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마르틴 루터, 이병도, 이장무, 장욱진...
집사람 말이, 얼마 전 수업시간에 마르틴 루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학생들이 "루터는 어쩌구..." "루터는 저쩌구..." 하면서 이 16세기의 종교개혁가를 한창 찧고 까불고 하면서 신나게 비판하고 있자니, 그때까지 말 없이 학생들의 토론을 지켜보던 교수님께서 한 말씀 하시더란다. "자네들, 루터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아닌 게 아니라, 솔직히 현대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습지 않은" 과거의 사상가가 어디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지금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갖가지 상식만 갖고 사상사를 일별해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고대, 중세, 근대의 대 사상가들의 주장에서도 어딘가 어수룩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대목이 하나 둘씩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히 플라톤이건 아퀴나스건 루터건 데카르트건 칸트건 헤겔이건 마르크스건 하이데거이건, 우리보다 앞선 대부분의 사상가들을 "우습게" 보게 마련이다.
루터의 경우도 비판할 건덕지로 말하자면 만만치가 않아서, 가령 종교개혁이란 커다란 혁명적 사건 자체가 그의 용의주도한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그저 홧김에 써갈긴 비판글이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사방팔방으로 "퍼나르기" 되어 얼떨결에 개혁의 주체로 떠밀려 나간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분명히 갈피를 잡지 못해 종종 판단착오를 저지르고 말았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최초의 근대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최후의 중세인으로서 "마귀"의 존재를 굳게 확신했다는 점, 독일 내의 농민혁명을 비난하며 오히려 탄압을 촉구하는 반동적 면모를 보였다는 점, 심지어 평소에 맥주를 즐겨 마셨다는 점까지도 보수깡통나부랭이인 한국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비난"의 대상이 될 만한 건덕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루터가 "우스운" 인물인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비록 루터가 야심도, 역사적 시야도, 혹은 합리적 사고방식도 완벽하게 지니지는 못한 나름대로의 "한계"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사상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볼 수는 없다. 현대인과 달리 "마귀"의 존재를 믿긴 하더라도, 루터의 주장이 그렇다고 해서 미신 일변도로 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그가 현실 정치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 해도, 그의 정치나 윤리 사상에 있어서는 분명히 어떤 날카롭고도 타당한 주장이 언뜻언뜻 엿보이는 것이다. 아마 앞서 이야기한 그 교수님의 "자네들에겐 루터가 우습게 보이나?"라는 반문 역시, 그런 부분을 지적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즉 지금 와서는 그야말로 바보 멍청이에 한심이로 보이는 루터일지 몰라도, 그래도 "루터는 위대한 사상가"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입장에서 과거를 들여다 본다는 것은 필요하기에 앞서 불가피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사를 오늘날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시대착오"적 행위를 일삼아서는 곤란하다. 고대에는 고대인의 맥락이 있고, 중세에는 중세인의 맥락이 있다. 현대인의 시시껄렁한 건강 상식 몇 가지를 가지고 히포크라테스의 4체액설을 비난하는 건 "가능"하긴 하지만 "합당"하진 못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주어진 선거권 하나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플라톤을 가리켜 "민주주의를 반대하고 독재를 예찬한 악당"으로 폄하하는 것 역시 "가능"하긴 하지만 "합당"하지는 못한 일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이래저래 몸을 팔면서도 지금 사는 자본주의 체제를 절대적인 것마냥 여기고 마르크스의 "허풍"을 우습게 여기는 것 역시 "가능"하긴 하지만 "합당"하지는 못한 일이다. 과거에는 현대인인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떤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쉽게 지금의 잣대나 돋보기를 들이대고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가능"하긴 하지만 역시 "합당"하지는 못한 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문득 서울대 총장선거에서 1위로 당선된 이장무 공대 교수가 이른바 "친일파"로 분류된 역사학자 이병도의 친손자라는 점이 문제가 되어, 그의 서울대 총장 임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항의와 서명운동이 벌어진다는 뉴스 기사를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하게 되었다. 요즘은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 했다가는 그야말로 "공적 제1호"가 되기 십상인데,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친일청산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 방법이나 과정에 대해서는 약간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물론 절차상의 문제를 들먹여서 모두에게 전천후 면죄부를 발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산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놈의 "민족감정"이니 "민족정기" 같은 감정만 무작정 앞세워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즉 논리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것이다. 