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퍼온글] 서사의 구조와 시점의 문제



시점에 관한 종합적 스팩트럼(시점의 시학/ 수잔 스나이더 랜서 지음, 김형민 역/ 좋은날, 1998. 226쪽)

시점을 자격, 접촉, 그리고 입장 이라는 관점에서 스팩트럼한 것이다. 이 도표가 시점에 대한 스팩트럼이라는 까닭은 서사는 하나의 우주와 같기 때문에 어느 각도, 어느 입장에서 보든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지 무우를 자르듯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한 작품 안에서도 시점이 융통성 있게 조정될 수있음은 물론이다. 다음 그림은 좀 다른 각도에서 시점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김민수. 이야기, 가장 인간적인 의사소통-소설의 이해. 서울: 거름, 2002. 186쪽)
먼저 인칭을 중심으로 1인칭과 3인칭에 양 극에 있다. 일인칭 서술과 삼인칭 서술은 화자가 스트리 세계에 속하느냐, 아니면 스토리 세계 외부에 존재하느냐(이경우 목소리만 들린다) 하는 차이로 구별된다. 일인칭 서술에서는 화자가 인문을 겸하고, 삼인칭 서술에서는 화자와 인물이 별개의 위치에놓인다. 이러한 차이를 지니면서도 일인칭 서술과 삼인칭 서술은 동형의 구조를 보여주기도 한다. 삼인칭 화자와 일인칭 서술적 자아가 서로 대응하고, 삼인칭 인물과 일인칭 경험적 자아가 대응하기 때문이다.

시점을 기준을 외부적 시점 서술과 내부적 시점 서술이 대조를 이룬다. 외부적 시섬 서술은 소설이 화자의 시점과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 시점 서술에서는 화자가 서술의 매개자로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느껴진다. 외부 시점 서술은 삼인칭의 전지적 화자에 의한 서술이나, 인일칭의 서술적 자아가 중심이 되는 지적 화자에 의한 서술이나, 일인칭의 서술적 자아가 중심이 되는 서술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볼 수 있다. 내부 시점 서술은 화자가 시점을 인물에게 부여하여 그 인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다. 물론 서설 전체를 외부 시점이나 내부 시점으로 단일화시켜 서술하는 것은 극단적인 경우이며 그 사이에 다양한 양상이 자리잡고 있다. 내부 시점 서술은 일인칭 경험적 자아 중심의 서술과 삼인칭 인물시점의 서술에서 잘 볼 수 있다. 그런데 화자가 시점을 갖고 있는 외부 시점 서술에서도 인물들의 내면적 관점이나 사고, 감정, 의식 등을 전달하는 부분이 많아지면 내부 시점 서술처럼 보이게 된다.

화자 중심이냐 인물중심이냐를 기준을 '서술하는 화자인물'과 '서술을 전개하는 반영자 인물'이 대조를 이룬다. 화자 인물이란 화자가 마치 한 사람의 인물처럼 자신의 인격성과 존재성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고, 반영자 인물이란 특정한 인물이 시점의 주체가 되면서 서술을 매개하는 것을 가리킨다. 반영자는 시점 혹은 초점화의 주체이므로 초점 화자와 같은 말이다.

이렇게 구분된 여섯가지 서술의 유형들이 서로 연결되거나 결합됨으로써 담론의 기본 유형이 되는 세 가지 서술 상황이 형성된다. 그것이 바로 일인칭 서술 상황, 전지적 서술 상황, 인물적 서술상황이다. 위의 세가지 분류 기준과 서술 상황과의관계를 도형으로 나타낸 것이 위의 그림이다.

설명을 덧 붙이면, 원의 가운데에 인칭, 시점, 서술 양태라는 기준에 따라 세개의 선이 그어지고 양 끝에 각기 양극화된 서술 유형이 놓이게 된다. 그리고 바깥에 세 서술 상황이 원을 삼등분하면서 자리잡고 있다. 여러 소설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이 유형원의 테두리를 따라 배치하면 각 소설들의 담론적 양상과 특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다음 도표의 서사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을 참고하기 바란다.



