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마르틴 루터, 이병도, 이장무, 장욱진...

집사람 말이, 얼마 전 수업시간에 마르틴 루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학생들이 "루터는 어쩌구..." "루터는 저쩌구..." 하면서 이 16세기의 종교개혁가를 한창 찧고 까불고 하면서 신나게 비판하고 있자니, 그때까지 말 없이 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던 교수님께서 한 말씀 하시더란다. "자네들, 루터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아닌 게 아니라, 솔직히 현대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습지 않은" 과거의 사상가가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지금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갖가지 상식만 갖고 사상사를 일별해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고대, 중세, 근대의 대 사상가들의 주장에서도 어딘가 어수룩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대목이 하나 둘씩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히 플라톤이건 아퀴나스건 루터건 데카르트건 칸트건 헤겔이건 마르크스건 하이데거이건, 우리보다 앞선 대부분의 사상가들을 "우습게" 보게 마련이다.

루터의 경우도 비판할 건덕지로 말하자면 만만치가 않아서, 가령 종교개혁이란 커다란 혁명적 사건 자체가 그의 용의주도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그저 홧김에 써갈긴 비판글이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사방팔방으로 "퍼나르기" 되어 얼떨결에 개혁의 주체로 떠밀려 나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분명히 갈피를 잡지 못해 종종 판단착오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근대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최후의 중세인으로서 "마귀"의 존재를 굳게 확신했다는 점, 독일 내의 농민혁명을 비난하며 오히려 탄압을 촉구하는 반동적 면모를 보였다는 점, 심지어 평소에 맥주를 즐겨 마셨다는 점까지도 보수깡통나부랭이인 한국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건덕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루터가 "우스운" 인물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비록 루터가 야심도, 역사적 시야도, 혹은 합리적 사고방식도 완벽하게 지니지는 못한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사상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현대인과 달리 "마귀"의 존재를 믿긴 하더라도, 루터의 주장이 그렇다고 해서 미신 일변도로 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현실 정치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 해도, 그의 정치나 윤리 사상에 있어서는 분명히 어떤 날카롭고도 타당한 주장이 언뜻언뜻 엿보이는 것이다. 아마 앞서 이야기한 그 교수님의 "자네들에겐 루터가 우습게 보이나?"라는 반문 역시, 그런 부분을 지적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즉 지금 와서는 그야말로 바보 멍청이에 한심이로 보이는 루터일지 몰라도, 그래도 "루터는 위대한 사상가"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과거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필요하기에 앞서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사를 오늘날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행위를 일삼아서는 곤란하다. 고대에는 고대인의 맥락이 있고, 중세에는 중세인의 맥락이 있다. 현대인의 시시껄렁한 건강 상식 몇 가지를 가지고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비난하는 건 "가능"하긴 하지만 "합당"하진 못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선거권 하나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플라톤을 가리켜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를 예찬한 악당"으로 폄하하는 것 역시 "가능"하긴 하지만 "합당"하지는 못한 일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이래저래 몸을 팔면서도 지금 사는 자본주의 체제를 절대적인 것마냥 여기고 마르크스의 "허풍"을 우습게 여기는 것 역시 "가능"하긴 하지만 "합당"하지는 못한 일이다. 과거에는 현대인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떤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쉽게 지금의 잣대나 돋보기를 들이대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가능"하긴 하지만 역시 "합당"하지는 못한 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서울대 총장선거에서 1위로 당선된 이장무 공대 교수가 이른바 "친일파"로 분류된 역사학자 이병도의 친손자라는 점이 문제가 되어, 그의 서울대 총장 임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항의와 서명운동이 벌어진다는 뉴스 기사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었다. 요즘은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 했다가는 그야말로 "공적 제1호"가 되기 십상인데,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친일청산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 방법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물론 절차상의 문제를 들먹여서 모두에게 전천후 면죄부를 발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산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놈의 "민족감정"이니 "민족정기" 같은 감정만 무작정 앞세워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즉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가령 누가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무조건 "죽일 놈"으로 몰아세우는 식이다. "친일파"에 대한 일반의 인식 역시 그런 식의 "때려잡기"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 과연 지나친 감정적 대응이 과연 친일청산에 도움이 되기는 할런지 나로선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병도의 친일행적에 대한 비판은 꽤 오래 전부터 언급되어 왔다. 요약하면 (1) 조선총독부 산하의 어용기관인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했다 (2) 일본 식민사관을 그대로 수용해서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두 가지이다. 이중 (1)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사실이긴 하지만, (2)의 경우에는 오히려 전문적인 논의가 될 것이니 나로선 쉽사리 판단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가령 그의 학설이 "일본의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했다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연구 자체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당연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지금만 하더라도 중국이나 한국의 고중세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일본 학자들의 연구자료가 필수적인 2차문헌 아닌가?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병도의 학설에 대해서도 일단은 그의 친일행각"과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 당시의 "학문수준"과 연계시켜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즉 이병도 자신이 의식적으로 "식민사관"을 답습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닌 바에야, 그가 당시 일본의 "주류사관"을 받아들인 것은 학문적 "오류"이긴 할망정 "친일" 행위까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당시 주류 사학이 그런 오류를 내포했으며, 이병도 역시 그 당시의 주류 사학계에서 배우고 활동하던 사람으로서,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는 식으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

