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번역투 문장은 왜 나쁜가- 멀고느린구름

요즘 논술 탓에 글쓰기 관련 서적이 넘쳐나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의 부탁으로 쓸만한 글쓰기 참고 서적을 찾아보기 위해 영풍문고를 갔었다. 내가 글쓰기 공부를 할 적만해도 국내작문론 서적으로는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거의 유일했는데, 몇 년만에 수 십 가지로 책이 늘어났더라. 작문론 코너에서 이리저리 책을 살펴 보았다. 거의 비슷비슷한 내용이었다. 개 중에는 바른 문장쓰기와 관련한 책도 여럿 있었는데 재미난 공통점이 있었다. 다들 하나 같이 번역투의 문장은 안돼! 라고 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되물었다. 엉? 왜에?

 

  그러게, 왜? 왜 번역투의 문장은 쓰면 안된다는 걸까? 국적없는 표현이라서? 아래 한 문장론 책에서 인용한 것을 먼저 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낮술마신달님의 블로그에서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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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없는 번역투 표현'란에서 대표적 사례를 부분 옮겨본다.

 

 

 '피동형'은 글심(표현력)을 약하게 한다.

 

 '피동형'은 '사동형'이나 '능동형'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 '책을 읽히다'(사동형), '책을 읽다'(능동형)

 

 

  ㄱ.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ㄴ. 회의를 보다 즐거운 것으로 하기 위하여, 좋은 제안을 보내 주십시오.

  ㄷ. 새 달 중순경 회의를 가지려 합니다.

  ㄹ.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ㅁ. 오늘 중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ㅂ. 더 일찍 제출할 터였는데 미안합니다.

  ㅅ.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시킨 것일까요.

 

이렇게 고쳐야 한다.

 

  ㄱ. 이 책은 젊은이들이 많이 읽고 있습니다.

  ㄴ. 즐거운 회의가 되게끔, 좋은 생각을 보내 주십시오.

  ㄷ. 새 달 중순께 회의하겠습니다.

  ㄹ. 계획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ㅁ. 오늘 중으로 하여야 합니다.

  ㅂ. 더 일찍 내지 못하여 미안합니다.

  ㅅ.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을 행한다', '~을 갖는다'는 쓰지 마라

 

 '을 행한다', '~을 갖는다'는 번역투 말이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나는 우리식 표현으로 고치자.

 

 

 7년간 연구를 행한 끝에 -> 7년간 연구한 끝에

 전문적 조사를 행하고서야 -> 전문적으로 조사해야

 재판이 행해진 뒤에 -> 재판 끝난 뒤에

 

 단독 회담을 가진 자리에서 -> 단독 회담 자리에서

 어떠한 관계를 가진 사이인지 -> 어떤 사이인지

 예정대로 입학식을 갖기로 했다. -> 예정대로 입학식을 하기로 했다.

 

 

조심할 번역투

 

'~을 시키다'는 번역투 표현이므로 '~하다'로 바꾸자.

 

 환경을 개선시키다 -> 환경을 개선하다

 회장을 구속시키다 -> 회장을 구속하다

 전투기를 격추시키다 -> 전투기를 격추하다

 계획을 구체화시키다 -> 계획을 구체화하다

 

 '~화하다'는 '~해지다'로, '~화되다'도 번역투이므로 '~이되다'로, '~화되어지다'도 '~화하다'로 바꾸자.

 

 비대화한 도시 -> 비대해진 도시

 폐허화된 평양 -> 폐허가 된 평양

 조직화된 종교 -> 조직화한 종교

 산업화되어진 오늘 -> 산업화한 오늘

 

 

 '~적', '~화', '~성'의 남용

 한자어 접미어 '~적(的)' '~화(化)' '~성(性)'은 모두 추상(抽象)을 나타내는 접미사들이다. 너무 많이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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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소위 '번역투' 문장을 다른 여러 서적에서도 문제 삼고 있다. 글쓴이의 나이가 많으나 젊으나 한 결 같이 그건 안돼! 라고 외친다. 그러나 다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지 한국적이지 않다 라든가, 전통을 무시한다 라든가 하는 궁색한 근거만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을 해보자. 문장 혹은 표현에 '국적'이 있다는 생각은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물론 나라마다 서로 다른 문법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가 개인이 구사하는 표현이나 문장을 가지고 국적을 들먹이며 규제할까? 그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첫 번째 주의에서 "피동형은 글심을 약하게 한다" 라고 외치고 있는데, 정말 그런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글심이 약해지는 것은 오히려 '능동형만'을 사용했을 경우의 현상이다. 피동형과 능동형을 함께 사용했을 때 되려 더욱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다. 예를 보자.

 

 

ㅅ-1.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시킨 것일까요.

ㅅ-2. 그녀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적을 지키기 위해 피동형(ㅅ-1)을 능동형(ㅅ-2)으로 바꾸어 보면 문장의 늬앙스가 전혀 달라진다. ㅅ-1의 문장에서 그녀는 어떤 외압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행위를 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다. 허나 ㅅ-2의 그녀는 스스로 어떤 일을 해버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걘 왜 그랬대? ㅅ-2의 그녀는 왠지 얄미운 그녀이다. 자랑스런 문장의 국적을 지키기 위해 모든 '위기의 그녀'를 '얄미운 그녀'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두 번째 주의, '행한다, 갖는다'를 쓰지 말라고? 이런 무지막지한 폭력이 어디 있는가. 뻔히 있는 표현을 쓰지 말라니. 언어는 기본적으로 풍부할 수록 좋은 것인고, 표현 또한 선택지가 많을 수록 재미난 것이다.

 

예정대로 입학식을 갖기로 했다. -> 예정대로 입학식을 하기로 했다.

 

앞의 문장은 소위 번역투이다. 영어의 have 표현을 우리말로 옮겨 온 것. 자 우리 입학식으로 다양한 말을 만들어 보자.

 

 

입학식을 열다.

입학식을 하다.

입학식을 개최하다.

입학식을 치르다.

입학식을 겪다.

 

 

입학식이라는 주어로 우리는 숱한 다른 형태의 표현들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다 영국에서 물 건너 온 '갖다'라는 표현을 하나 더 붙이는 게 그렇게 몹쓸 짓이란 말인가.

 

 

입학식을 갖다.