서사의 전체적인 윤곽을 의사소통 모형에 입각하여 그려본 것이다(시점의 시학/ 수잔 스나이더 랜서 지음, 김형민 역/ 좋은날, 1998. 74쪽). 서사의 큰 그림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며 서사 분석의 좌표역할을 한다. 한 사람의 비평가가 하나의 비평 행위에서 이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있다. 큰 그림의 유익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좌표를 설정할 수 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감각을 갖데 한다는 것이다. 다음의 김종구씨의 번역과 용어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



이 그림은 서사본문(text)의 구조를 분석한 것이다(시점의 시학/ 수잔 스나이더 랜서 지음, 김형민 역/ 좋은날, 1998. 148쪽). 서사의 구조가 의사소통 모델에 근거하여 볼 때 다층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소설학회편. 현대소설 시점의 시학. 서울: 새문사. 1996. 23쪽)
위와 비교하여 역사적작가-->실제작가, 공적 서술자-->일반서술자, 사적화자-->개인화자, 인물행위자-->주인공-행위자, 관중-->목격자, 공적피화자-->일반수화자, 사적피화자-->개인수화자, 역사적 독자-->실제 독자 등으로 다르게 번역되었다.




(한국 소설학회편. 현대소솔 시점의 시학. 서울: 새문사. 1996. 25쪽)
오닐이 분석한 서사의 수준, 서사과으로서 '액자의 포개진양상'(nested frames)으로 도형화 하였다. 여기서 C는 주인공,  N은 서술자, N'은 수화자, A'는 내포독자, R'은 내포독자, A는 실제 작가, R은 실제 독자, NL은 서사수준의 약호이다.



(한국 소설학회편. 현대소설 시점의 시학. 서울: 새문사. 1996. 29쪽)
랜서는 서사전달의 모든 수준에서 접촉(contact), 지위(status), 태도/입장(stance) 등과 함께 역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랜서의 서술 수준은 상호 의존적이면서 또한 계층적인 종속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사사전달 과정은 '저자성의 연쇄'(chain of authority)로 설명된다. 이 모형은 개인서술자/개인수화자, 일반서술자/일반수화자 소통관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의 문화적 소통의 과정이다(시점의 시학/ 수잔 스나이더 랜서 지음, 김형민 역/ 좋은날, 1998. 230쪽). DS는 화자의 가치, MS는 화자의 개성, 그리고 SS는 화자의 언화 행위를 가리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릴케 현상 > 고문관

고문관
입력: 2006년 07월 27일 18:07:09
 
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일선 행정부서나 군대에 파견된 미군 고문관(顧問官)은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 첫번째는 최고권력자로서의 면모이다. 모든 부서의 우두머리는 고문관들의 통제를 받았으며, 공문서에는 이들을 위한 영문 해석을 첨부해야만 했다. 미군정청은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건립한 경성제국대학을 ‘친미파 양성소’로 만들기 위해 국립 서울대학으로 개편했는데 일개 고문관인 앤스테드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이 서울대 개편안에 지식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던 것이 바로 ‘국대안 파동’이다.

반면 고문관은 ‘어수룩하고 행동이 굼뜬 사람’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당시 미군 고문관들의 권한은 막강했지만 한국어가 서투르고 한국 물정에 어두워 업무수행에서의 실수도 적지 않았다. 고문관들의 이같은 약점을 노려 제 잇속을 챙기거나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약삭빠른 한국사람들도 생겨났다. 행동이 느리거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선임병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병사를 지칭하는 군대 은어인 ‘고문관’은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문관은 관리자의 능력에 따라서는 조직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경영이론도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로버트 서튼은 이미 검증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거나 기존 조직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범생이 형’ 직원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보고 행동하며,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우둔하고 고지식한’ 유형의 사람을 중용하라고 충고한다. 이를테면 ‘고문관 우대론’인 셈이다.

