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 > 한‧미자유무역협정 비판-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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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자유무역협정 비판
윤 소 영
6월 5-9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1차 공식협상이 개최된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가 광범하게 전개되고 있다. 주요 사회운동단체들이 발간한 자료집들만 보더라도, 범국민운동본부의 한‧미FTA 저지를 위한 국민교양 자료집(40쪽), 민주노동당의 한‧미FTA의 문제점(112쪽), 민주노총의 새로운 한‧미관계 구축을 위한 미국의 전략: 한‧미FTA 추진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18쪽), 한국노총의 한‧미FTA 자료집(130쪽), 전농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 민족은 망한다(27쪽) 등이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경우 한‧미자유무역협정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설명이 아니라 그 효과에 대한 나열이나 묘사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1)
경제위기‧세계화‧지역화‧통치성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에 따라 세계화와 지역화를 분석해야 한다(더 자세한 것은 윤소영,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공감, 2006, 2-3장을 참조하시오). 마르크스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포섭이라는 개념을 통해 노동을 절약하고 고정자본을 소비하는 ‘편향적’ 기술진보를 분석하는데, 여기서 그가 도출하는 결론이 바로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적 경제법칙이자 자본주의적 경제위기의 ‘궁극적 원인’이라고 불리는 고정자본의 생산성 하락과 이윤율 하락이다.
경제위기를 특징짓는 하나의 현상으로서 금융화는 생산성과 이윤율의 하락에 따라 실물적 축적이 금융적 축적으로 변모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2) 금융화의 주요한 형태는 이윤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고정자본투자(마르크스가 말하는 집적)와 달리 이윤의 분배를 목적으로 하는 증권투자(집중)다. 1990년대 이후 초민족자본(법인자본 및 기관투자가)이 금융화의 주체가 되면서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동시에 지역적 조건에 따라 세계화를 구체화하려는 지역화가 모색된다. 말하자면 세계화와 지역화라는 형태로 진행되는 금융화가 경제위기에 대한 부르주아적 대응인 셈이다.
초민족자본이 추진하는 세계화와 지역화를 지지하는 다양한 국제경제기구들이 있는데, 그들간의 분업과 협업이 세계적‧지역적 ‘통치성’(지배구조)을 구성한다.3) 세계화를 위한 국제경제기구들로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이 있다. 세계무역기구가 초민족자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대변한다면,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은 초민족자본의 이익을 간접적으로 대변한다. 세계무역기구가 1970년대 금융의 자유화, 1980년대 농업‧서비스의 자유화를 추진하던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을 계승한다면, 1970년대초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이후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은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추진한다.
지역화를 위한 국제경제기구들을 대표하는 것이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인데,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유럽연합의 핵심은 공동시장과 화폐동맹이다. 공동시장과 자유무역협정은 상품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즉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를 추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공동시장이 공동의 경제정책을 통해 ‘폐쇄적’ 지역화를 추구한다면,4) 자유무역협정은 공동의 경제정책을 채택하지 않는 ‘개방적’ 지역화를 추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공동의 경제정책을 상징하는 공동통화 유로를 채택함으로써 공동시장과 화폐동맹을 결합하는 유럽연합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은 노동의 신축화(유연화)이지만, 공동통화를 채택하지 않는 자유무역협정에서는 노동의 신축화 외에도 평가절하라는 또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참고로, 공동통화를 채택하는 화폐동맹은 이른바 ‘통화대체’의 일종이다. 화폐동맹은 유럽의 독일처럼 지역 헤게모니가 존재하는 경우에 가능한데, 이런 의미에서 유로는 마르크의 확대판인 셈이다. 통화대체의 또 다른 종류는 중남미처럼 지역 헤게모니가 존재하지 않아서 세계 헤게모니 미국의 달러를 공용화하는 달러리제이션이다. 달러리제이션은 1990년대 러시아처럼 비공식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지만, 1990년대 아르헨티나처럼 공식적으로 추진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족화폐는 유지되지만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과 태환이 보장된다. 민족화폐가 완전히 폐지되는 극단적인 달러리제이션은 중남미에서조차 아주 예외적이다.
문민화 이후 남한경제의 세계화와 지역화
이제 문민화 이후 남한경제의 세계화와 지역화를 설명해보자(더 자세한 것은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개론, 위의 책, 1장을 참조하시오). 1986-88년간 이른바 ‘3저 호황’ 이후 새로운 경제위기가 예고된 것은 1990년이었는데, 당시 이윤율은 1979-80년 수준으로 하락했다. 김영삼 정부가 세계무역기구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으로써 세계화를 개시한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재벌을 주체로 하는 세계화는 오히려 반도체‧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 등에서 고정자본투자의 급증과 이윤율의 급락을 초래함으로써 1997-98년 경제위기(및 외환위기)로 귀결되었다.
1997-98년 위기를 계기로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의 지도 아래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추진하면서 재벌 중심의 세계화를 지속했다. 50% 정도에 달하는 급격한 평가절하로 인해 재벌의 경쟁력이 회복되었지만, 그러나 재벌에 대한 초민족자본의 금융적 지배도 심화되었다.5) 또 김대중 정부 이후 남한경제는 장기침체에 진입했는데, 재벌이 중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시도하면서 국내 고정자본투자가 정체되었고 초민족자본의 지배에 따라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생산(GNP)의 괴리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재벌의 세계화를 지역적으로 구체화하려고 시도한다. 남한경제도 유럽경제처럼 공동시장과 화폐동맹을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현실적 근거도 없다. 남한경제를 비롯한 동아시아경제가 대미 상품수출을 통해 성장해왔고 또 노동의 신축화와 함께 평가절하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97-98년 위기 이후 동남아시아경제를 희생한 중국경제의 성장이 단적인 사례다. 중국경제의 추월 가능성에 대한 재벌의 경고에 따라 노무현 정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이런 상황과 관련된다.