얼핏 보기엔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은데, 이병도의 행적에서 "개인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을 구분해야 하는 까닭은, 지금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쪽의 입장이 이 두 가지를 악의적으로 혼동시키는 듯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에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 교수의 서울대 총장 임용을 반대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이버의병 카페" 모임의 주장은, 이장무를 서울대 총장으로 앉힐 수 없는 까닭은 그의 할아버지인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근무하며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화 시킨 대표적인 친일 사학자"(사이버의병 카페 첫화면에서 퍼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친일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이건 오히려 그의 학문적 성과가 틀렸다는 학술적 차원에서의 반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 했다는 것이나,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화"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고 워낙 설왕설래가 심한 주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가장 큰 "의문점"은 앞서의 그 시민단체니 사이버카페가 은연중 삼국시대와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해 자신들은 "정답"이나 "사실"을 알고 있다는 투의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이버의병 카페"의 위 주장에서는 은근히 상고사와 단군에 대해 배타적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며 "만세삼창"을 외치는, 이른바 "환단고기" 류의 자칭 "배달사학" 쪽에 가까워보인다. 쉽게 말해, 만주도 우리 땅, 중국도 우리 땅, 몽고도 우리 땅이고, 한민족이 세계에서 제일 잘난 배달민족이라는 식의 논리다. 다만 이런 엄청난 진리가 외면당하는 까닭은 모두 다 임나일본부설을 위시한 "식민사관"의 악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김지하의 경우에도 알 수 있다시피, 이런 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극우 민족주의, 완전 쇼비니즘과 맥이 닿게 마련이다. 특히 이들은 "단군"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있는데, 굳이 이병도까지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과연 이들의 쇼비니즘적 애국주의 사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이는 이병도가 도입한 "실증주의적 사관"의 기준에서 볼 때에는 객관적 신빙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신화" 차원의 추측성 역사학, 달리 말하자면 "소설"에 가까운 주장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논리가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놈은 식민사관 옹호자이며, 친일파!"라는 식이라면, 솔직히 역사학계에서 식민사관 옹호자이고 친일파 아닐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나 역시 일반인이긴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물론 이병도 본인도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치는 않고, 이후에 쓴 자전적인 글에서도 자신이 거기 관여하게 된 데 대한 후회를 적잖이 표시하긴 했다. 하지만 어느 사학자의 말마따나 이병도는 어디까지나 "독립운동 삼아 역사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차원에서 일본인 학자들과 실력을 겨루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조선사를 연구한 식민지 조선인 학자가 식민지 총독부에서 설치한 식민지 역사 편찬기관에 들어가 일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과연 어디로 가야 했겠는가? 어디 계룡산에라도 들어가서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의 실증적 고찰을 위해 노력하기라도 했어야 했단 말인가? 물론 이런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이병도에게 전천후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의 수상쩍은 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증거"를 들이대며 멀쩡한 사람을 잡겠다는 심보도 뭔가 제정신은 아니라고 본다. 가령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은 빼도박도 못할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병도의 "학문적 주장" 자체를 가리켜서도 "친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섣부른 판단인지는 몰라도 그의 역사학은 어디까지나 역사학으로만 비판되고 검증될 문제이지, 그걸 섣불리 "친일문제"라는 정치적인 맥락으로 끌어들여서 단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행위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어떤 한 사람을 "친일파"로 규정해 놓으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밉상"으로 보이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가령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 교수와 그 동생인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할아버지의 친일 논란에 대해 "그래도 할아버지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한 것에 대해서도 도리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손바닥 만한 구실 하나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여겨지지 않을 상황이니, 그냥 앉아서 죽으라는 이야기인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제아무리 살인이나 도둑질을 한 죄인이라도 최소한 "변론"의 기회는 주고 가타부타 판단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은, 도대체 정체가 뭔지도 알 수 없는 시민단체인지 뭔지 하는 쪽에서 이병도의 "친일" 문제를 걸고 넘어선 뒤에, 인터넷 여기저기서 이병도의 "친일" 문제에 대한 글이 우후죽순 격으로 "퍼나르기" 되면서 오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병도는 이완용이 자손이다!"라는 원색적인 비난조차 있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물론 같은 우봉 이씨 가문이긴 하지만 이완용과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생전에도 이러한 오해를 받아 종종 공격을 당하곤 했던 모양이다.(심지어 오마이뉴스에서도 이와 같은 논리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이병도가 가문의 수치를 덮기 위해 원광대 박물관에 소장된 이완용의 관뚜껑을 가져다가 불태우기도 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것은 또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지금도 무슨 보수적인 인사 가운데 "이씨" 성을 지닌 사람이 있기만 하면 곧바로 "이완용이 자손"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결국 그놈의 "빨갱이 논리"와 다를 법이 없지 않은가?

지질학을 전공한 어느 친구는 일제시대 당시에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수행한 한국의 지질학 관련 연구를, 해방 후에 우리나라 학자들이 일종의 "극일" 차원에서 모두 새로이 연구를 수행해 기존의 주장을 모조리 "뒤엎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보니 애초의 일본 학자들의 연구가 "맞는" 것이었고, 이후의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에 중대한 오류가 포함되어 있었음이 밝혀져서 무척이나 뻘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즉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진 못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오류가 지금 이병도의 사학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걸핏하면 학술 분야에서도 "친일청산"을 언급하긴 하지만, 지금도 한국역사나 문학을 연구할 때면 가장 기본적으로 참고하는 자료는 한국인 및 일본인 학자들이 일제 시대에 총독부의 위촉을 받고 만들어낸 일본 자료가 아닌가? 친일청산은 "대의명분"으로는 적절한지 몰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의 근대를 언급할 때에 일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단순히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좀 더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이병도의 사학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평가와 검증이 필요하다. 그의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그의 학문적 업적까지도 깡그리 무시하기 전에, 과연 그의 학문적 공과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어느 교수님이 "루터가 우습게 보이냐?"고 반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병도가 우습게 보이느냐?"고 반문해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이병도가 결코 우습게 보이진 않는다. 물론 그의 모든 것을 이상화하고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미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서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학문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그의 주장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가 미처 생각 못했거나 과소평가한 대목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주장 자체가 "식민주의 사관"에 물들었다고 주장하며 그 가치를 완전 폄하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그 대안이라며 내세워지는 것이 기껏해야 진위가 의심스러운 "배달사학" 나부랭이인 다음에야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단군의 실존 여부를 부인했던 이병도가 말년에 가서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약간이나마 보인 바 있다는 점이다. 그와 거의 동년배인 최태영의 회고록 <인간 단군을 찾아서>를 보면, 철저한 단군실재론자인 최태영은 친분이 있던 이병도에게 자신이 수집한 이런저런 증거를 들이밀며 상고사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꿔볼 것을 설득했고, 실제로 이에 마음이 움직인 이병도와 함께 <한국상고사입문>(고려원)이라는 소책자를 펴내기도 했던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이후에 이병도가 작고하는 통에 더 이상의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 글쎄, 과연 이병도가 좀 더 일찍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면 훗날 어떤 연구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가령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나, 파인만이 초끈이론을 철저히 거부한 것은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천재성이나 업적 전체를 무로 돌려보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오류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두 사람 역시 자신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녔으며, 이는 이병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학자와 사상가들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뭐, 그래도 굳이 이병도를 욕하고 넘어가야겠다면, 그리고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가 서울대 총장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악을 써야겠다면, 아예 내친 김에 이병도의 "사위"에 대해서도 실컷 욕이나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병도의 사위는 또 격에 어울리지 않게도 환쟁이, 즉 화가였는데,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가 늘 밥 대신 술로만 살아가는 괴짜였기 때문에, 학자 집안에서 곱게 자란 부인의 속을 무던히도 썩혔다고 전한다. 그 사위가 바로 누군고 하니, 바로 화가 장욱진이었다. 근엄한 학자 타입인 이병도 역시 어찌어찌 환쟁이 사위를 보긴 했지만 결코 마음에 들지가 않았는지 평생 사위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으며, 심지어 딸 내외가 자기 집을 찾아와도 책을 읽다 말고 호통을 쳐서 내쫓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 따라 장욱진은 "친일파인 장인과 교류가 없었으므로, 항일민족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비록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기는 했지만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한 장인 이병도와는 달리, 사위 장욱진은 한때나마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친일파고, 누가 민족주의자"인 것일까? 장욱진 역시 장인에 대해서는 못내 서운한 감정을 지닌 모양인데, 그래도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훗날 평전을 쓰기도 했던 김형국의 증언에 의하면, 장욱진은 장인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 1988년 2월 27일, 뜻밖에 수안보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화가가 이런 말을 했다. "장인(이병도)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신경질을 부리곤 하는데, 장인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다. 남들이 이완용의 손자라는 등 아무리 모함을 해도 흔들림이 없다. 내가 가지지 못한 덕목이다." 이 말처럼 두계(이병도)에 대한 모함은 많았다. 단지 이완용과 같은 우봉 이씨라는 사실만 두고 모함의 꼬투리를 삼는 유언비어가 심했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때 "빨갱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모든 상황에서 결정적인 한 방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욕"으로 여겨진 것처럼, 요즘에는 "보수"니 "친일파"니 하는 말이 그렇게 사용되는 것만 같다. 어떤 것이건 간에 그 배후에 놓인 논리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쇼비니즘적인 것이다. 주사파나 우익이나 친일파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은 어디까지나 이치에 맞아야 하며, 합리적인 생각을 지닌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껏해야 요즘 웬만한 영화배우들의 영화 한 편당 개런티조차 안 되는 1억 원을 저작권료로 받기로 했다는 이유로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의 유족들을 "매국노"로 몰고, 기껏 축구에 진 것 가지고 스위스에 대한 "국민감정"이 악화되어 난리블루스를 추는 이놈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이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렇게들 단순하고, 어쩌면 그렇게들 무개념한 것일까? 근대성도 좋고 합리성도 좋지만, 아직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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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Balibar - Europe, An "Unimagined" Frontier of Democracy