 

 

표현이 좋지 않은가? 영어식 표현에는 시적인 것이 많다. '입학식을 갖다'라는 표현 역시 사물이 아닌 것에 사물을 소유한다는 뜻의 '갖다'를 붙임으로서 독특한 늬앙스를 전달한다. 창의적인 언어 사용자라면 더 참신한 표현을 발명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입학식을 풀다', '입학식을 맞이하다', '입학식을 잡다', '입학식을 낚다' 등등도 아직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얼마든지 의미의 전달이 가능한 표현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표현 방법은 풍부하면 풍부할 수록 좋다.

 

 

 문장이나 표현의 '국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민족주의자이거나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문장,표현의 국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전통이란 과연 어느 시대의 것일까. 아마도 일제시대, 좀 더 길게는 조선시대의 것일 터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을 테니 그 전통이라고 해봐야 끽해야 3~400년 정도이다. 그러나 이 3~400년 동안 우리 한반도의 언어가 단일한 표현 방식으로 균일성을 유지해 왔다고 볼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언어와 요즘의 언어 사이에서 조차도 도드라지는 이질성이 발견되니까. 언어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엄연한 언어의 자연(스스로 그러함)이다. 언어는 도도히 흐르고 흐르는 강물과 같다. 그것을 인간의 보수적 욕심으로 틀어막아 버리면 물이 고여 썩게 된다.

 

  언어는 흐르고 흘러 저 다른 세계의 강줄기와도 뒤섞이며 넓고 넓은 바다가 되어야 참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우리 민족의 언어는 참으로 품이 넓은 언어이다. 영국식 표현이든, 일본식 표현이든, 중국식 표현이든 모두 우리의 언어 속에 품고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이는 '문장, 표현의 국적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우려처럼 재앙인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혜택인 것이다. ~행하다도 쓰고, ~하다도 쓰고, ~시키다도 쓰고, ~갖다도 쓰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가지 다양한 국적의 독특한 표현들을 문맥의 상황에 맞게 맛깔나게 쓰면 그만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입학식을 갖도록 하셈!' 이라고 쓴다고 해서 훈민정음이 알파벳이 되지는 않는다.

 

  사족으로 몇 년전에 어떤 국어학자(아마도 민족주의자)가 방송에 나와서 대한민국을 표현할 때 '저희 나라' 라고 하면 안 되고, 꼭 '우리나라' 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덕분에 요즘 어디가서 저희 나라가... 어쩌구 라고 말 시작하려 하면 철썩! 뺨 맞는다. 그런데 이게 참 웃기는 일이다, 웃기는 일. 아니, 나라를 좀 낮추면 어때서 그러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모든 존재에 앞서서 존재하는 최상의 것인가. 옳지 않은 전쟁에 군대를 보내는 국가가 평화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나라보다 항상 우위에 있는 나라인가. 대한민국은 내가 태어난 나라이기 때문에 항상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훌륭하고 좋은 나라로 대접해주어야만 하는 걸까. 어떠한 경우에도? 언어를 통하여 교묘하게 국가주의를 학습시키려는 계략에 온 국민이 얼씨구나 하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는 건 아닐까. 오호 통재라!

 

 

 

2007. 3/4. 멀고느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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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교수의 품위, 대학의 품위

낮에 전철에서 읽으면서 옮겨놓는다고 해놓고 깜박한 기사가 있다. 이른바 '석궁사건'의 주인공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재판이 주초에 있었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대학사회에 던지고 있는 한정숙 교수의 칼럼이다. 재판관련 기사와 함께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3. 09) 교수의 품위, 대학의 품위

이 일이 다시 상기되는 것을 본인들은 쑥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삼십대 초반의 청년이던 장희창 교수는 1987년 재직하던 부산의 한 사립대학에서 해직당했다. 그는 86년 봄 정국을 소용돌이치게 한 대학교수 시국성명 발표 당시, 재직 대학에서 이 일에 앞장섰다. 교수들은 대통령을 선거인단 간선제로 뽑게 돼 있던 5공 헌법을 고쳐 국민이 직접 선출토록 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 당연한 일에 동참했던 그는 그 직후부터 대학 당국한테 시달림을 받다가 끝내 재임용 탈락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그가 대학교수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가깝게 여기던 동료에게 회식 자리에서 가벼운 기분으로 한 말과 행동이 ‘품위 없음’의 사례로 찍혔다. 대학 쪽은 교수를 해직시키면서도 그가 민주화를 요구했다는 것을 근거로 대지 않고 ‘품위 없는 교수’라는 이유를 댐으로써 인간적 모멸을 더했다. 얼마 후 대학에서는 입시부정이 있었고, 장 교수와 함께 시국성명에 동참했으나 대학에 남아 있다가 부정에 항의한 두 교수도 마저 해직당했다.

그 후 제기한 복직소송에서 이들은 계속 패했고 한국사회의 어떤 제도권 기관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직 뒤 20년 만인 지난해 복직을 할 때까지 학원 강사로, 프리랜서 번역가로 사는 동안, 이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이상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생각해 보자. 독재정권에 저항한 교수들과 그들을 내쫓은 대학, 어느 쪽이 품위 상실의 주역인지.

서울 쪽 한 대학에 재직하다가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교수가 복직소송 2심에서 패했다. 그는 대법원에서도 판결 번복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2심 담당법관과 옥신각신하다가 상대에게 상해를 입혔고, 이 때문에 형사범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 첫 공판이 있었다. 그가 재직 대학의 수학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했다가 미움을 받아 재임용에서 탈락했음은 대한민국이 다 안다. 그런데 대학 쪽은 인간적 갈등에서 빚어진 몇 사례를 극단화시키고서 그를 ‘교수 품위를 떨어뜨린 인물’로 몰아 해직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대학이란 데가 그렇게 품위 있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은 아니다. 성추행자도 있고 소위 ‘또라이’도 없지 않다. 정작 이런 사람들도 대학이라는 강자의 비위만 거스르지 않으면 무사하다. 조직 이기주의 아래 보호받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 철칙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었고 해직이 그 대가였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종교재판에 회부됐다. 종교재판을 주관한 교황청과 학문적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갈릴레이, 이 둘 가운데 인간의 품위에 치명타를 가한 쪽은 누구일까. 갈릴레이는 극한 상황을 피하고자 자기 학설을 일시적으로 철회했다지만, 김 교수는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법원에서는 종교재판 때 같은 극한 상황이 없으리라 믿었기에 변호사도 없이 혼자 법리를 따져가며 재판에 임했다. 자기가 옳다는 것이 자명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여기리라 믿었다. 그러나 법원은 그를 인간적으로 모욕한 강자의 정의를 수호했을 뿐이다.

