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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_세상] “가난, 생각하면 슬퍼지는 것”
마들창조학교에서 만난 꿈 많은 금슬이
명숙, 미류
172센티미터라는 유난히 큰 키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금슬이. “첫번째 꿈은 모델이에요. 두 번째는 사육사, 세 번째는 공부방 선생님요. 뭘 준비해야 할 지는 잘 몰라요.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델들 걷는 거 봐요.” 꿈만큼 고민도 많다. “중3이 됐는데 친구들 잘 사귀고 싶어요. 1, 2학년 때처럼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귈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올해는 유난히 아는 애가 없어서 고민이에요.”
금슬이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이랑 피씨방도 가끔 들르고 공부방에서 공부도 하는”, 쉽게 볼 수 있는 중3 소녀다. 금슬이처럼 사람은 성장하면서 누구나 청소년기를 거치게 된다. 그래서 청소년은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존재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에 대한 권리 보장은 거의 없다. 그들은 ‘가족의 보살핌’의 대상일 뿐, 권리의 주체에서 배제되어 있다. 청소년은 자신들의 가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마들창조학교 금슬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 올 때마다 불이 꺼지는 화장실 금슬이네는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신다. “엄마는 잠깐 아침에 봐요. 엄마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못 드시고 일하러 나가세요. 낮에는 어떤 교회의 점심을 해주는 일을 하고 그게 끝나면 호떡장사를 하느라 밤 12시에야 들어오세요. 아빠는 전파상 일을 해요. 요즘 일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 나가면 다음 일도 받아오는 편이에요.” 이렇게 열심히 사는 금슬이네 집이지만 가난은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더구나 이런 엄마 아빠마저 계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 거 같냐는 물음에 금슬이는 “…밥도 못 먹고 공부도 못하고…할 수 있는 게 없지요”라며 잠시 말을 멈춘다.
그녀는 어떤 때 가난을 느낄까. “돈이 필요해서 집에 갔는데 돈이 없을 때랑, 친구들은 지갑에 기본 3천원은 있는데 난 없을 때요. 그리고 음...가끔 가난을 느끼는 곳은 집이에요. 지금 집은 (언니 둘과 남동생 하나, 엄마, 아빠 6인 가족이 살기에) 조금 좁아요. 언니 둘과 오랫동안 같이 방을 써서 내 물건을 옷 속에 잘 숨기니까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하지만 친구를 데려오기 힘들어요. 어쩌다 친구들을 데려와도 한 두 시간 후에 언니들이 한 명씩 들어오니까. 그러니 맘 놓고 친구와 방에 있기 불편하지요. 참, 그리고 비오는 날. 비올 때마다 불이 꺼지는 화장실을 보면 우린 정말 가난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밥을 못 먹고 살지는 않으니까 (지금의 상태에) 불만은 없지만 그래도 집이 나아지면 좋겠어요. (형편이 나아진다면) 지금보다 좀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친구도 데려올 수 있고 정도 더 붙을 것 같은 집에서 가족들과 건강하게 사는 것이 금슬이의 바람이다. “(나는) 아침을 챙겨 먹지는 않는데 아프지는 않아요. 1년에 감기 한번 정도 걸릴까? 그 정도요. 근데 아빠가 술 담배를 많이 해서 걱정돼요. 간에 피가 차는 것은 아닌지……. 정기검진 같은 건 못해 봐요.” 평소 아빠와 친하게 얘기하는 편이 아니라 더욱 걱정이 된다고 한다.
“가난, 생각하면 슬퍼져요”“음...생각하면 슬퍼지는 거요.” 가난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렇게 얘기한다. “가끔 예쁜 연필도 사고, 예쁜 양말도 사고 싶어서 사요. 사고 나면, 몇 천원씩 없어지고...그러면 내가 너무 막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생하는 엄마 아빠 생각나니까 슬퍼져요. 그런데 그래도 사고 싶어져요.” 금슬이에게 그 물건들은 ‘갖고 싶은 것’이면서 ‘욕심을 부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금슬이는 또래들이 좋은 물건을 갖고 다닌다고 마냥 부러워하는 철없는(?) 아이는 아니다. 사실, 사회는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철들었다’고 말할 뿐이니 금슬이가 좀더 철없어도 좋지는 않을까. 헐벗고 못 먹어야 가난은 아니다. 누구나 누리고 있는 것을 욕심조차 부리지 못하는 현실도 이 시대의 가난이 아닐까.