올리는 김에 하나 더 올립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전에 발리바르가 쓴 "사라지는 중개자"(Vanishing Mediator)에

관한 글의 연장선상에 있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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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critics, Volume 33 (4/February 2006), pp. 36-44

 

Europe, An "Unimagined" Frontier of Democracy

 

Translated by Frank Collins

 

In my Berlin talk I spoke of the ever more massive and ever more legitimate presence in the old European states of people from their former colonies, and this despite the discrimination to which these people are subjected [see "Europe, Vanishing Mediator?"]. I added that this was the basis for a lesson in alterity that Europe can use to define more uniquely its power (or lack of power—"puissance" vs. "im-puissance") in the world today. This idea might appear to be excessively optimistic, if not a delusion, but I wish to clarify what it means by examining the ideas of two Italian sociologists, Alessandro Dal Lago and Sandro Mezzadra. These two scholars have for a long time been engaged in analyzing the effects of postcolonial immigration in a Europe caught up in the process of globalization.

In their essay "I confini impensati dell'Europa," they examine the way in which, in today's Europe, two meanings associated with "frontier" conflict with each other. They are referring to what Italian calls confini (which I would translate into French as frontières [English "frontiers"]) and frontiere (which I would translate into French as confins [English "confines"/"outer reaches"]).2 The end of the Cold War and the nullification of the Yalta agreements have reopened a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question with respect to the the very meaning we attach to the name "Europe." In the bloody wars that followed the disintegration of former Yugoslavia, that question took on a particularly dramatic form and prefigured other events of the same kind.

Dal Lago and Mezzadra place this question in the context of the changes undergone by imperialism. The fight by the capitalist powers to control world resources and to impose a "Western-style" economic model upon the rest of the world is now becoming a full-scale battle that includes all the social, demographic, and humanitarian aspects that tend to impose a global constraint against the movement of peoples. This constraint is particularly felt in those "frontier-zones" in which political control coexists alongside military control (as in Yugoslavia), but where the two are violently separated. In these zones, men are at once displaced, forced into migration, yet also confined to house arrest. Here we are touching upon the profoundly equivocal nature of the "European" project:

We can thus state that the frontiers of Europe have multiplied and diversified. As a consequence, the political concept of Europe has also significantly [End Page 36] fragmented. We might say that today there are as many distinct Europes as there are functions undertaken on the international stage by that nebulous continental entity. [. . .] This multiplication, however, cannot hide the chasm that separates on the one hand ideological or utopic pretentions to self-determination for the whole of Europe, and on the other the inescapable need strategically to align itself with the center of the Western empire, namely the USA. Recent global wars—such as the Gulf and Afghanistan wars—periodically remind us of this reality.
[145]

Dal Lago and Mezzadra go on to describe the self-fulfilling prophecy inherent in European discourse on identity and security, an ever more insistent discourse since the 1990s.3 This is true for the supporters of "populism" who, from Austria to Italy to Denmark have built their electoral successes on the concept of "unassimilable difference" and insecurity. It is also to be seen in the practices of European governments today and in the way civil societies are "conditioned." True, constructions that define identity (constructions identitaires) following the end of the Cold War have established nothing positive with respect to European identity, but they stigmatize a group of excluded people in order to mark the difference between Europe and the rest of the world. Essentially these refugees and migrant workers occupy that slot in society, both imaginary and real, of internal or domestic political enemies4 who are nothing more than a construct of the State. These people are seen as a threat to security while in fact having no security themselves.

This defining of the immigrant in term of his alterity, as a potentially dangerous temporary guest, is the culmination of procedures through which European States have managed immigration in the post-war era: from the urban and territorial segregation characteristic of the French model to the construction of ethnic and social ghettos of the English model. Germany, for its part, has chosen to exclude such immigrants from the political process, and in Italy and Spain, the presence of foreigners has been simply ignored. The overall result is that immigrants are reduced to the status of an inferior population and subjected to all kinds of police controls. They are non-citizens. Far from representing a contradiction, this is fully consonant with their being assigned [. . .] the most menial jobs in the hidden sectors of an illegal economy.
[147]

Thus globalization tends to knock down frontiers with respect to goods and capital while at the same time erecting a whole system of barriers against the influx of a workforce and the "right to flight" that migrants exercise in the face of misery, war, and dictatorial regimes in their countries of origin. This recent history reenacts a pattern that we see with the salaried proletariat. At the same time as they are supposed to enjoy "liberation" with respect to traditional forms of authority and dependence, their movements are strictly controlled through a system of differential citizenship. At the bottom of this ladder we see the migrants who suffer the most discrimination: the "illegals," or "undocumented."

We must thus turn our attention to the relationship between European history and its colonizing and decolonizing phases. Dal Lago and Mezzadra remind us that the [End Page 37] pattern of imposing borders was extended to the entire world through European colonization5 with the result that any instance of imposing borders in Europe is in harmony with the organizing of the whole world. We cannot forget, however, that the tracing out of these borders is based upon a global delimiting of spaces and of rates of development and incorporates an irreductible anthropological racism into the very notion of political citizenship. While certain peoples are legitimately part of history, others languish in history's "waiting room."6 As Gayatri Spivak shows, the "universal" political subject of modernity (whose institutional figure is the citizen) is always geopolitically differentiated. The decolonization of the twentieth century was based on the illusion that this border-world phenomenon could be erased, an illusion soon destroyed by all subsequent "new wars." The practice of "zero death" war inaugurated in the Gulf and perfected in Kosovo implies an incommensurable difference between the human cost on the Westerners' side and that on the others' (where casualties are above all civilians). This assigning of a null value to whoever is not a citizen of a Western or developed country is not restricted to military theaters; the consequences of the way in which the status of illegal or clandestine immigrants is subsequently assimilated into that of a juridically inexistent nonperson transform the way we control frontiers, under the pretext of checking traffic in human labor. The consequences of this transform the way we control frontiers, under the pretext of checking traffic in human labor. This control instead becomes a true war, on land and sea, and is waged right up to the borders of the Schengen countries, and its victims can be counted in thousands of dead bodies.7 This is why our critical thinking on this subject must now begin with questioning the external and internal frontiers of Europe, and we must also reverse our exclusionary practices. Only then can we see, when we make claims as to a political Europe, the resurgence of its as yet unfulfilled constructive forces, and only then can Europe move further along the path of material progress.