만약 법관 재임용제도로 법관들도 함부로 해고된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변호사 개업이라는 출구가 없다면, 법관들은 ‘내 탓이오’라고만 여기고 이를 받아들일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 대한수학회는 김 교수 해직을 두고 지금껏 견해를 밝히지 않았다(*이 사건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미스테리한 일이면서 실망스러운 대목이다. 수학자들의 '계산법'이라지만 나의 상식으론 이해되지/납늑되지 않는다). 10년도 넘게 제도권에서 버림받은 채 유랑 세월을 살아 온 그의 큰 울음소리에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석궁이 등장했다. 소속 연구자가 학문적 양심을 수호하려다 고통받을 때 학회가 할 일은 무엇일까?(한정숙/서울대 교수·서양사)

경향신문(07. 03. 06) ‘그들만의 재판’ 겨눈 ‘석궁 교수’

“판사님이 법에 따라 판결하시겠다고 약속하거나 맹세할 수 있습니까?” 현직 부장판사에 대한 ‘석궁테러’ 사건 피고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50)는 당당했다. 판사는 “답변하지 않겠다. 당연한 얘기다”라며 고개를 돌렸지만, 표정은 몹시 곤혹스러워 보였다. 판사와 피고인의 입장이 뒤바뀐 듯한 순간이었다.

5일 오전 10시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김 전 교수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김 전 교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법정에 들어섰다. 손에는 작은 법전 한 권과 대학노트가 들려 있었다. 이날 김 전 교수는 시종 자신의 행동이 “정당방위이며 국민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규정과 원칙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김 전 교수는 재판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공판 내내 숨기지 않았다. 본인 확인을 위해 판사가 사는 곳을 묻자 “성동구치소입니다”라고 답해 법정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함께 사는 가족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수용자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고 답했다. 검찰의 피고인 심문 때는 심문 내용을 문서로 요구해 꼼꼼히 읽어가며 심문을 받았다. “‘불만’이라는 표현은 문제가 있다”거나 “석궁을 ‘겨누었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달라”는 등 표현 하나하나를 반박하거나 수정했다.

김 전 교수와 재판부는 공판이 끝날 무렵 ‘충돌’했다. 검찰측 증거신청 절차가 진행될 때 김 전 교수가 “나도 증거신청할 권리가 있다. 내 의견도 물어달라”고 이의를 제기, 논쟁의 막이 올랐다. 김 전 교수가 “검찰은 증거가 각각 어떤 공소사실을 입증하는지 설명해야 한다”며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판사와 검사는 김 전 교수를 설득하는 데 5분이 넘도록 진땀을 빼야 했다.

변호인측과 재판부의 신경전도 날카로웠다. 변호사가 김 전 교수를 계속해서 “김교수님”이라 부르자 판사는 “피고인으로 부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기욱 변호사는 “공판에서 피고인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며 공판이 끝날 때까지 김 전 교수를 ‘피고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날 공판을 지켜본 임종인 의원은 “법조인들만의 용어와 방식으로 진행되는 재판에 대해 김 전 교수가 신선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말했다.(박영흠기자)

07. 03. 10.

P.S. 내친 김에 예전에 읽었던 도정일 교수의 칼럼까지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1. 19) 타락한 문화가 ‘석궁’을 쏘았다

한때 국제 학계에서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라는 두 개의 축 가운데 어느 쪽으로 더 쏠리는가에 따라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적 차이를 규정해보려는 연구를 꽤 열심히 진행했던 적이 있다.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충돌론’을 들고 나와 문화에 대한 사회과학의 관심을 정치학 쪽으로 납치하게 된 1990년대 초반까지 10년 남짓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같은 분야의 상당수 연구자들을 매료했던 것이 바로 그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라는 화두다. 당시의 연구들을 보면 북서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개인주의 문화’의 강세지역에 속하는 반면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남부 유럽 일부 국가들이 ‘집단주의 문화’의 강세지역에 속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계열의 연구들은 그 방법론이 너무 단순하고 연구에서 얻어진 발견들도 상식을 크게 넘어서지 못할 정도로 진부한 것일 때가 많다. 집단주의 문화가 개인의 행복보다는 집단의 이익과 명예를 중시하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가족 등 친밀집단에 대한 충성을, 수평적 평등관계보다는 수직 위계서열과 상부권위에 대한 숭상을, 개인의 도드라짐보다는 집단의 내부 인화와 화합을 더 중하게 여긴다. 속담을 빌리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시끄러운 바퀴에 기름“ 칠해주고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반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집단을 앞세우는 문화에서는 소속 집단에의 무조건적 복종이 강조되고 소속원들은 자기 집단을 위해 기꺼이 싸울 것은 물론 목숨까지 바칠 용의도 갖고 있다. 집단문화에 대한 이런 식의 기술은 이미 낯익은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의 가치서열을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소위 ‘개인주의 문화’가 된다는 식의 주장도 별로 새로울 것 없어 뵈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그 1980년대식 문화연구에 귀담아 들을만한 발견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 ‘가치’라고 여겨지는 것들이 반드시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동일한 액면가를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적 가치들은 인간사회의 문화적 ‘보편’이 아니라 ‘특수’이며 지역적 크기로 따져도 세계의 70%는 오히려 집단주의 문화의 특성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지리적 이동성이 높아지면 질수록 개인주의적 가치들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개인주의가 개인이기주의로 변질하는 정도도 높아진다, 이런 문화적 변동은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당시 연구자들이 내놓은 이런 발견은 지금도 경청할만한 것들이다.

민주사회라고 해서 반드시 개인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 역시 당시 연구가 내놓았던 발견 사항의 하나다. 미국과 달리 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는 지금도 개인의 품위와 그의 사회적 책임을 나란히 강조하는 건강한 개인주의 문화 모델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당시 연구에서 나온 발견의 일부다. 한때 미국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복과 이익 말고도 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알았으나 현대 미국의 개인주의에서는 다른 어떤 고려사항보다도 개인 이익의 최대화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의 미국 백인 중산층 사람들은 자신을 개인적 특성, 선호, 욕망의 집합으로 정의하는 반면 아시아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사회관계의 망 속에서 자기 위치를 규정한다. “그래서 내게 득 되는 것이 뭐지?”가 현대 개인주의의 지배적 질문 방식이다. 그러나 만사를 개인 이익을 잣대로 해서 따지고 드는 극단적 이기주의 성향이나 탐욕은 인간본성의 항구한 법칙도 보편사항도 아니다- 이런 주장도 지금의 경제학이나 생물학이 들으면 웃을 소리 같지만 그 80년대 연구들이 내놓았던 발견의 일부다.

