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과 소재에 혹해서 구입했지만 읽는 내내 ‘왜 내가 이걸 읽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일단은 소설이라서 싫건 좋건 끝을 보았지만, 감동을 쥐어짜는 이야기의 미덕만은 박수를 쳐야겠다. 낯선 상황이지만 천만분의 일의 확률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멋지다는 감탄사를 뿌리면서 몰입에 몰입의 노력을 기울이다가도 결국은 허구일 수밖에 없잖은가, 하고 맥이 탁 풀려버리지만, 거기까지 끌어당기는 중력만은 역시 무시할 수가 없다. 또 그것이 그들 소설의 결정적인 미덕일 것이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 태어난 하루에 대한 아버지, 어머니, 형의 사랑은 가히 절대적이다. 강간범의 자식을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아버지는 신에게 묻는다. 신의 대답은. 너 혼자 생각해. 하루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게 그들의 선택이었다. 어떤 의문도 회의도 불신도 망설임도 없이, 한 치의 티끌 같은 거리낌도 없이 하루라는 생명을 존재를 사랑하고 존중하기로.   


이 소설은 읽는 이가 깊은 생각과 고뇌를 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냥 무조건 이런 결정을 내렸으니 받아들여. 한다. 교훈과 감동을 주기 위해 작정한 우화에 가깝다. 재미와는 다른 웃긴 이야기다. 그렇다고 웃음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우습지만 너무 진지하다. 강간범이 죽어 마땅한 인간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의 비정상에 가까운 윤리의식을 들여다보면 어이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하루의 친부라는 사실은 신조차도 어찌할 수가 없다. 출생의 가혹한 비밀을 끌어안고 결벽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 하루의 극단적인 선택에는 ‘유전자’라는 천형을 짊어진 자의 고통이 배어있다. 슬픈 중력 삐에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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