’이 낚시의 미끼로 둔갑하다니 참, 그의 조크가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럭저럭 적당히 지루하고 썰렁하고 오묘한 장들을 읽으면서 문득 이 책을 읽고 심기가 불편했을,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의 송어낚시에 반하는 삶을 정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심심찮은 애도 정도는 올려야겠다. 사족이지만 표지 사진은 안보는 게 좋았을 걸. 그 사진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떠날질 않는다. 1984년. 브라우티건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설마 캘리포니아 관목 숲에서?). 그가 언급한 헤밍웨이처럼. 왜 그랬을까. 좀 더 살아서 더 치열하게 그의 나라를 조롱하며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그의 나라가 지금 보다는 나았을지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는 일본 문화와 문학의 예찬론자였단다. 작가 중에는 오에 겐자부로를. 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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