어떤 문화도 완벽하게 집단주의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80년대 문화연구자들이 설정했던 집단주의/개인주의의 구별 역시 순진한 2분법의 적용이기보다는 학문적 연구를 위한 순수모델, 또는 ‘아이디얼 타이프’의 일종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변화가 어떻게 문화변동을 유도하고 가치체계를 서서히, 때로는 급격하게 변화시키는가라는 문제다. 지난 30년 혹은 40년간 우리 사회에 발생한 변화들, 특히 경제적 변화가 현대 한국인의 가치관, 인생관, 정체성 규정방식, 교육목표 등 문화적 차원에 일으켜 온 지형변화는 실로 심대한 데가 있다. 전체 그림을 놓고 보면 가장 현저한 문화변동의 패턴은 ‘집단주의적 문화로부터 개인주의적 문화로의 대이동’이다.

이 이동 패턴의 어떤 부분은 정치 민주주의나 개인의 품위 향상 등 사회발전이나 인간발전에 긍정적인 것인 반면 어떤 부분은 아주 부정적이다. 이 부정적 변화들 중에서 우리가 백번도 더 주목할 것은 1980년대 연구자들이 집단주의/개인주의로 분류한 문화적 특성들 가운데 가장 나쁜 것들을 용케도 골라서 뭉쳐낸 ‘악성조합’의 측면이다. 집단주의 문화나 개인주의 문화의 좋은 가치들은 다 내버리고 집단주의의 가장 나쁜 것들과 개인주의의 가장 나쁜 것들만 골라 선택 조합하고 결합시키는 것이 악성조합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는 전통적 집단주의의 가치, 이데올로기, 지향들과 근대 개인주의적 문화 요소들이 아주 어지럽게 혼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 혼재양상의 지배적 특성은 두 문화의 악성조합, 곧 문화의 타락상이다.

이 타락을 보여주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거의 매일, 하루에도 수백건씩 발생하고 있다. 최근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전직 대학교수와 판사 사이에 벌어진 이른바 ‘석궁사건’이다. 사건의 발단 지점을 들여다보면 대학, 학회, 정부 부서, 사법 당국 등 우리 사회의 위세당당한 집단들이 집단주의 문화의 악성 요소와 개인주의 문화의 악성 요소들을 잘도 결합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집단주의가 악성의 개인주의와 결합하면 집단이기주의 혹은 ‘집단적 개인주의’가 된다. 개인주의가 악성의 집단주의와 결합하면 개인의 이익과 행복을 집단의 뒤에 숨어서, 집단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개인 집단주의’가 나온다. 이런 악성조합의 결과는 문화의 타락이다. 그 타락은 누가, 무엇이, 치유할 것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타락 앞에서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울어야 할 이유를 갖고 있다.(도정일/ 문학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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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

언제나 그렇지만 매주 책들은 쏟아지고 그 중 주목할 만한 책들이 10여 권 정도 언론의 리뷰를 탄다(단평까지 포함하면 20-30권쯤 되겠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책들은 물론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관심을 제약하기 때문이다(그러고도 '책벌레'란 소리를 듣는다!). 금요일자 한겨레의 북리뷰들을 대충 훑어보다가(읽을 시간도 없다!) 이 주의 책으로 혼자서 꼽은 건 앨런 그로스의 <과학의 수사학>(궁리, 2007)이다.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 경우에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의외성'이다. 즉, '예기치 않은 책'에 아무래도 눈길을 주게 되고 <과학의 수사학>은 그런 책이다. 이때 수사학은 물론 '과학 수사'와는 전혀 무관한 '레토릭'을 말한다. 부제대로 하자면,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룬 (아마도 드문) 책이다. 원저는 지난 1990년에 출간됐다고 하니까(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왔다) 나이 좀 먹은 책이다. 관련리뷰를 먼저 읽어두고 언제쯤 구매할/읽어볼 것인지 가늠해본다.  

한겨레(07. 03. 09) 과학도 철학처럼 ‘설득의 산물’

백과사전은 ‘과학’을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이런 규정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으로 분석 가능한 정치적인 것, 사법적인 것, 나아가 철학, 문학비평, 역사 등과는 달리 과학에 절대적 신화나 특권을 부여한다.

<과학의 수사학>(궁리 펴냄)은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유래의 고전적 정의와 달리 수사학적 분석 대상이 가능하다는 걸 ‘설득’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앨런 그로스는 과학적 주장들도 단지 ‘설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이 ‘자연의 원초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지식이 아니며, 문제가 선택되고 결과가 해석되는 과정은, 설득을 통해서만 중요성과 의미가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수사학적이라는 것이다. 수사학적 관점으로는 과학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뉴턴은 1672년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광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 서설>의 부록에서 ‘백색광이 기본이며 색은 백색광의 변형으로 이차적인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백색광은 이차적인 것으로, 가시 스펙트럼의 모든 빛들이 합성된 결과’임을 밝힌 논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전통적 관점·방법들과 대립함으로써 ‘설득’에 실패했다. 결정적 실험의 설득 능력은 실험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에도 , 뉴턴의 논문은 결정적 실험에 대한 어떤 그림도, 분명한 실험방법들도 결여돼 있었다. 30여년 지나 1704년 뉴턴은 <광학>을 출간해 2차 시도를 한다. 뉴턴은 “데카르트가 한 일은…훌륭한 발걸음이었다.…만일 내가 더 멀리 내려본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광학>에 역사적 연속과 논리적 불가피성이라는 인상을 부여했다. 또 세밀한 실험을 거듭해 ‘압도적 현존감’을 창조했다. 그는 <광학>의 말미에 수사학적 질문을 쏟아내 실험에 의해 확실해진 것과 불확실한 채로 남은 것을 구분함으로써 질문 이전에 제시된 결론들의 ‘과학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로스에게 뉴턴의 <광학>은 ‘수사적 개종’을 통해 성취된 ‘수사학의 걸작’이다.