군당국이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현역복무 부적합자’로 판정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의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 등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조처라는 생각도 들지만 문제는 고문관을 판정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이다. 기준이 애매할 경우 상관이 감정적으로 악용하거나 ‘왕따’가 제도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 건강한 병영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손동우 논설위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드팀전 > 훌륭한 네오콘 안내서
네오콘 프로젝트 - 미국 신보수주의의 이념과 실천 국제관계학 총서 4
남궁곤 편집 / 사회평론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북한 설득의 최대실패자는 미국이다."라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두고 말들이 많다.이종석 장관은 북한문제를 두고 한미간에 이견이 있음을 어느정도 인정했다.보수언론과 야당은 이를 물고 늘어지면 공세를 취하고 있다.결국 청와대에서도 나섰다.노무현 대통령은 이종석 장관의 발언에 대해 힘을 실어주며 언론의 과잉대응에 못마땅함을 표했다.대통령의 이러한 지지 역시 보수언론의 도마 위에 오르지 좋은 내용이었다.청와대는 반미냐 친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 한반도 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즉 한반도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안보관계자는 미국이 북한 문제에 있어서 단독으로 강경드라이브를 걸지 않겠다고 남측과 합의를 해 놓고 일본의 대북강경 분위기에 탄력받아 그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발언은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것이다.하지만 남북관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일부 세력들에게 이러한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그들에게 세상은 선과 악으로 구분된다.북한은 여러모로 악이며 이는 소탕되어야 할 암세포일 뿐이다.그러므로 남북문제와 병행된 미국에 대한 접근법 역시 '친미냐 반미냐'로 단순화된다.한반도내의 항구 평화라는 전제를 가진 합리적 접근이나 단계론적 접근등도 이념 공세 하에서는 '반미'로 규정되곤 한다.이러한  극우적 시각은  일단 분단역사의 원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하지만 시각을 조금 현재로 돌려본다면 바다 건너 미국 땅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집단을 만날 수 있다. 부시의 싱크 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현재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핵심인 네오콘 세력들에 대한 다각적 분석을 목표로 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먼저 책의 서문은 현재 네오콘을 분석하는 몇 가지 틀들을 이야기한다.책의 서문을 통해서 네오콘을 분석하는 대략적인 아웃라인을 잡을 수 있다.또한 향후 네오콘 관련 공부에 있어서 읽고 있는 서적이 어느 분석 틀에 의한 접근인지 위치를 점검할 수 있는 방향잡이 역할을 한다.저자가 생각하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에 대한 국내 연구 현황은 크게 4가지 방식이다.먼저 역사적 구분과 시기에 따른 연구,신보수주의자들의 사고유형 분석방법,권력네트워크를 통한 연구,정책 분석을 통한 연구등이 그것이다. <네오콘 프로젝트>는 기존의 4가지틀을 가지고 각기 다른 필자들이 미국 신보수주의에 대한 세밀화를 그려낸다.

물론 단점도 있다.공동집필 형태의 책에 늘상 지적되는 중복 문제를 이 책 역시 피할 길은 없다.그렇다고 각 필자가 담당한 영역의 텍스트가 중복되는 것은 아니다.가가 맡은 영역을 이끌어가기 위한 글쓰기 형식에서 불가피하게 중첩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이다.주로 네오콘의 역사적 형성과 변화,그리고 네오콘의 공통된 이데올로기등이 반복된다.이 책에서 여러번 반복되는 네오콘의 역사와 성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게 좋을 듯 하다.

원신보수주의자들은 대개 좌파에 사상적 근원을 두고 있다.그들은 계급적으로 중하위층 계급 안에서 성장하였다.이들 중 다수는 대학시절 맑스주의나 트로츠키 주의 등 범 좌파 소속으로 구분할 수 있다.1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뉴딜정책에 긍정적이었다.하지만 1930년 대에 이르러 이들은 좌파의 소련 편향에 반대하며 자유주의적 반공주의로 이념의 틀을 바꾼다.이후 소련이 붕괴되기 전까지 반공은 신보수주의자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한다.이들의 반공 노선은 종교적 선악관을 받아들여 소련을 소멸시켜야 하는 '악'으로 파악했다.이러한 종교적 이분법의 전통은 부시 정권에게도 영향을 그대로 미치고 있다.자유주의적 반공주의자들은 반공 노선을 견지하면서도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복지와 사회 정의 실천을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전통적인 미국 보수주의와는 차이를 두게 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민주당의 좌파의 약진이 미국 사회에 두드러진다.미국의 사회 민권 운동의 분위기와 맞물려 케네디,존슨 정부의 자유주의적 개혁 드라이브가 사회 변혁을 추진한다.하지만 민주당 정부의 개혁은 초기 계획처럼 소정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된다.복지국가 시도는 좌절되었으며 학생들의 급진적 움직임에 반대 하는 여론도 조성이 되었다.신자유주의자들은 다시 민주당의 자유주의 노선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와 구분을 두며 정체성을 찾아나간다.즉 자유주의의 급진화에 대하나 반대 급부를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이들은 카터의 데탕트 외교 정책을 소련의 위협을 도외시한 낭만적이고 순진한 정책이라고 비난한다.이들은 민주당에서 공화당 쪽으로 방향을 수정한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는 신보수주의 자 내부에서 반공적 신보수주의자들보다 어빙 크리스톨같은현실주의적 신보수주의자들이 헤게모니를 얻게된다.미국의 대소정책에 유연성을 갖는 방안이 레이건 정부아래서 시도된다.그리고 소련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안을 맞이 하게된다.