The last part of Dal Lago and Mezzadra's analysis has to do with what resistance against this "differential" globalization might mean. Inseparable from this analysis is the question as to who are the most typical perpetrators of that differential globalization. Movements to resist it sketch out an alternative to the predominance of modernization, both in Europe and globally. They constantly remind partisans of the federalist dream of a supranational European State (one that might hold American hegemony in check) of the potential for conflicts inherent in that dream. But what migrants who are victims of these frontier wars "demand" is not multiculturalism or a "right to difference," [End Page 38] an "essentialization" of cultures, but rather the "equaliberty" of citizens of the world, with corresponding rights:

Raising the question of the right to live where the wealth they produce is enjoyed, migrants contest the fundamental asymmetry according to which they should remain where they are, as producers, not consumers, of that wealth. In this sense they are not only fleeing the various forms of forced labor that result from the geographical shifting of industries, but also contravening the very essence of Western "racism," a racism that is the politicocultural expression of the material superiority of the most developed countries. [. . .] The potential for political resistance on the part of these migrants is the only thing that can explain the unheard-of violence with which they are rejected when and where they are no longer seen as necessary for the Western labor market.
[153]

To interpret these resistances and conflicts requires both a particular view of the history of postcolonial Europe and reflection on what might be in store for universalism. What has truly unified the planet is not just colonial expansion, but the revolts, the liberation struggles that put into question the notion of "different natures" that separate the peoples of the "metropoli" from those of the colonies, producing a dialectic between these two demographic groups that results in a reversal of roles, a "particularizing" of the old metropoli and a "universalization" of the former colonies. The consequences are felt in Europe itself because of the mixing of races and because of shifting populations. It is thus just as impossible to reject universalism as it is to try to stick to its "European" definition, its manner of being appropriated by Europe. In this situation, one we might properly call "postcolonial" (and not neocolonial), the determining factor is the new nature of these migrations and what new claims to which they are producing. They accelerate modernity by joining with other forms of globalization from the bottom up to fight economic and military imperialism. We have seen this in action from Seattle to Gènes to Porto Alegre.

I can see no reason whatsoever to question the validity of this line of thought. It is a salutary reminder of the realities of today's Europe and its "dependence." The same can also be said, for opposite reasons, of Robert Kagan's criticism of European pacifism, with its moral and juridical illusions. I am bound to note what he says about the "frontier wars" that are raging, in silence, from the upper Adriatic to the Straits of Gibraltar, and in all the zones of "nonrights" surrounding ports, airports, and various land and water links between countries. These wars rage also in the "suburbs" of the great European cities, illustrated once again by the lockdown of the Sangatte collection area for refugees in Pas-de-Calais. We have a true hunting-down of men here, compounded by a hunting-down of people with certain features. Any definition of "Europe as a cosmopolitan frontier" that does not take this into account is naïve, if not obscene. Considering that we are at the very heart of a question that is decisive in our understanding of the European political model, however, I would like to suggest two interpretive nuances. They are closely linked, one having to do with analysis and the other with prespectives.

I will express my first reservation by asking the question as to whether the most enlightening model we have for understanding this rule of sociopolitical discrimination in Europe today is in fact a war model (or, even better, a model of a "new war"). This is what Dal Lago and Mezzadra propose. Is a better model, as I have asked in various earlier papers, one of a rampant apartheid that is the dark side of the emergence of a European transnational citizenry, an apartheid that is one of the major obstacles to a European [End Page 39] development that might go beyond its fragile and contradictory beginnings?8

Of course we might say (and this is what I really think) that we are not dealing with an alternative strictly speaking, and that there is no call abstractly to choose between certain complementary aspects of Europe's "material constitution." One such aspect is seen as a dynamic, in terms of flux and tendencies, while the other is viewed as static, in terms of institutions, states, and effects. We think of this Europe, with its multiple identities and functions and uncertain destiny, in terms of "frontier" or "border." Starting with the observation that the function and location of frontiers have ceased to be a matter of "outer margins" (another possible translation for confini) and instead determine the regime itself, it becomes clear that we have both institutional segregation (which emphasizes "exteriority," rejects alterity within "interiority"), and social war, both bloody and not bloody (irreversibly blurring distinctions between the "local" and the "global," when in fact preferring to preserve those distinctions). But it is also clear that the fact of assigning privileged status to one or other such aspect, making it the key distinction of one's political analysis, can bring about serious divergences with respect to conclusions reached.

I am aware of the limits and risks inherent in an analogy between institutional forms of racism in Europe and the South African apartheid of yesteryear (and I mostly use this term to provoke thought),9 but I want above all to draw attention to the correlation between two facts. On the one hand we have a statutory line of partition separating citizens and noncitizens which (counter to the transnational tendencies of the citizenry) is instituted by "forcing" the category of foreigners on noncitizens (in some respects they are "residual" foreigners, since many others who were once just that are no longer such, given the progressive integration of Europe. In other respects they are "foreigners par excellence" because "europeanicity" functions as a supernationality, or as an extra layer of citizenship).10 On the other hand there is the creation or recreation of complementary residential zones of completely unequal status from the point of view of rights and living conditions. Their apparent autonomy barely conceals that certain of these zones have the right to prescribe to others concerning their right to freely move about, and this is backed up by force. Of course anthropological difference and the extreme violence that comes with it (from the racist model of the division of humanity into civilized peoples and barbarians, humans and subhumans, to police screening and the war on "illegal transients") are not clarified by this representation but are rather its immediate counterpart, and I am not surprised that security practices in Europe are increasingly secret, leading to a blurring of the distinction between police actions and war. I emphasize that these obsessive and showy security practices (designed, indeed, as much for show as for real action) end up stigmatizing and threatening the security of whole populations of "nationals" or "citizens" who in fact are the relatives, comrades, [End Page 40] or descendants of migrants. In this sense these security measures do not just constitute an obstacle to a new citizenship but also tear down and render null any existing, already acquired citizenship. For their part, Dal Lago and Mezzadra adopt the model of war for their analysis and see the violent control of migrants as being in the category of "new postmodern wars," a category that includes other more concentrated forms of "punishment" and "dissuasion" of Third World peoples (and there is a Third World in Europe itself, as Balkan history has shown). They also suggest that all this violence is an answer to the intrinsic mobility of the mass of peoples the world over, a mobility that corresponds to the final stage of capitalist modernization. Based on all of the above, Dal Lago and Mezzadra thus see statutes and frontiers essentially as the intruments by which imperial capitalism controls and defends itself against the threatening vitality, in its eyes, of this new transnational proletariat.11 Our disagreement, if it is really that, has to do with the relationship between territories and populations, a relationship that determines current subversive phenomena nationally. We also question the political nature of the resistance brought about by that relationship.