저자는 과학에는 종종 잘 숨겨져 있지만 수사학이 내포돼 있으며, 정치연설과 학술논쟁, 과학논증의 영역에는 서로 닮은 꼴(유비)이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새로운 ‘종’의 발견은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구분과 분류에 대한 설득을 통해 ‘창조’됨을 보여주고 있다. 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의 회고담 <이중나선>이 담고 있는 설화 서사구조와 왓슨과 크릭의 논문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DNA 구조의 실재는 설득을 위해 사려분별 있게 사용된 말과 수사, 그리고 그림의 결과들”이라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그로스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성의 개종’을 요구한 수사학적 혁명으로 해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이 이성의 혁명이기 위해서는 정밀관측과 틀림없이 일치하고 정확한 물리학에 부합하는, 수학적으로 깐깐한 체계가 돼야 했지만, 이런 이상적 설명은 그가 죽고나서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에야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가 증거와 논증이 아니라 ‘선전, 감정, 임시방편의 가설, 선입견에 대한 호소’ 등 비이성적 수단들에 의해 지지됐음을 저자는 당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과학과 수사학을 각각 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의 융합을 들고 있음은 과학저술의 전범인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뉴턴의 <프린키피아> <광학>, 왓슨의 <이중나선>,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을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저자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이근영 기자)

07. 03. 09.

P.S. 최근 '수사학' 붐이 얼마간 조성되고 있지만, <과학의 수사학>은 그러한 붐에도 한몫 낄만 하겠다. 책은 궁리출판사에서 내는 '궁리하는 과학'의 두번째 책인데, 왓슨의 <이중나선>(궁리, 2006)이 첫번째 책이었고 이번에 같이 나온 듯한 로저 트리그의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궁리, 2007)이 세번째 책이다. 트리그의 책에 대한 리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트리그의 책들은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내게 더 친숙한 책은 <과학의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이다. 그건 예전에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의 원서를 모셔둔 지가 벌써 오래됐기 때문이다. 'The Shaping of Man'(1982)이 그 원서이고 부제는 '사회생물학의 철학적 측면'이다(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186쪽의 얇은 책인데, 국역본은 333쪽. 책이 폼나게 나오긴 했으나 이런 식의 분량 '인플레'는 슬슬 염증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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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퍼온글]“가난, 생각하면 슬퍼지는 것”

[삶_세상] “가난, 생각하면 슬퍼지는 것”

마들창조학교에서 만난 꿈 많은 금슬이

명숙, 미류
172센티미터라는 유난히 큰 키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금슬이. “첫번째 꿈은 모델이에요. 두 번째는 사육사, 세 번째는 공부방 선생님요. 뭘 준비해야 할 지는 잘 몰라요.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델들 걷는 거 봐요.” 꿈만큼 고민도 많다. “중3이 됐는데 친구들 잘 사귀고 싶어요. 1, 2학년 때처럼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귈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올해는 유난히 아는 애가 없어서 고민이에요.”

금슬이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피씨방도 가끔 들르고 공부방에서 공부도 하는”, 쉽게 볼 수 있는 중3 소녀다. 금슬이처럼 사람은 성장하면서 누구나 청소년기를 거치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은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존재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권리 보장은 거의 없다. 그들은 ‘가족의 보살핌’의 대상일 뿐, 권리의 주체에서 배제되어 있다. 청소년은 자신들의 가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마들창조학교 금슬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 올 때마다 불이 꺼지는 화장실

금슬이네는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신다. “엄마는 잠깐 아침에 봐요.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못 드시고 일하러 나가세요. 낮에는 어떤 교회의 점심을 해주는 일을 하고 그게 끝나면 호떡장사를 하느라 밤 12시에야 들어오세요. 아빠는 전파상 일을 해요. 요즘 일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 나가면 다음 일도 받아오는 편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 금슬이네 집이지만 가난은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이런 엄마 아빠마저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거 같냐는 물음에 금슬이는 “…밥도 못 먹고 공부도 못하고…할 수 있는 게 없지요”라며 잠시 말을 멈춘다.

그녀는 어떤 때 가난을 느낄까. “돈이 필요해서 집에 갔는데 돈이 없을 때랑, 친구들은 지갑에 기본 3천원은 있는데 난 없을 때요. 그리고 음...가끔 가난을 느끼는 곳은 집이에요. 지금 집은 (언니 둘과 남동생 하나, 엄마, 아빠 6인 가족이 살기에) 조금 좁아요. 언니 둘과 오랫동안 같이 방을 써서 내 물건을 옷 속에 잘 숨기니까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하지만 친구를 데려오기 힘들어요. 어쩌다 친구들을 데려와도 한 두 시간 후에 언니들이 한 명씩 들어오니까. 그러니 맘 놓고 친구와 방에 있기 불편하지요. 참, 그리고 비오는 날. 비올 때마다 불이 꺼지는 화장실을 보면 우린 정말 가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밥을 못 먹고 살지는 않으니까 (지금의 상태에)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집이 나아지면 좋겠어요. (형편이 나아진다면) 지금보다 좀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친구도 데려올 수 있고 정도 더 붙을 것 같은 집에서 가족들과 건강하게 사는 것이 금슬이의 바람이다. “(나는) 아침을 챙겨 먹지는 않는데 아프지는 않아요. 1년에 감기 한번 정도 걸릴까? 그 정도요. 근데 아빠가 술 담배를 많이 해서 걱정돼요. 간에 피가 차는 것은 아닌지……. 정기검진 같은 건 못해 봐요.” 평소 아빠와 친하게 얘기하는 편이 아니라 더욱 걱정이 된다고 한다.

“가난, 생각하면 슬퍼져요”

“음...생각하면 슬퍼지는 거요.” 가난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렇게 얘기한다. “가끔 예쁜 연필도 사고, 예쁜 양말도 사고 싶어서 사요. 사고 나면, 몇 천원씩 없어지고...그러면 내가 너무 막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생하는 엄마 아빠 생각나니까 슬퍼져요. 그런데 그래도 사고 싶어져요.” 금슬이에게 그 물건들은 ‘갖고 싶은 것’이면서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금슬이는 또래들이 좋은 물건을 갖고 다닌다고 마냥 부러워하는 철없는(?) 아이는 아니다. 사실, 사회는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철들었다’고 말할 뿐이니 금슬이가 좀더 철없어도 좋지는 않을까. 헐벗고 못 먹어야 가난은 아니다. 누구나 누리고 있는 것을 욕심조차 부리지 못하는 현실도 이 시대의 가난이 아닐까.

“사회...왠지 막막하고, 잘할까 두려워요”

중3이니 진학에 대한 고민도 많다. “큰언니는 공부를 잘해서 성암여고에 갔어요. 올해 대학교 들어갔는데 등록금 버느라 바빠요. 알바하다가 새벽 두시가 돼야 들어오거든요. 엄마는 저더러 (언니와) 같은 학교 가래요. 언니 교복값 아깝다고. 나도 가고 싶기도 한데 언니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요.”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다. 친구들은 “실업계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가기 더 쉽다”며 지지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남는다. “얼마 전에 대학등록금이 얼마인지 알아본 적 있거든요. 천만원이나 되는 학교도 꽤 많았어요. 거의 몇 백이래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백만원이 넘는 그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겁나요.”

