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

언제나 그렇지만 매주 책들은 쏟아지고 그 중 주목할 만한 책들이 10여 권 정도 언론의 리뷰를 탄다(단평까지 포함하면 20-30권쯤 되겠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책들은 물론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관심을 제약하기 때문이다(그러고도 '책벌레'란 소리를 듣는다!). 금요일자 한겨레의 북리뷰들을 대충 훑어보다가(읽을 시간도 없다!) 이 주의 책으로 혼자서 꼽은 건 앨런 그로스의 <과학의 수사학>(궁리, 2007)이다.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 경우에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의외성'이다. 즉, '예기치 않은 책'에 아무래도 눈길을 주게 되고 <과학의 수사학>은 그런 책이다. 이때 수사학은 물론 '과학 수사'와는 전혀 무관한 '레토릭'을 말한다. 부제대로 하자면,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룬 (아마도 드문) 책이다. 원저는 지난 1990년에 출간됐다고 하니까(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왔다) 나이 좀 먹은 책이다. 관련리뷰를 먼저 읽어두고 언제쯤 구매할/읽어볼 것인지 가늠해본다.  

한겨레(07. 03. 09) 과학도 철학처럼 ‘설득의 산물’

백과사전은 ‘과학’을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이런 규정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으로 분석 가능한 정치적인 것, 사법적인 것, 나아가 철학, 문학비평, 역사 등과는 달리 과학에 절대적 신화나 특권을 부여한다.

<과학의 수사학>(궁리 펴냄)은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유래의 고전적 정의와 달리 수사학적 분석 대상이 가능하다는 걸 ‘설득’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앨런 그로스는 과학적 주장들도 단지 ‘설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이 ‘자연의 원초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지식이 아니며, 문제가 선택되고 결과가 해석되는 과정은, 설득을 통해서만 중요성과 의미가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수사학적이라는 것이다. 수사학적 관점으로는 과학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뉴턴은 1672년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광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 서설>의 부록에서 ‘백색광이 기본이며 색은 백색광의 변형으로 이차적인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백색광은 이차적인 것으로, 가시 스펙트럼의 모든 빛들이 합성된 결과’임을 밝힌 논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전통적 관점·방법들과 대립함으로써 ‘설득’에 실패했다. 결정적 실험의 설득 능력은 실험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에도 , 뉴턴의 논문은 결정적 실험에 대한 어떤 그림도, 분명한 실험방법들도 결여돼 있었다. 30여년 지나 1704년 뉴턴은 <광학>을 출간해 2차 시도를 한다. 뉴턴은 “데카르트가 한 일은…훌륭한 발걸음이었다.…만일 내가 더 멀리 내려본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광학>에 역사적 연속과 논리적 불가피성이라는 인상을 부여했다. 또 세밀한 실험을 거듭해 ‘압도적 현존감’을 창조했다. 그는 <광학>의 말미에 수사학적 질문을 쏟아내 실험에 의해 확실해진 것과 불확실한 채로 남은 것을 구분함으로써 질문 이전에 제시된 결론들의 ‘과학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로스에게 뉴턴의 <광학>은 ‘수사적 개종’을 통해 성취된 ‘수사학의 걸작’이다.

저자는 과학에는 종종 잘 숨겨져 있지만 수사학이 내포돼 있으며, 정치연설과 학술논쟁, 과학논증의 영역에는 서로 닮은 꼴(유비)이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새로운 ‘종’의 발견은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구분과 분류에 대한 설득을 통해 ‘창조’됨을 보여주고 있다. 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의 회고담 <이중나선>이 담고 있는 설화 서사구조와 왓슨과 크릭의 논문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DNA 구조의 실재는 설득을 위해 사려분별 있게 사용된 말과 수사, 그리고 그림의 결과들”이라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그로스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성의 개종’을 요구한 수사학적 혁명으로 해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이 이성의 혁명이기 위해서는 정밀관측과 틀림없이 일치하고 정확한 물리학에 부합하는, 수학적으로 깐깐한 체계가 돼야 했지만, 이런 이상적 설명은 그가 죽고나서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에야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가 증거와 논증이 아니라 ‘선전, 감정, 임시방편의 가설, 선입견에 대한 호소’ 등 비이성적 수단들에 의해 지지됐음을 저자는 당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과학과 수사학을 각각 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의 융합을 들고 있음은 과학저술의 전범인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뉴턴의 <프린키피아> <광학>, 왓슨의 <이중나선>,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을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저자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이근영 기자)

07. 03. 09.

P.S. 최근 '수사학' 붐이 얼마간 조성되고 있지만, <과학의 수사학>은 그러한 붐에도 한몫 낄만 하겠다. 책은 궁리출판사에서 내는 '궁리하는 과학'의 두번째 책인데, 왓슨의 <이중나선>(궁리, 2006)이 첫번째 책이었고 이번에 같이 나온 듯한 로저 트리그의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궁리, 2007)이 세번째 책이다. 트리그의 책에 대한 리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트리그의 책들은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내게 더 친숙한 책은 <과학의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이다. 그건 예전에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의 원서를 모셔둔 지가 벌써 오래됐기 때문이다. 'The Shaping of Man'(1982)이 그 원서이고 부제는 '사회생물학의 철학적 측면'이다(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186쪽의 얇은 책인데, 국역본은 333쪽. 책이 폼나게 나오긴 했으나 이런 식의 분량 '인플레'는 슬슬 염증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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