This question is clearly linked to the debate on "postcolonialism" and "neocolonialism." I adopt as my own the idea according to which in one way or another all societies today are "postcolonial" in the twofold sense that they were created in the twentieth century, based on the results of colonization, and based too on the ambivalent effects of subsequent decolonization (plagiarizing Marx we might say that decolonization "transformed the world"). I also adopt the idea according to which modern societies have put colonization behind them. These positions lead me to maintain that there is a sense of the term "neocolonialism" that we cannot ignore. We need it in order to understand the various forms of postcolonialism, whether the status of "displaced peoples" from the former colonies within the former metropoli, or the interference of those metropoli in the politics and economies of their former colonies. This persisting of neocolonialism (or, if you prefer, the sinister reality that decolonization is never finished, indeed is always having to be started over again) within postcolonialism is clearly illustrated in the demographic makeup of Bobigny (south of Frankfurt) and in the way the police behave in that town. It is just as clearly evident in the French military expeditions to Congo Brazzaville or to the Ivory Coast. Essentially it is the extreme ambivalence of its relationship with the colonial past which makes Europe, in a sense, the postcolonial locus par excellence, and the place where the political effects of recognizing this reality will be decided. In fact it is Europe (part of Europe) that colonized the world in the strictest sense of the word (as opposed to other forms of imperialism also practiced by Europe), and therefore it is Europe that suffered a backlash.12 Thus it is in Europe that neocolonialism (a form of continuation of colonialism beyond its official abolition) is most entrenched. However, it is also in Europe that the illegitimacy of neocolonialism is the most flagrant, as seen in the age-old mixing of peoples and in the claims of equality in rights without any imposition of social homogeneity or "assimilation." All this ignores the resistance that historically neocolonialism has met, while in fact claiming to reconstruct that history. Now, this claim is already inscribed in law and in culture, at the cost, of course, of a power relationship that is both tense and fragile (think of the place of the state for the "second" and "third generations"). Of course, it might be useful to pursue this contradiction in order to discuss what, in current manifestations of "populism," "nationalism," and European "racism," is a matter of archaism (not just [End Page 41] the return of a once-rejected colonialization, but indeed the inscribing of the "colonial form" at the heart of the European idea of civilization). Pursuing this contradiction will also help us discuss those elements that are part of the way a world economy works, an economy that is trying to acquire a political system. Dal Lago and Mezzadra, evoking willy-nilly various nationalisms, regionalisms (Lega Norte), fundamentalisms (Christian or Muslim), further suggest that pursuing this contradiction will also help us discuss the deflected expression of conflicts caused by globalization.

Here we are touching on the essence of my second reservation, one that is more abstract and, maybe, more profound. Rightly or wrongly (this is what I think I learned from the struggle of the "undocumented" in France in the 1990s—an experience that maybe I should not generalize upon), I do not believe that the political "demands" of migrants (be they "refugees" or "workers," two not necessarily separate categories)—extremely powerful demands that are ever rejected but never obliterated and which are fundamental if we are to have democratic change—constitute a demand that mobility as such, a "deterritorialized" mobility, be recognized. I believe that the relation of these demands to the construction of modern Europe is solely a relation to the "mechanisms of control" of capitalist globalization. Surely freedom of movement is a basic claim that must be incorporated within the citizenship of all people (and not only for representatives of the "powerful nations," for whom this is largely a given). But the droit de cité (rights to full citizenship) includes everything from residential rights as part of having a "normal" place in society to the exercise of political rights in those locations and groupings into which individuals and groups have been "thrown" by history and the economy. Let's not be afraid of saying it: these citizenship rights include the manner of their belonging in state communities, even, and indeed especially, if they belong to more than one such community. Given the above, the right to full citizenship is indissolubly linked to freedom of movement. "Migrants" are not an undifferentiated floating mass (certainly not in the eyes of Dal Lago and Mezzadra). They are precisely travelers (forced, free, discriminated against) who create relationships between communities that are foreign to each other (and therefore work objectively, not to abolish these communities, but rather to soften their isolation). They also create relationships between distant or neighboring territories (working to short-circuit those distances and construct a human counterpart against the universalization of communication and economic differences). In their lived experience as well as in their contribution to the birth of a political "subjectivity" with respect to globalization (for which I adopt, of course, a point of view that assigns privileged status to the idea of equality, or equaliberty), the diasporic aspect is no less important than the nomadic aspect. A "diaspora" forms a network, with fixed meeting points, while "nomadism"—at least in appearance—is a voyage with no end and no return.

In concrete terms that means that migrants demand to be able to move about betwee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between different "worlds," in the sense both of departing and returning, contributing both at home and abroad to a real "decolonization," to the creation of a citizenry that is not at all based upon a racist anthropology. This does not mean there will be no culture (civilization?) conflicts, conflicting interests, and power struggles. At stake is how, in a larger context, to place the political "becoming a subject" of migrants (and their specific contribution to the upsurge of political subjects today). Dal Lago and Mezzadra (echoing the thought of Hardt and Negri) suggest that this context is one of a "globalization from the bottom up," and this they link to the symbolic names of Seattle, Gènes, Porto Alegre. I am hesitant to adopt this position, while at the same time hoping that my reservations will not be interpreted as hostile to the "antisystemic" movements that seek to (and are finding) the evolutionary framework and modalities for uniting with each other in these demonstrations and [End Page 42] debates, which represent the alternative to liberal globalization. On the one hand I am not convinced with respect to the strategies for change that anchor resistance to international capitalism within freedom of movement, changing identities, and separating of territories. These same parties at one time anchored resistance to international capitalism within the concept of "being able to live and work in such and such a country" and in the defense of cultures and allegiances that are threatened by the steamroller of the market and its homogenizing effect. On the other hand, and above all, I believe that the models for resistance, and the model for political subjectivity and universality that are conceived exclusively in terms of the workforce and its exploitation by capitalism (forever inseparable from violence and exile), can cause us forever to bounce back and forth between an archaic "economism" and a futuristic "economism." On the one hand, there will be the idea that the political future of migrants lies in claims to social rights and integration into the labor structures of Western social democracy (in which I include communism, meaning reform movements that depend on revolutionary discourse). It is as if the inability of these structures to organize these new postnational proletariats, and even to simply give them a voice, were not in fact one of the causes of their decline. On the other hand, there will be the idea that the political future of migrants lies in becoming a "mass base." This is the ideal for antiglobalization militants (or alterglobalization, as is now said) who classify class struggle according to the same generalities they use in defining the concentration of international capital, as if the ultimate point in insecurity and oppression of uprooted migrants can automatically be translated into an avant-garde movement.

The "democratization of frontiers," a phrase in which I continue to see the essential element of resistance to the logics of segregation and deportation, and at the same time a condition (among others) for the construction of a democratic Europe, that is a Europe plain and simple—not out of idealism, because I would not want to use the name "Europe" for a Europe that would turn its back on the ideals it proclaims, but out of realism, because I see in the real progress of continental democracy, beyond its national and social traditions, the sine qua non condition for there to be mass support for its enterprise. The condition for the construction of this Europe plain and simple continues to be a posited problem rather than a solution or recipe that we can put to work. It is a vague notion, but at least it includes this negative clarification: frontiers, a system of "external" and "internal" frontiers, these are radically antidemocratic. And as long as they are applied according to someone's or some group's discretion, there is no chance for those who have to "use" frontiers, individually and collectively, to negotiate as to their manner of administration and the rules according to which one may pass through them. On the other hand, this is a contradictory notion, because it leads to confronting such ideas as the control (popular) of control (state) of the movements of populations, and such ideas too as nondiscriminatory administration of security. These are ideas that will always be linked to relationships of power and will always fall just short of or just beyond any ideal kind of citizenship. They will also be "manipulable" by the structural agents of power. This notion, however, also has the advantage of politically designating the territory where there will be enacted the conflicts inherent in trying to go beyond a nationalist closing-off of borders in the name of security on the one hand, and trying on the other hand to have a frontierless empire (which essentially are two archaic and modernist forms the police can take).