소련의 붕괴는 반공을 목에 걸고 있었던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정치권 내에서 위치를 모호하게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대개 1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은 냉전 종료후 윌슨주의적 대외개입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내부균열이 발생한다.윌리엄 크리스톨,로버트 케이건 같은 2세대 신보수주의자들의 등장이 그것이다.이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 미국적 가치의 전파라는 이념적 근거를 가지고 오히려 대외적인 미국 역량의 강화를 주장한다.다극주의에서 유일 패권을 가진 단극주의 시대에 미국의 역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들은 언론과 잡지를 통해 그들의 주장을 정치권과 대중들에게 전파한다.그리고 9.11 테로로 미국의 안보가치가 급부상을 하는 시점에서 2기부시 정권과의 선택적 친화성을 통해 정치 전면으로 부각되게 된다.

신보수주의자들의 대외전략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미국식 일방주의,단극주의,적극적 무력사용 ,친이스라엘주의 등으로 정리된다.9.11 테러 이후 자행된 아프카니스탄,이라크 전쟁은 부시와 네오콘이 가진 현재 미국 외교전략의 대표적인 형태이다.물론 여기에는 9.11 테러 이후 안보 노이로제에 감염된 미국민들의 정서도 한 몫을 한 것이 사실이다.특히 네오콘은 '시혜적 패권'이란 개념을 이용하여 단극 체제에서 미국이 힘을 갖고 있고 그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한다.이들에게 미국의 이익과 가치 전파를 위한 싸움에서  유엔이나 다른 동맹국과의 협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네오콘들이 국내 문제에 가지고 있는 가치문제는 흥미롭다.막연히 이들을 보수주의자로 구분 짓기에는 문제가 있다.일단 이들은 자유주의의 세속주의와 문화적 상대주의에 반대한다.민주당 집권기에 확산된 자유주의적 가치는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파괴했다.네오콘들은 미국적 가치와 문화를 지키기 위한 문화전쟁을 수행 중이라고 믿고 있다.이들은 자본주의 미국이 경제적 부와 자유를 가져다 주었지만 도덕적 실패를 기회비용을 삼았다고 본다.도덕적 가치 함양을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이들은 자유방임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던 전통 보수주의자들보다 더욱 더 문화와 종교,그리고 이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속성을 보인다.이들이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낙태반대,동성애 반대,학교내에서 기도 보장등의 가치에 있어서 연대를 보이는 것도 내적인 개연성이 있다.

네오콘들은 9.11 테러를 시점으로 부시정권 내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늘려나갔다.일부에서는 이미 네오콘은없다라는 우회적인 말로 그들의 광범위한 세를 말하기도 한다.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들이 언제까지 미국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우선 네오콘이 내세우는 미국적 민주주의 가치의 전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거세다.전쟁 종료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고전하고 있는 이라크 국내상황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또한 행정부 내에서 신보수주의의 강경론에 제동을 거는 세력도 존재한다.세력의 분화는 같은 신보수주의자들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다.또한 신보주의자들의 권력 획득 방식도 이들의 지속성에 회의를 갖게 되는 대목이다.이들은 정치적 후원자에 의해 임명된 정부 요직을 맡고 있다. 이것은 다른말로 하면 정권 교체와 더불어 쉽게 교체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물론 개인적으로 그들이 정부요직에서 물러난다고 신보수주의의 대중 영향력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단 지금 보다는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어렵기 때문에 이념적 제공자의 역할을 맡게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이 국내 뉴라이트와 네오콘의 유사성이다.특히 정치 철학에 있어서 네오콘이 영향을 받았다는 레오 스트라우스주의는 국내 뉴라이트에게도 철학적 어머니가 되는 듯 하다.홉스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뉴라이트들은 반대중주의,친엘리트주의들 그들 주장의 근저에 깔고 있다.또한 각종 시국 논쟁에서 기독교 우파들과 연대하는 모습들도 네오콘과 뉴라이트의 동질성을 보여준다.사상과 정치적 실천에서 유사한 뉴라이트들이 미국에 대한 태도는 명약관화하다.이들은  현실주의라는 이름의 패배주의의 휘장을 두르고 네오콘보다 더 미국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인다.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수시로든다.오히려 반공의 기치 아래 적들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일전도 불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네오콘프로젝트>는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고 네오콘을 규명하는 작업이 입체적이다.단 한 권의 네오콘 관련 책을 봐야 한다면 <네오콘 프로젝트>가 어떨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balmas > PC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 안철수 연구소