게다가 남한경제와 동아시아경제는 수출달러의 환류와 자본도피를 통해 미국으로 자본을 수출함으로써 미국경제의 달러시뇨리지(발권이익)와 이중적자를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동남아시아경제를 포함하는 ‘중화경제권’에 대한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무런 현실적 근거가 없다. 1990년대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이 유럽에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으로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기구(APEC)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협정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 목적일 것이다.
따라서 경제위기(및 외환위기)에 대한 남한 부르주아지의 대응으로서 평가절하(및 수출달러환류‧자본도피)를 보충하려는 시도가 바로 한‧미자유무역협정인 셈이다.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로 인한 평가절상 압력 때문에 평가절하를 통해 재벌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초민족자본의 증권투자를 오히려 가속화시키는 한‧미자유무역협정은 미봉책일 따름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남한경제의 장기침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예를 들어 경상수지흑자가 감소할 것인데,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과 국민총생산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6)
보론: 농업 및 서비스 개방
세계화와 지역화의 부정적 효과가 집약되는 부문이 농업과 서비스이기 때문에 한‧미자유무역협정에서 농업과 서비스 개방이 쟁점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농업 개방의 핵심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농산물시장 개방이 아니라 초민족자본인 농업메이저가 추진하는 ‘녹색혁명’에 대한 종속에 있다. 그리고 물론 녹색혁명에 대한 종속은 농산물시장 개방 이전으로 소급되는 남한농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예를 들어 중남미농민과 달리 남한농민은 농업메이저에 의해 포섭되어 자기착취 당하는 자영농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7)
서비스 개방의 핵심은 법률, 회계, 재무, 마케팅과 관련된 컨설팅서비스뿐만 아니라 금융,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과 관련된 컨설팅서비스도 포함하는 이른바 ‘사업서비스’에 있다. 그리고 물론 사업서비스 개방은 김대중 정부 이후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지식기반경제’로의 전환의 핵심이다.8) 또 사회서비스(공공서비스)에서는 병원이 아니라 초민족적으로 활동하는 제약회사‧보험회사와 관련되는 보건의료 개방이 핵심이고, 반면 학교가 아니라 유학이나 ‘두뇌유출’과 관련되는 교육 개방은 부차적이다.9)
참고로, 세계화와 지역화가 진행되면서 공기업이 항상 사유화(민영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두자(게다가 공기업의 사유화는 초민족자본이 아니라 민족자본에 의해 주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교통‧통신과 관련된 공기업과 달리 전기‧석유가스(에너지)‧수도와 관련된 공기업을 사유화해서 수익성을 확보하려면 통치성을 훼손하는 아주 곤란한 사회‧정치적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사유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제휴나 탈규제를 통해 경쟁원리를 도입하기도 하는 것이다.10)
2006. 6. 10.
1) 민중언론참세상이나 프레시안 같은 인터넷 신문을 통해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에 가세하는 지식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조차 ‘제2의 IMF 위기’, 심지어 ‘제2의 한‧일 합방’ 같은 역사적으로나 정세적으로나 별의미 없는 유비를 남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2) 경제위기를 특징짓는 또 다른 현상은 대량실업과 궁핍화다. 보통 비정규직화와 양극화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대량실업과 궁핍화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양극화는 재벌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사이의 격차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다.
3) 물론 세계적‧지역적 통치성이 국제경제기구들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 통치성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세계화가 필수적이고, 지역적 통치성에는 나토(미‧유럽군사동맹)와 미‧일군사동맹 같은 지역적 군사동맹이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4) 그러나 유럽연합이 추구하는 지역화도 ‘블록화’(식민지화)는 아니다. 유럽연합헌법조약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유럽연합이 세계화에 대립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인경‧박정미 외, 인민주의 비판, 공감, 2005 참조.
5) 법인자본과 달리 재벌이 금융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하고 순환출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6) 이 때문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재벌‧공기업노조운동)을 사회운동으로 변모시키자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코파가 이미 지난 수 년간 주장해왔던 세계무역기구‧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투쟁도 그런 변모를 추동하지 못한다면 단순한 캠페인에 그칠 따름이다. 대안세계화‧대안지역화운동과 노동자운동의 관련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윤소영,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이념과 운동, 공감, 2004를 참조하시오.
7) 농민운동이 농산물시장 개방만을 쟁점으로 제기할 때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처럼 남한에서도 ‘농촌의 휴양지화’가 진행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따름이다. 제이슨 무어 외,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생태론, 공감, 2006 참조.
8)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기준에 따르면, 금융 및 사업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기반경제에는 교통‧통신과 관련되는 항공‧우주‧정보‧통신산업이나 보건의료와 관련되는 생명공학산업 같은 첨단제조업도 포함된다.
9) 이 때문에 보건의료운동은 공공성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약사 등 전문직정책운동이나 병원노조운동에서 탈피해야 한다. 또 교육운동도 교원노조로서 전교조운동에서 탈피해야 한다. 비센트 나바로 외, 보건의료: 사회‧생태적 분석을 위하여, 공감, 2006; 윤종희‧박상현 외, 대중교육: 역사‧이론‧쟁점, 공감, 2005 참조.
10) 따라서 공공성은 방어투쟁의 구호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전국민중연대를 토대로 지난 3월에 구성된 범국민운동본부가 채택한 이른바 ‘공공성 강화’는 아주 잘못된 구호인데, 오히려 사회운동단체들의 코퍼러티즘적 경향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화를 국유화로 환원하는 오류를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코퍼러티즘적 국유화론에 대한 더 자세한 비판은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위의 책을 참조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