Europe-the-frontier, democratic Europe, these are ultimately synonymous: they both designate the impossibility today of unilaterally managing the now unavoidable question of patterns of circulation and of the integration of concrete "groups"—I'm tempted to say cultural bodies or bodies of civilization, from the proletariats to students, to professionals, to intellectuals—that the various "parts" of the world exchange among themselves in order to create a "whole" while remaining "many." This is why [End Page 43] the northern Mediterranean particularly needs the southern Mediterranean as much as the South needs the North, not only to provide jobs, but also to invent statutes and laws by which to define constitutions. This complementarity is not necessary, but it is possible. Unless, of course, a general destabilization, causing various wars and local conflicts to turn into a regional and global confrontation, increases the numbers of refugees, maximizes pressures for security and makes any "negotiation" as to frontiers impossible for a very long time. I want to believe that there is a chance for Europe to engage in the enterprise of decolonization at home. This will allow it thereby to fight "provincialization" and to participate in the (re)construction of universalism, a universalism set upon other, less "particularist" and less exclusive, bases.13

Étienne Balibar is Emeritus Professor of Political Philosophy at Paris-X and Distinguished Professor of Critical Theory, French and Italian, and Comparative Literature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

Works Cited

Balibar, Étienne.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Paris: Galilée, 1997.

________. "Europe, Vanishing Mediator?" George Mosse Lecture. Humboldt Universität, Berlin. 21 Nov. 2002. Rpt. as chap. 11 of We, the People of Europe? Princeton, NJ: Princeton UP, 2004. 203–35.

________. Nous, citoyens d'Europe? Les frontières, l'État, le peuple. Paris: La Découverte, 2001.

Bauman, Zygmunt. Globalization: The Human Consequences. New York: Columbia UP, 1998.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The Empire Strikes Back: Race and Racism in 70s Britain. London: Hutchinson, 1982.

Chakrabarty, Dipesh. 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Princeton: Princeton UP, 2000.

Dal Lago, Alessandro. Non-persone: L'esclusione del migranti in una società globale. Milan: Feltrini, 1999.

Dal Lago, Alessandro, and Sandro Mezzadra. "I confini impensati del'Europa [The Unimagined Frontiers of Europe]." Europa politica: Ragioni di una necessità. Ed. H. Friese, A. Negri, and P. Wagner. Rome: Manifestolibri, 2002.

Deleuze, Gilles. Pourparlers. Paris: Minuit, 1990.

Goytisolo, Juan. "Un nouveau 'mur de la honte': Les boucs émissaires de l'Espagne européenne." Le Monde Diplomatique (Oct. 1992): 12.

Hardt, Michael, and Antonio Negri. Empire. Cambridge: Harvard UP, 2000.

Huntingdon, Samuel P. The Challenges to America's National Identity. New York: Simon and Schuster, 2004.

Mezzadra, Sandro. Diritto de fuga: Migrazioni, cittadanza, globalizzazione. Verona: Ombre Corto, 2001.

Spivak, Gayatri Chakravorty. A Critique of Postcolonial Reason: Toward a History of the Vanishing Present. Cambridge: Harvard UP, 1999.

Footnotes

1. Dal Lago, a professor of cultural sociology at the University of Gènes, is the author, among other books, of Non-persone: L'esclusione dei migranti in una società globale. Mezzadra, a political historian, is the author of Diritto de fuga: Migrazioni, cittadanza, globalizzazione.

2. It is striking that in French, the two Italian words in effect trade their respective meanings, if indeed we agree that frontiers are "closed" and confines "open." The authors refer to the work of Simmel to illustrate the idea that a frontier has not only its geopolitical function but also an epistemological one. The frontier evokes the contradictory experience that is the product of the contingent and sacred nature of identities.

3. Cf. the works of Zygmunt Bauman, especially Globalization: The Human Consequences.

4. Dal Lago and Mezzadra note the influence of Huntington's discourse. For him the rejection of "Moslem" immigrants in Europe and of Mexicans in the United States can be likened to a "war between civilizations."

5. They cite my own thoughts in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382, 387, et passim].

6. This is Dipesh Chakrabarty's expression, in Provincializing Europe: Postcolonial Thought and Historical Difference.

7. From a text by Juan Goytosolo we can see that this is not a recent development:

A new protective wall [. . .] but that is as effective and much more deadly, is being erected around the Twelve [. . .] the tragic harvest of the "death passage," the passage through the straits on the Andalusian coast alongside Morocco. The Spanish police do not shoot them: they simply catch them in nets and then send them back, dead or alive, to where they came from. While yesterday the attention of "Free Europe" was on the Berlin Wall, and those who got over it were welcomed, today it scornfully turns its back on the drama of these fugitives, as if this problem did not concern it [. . .] like Californian or Texan border people for whom the hunt and capture of wetbacks by the Border patrol constitute the only fun they have in their routine-bound and boring lives. Comfortably ensconced in their privileged, "nouveaux riches" lives, the Spanish, who are also newly free and newly European, are impassible in the face of this enactment of their own past. An almost generalized historical amnesia has taken hold of them.
[12]

8. See Balibar, Nous, citoyens d'Europe? Les frontières, l'Etat, le peuple, in particular chap. 3: "Le droir de cité ou l'apartheid," chap. 7: "Violence et mondialization," and chap. 12: "Europe difficile: Les chantiers de la démocratie."

9. I explained all this in a conversation with the editorial staff of Critique internationale, "Les nouvelles frontières de la démocratie européenne," scheduled for publication in no. 18 of the journal (January 2003). I likewise have to be careful about the confusion that might arise from using the term "apartheid" for very different situations, even thought they might belong to the same historical "space" and "moment," in particular occupied Palestine.

10. President Chirac and Chancellor Schröder proposed, during ceremonies to commemorate German/French rapprochement after the war (initiated by de Gaulle and Adenauer), the establishment of a symbolic Franco-German "dual citizenship." But Chirac and Bouteflika, or their successors, if they ever sign the "Friendship Pact" (Traité d'amitié) when they next meet, are not about to propose a Franco-Algerian "dual citizenship," the consequences of which would be much more effective.

11. Dal Lago and Mezzadra's theories, as is the case too for Michael Hardt and Antonio Negri's analyses in Empire, are clearly influenced by Deleuze's propositions concerning "control societies" [see the "post-scriptum" to his Pourparlers].

12. Cf. The Empire Strikes Back: Race and Racism in 70s Britain,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13. These statements point to another difficulty, in many ways analogous to the problem concerning the different forms secularization is taking in Europe: to make "decolonization" a common task for all of Europe is necessarily to ask ourselves how the various countries of Europe can attack this problem and integrate it into their particular histories. It is clear that it cannot be done in the same way by the former metropoli of "world empires" (which do not boil down only to "Western democracies") as by the former "continental empires," or by countries without empires (which, for that very reason, used to be considered "historyless": such as Ireland or the Slavic countries of Central Europe). Nonetheless, these specific phenomena must be part of any general approach to the problem, especially since immigrants themselves more and more perceive Europe to be a wh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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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지적 수치심'과 주체적 학문

얼마전 구내서점에서 본 두툼함 책 하나는 '학문 주체화의 새로운 모색'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우리 안의 보편성>(한울, 2006)이었다. 한동안 '학문의 주체성' 내지는 '우리 학문'이란 말이 학술계의 화두로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신간은 그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는 책인지, 아니면 주기적인 레퍼토리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따져볼 만한 형편은 아니었는데, 얼마간 궁금증을 풀어주는 리뷰가 있길래 옮겨온다. 문화일보 최영창 기자가 쓴 "탈식민적 인식서 나아가 현실에 대한 보편적 독해"란 제하의 리뷰가 그것이다. 참고로, '우리 안의'란 표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 이후 최근에 출간된 <우리 안의 과거>(휴머니스트, 2006)에 이르기까지 출판계에 유행하고 있는 하나의 트랜드이다.