가령 누가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세우고, 무조건 "죽일 놈"으로 몰아세우는 식이다. "친일파"에 대한 일반의 인식 역시 그런 식의 "때려잡기" 수준이 아닐까 싶은데, 과연 지나친 감정적 대응이 과연 친일청산에 도움이 되기는 할런지 나로선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병도의 친일행적에 대한 비판은 꽤 오래 전부터 언급되어 왔다. 요약하면 (1) 조선총독부 산하의 어용기관인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했다 (2) 일본 식민사관을 그대로 수용해서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두 가지이다. 이중 (1)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확고한 사실이긴 하지만, (2)의 경우에는 오히려 전문적인 논의가 될 것이니 나로선 쉽사리 판단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보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가령 그의 학설이 "일본의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답습"했다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연구 자체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나라의 당연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지금만 하더라도 중국이나 한국의 고중세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일본 학자들의 연구자료가 필수적인 2차문헌 아닌가?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병도의 학설에 대해서도 일단은 그의 친일행각"과 연계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 당시의 "학문수준"과 연계시켜서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즉 이병도 자신이 의식적으로 "식민사관"을 답습하겠다고 나선 것이 아닌 바에야, 그가 당시 일본의 "주류사관"을 받아들인 것은 학문적 "오류"이긴 할망정 "친일" 행위까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당시 주류 사학이 그런 오류를 내포했으며, 이병도 역시 그 당시의 주류 사학계에서 배우고 활동하던 사람으로서, 그 시대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는 식으로 파악해야 옳을 것이다.
얼핏 보기엔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은데, 이병도의 행적에서 "개인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을 구분해야 하는 까닭은, 지금 그를 "친일파"로 매도하는 쪽의 입장이 이 두 가지를 악의적으로 혼동시키는 듯하기 때문이다. 즉 이번에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 교수의 서울대 총장 임용을 반대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이버의병 카페" 모임의 주장은, 이장무를 서울대 총장으로 앉힐 수 없는 까닭은 그의 할아버지인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근무하며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하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화 시킨 대표적인 친일 사학자"(사이버의병 카페 첫화면에서 퍼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것을 "친일행위"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이건 오히려 그의 학문적 성과가 틀렸다는 학술적 차원에서의 반박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왜곡" 했다는 것이나,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화"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고 워낙 설왕설래가 심한 주제이기 때문에, 그것을 보는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가장 큰 "의문점"은 앞서의 그 시민단체니 사이버카페가 은연중 삼국시대와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해 자신들은 "정답"이나 "사실"을 알고 있다는 투의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편견일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이버의병 카페"의 위 주장에서는 은근히 상고사와 단군에 대해 배타적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며 "만세삼창"을 외치는, 이른바 "환단고기" 류의 자칭 "배달사학" 쪽에 가까워보인다. 쉽게 말해, 만주도 우리 땅, 중국도 우리 땅, 몽고도 우리 땅이고, 한민족이 세계에서 제일 잘난 배달민족이라는 식의 논리다. 다만 이런 엄청난 진리가 외면당하는 까닭은 모두 다 임나일본부설을 위시한 "식민사관"의 악영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김지하의 경우에도 알 수 있다시피, 이런 쪽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극우 민족주의, 완전 쇼비니즘과 맥이 닿게 마련이다. 특히 이들은 "단군"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있는데, 굳이 이병도까지 갈 것도 없이 최근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과연 이들의 쇼비니즘적 애국주의 사관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이는 이병도가 도입한 "실증주의적 사관"의 기준에서 볼 때에는 객관적 신빙성이 지극히 떨어지는 "신화" 차원의 추측성 역사학, 달리 말하자면 "소설"에 가까운 주장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들의 논리가 "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는 놈은 식민사관 옹호자이며, 친일파!"라는 식이라면, 솔직히 역사학계에서 식민사관 옹호자이고 친일파 아닐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나 역시 일반인이긴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물론 이병도 본인도 조선사편수회에서 일했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치는 않고, 이후에 쓴 자전적인 글에서도 자신이 거기 관여하게 된 데 대한 후회를 적잖이 표시하긴 했다. 