“사회...왠지 막막하고, 잘할까 두려워요”중3이니 진학에 대한 고민도 많다. “큰언니는 공부를 잘해서 성암여고에 갔어요. 올해 대학교 들어갔는데 등록금 버느라 바빠요. 알바하다가 새벽 두시가 돼야 들어오거든요. 엄마는 저더러 (언니와) 같은 학교 가래요. 언니 교복값 아깝다고. 나도 가고 싶기도 한데 언니만큼 공부를 잘하지는 못해요.”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다. 친구들은 “실업계 가서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가기 더 쉽다”며 지지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남는다. “얼마 전에 대학등록금이 얼마인지 알아본 적 있거든요. 천만원이나 되는 학교도 꽤 많았어요. 거의 몇 백이래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몇 백만원이 넘는 그 많은 돈을 마련할 수 있을지 겁나요.”
그래서 금슬이에게 사회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커다란 벽이다. “사회…왠지 막막하고,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워요.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성공한 사람 많잖아요. 하지만 전 왠지 못할 것 같아요.” 그녀가 두려운 이유 중 하나는 게으름이다. “저는 좀 게을러요. 집에서도 엄마 힘든 거 보면 청소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안 해요.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잘 안돼요.” 집에서 아빠와 언니, 동생들의 식사를 준비하기도 하고 공부방에서 즐겁게 공부하기도 하는 그녀가 스스로 게으르다고 자평하는 것은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은 능력 있고 부지런한 사람들” 뿐이라는 사회의 시선에 자신을 되비쳐보기 때문이다. 가난을 무능하거나 게으른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편견은 청소년인 그녀에게도 너무나 귀에 익은 이야기다. 이야기의 끝자락에서야 그녀는 가난한 것이 모두 당사자의 책임이라고 하면 억울하겠다고 끄덕인다.
“배우는 것도... 공연 보는 것도 마음껏 했으면 좋겠어요.”“우리나라 문제가 많아요. 나라가 힘 있는 사람 위주로 법도 만드는 것 같고.” 어떤 문제를 느끼냐는 질문에, 말을 꺼내다 말다 하기를 한참 하더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포기하고 말았다. 아직 그녀에게 사회는 멀다. 자신의 삶 어딘가에서 사회와 맞닿아있음을 느끼지만 가족과 학교라는 울타리 바깥은 청소년에게 허용되지 않다 보니 막연하기만 하다.
그런 그녀에게 만약 사회가 가족이 아니라 청소년에게 직접 지원을 해준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물어보았다. “교육비를 지원했으면 해요.” 하고픈 공부를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녀의 바람은 학교 교육에서 멈추지 않는다. “공연이나 전시도 청소년들이 마음껏 구경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공연이나 전시를) 좋아하거든요. 저번 여름에 인체의 신비전을 봤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니까 장학제도를 얘기한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는 금슬이는 “한 2백명쯤은 장학금을 주면 좋겠어요” 하며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아직 친하지 않은 단어, 인권 “그런데 인권이 뭐예요? 전 아직 인권과 친하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마무리할 무렵이 돼서야 금슬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금슬이에게 ‘인권은 말 그대로 사람답게 살 권리’이고, 건강하게 살 권리, 살만한 집에 살 권리, 배우고 싶은 것들 배울 권리, 이 모든 것들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잘사는 사람들이 못사는 사람들 도와주다가 망하면 어떡해요?” 인권이 여전히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 금슬이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사회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 느껴볼 새가 없었나보다. 하지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녀는 “그런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이 언제 오겠어요?” 하며 얼굴을 찌푸리다가도 “빨리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하고 설레어했다. 그런 세상이 오면 그녀의 고민도 많이 줄어들 테니 말이다.
가난을 생각하면 슬퍼진다는 금슬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가난으로 인해 빼앗긴 청소년의 권리에 무감한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된다. 청소년이 자신의 미래를 그릴 때 생각해야 하는 수많은 조건 중에 ‘빈곤’은 가장 큰 족쇄이다. 어마어마한 등록금과 교복값 때문에 배우고 싶은 욕구들을 눌러야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빈곤으로 인한 박탈감을 많이 느끼지 않아 다행이지만, 빈곤으로 인해 자기 미래를 만들 수많은 기회를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며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가장 큰 족쇄가 아닐까.
“공부방에 처음 온 것은 재작년 10월이에요.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어요. 공부방에 오면 모두 좋아요. 선생님들도 예쁘고 착해요. 학교와 가까워서 자습서도 빌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무엇보다 좋은 것은 선생님들이에요. (어른들이지만) 말도 잘 통해요.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줘요 ” 그래서인지 공부방 선생님은 금슬이가 되고픈 미래 중 하나이다. 아마도 그런 꿈을 가진 게 된 것은 “얘기도 잘 들어 주고 잘 말해주는” 선생님들을 통해 어렴풋하게 인권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권오름 제 44 호 [입력] 2007년 03월 07일 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