 

 

 

 

문화일보(06. 06. 30) 1990년대 중반 미국 서부 남가주대(USC)에 교환교수로 가 있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세계체제론의 권위자인 지오반니 아기리의 강의를 듣다가 “독재정부가 아닌 민주정부 아래에서 투쟁하는 한국을 포함한 제3세계 신흥공업국의 노동운동의 과제와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아기리는 “그것은 나에게 물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이나 한국의 운동가들이 스스로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신흥공업국 노동운동의 선봉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향방이 세계 노동운동에 중요한 전범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국내 인문사회과학자 12명이 서구 학문으로부터의 종속에서 벗어나 우리 학문의 주체적 정립을 모색한 책에서 조희연 교수는 당시 경험을 예로 들며 일생일대의 ‘지적 수치심’을 느꼈던 때라고 밝혔다. 당혹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그는 강의가 끝난 뒤 벤치에 한 시간쯤 앉아 국내 학계와 지성계가 우리 현실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우리 근대학문의 서구 종속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상지대·성공회대·한신대 3개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민주사회정책연구원에서 기획한 책은 우리의 경험과 현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탈식민적 인식’의 순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우리 현실에 대한 ‘주체적이고 보편적인 독해’를 통한 실천적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여기서 ‘보편적 독해’란 정신대 문제나 박정희 신드롬, 광주항쟁 같이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 간주되는 현상들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려는 노력을 말한다.


 

 

 


-한국 학계 전반의 식민성을 점검한 서장에서 조희연 교수는 “지적·학문적 식민주의는 미국적 근대화를 추구했던 주류 우파 학자들뿐 아니라 이에 저항했던 좌파 학자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잉보편화’된 서구적 보편의 특수화와 함께 그동안 주변적인 것으로 인식되면서 ‘과잉특수화’된 한국적·비서구적 특수의 보편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다만 우리 안의 보편성 발견 노력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인식하는 과정과 동시에 진행돼야 ‘국가주의’나 파시즘으로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다고 조 교수는 덧붙였다. 화교나 외국인 노동자, 정주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태도에서 볼 수 있는 무수한 ‘우리 안의 파시즘’적 잠재력을 성찰하고 극복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우리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질 때 현재의 ‘한류’가 문화적 패권주의가 아니라 아시아 동반주의의 새로운 문화적 차원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서장에 이어 독일과 일본, 중국, 남아프리카 등 해외에서 이뤄진 학문 주체화 사례들을 다룬 논문과 내재적발전론·민족경제론, 분단시대론, 민중 등 광복 후 국내 학계에서 학문 주체화를 시도한 대표적 사례들을 살펴본 글, 이병천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의 ‘개발자본주의론’ 처럼 한국사회의 주요 측면들에 대해 최근 새롭게 개념화·이론화에 들어간 작업들을 해당 연구자가 직접 소개하는 논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서구의 근대학문과 우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우리 학문의 대외 종속성은 근대나 서구와의 관계로만 한정되지 않고 훨씬 더 뿌리가 올라가고 복잡한 문제다. 따라서 필진으로 참여한 12명의 노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낯설게 비쳐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가진 의미는 인정받을 가치가 충분하다(*이를 계기로 '우리 학문의 (불)가능성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06. 07. 03.

P.S. 러시아 사이트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들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한반도 지도 한 장을 옮겨놓는다. 동아시아사에 대한 내용 중 7세기 삼국시대의 한반도 모습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양편으로 황해와 동해가 러시아어로 표기돼 있다. 암튼, 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우리 안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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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탈정치'와 '정치과잉' - 진보진영에 정치 프로그램의 공개를 제안한다

 

 

<대안연대칼럼>

 

'탈정치'와 '정치과잉'

 

진보진영에 정치 프로그램의 공개를 제안한다

 
20여년전 '열혈학생'이던 시절, 집안 제사가 끝나면 으레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필자였다. 전두환, 이순자에 대해 온갖 독설로 시작되는 필자의 정치선동(?)은 "너는 공부는 안 하고 웬 정치에만 그렇게 관심이 많으냐"는 어른들의 지청구를 듣고서야 마무리되곤 했다.

조합원은 탈정치, 조합간부는 과잉정치

▲ 이해관 전 KT노조 부위원장. 
ⓒ 매일노동뉴스
20년이 지난 오늘날, 그 관계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요즘 제사를 마치면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집안 어른들이시다. 물론 노무현 정권에 대한 성토 일색이다. 서로 앞다투어 한마디씩 들은 비난과 험담을 옮기시는데. 그 내용이란 차마 글로 옮기기에 너무도 민망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북한에 너무 퍼줘서 남한 경제가 어려워졌다’, ‘좌파정권이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해서 경제가 붕괴되고 있다’ 등등.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노무현 정권의 잘못은 잘못이고 울컥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런 심경을 알고 계신지 집안 어른들이 필자를 챙기신다. “그래도 우리 집안에서는 정치하면 네가 전문가인데, 너는 노무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냐?” 그럴 때 필자의 난감한 답변. "저 정치에 관심 없어요."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여년전, 필자가 전두환 독재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끌어내기 위해 학생운동에 대한 온갖 집안 어른들의 비판을 수용했듯 지금은 어른들이 그렇게 하신다. 20여년전, 집안 어른들이 ‘학생들이 화염병 던지는 행동은 너무 과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라도 하시면 필자는 매우 겸손한 태도로 ‘학생운동도 잘못하는 게 많이 있지만 그래도 나라가 잘 되려면 전두환이를 하루 빨리 끌어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의 대화로 전두환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이끌었다.