하지만 어느 사학자의 말마따나 이병도는 어디까지나 "독립운동 삼아 역사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고, 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차원에서 일본인 학자들과 실력을 겨루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조선사를 연구한 식민지 조선인 학자가 식민지 총독부에서 설치한 식민지 역사 편찬기관에 들어가 일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과연 어디로 가야 했겠는가? 어디 계룡산에라도 들어가서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의 실증적 고찰을 위해 노력하기라도 했어야 했단 말인가? 물론 이런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이병도에게 전천후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의 수상쩍은 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증거"를 들이대며 멀쩡한 사람을 잡겠다는 심보도 뭔가 제정신은 아니라고 본다. 가령 이병도가 조선사편수회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은 빼도박도 못할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병도의 "학문적 주장" 자체를 가리켜서도 "친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섣부른 판단인지는 몰라도 그의 역사학은 어디까지나 역사학으로만 비판되고 검증될 문제이지, 그걸 섣불리 "친일문제"라는 정치적인 맥락으로 끌어들여서 단죄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행위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른바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어떤 한 사람을 "친일파"로 규정해 놓으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밉상"으로 보이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가령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 교수와 그 동생인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할아버지의 친일 논란에 대해 "그래도 할아버지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반박한 것에 대해서도 도리어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손바닥 만한 구실 하나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을 해도 변명으로 여겨지지 않을 상황이니, 그냥 앉아서 죽으라는 이야기인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제아무리 살인이나 도둑질을 한 죄인이라도 최소한 "변론"의 기회는 주고 가타부타 판단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 어이가 없는 것은, 도대체 정체가 뭔지도 알 수 없는 시민단체인지 뭔지 하는 쪽에서 이병도의 "친일" 문제를 걸고 넘어선 뒤에, 인터넷 여기저기서 이병도의 "친일" 문제에 대한 글이 우후죽순 격으로 "퍼나르기" 되면서 오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병도는 이완용이 자손이다!"라는 원색적인 비난조차 있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물론 같은 우봉 이씨 가문이긴 하지만 이완용과는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병도는 생전에도 이러한 오해를 받아 종종 공격을 당하곤 했던 모양이다.(심지어 오마이뉴스에서도 이와 같은 논리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이병도가 가문의 수치를 덮기 위해 원광대 박물관에 소장된 이완용의 관뚜껑을 가져다가 불태우기도 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것은 또 무슨 소리인지 궁금하다.) 심지어 지금도 무슨 보수적인 인사 가운데 "이씨" 성을 지닌 사람이 있기만 하면 곧바로 "이완용이 자손"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결국 그놈의 "빨갱이 논리"와 다를 법이 없지 않은가?
지질학을 전공한 어느 친구는 일제시대 당시에 일본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수행한 한국의 지질학 관련 연구를, 해방 후에 우리나라 학자들이 일종의 "극일" 차원에서 모두 새로이 연구를 수행해 기존의 주장을 모조리 "뒤엎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또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보니 애초의 일본 학자들의 연구가 "맞는" 것이었고, 이후의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에 중대한 오류가 포함되어 있었음이 밝혀져서 무척이나 뻘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즉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지진 못했던 것이다. 이런 식의 오류가 지금 이병도의 사학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솔직히 말해서 걸핏하면 학술 분야에서도 "친일청산"을 언급하긴 하지만, 지금도 한국역사나 문학을 연구할 때면 가장 기본적으로 참고하는 자료는 한국인 및 일본인 학자들이 일제 시대에 총독부의 위촉을 받고 만들어낸 일본 자료가 아닌가? 친일청산은 "대의명분"으로는 적절한지 몰라도,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의 근대를 언급할 때에 일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단순히 싫다고 해서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좀 더 지혜로운 판단이 필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이병도의 사학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학술적인 평가와 검증이 필요하다. 그의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그의 학문적 업적까지도 깡그리 무시하기 전에, 과연 그의 학문적 공과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어느 교수님이 "루터가 우습게 보이냐?"고 반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병도가 우습게 보이느냐?"고 반문해 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이병도가 결코 우습게 보이진 않는다. 