그래서 금슬이에게 사회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커다란 벽이다. “사회…왠지 막막하고,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워요.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 많잖아요. 하지만 전 왠지 못할 것 같아요.” 그녀가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게으름이다. “저는 좀 게을러요. 집에서도 엄마 힘든 거 보면 청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안 해요.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잘 안돼요.” 집에서 아빠와 언니, 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공부방에서 즐겁게 공부하기도 하는 그녀가 스스로 게으르다고 자평하는 것은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능력 있고 부지런한 사람들” 뿐이라는 사회의 시선에 자신을 되비쳐보기 때문이다. 가난을 무능하거나 게으른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편견은 청소년인 그녀에게도 너무나 귀에 익은 이야기다. 이야기의 끝자락에서야 그녀는 가난한 것이 모두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하면 억울하겠다고 끄덕인다.

“배우는 것도... 공연 보는 것도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문제가 많아요. 나라가 힘 있는 사람 위주로 법도 만드는 것 같고.” 어떤 문제를 느끼냐는 질문에, 말을 꺼내다 말다 하기를 한참 하더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 그녀에게 사회는 멀다. 자신의 삶 어딘가에서 사회와 맞닿아있음을 느끼지만 가족과 학교라는 울타리 바깥은 청소년에게 허용되지 않다 보니 막연하기만 하다.

그런 그녀에게 만약 사회가 가족이 아니라 청소년에게 직접 지원을 해준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물어보았다. “교육비를 지원했으면 해요.” 하고픈 공부를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녀의 바람은 학교 교육에서 멈추지 않는다. “공연이나 전시도 청소년들이 마음껏 구경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공연이나 전시를) 좋아하거든요. 저번 여름에 인체의 신비전을 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니까 장학제도를 얘기한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금슬이는 “한 2백명쯤은 장학금을 주면 좋겠어요” 하며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아직 친하지 않은 단어, 인권

“그런데 인권이 뭐예요? 전 아직 인권과 친하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마무리할 무렵이 돼서야 금슬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금슬이에게 ‘인권은 말 그대로 사람답게 살 권리’이고, 건강하게 살 권리, 살만한 집에 살 권리, 배우고 싶은 것들 배울 권리, 이 모든 것들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잘사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들 도와주다가 망하면 어떡해요?” 인권이 여전히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금슬이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사회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느껴볼 새가 없었나보다. 하지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녀는 “그런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언제 오겠어요?” 하며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빨리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하고 설레어했다. 그런 세상이 오면 그녀의 고민도 많이 줄어들 테니 말이다.

가난을 생각하면 슬퍼진다는 금슬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난으로 인해 빼앗긴 청소년의 권리에 무감한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청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그릴 때 생각해야 하는 수많은 조건 중에 ‘빈곤’은 가장 큰 족쇄이다. 어마어마한 등록금과 교복값 때문에 배우고 싶은 욕구들을 눌러야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빈곤으로 인한 박탈감을 많이 느끼지 않아 다행이지만, 빈곤으로 인해 자기 미래를 만들 수많은 기회를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족쇄가 아닐까.

“공부방에 처음 온 것은 재작년 10월이에요.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어요. 공부방에 오면 모두 좋아요. 선생님들도 예쁘고 착해요. 학교와 가까워서 자습서도 빌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무엇보다 좋은 것은 선생님들이에요. (어른들이지만) 말도 잘 통해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줘요 ” 그래서인지 공부방 선생님은 금슬이가 되고픈 미래 중 하나이다. 아마도 그런 꿈을 가진 게 된 것은 “얘기도 잘 들어 주고 잘 말해주는” 선생님들을 통해 어렴풋하게 인권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권오름 제 44 호 [입력] 2007년 03월 07일 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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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에로이카 > [레디앙] 이재영, "1987년의 덫,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

이재영이 아주 제대로 조희연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재영이 맞다. 내가 보기에 조희연의 문제의식이 의미가 있으려면 정대화로 대표되는 미래구상과의 연대만큼이나, 현재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구상하고 제안하고 있는 박래군과의 연대가 중요해 보인다.

이재영은 민주노동당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에 별로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신 비판적 지지와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애매하게 스탠스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 NL의 이미지를 투여하는 것 또한 옛 PD의 관성 아닐까? 최장집이 지인이 후보로 나간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 후원회장을 했던 사실이나, 오종렬이 열린우리당 지지 설파하고 다녔던 기록들을 저렇게 지금 헤집고 보여줘야 하는가?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 아니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는 사람들인데, 꼭 그렇게 해야 했는가? 정파 간의 싸움에서 감정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정파 간 논쟁이 생산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나는 못 봤다. NL들한테 좀더 관대해져야 한다. 왜 가만 있는 NL들한테 싸움을 거는 건지... 혹시 이번 대선에서도 뒤로 몰래 호박씨 깔까봐 미리 단속해두자는 뜻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오바다...

> 뉴스 > 정치
1987년의 덫,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
[최근 정치 논쟁에 대해] 신자유주의 비판적 지지는 투기
2007년 03월 08일 (목) 00:42:01 이재영 기획위원

<레디앙>에서 촉발되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뛰어든 최근의 정치 이념 논쟁에는 이른바 ‘1987년 체제’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 주장의 결론 격으로 도출되는 정치적 입장이 현재의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과 무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열린우리당 당원이나 그 지지자 입장에서는 시대 상황을 초월하여 정치적 입장을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아니면서 열린우리당 지지임도 천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민주개혁의 지속’ 등을 주장한다면, 그는 ‘1987년 체제’에 대한 특정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꾸준하게 민주화를 이루었다. 김영삼 정권의 탈군사화와 정치개혁, 김대중 정권의 재벌개혁과 대북포용정책, 노무현 정권의 지방분권과 탈권위주의화로 이어지는 일련의 민주화와 탈냉전 정책은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합리화를 가속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도 잠시뿐 오늘의 한국사회는 길게는 지난 100여 년간의 지난한 건국의 역사뿐만 아니라 짧게는 20년간의 민주주의의 성과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진보개혁세력의 정치적 대안이 부재한 현 상황은 새로운 정치운동이 객관적으로 요구됨과 동시에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조건이다. 새로운 정치운동의 목표는 진보개혁세력의 연대와 연합을 통해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 정대화, 「2007 대통령선거, 무엇을 할 것인가?」, 『창조한국 미래구상 시국대토론회』, 2007. 1. 12

1. 1987년은 지속되고 있는가

‘1987년’이란 무엇인가? 1987년으로 시작된 시대상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권적 시민권은 확대되나, 사회적 민주주의와 평등권적 시민권은 유보되는 특징. 둘째, 1987년에 평화협정을 맺은 두 보수세력의 경쟁과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민중의 비판적 지지. 셋째,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장된 공간 안에서 경제사회적 권리 확대를 위한 자구적 노력이 진행되는 특징.