그러한 정치적 역할도 이제는 집안 어른들의 몫이 되었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너무나 부패한 집단 아니냐’며 필자가 한마디 하면 집안 어른들이 거꾸로 ‘맞다, 한나라당 문제다, 하지만 나라가 잘 되려면 노무현이가 하루 빨리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노무현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유도한다. 20년만에 필자는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에서 반전두환 전선의 정치적 견인 주체에서 반노무현 전선의 견인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것이 지난 20년 필자가 주변에서 가장 가깝게 느끼는 정치의 변화다. 5·31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달이 넘었다. 도대체 지금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노동운동의 패배인가 승리인가! 우리는 그런 정치적 평가조차 못하고 있는 반면, 현실에서 대중의 정치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압승의 결과는 지역주의의 부활도, 박근혜 피습에 따른 어부지리도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어설픈 개혁에 실망한 정치의식이 부족한 대중의 잘못된 선택이 가져온 수구정당의 어이없는 승리도 아니다. 수구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양극화 속에서 고통받는 민중들의 민심 이반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반노무현정권 정치투쟁을 전개한 데 따른 승리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속에서 대중은, 특히 빈곤에 시달리는 하층 대중의 생활상의 좌절과 분노는 높아져 왔다. 그리고 그러한 불만이 기존의 신자유주의 하에서 완화되거나 체제 내로 수렴되지 못함에 따라 계속 정치적 방향을 띨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대중의 정치화를 초래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정치화된 대중을 결집하며 일관된 정치투쟁을 전개한 것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세력이었다. 동네 노인정에서 탄핵 지지 서명운동에 이어 행정수도 반대 서명운동이 전개될 정도로 대중의 정치화는 진전되고 있었지만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이러한 대중의 정치화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대중의 생활상의 불만이 정치화로 진전되는 동안 진보진영은 정치를 의회감시운동, 사법감시운동 등의 권력감시와 이른바 실현가능한 정책 대안이라는 이름의 의회주의적 정책경쟁으로, 그리고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노동운동가들의 공직 진출 정도로 퇴보시켜 왔다. 그래서 대중의 정치적 결집은 표 모으기와 당 후원금 확보의 문제로 치환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는 민주노동당이 만들어져 의회 진출이라는 성과를 내는 데 성공하고 민주노총과 산하 연맹들이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가 보장되었지만, 노동운동이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해내는 능력은 꾸준히 감소해 왔다. 대중의 탈정치화를 동반한 노동의 정치세력화로 귀결된 것이다.

당신의 정치 방안을 떳떳하게 호소하라!

한편, 이러한 대중과의 관계에서 탈정치화와 정반대로 활동가 사이에서는 과잉정치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입만 열면 좌파니 우파니 세력을 나누는 데 활동가들은 익숙해져 있다. 당의 별 시시껄렁한 이야기조차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심각한 정치 이슈로 비약되기 일쑤다. 이러한 대중적 탈정치화와 활동가 수준의 과잉정치가 빚어낸 운동질서가 바로 정파 갈등과 '쪽수'를 통한 의사결정이다.

대중의 탈정치화로 대중적 정치 토론이 실종되면 될수록 활동가들의 과잉정치화에 따른 정파 간 패권 다툼은 심화되었고, 그 귀결은 사안을 가릴 것 없이 표결에 의한 의사결정, 즉 '쪽수' 대결이었다. 노동운동의 의사결정이 정치토론이 아닌 '쪽수' 대결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대중의 정치화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금 노동운동이 해야 할 것은 제대로 된 정치논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즉 지금의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초래하는 위기에 대한 정치논쟁을 대중적으로 전개하는 것이다.

노동운동 내 일각에서 20년 민주화운동의 귀결이 파시즘의 복귀로 나타날 우려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자유주의 개혁세력의 무능함이 파시즘을 부를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 우려를 자아낼 만하며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동지들은 은연중 김근태씨를 포함한 개혁진보연합 세력을 결집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러한 고민들을 ‘개량주의’라는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동지들은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이러한 정치프로그램을 대중에게 제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이러한 노선에 반대하는 동지들도 더이상 뒷골목에서 ‘운동 내 특정세력이 김근태랑 손을 잡을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문제제기만 할 게 아니라 지금의 위기에 대한 운동진영의 정치 프로그램을 제출해야 한다. 87년 투쟁으로 형성된 정치질서가 개헌논의와 정계개편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드는 현실에서 노동운동이 취해야 할 정치전술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출했으면 한다.

신자유주의로 촉발된 위기는 대중의 정치화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위기의 시기에 정세적 긴박감과 무관한 일반화된 정치세력화 경로는 아무런 대중적 호소력이 없다. 그저 열심히 지역에서 발로 뛰자는 주장은 사실상 진보정치를 포기하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치열하게 진행될 개헌 논쟁과 정계개편은 단지 부르주아 내부의 권력 다툼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심화되는 대중의 분노의 정치적 표현이다. 따라서 이 정치 위기에 대한 진보진영의 해답이 대중적으로 제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대중적 정치토의의 부활에 기초한 대중의 정치화 과정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승리야말로 진보진영의 정치 위기에 대한 무능력의 귀결 아니겠는가!

그래서 지금 진보진영에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이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위기에 대한 정치적 타개책을 대중적으로 논쟁하는 것이다. 이 정치 위기를 노동자 대중의 변혁적 정치세력화의 기회로 만들려고 한다면, 이 위기를 남 탓을 통해 자기 정파의 정당화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우리 모두 각자가 준비한 정치위기의 해법을 대중적으로 제출하자.

각자의 준비된 해법이 대중적 논쟁으로 발전 할 때 노동운동 위기의 대안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설지 모를 일이다.
 
이해관  
     
2006-06-30 오후 1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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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balmas > 자본시장통합법, 한미FTA 사전 정지 작업

 

자본시장통합법, 한미FTA 사전 정지 작업
정부 30일 입법예고, 증권업종본부, ‘국민경제 붕괴시킬 것'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증권업종본부)는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은 한미FTA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 “금융 공공성 실현과 투기자본 척결이 가능하도록 제정 방향을 전면 재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 2월 20일 재경부는 ‘금융투자업과자본시장에관한법률(가칭)’안을 밝히며 현행 은행, 종금사, 증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사, 신탁회사, 보험사, 여신전문회사 및 서민 금융기관 등이 제공하고 있는 금융서비스를 은행,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여신전문회사 및 금융기관 등으로 크게 4개로 통합 재편하며, 관련 법안도 정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한덕수 부총리와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각종 경제 강연과 회의석상에서 '중소형 증권사들은 매각 또는 합병하라'는 구조조정을 공개 주문하며 ‘금융법령이 FTA에 따라 정비되어야 한다’고 주장, ‘금융산업 구조조정을 기정사실화’ 하며 분위기를 조성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업종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금융허브를 위한 조치의 하나로 연내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들며 이법이 “4-5개의 투자은행과 투기자본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금융빅뱅을 유도하고 있고, 금융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정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자본시장통합법의 내용이 각종의 규제 완화를 초점"에 두고 있음을 들며 "정부는 진입 적격성을 유지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오히려 미국 수준으로 규제를 완화하여 외국투기자본의 국내 자본시장 장악을 용이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모펀드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 투기자본의 횡포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산업자본의 우회적 자본시장 장악도 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소수 투자은행을 위한 인수합병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불러와 다수의 증권노동자들이 거리에 내몰릴 것"이라고 전망하며 이는 또한 "금융 공공성 사장은 국민경제 기반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변했다.

증권업종본부는 “투기자본은 근본적으로 고용창출을 전제로 하지 않음"을 들며,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인해 "증권인력이 주변부 업무만 담당하게 되고, 신규인력도 비정규직 또는 대리점의 계약 노동자, 개별 계약 판매자 형식이 주를 이루어 노동시장이 불안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증권업종본부는 금융 공공성 실현을 위한 규제 강화, 고용승계 적정인력 유지 의무화 방안 마련 등 정부의 자본시장 통합법 내용 재수정을 요구했다.

한편, 자본시장통합법은 30일 입법예고될 예정으로, 재경부는 법 공표일로부터 1년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해 법률제정안이 올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오는 2008년 하반기부터 시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 제대로 배워 크게 써먹어 보자?
금융 거버넌스가 사라진다
한겨레, 금융허브와 동북아물류기지를 건설하라?
허물어진 시장 ‘장벽’, 금융노동자들의 "빅뱅"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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