물론 그의 모든 것을 이상화하고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미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서 상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학문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그의 주장이 "완전히 엉터리는 아니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가 미처 생각 못했거나 과소평가한 대목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주장 자체가 "식민주의 사관"에 물들었다고 주장하며 그 가치를 완전 폄하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그 대안이라며 내세워지는 것이 기껏해야 진위가 의심스러운 "배달사학" 나부랭이인 다음에야 더 말할 것도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단군의 실존 여부를 부인했던 이병도가 말년에 가서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려는 움직임을 약간이나마 보인 바 있다는 점이다. 그와 거의 동년배인 최태영의 회고록 <인간 단군을 찾아서>를 보면, 철저한 단군실재론자인 최태영은 친분이 있던 이병도에게 자신이 수집한 이런저런 증거를 들이밀며 상고사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바꿔볼 것을 설득했고, 실제로 이에 마음이 움직인 이병도와 함께 <한국상고사입문>(고려원)이라는 소책자를 펴내기도 했던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이후에 이병도가 작고하는 통에 더 이상의 진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인데, 글쎄, 과연 이병도가 좀 더 일찍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면 훗날 어떤 연구결과가 나왔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가령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나, 파인만이 초끈이론을 철저히 거부한 것은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의 천재성이나 업적 전체를 무로 돌려보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오류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두 사람 역시 자신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지녔으며, 이는 이병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학자와 사상가들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뭐, 그래도 굳이 이병도를 욕하고 넘어가야겠다면, 그리고 이병도의 "손자"인 이장무가 서울대 총장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악을 써야겠다면, 아예 내친 김에 이병도의 "사위"에 대해서도 실컷 욕이나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병도의 사위는 또 격에 어울리지 않게도 환쟁이, 즉 화가였는데, 경제적으로 무능한 데다가 늘 밥 대신 술로만 살아가는 괴짜였기 때문에, 학자 집안에서 곱게 자란 부인의 속을 무던히도 썩혔다고 전한다. 그 사위가 바로 누군고 하니, 바로 화가 장욱진이었다. 근엄한 학자 타입인 이병도 역시 어찌어찌 환쟁이 사위를 보긴 했지만 결코 마음에 들지가 않았는지 평생 사위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으며, 심지어 딸 내외가 자기 집을 찾아와도 책을 읽다 말고 호통을 쳐서 내쫓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적의 적은 친구"라는 논리에 따라 장욱진은 "친일파인 장인과 교류가 없었으므로, 항일민족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는, 비록 조선사편수회에 몸담기는 했지만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한 장인 이병도와는 달리, 사위 장욱진은 한때나마 창씨개명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건 "누가 친일파고, 누가 민족주의자"인 것일까? 장욱진 역시 장인에 대해서는 못내 서운한 감정을 지닌 모양인데, 그래도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훗날 평전을 쓰기도 했던 김형국의 증언에 의하면, 장욱진은 장인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 1988년 2월 27일, 뜻밖에 수안보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화가가 이런 말을 했다. "장인(이병도)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나는 신경질을 부리곤 하는데, 장인은 전혀 그런 내색이 없다. 남들이 이완용의 손자라는 등 아무리 모함을 해도 흔들림이 없다. 내가 가지지 못한 덕목이다." 이 말처럼 두계(이병도)에 대한 모함은 많았다. 단지 이완용과 같은 우봉 이씨라는 사실만 두고 모함의 꼬투리를 삼는 유언비어가 심했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때 "빨갱이"라는 말이 그야말로 모든 상황에서 결정적인 한 방으로 사용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욕"으로 여겨진 것처럼, 요즘에는 "보수"니 "친일파"니 하는 말이 그렇게 사용되는 것만 같다. 어떤 것이건 간에 그 배후에 놓인 논리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쇼비니즘적인 것이다. 주사파나 우익이나 친일파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판은 어디까지나 이치에 맞아야 하며, 합리적인 생각을 지닌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껏해야 요즘 웬만한 영화배우들의 영화 한 편당 개런티조차 안 되는 1억 원을 저작권료로 받기로 했다는 이유로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의 유족들을 "매국노"로 몰고, 기껏 축구에 진 것 가지고 스위스에 대한 "국민감정"이 악화되어 난리블루스를 추는 이놈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정말이지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렇게들 단순하고, 어쩌면 그렇게들 무개념한 것일까? 근대성도 좋고 합리성도 좋지만, 아직 우리는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