위에 든 세 특징 중 첫째는 87년 체제의 제도적 본질, 둘째는 그 제도를 지탱하는 정치 질서, 셋째는 그 제도 정치 아래에서의 사회적 양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상은 김영삼 정부 후기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위 표에 따르면, 취업 노동자의 꾸준한 증가에도 불가하고 1996년에 63.4%로 최고점에 다다랐던 노동소득분배율이 이후에는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자신들의 경제사회적 권리 확대를 위해 체제에 도전하고, 체제는 민중의 사회권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는 양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87년 체제의 세 번째 특징인 민중의 자구적 노력이 87년 체제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의 갈등 격화는 1997년의 총파업과 그해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승리21 후보의 독자 출마, 이후 민주노동당이 창당됨으로써 본격화된다. 이로써 87년 체제를 지탱하는 정치 질서였던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의 동거도 종료된다.

2. 1997년 체제는 정치 지체

1987년 체제의 본질은 정치적 민주주의 - 자유권적 시민권과 사회적 민주주의 - 평등권적 시민권의 불균등 발전이다. 그리고 1997년 외환 위기를 전후하여 시작된 새로운 체제의 본질은 1987년 체제를 벗어나 폭증하고 있는 경제사회적 욕구에 대비되는 정치의 지체이다. 따라서 1997년 체제의 시대적 과제는 정치 지체를 혁파함으로써 국민의 경제사회적 욕구가 제도적으로 충족되도록 하는 것이다.

근래 나오는 모든 여론조사에서 ‘빈부격차 해소’, ‘사회복지 확충’, ‘고용 보장’ 등의 경제사회적 의제가 ‘부패 청산’, ‘민주주의 개혁’ 등의 정치 담론보다 언제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지금 시대의 과제를 가장 잘 보여준다.

국민의 정치사회의식 역시 경제적 욕구에 조응하여 변화하고 있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1987년 30% 전반에서 2002년 10% 이하로 1/3이나 격감한 반면 ‘민중’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1987년 10% 후반에서 2002년 30%로 두 배 가량 늘어났다(한상진, 「한국사회의 변동과 제3의 길」, 『한국인이 생각하는 성장과 개혁』, 2004)

이런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은 자유주의 수권 세력이 시대상을 전혀 읽지 못하는 청맹과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이것은 권력구조와 절차만을 다루는 1987년으로의 후퇴다. 그들은 인민의 욕구가 아니라 왕조의 건승에 목숨 거는 반동적 고려 유신들과 같다.

3. 추상에서 벗어나자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치세력은 단순히 표를 많이 얻기 위하여 제도정치적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즉 사회를 구성하는 대중들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 ‘사회운동에 의한 민주화와 진보화’의 과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과제가 필요한 대목이다. …… 예컨대 한국의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역량 수준은 세계적인데 그에 대립하는 자본진영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또한 시민사회와 노동의 요구를 수렴하는 제도정치적 역할을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정치는 지속적으로 불안정하게 되는 것이다.” - 조희연, 「제도정치 중심주의 vs 사회 중심주의」, <레디앙>, 2007. 1. 25

위 조희연의 주장이 체제 이행을 위한 장기 전략 차원에서 거론되는 일반론이라면 옳다. 하지만, 조희연의 주장은 1987년 체제, 노무현 정부 평가, 2007년 대통령선거에 대응하여 제기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조희연의 주장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이데올로기 문제에서든 물리력에서든 이른바 ‘제도 정치’를 대체하거나 극복할만한 ‘비제도 사회운동’이 실재하거나 조만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제도 정치’ 밖에서 대중을 급진화하는 구체적인 방식은 무엇인가? 여론전을 펴거나 가두시위를 하거나 조직화를 하는 것이라면, ‘비제도 사회운동’보다는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제도 정치’에 의해 이미 정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의 역량 수준은 세계적인데 그에 대립하는 자본진영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운동이 정치적으로 축적되지 않고 사회적으로 유실됨으로써 제도적 권력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지 않은가. 비제도 운동은 제도 정치로 소통하여 축적되어야 한다. 조희연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제도와 비제도 사이에 실재하지 않는 장벽을 쌓아둠으로써 비제도 사회운동의 확장을 스스로 포기하는 정치적 기권에 있다.

1997년 체제를 혁파하는 방안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고 어려운 이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시대적 욕구가 무엇이며, 그 시대적 욕구를 담아 안을 정치 방도는 무엇인가? 민주주의가 발달해 있다는 서구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이 무엇인가? 사회복지와 힘 있는 진보정당이다. 사회경제적 민주화의 지표인 빈곤율은 그 나라 진보정당의 지지율․득표율․의석수와 정확하게 반비례한다(이재영, 「빈곤과 민주주의」, 『우리 안의 또 다른 분단 : 빈곤과 양극화』2005. 3)

   
 

4. 보수 정치세력 간의 차이에 대한 의도적 오해

미래구상의 정대화는 “민주노동당은 애정으로 지켜내야 할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미래의 소중한 자원이되 현실적 대안세력은 아닌 것이다(정대화, 윗 글)”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이 증명하는 것은 선거철이 다가왔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진보정당과 교류하다가 선거 때만 되면 온갖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보수정당을 즐겨 찾는 계절병이 재발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총선 직전에도 똑같은 주장이 있었다.

“누가 더 군사정권에 뿌리를 둔 세력인가? 누가 더 6.15공동선언 이행에 적대적인 세력인가? 누가 더 근본적으로 반민중인가? 누가 망국적 지역주의와 색깔론에 의존하는 세력인가? 누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마저 독점하여 도둑놈 소굴로, 시궁창 국회로 만든 장본인인가? 이것들을 보면 그 차별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차별성을 극대화시키는 데서부터 민중의 활로가 열립니다. 세상이 열립니다.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 오종렬, 「존경하는 자주 민주 통일전사 여러분」, 2004. 3. 14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자민련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겠다. 그런데, 원래 누구를 짝사랑한다는 감정이 없다면, 그 차이를 구분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 당들 사이의 차이란, 전문가의 숙련된 시각으로 현미경을 통해야 구분 가능한 정도의 극소정치학에 속한다.

그 당의 이념과 정책을 드러내는 입법안과 예산안에서 네 당의 차이를 발견하려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장 수구적이라는 자민련과 가장 개혁적이라는 열린우리당 사이의 예산안 차이는 0.01%에 지나지 않는다. 탄핵당한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 상정한 정부입법안의 99%가 ‘쿠테타 주역’들의 지지로 입법되었다.

차이는, 네 당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 운동권의 세계관과 ‘그 놈이 그 놈이지’라고 단호히 판정하는 보통 국민들의 체험 사이에 있다.” - 이재영, 「탄핵, 한국 지배질서의 파열음」, 『이론과 실천』, 2004. 3

5. 1987년에 사로잡힌 정치적 상상력

진보적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표방하는 바와는 달리 보수 정치세력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은 1987년으로부터 비롯된 몇 가지 잔재 때문이다.

첫째, 그들의 사회의식이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주된 모순이자 동력으로 자리 잡은 경제사회적 권리 투쟁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주’라거나 ‘자주’라는 관점으로만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이는 1987년 체제의 사상의식적 잔재이다.

“‘민주정부’들의 기획자, 정책가로 수혈된 ‘386세대’들조차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국가정책을 선호하는 것은 그들이 변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1987년 변혁의 주체가 사회경제적 이익을 사상한 몰계급적 학생과 인텔리들에 의해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민중’이라는 언술로 대표되는 소박한 정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존의 성장이데올로기를 체화하는 데는 별다른 장애가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사회의식이 전후 고성장기 북한에서 동원이데올로기로서 형성되어, 남한의 사회경제적 현실로부터는 상당히 유리될 수밖에 없었던 ‘자주․민주․통일’이었다는 점에서 연유한다. 남북의 지배이데올로기는 공히 가상의 집단 이익을 위해 권리 유보를 강제하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국민의 사회경제적 권리 박탈과 빈곤은 불가피한 희생으로 치부되고 있다.” - 위 이재영 글, 「빈곤과 민주주의」

최근 논쟁의 화두를 던진 최장집은 한국 민주주의의 대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사회경제적 갈등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대표하는 ‘강한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 가난한 다수가 보호될 수 없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 …… 진보는 정치적 대안이자 실체를 갖는 집합적 힘으로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난한 서민의 삶이 개선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 최장집, 「한국 민주주의의 사회적 모습에 대한 르포르타주」, <경향신문> 2007. 3. 1

그런데 최장집은 자신의 이론과는 다른 정치 행동을 한다. 그는 작년 7.26 보궐선거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의 후원회장으로 선거에 간여했다. 보수정당들에 대한 지지는 그 이념이나 정책에 대한 지지로도 형성되지만, 선배 후배라거나 스승 제자라거나 친인척이라는 이유에 의해서도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1987년의 민주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서의 제도와 절차에 국한되면서 시민사회의 문화적 민주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 역시 전근대적 연결고리들로부터 탈출하지 못하는 87년 체제의 문화적 잔재라 할 수 있다.

1987년이 낳은 세 번째 잔재는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다. 정대화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노동당은 지난 국회의원총선거에서 10% 이상의 득표율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문제제기 정당으로 축소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는 정당이 당연히 가져야 할 국가경영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 정대화, 윗 글

미래구상이 여권이나 민주노동당 중 어느 쪽과 연합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주장이 여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설파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1980년대의 김대중 당이나 김영삼 당은 국민들로부터 ‘문제제기 정당이 아닌 대안정당’으로 얼마나 인정받았을까? 노무현은 언론이나 학계로부터 ‘국가경영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었나?

옛 자유주의 정치인들에 대한 지지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 사이에는 시간의 누적이라는 단 하나의 차이만이 존재한다. 1971년 처음 대선에 출마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26년이 필요했다. 김대중은 1987년에는 3등을 했고, 1992년에는 2등을 했고, 1997년에는 1등을 했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지지자들은 ‘10%의 지지율’은커녕 정치활동 금지 상태에서도 일관됐고, 그 당이나 정치인들이 어떤 흠결을 가졌든 완고했다.

1970년대 초 이후 실질적인 최초 선거였던 1987년 12월의 대통령선거는 알을 깬 병아리가 첫 사물에 각인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사로잡고 있다. 87년 선거를 경험한 많은 이들은 보수 정치인 중 하나를 비판적으로 선택하는 결정, 그 보수 정치인들의 후계자 중 누가 가장 나은지를 선택하는 결정을 넘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도전하지 못한다. 이것이 87년 체제의 정치적 잔재이다.

결론, 투기가 아닌 투자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 ‘신자유주의 개혁’이 실패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 87년 대투쟁으로 형성된 87년 민주화 체제 자체가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이번 대선에서 이와 같은 ‘보수와 반동의 2007년 체제’가 구축된다면 87년 체제가 확보한 정치적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후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향후 진보개혁세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 이상현 민주노동당 기관지위원장, 「2007년 대선과 민주노동당」, 『위기의 진보진영, 대반전 가능한가』, 2007. 2. 21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가 주최한 위 토론회에서 대한의사협회의 정채빈은 “진보진영의 위기가 아니고, 노무현 정권의 위기인데, 왜 이런 제목을 달았는가?”라고 물었다. 1997년에 의해 자유주의 세력과 민중의 정치동맹이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의 일부 간부들은 ‘진보개혁세력’이라는 입론을 여전히 애용한다. 이상현의 판단처럼 신자유주의 개혁이 실패했을까?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비정규악법 같은 것들이 신자유주의가 아니어야만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87년의 두 정치세력, 개발독재주의와 자유주의는 1997년 이후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로 완벽하게 통일되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에서 한나라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이상현의 우려처럼 ‘보수와 반동의 2007년 체제 구축’이 아니라, 지배주주권이 그대로인 상태에서 자본독재의 사장만 바뀌는 것이다.

패퇴하는 자유주의 세력에게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주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보정치의 미래 성장을 파괴하는 정치적 투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라 강변하는 것은 정치적 사기다.

1987년 체제는 1997년에 이르러 총파업과 IMF를 낳았다. 그 산물인 신자유주의와 민주노동당이 2007년의 현재다. 투기가 아니라 투자가 필요하다.

* 이 원고는 <텍스트>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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