 

http://info.ahnlab.com/securityinfo/info_view.jsp?seq=7937&category=15&email_nm=securityletter135&target_page_nm=aa003

PC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조회수   1148  
많은 사람들이 집이나 회사에 컴퓨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PC방 혹은 게임방을 찾아 게임이나 각종 컴퓨터 관련 일을 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PC방에서 중요하며 보안이 필요한 일을 처리하지 않지만 이메일 서비스에 로그인을 하거나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 받거나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글을 올리는 일은 흔하게 한다. PC방 컴퓨터에 설치된 악성 프로그램에 의해 이런 과정이 기록되어 해킹에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혹은 브라우저나 프로그램의 기본 설정에 의해 원치 않는 개인정보를 남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불가피하게 PC방을 이용하게 될 때 개인정보 유출이나 해킹을 막기 위해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해 보았다. 이것은 PC방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컴퓨터를 이용할 때 모두 적용된다.

1. 은행권 사이트로 접속하기

백신 프로그램이나 안티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보다 일단 은행권 사이트로 접속해 보자. 몇몇 은행권 사이트들은 단지 접속하기만 함으로써 해당 컴퓨터에 악성 프로그램이 설치되었는지 자동으로 확인해 준다. 해당 은행 사이트에 접속하면 하위 메뉴 (예를 들어 "인터넷 뱅킹" 메뉴)를 누르면 보안/백신 프로그램이 설치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회원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은행권 웹 사이트들은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다른 몇 가지 백신 프로그램이나 안티 스파이웨어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한다. 일단 PC방에서 컴퓨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은행권 사이트에 접속하여 이런 프로그램을 돌려 보는 것이 좋다.

일부 은행권 사이트는 개인 파이어월이나 키보드 후킹 방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한다.

2. 브라우저 옵션 조정하기

PC방에서 웹 사이트를 방문하거나 로그인을 하게 될 경우 브라우저의 옵션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아이디와 패스워드 혹은 방문 사이트의 기록을 남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라우저를 사용하기 전에 최소한 다음과 같은 옵션을 조정해 주는 것이 좋다. 방문기록을 삭제하지 않은 경우 어드민 주소와 같은 중요한 주소를 컴퓨터에 남기게 될 수 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묻지 않고 자동으로 저장하게 되는 경우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용 기록을 한번에 삭제해주는 유틸리티를 이용해도 좋다. 무료로 제공되는 유틸리티 중 PCFree나 IEToy같은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그림 1] 방문기록 삭제


[그림 2] 아이디, 암호 자동 저장 제거

3. 메신저 자동 로그인, 대화기록 저장 옵션

많은 사람들이 PC방에서 메신저를 사용하며 자신도 모르게 자동 로그인 옵션을 체크하는 경우가 있다. 메신저의 자동 로그인 옵션은 보안상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네이트온과 같은 경우 로그인을 하게 되면 이메일과 메시지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 저장해 둔 전화 번호 목록(주소록)도 접근할 수 있게 된다. MSN 메신저 또한 닷넷패스포트를 활성화한 경우 핫메일 계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

네이버 메신저의 경우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첫 로그인 화면에 "자동 로그인"이 체크되어 있다. 때문에 별 생각없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여 처음 메신저를 사용한 경우, 다음 사용자는 메신저 프로그램을 실행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전 사용자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할 수 있다. 네이버 메신저는 카페/블로그의 아이디와 동시 사용하기 때문에 메신저에 로그인을 하게되면 카페, 블로그, 이메일을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다. 때문에 PC방에서 메신저의 자동 로그인에 체크를 해 두는 것은 정보 노출을 위한 자살행위와 같다.


[그림 3] 네이버 메신저의 자동 로그인

한편, 대부분의 메신저는 대화 내용을 컴퓨터에 저장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 보안에 치밀한 메신저의 경우 로그인하는 아이디에 따라서 대화 내용을 저장 여부를 계속 물어보지만 어떤 메신저는 한 번 대화 내용을 저장하도록 하면 그 이후 사용자도 자동으로 대화 내용이 저장된다. 자신이 대화한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 않다면 메신저의 대화 내용 저장 옵션을 활성화시켜서는 안된다.


[그림 4] 메신저 대화 자동 저장

4. 사용했던 프로그램 삭제하기

PC방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했던 프로그램은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삭제하는 것이 좋다. 몇몇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을 삭제하더라도 사용자의 로그인 정보나 패스워드를 남겨 두기도 한다. FTP 프로그램의 경우 실행 파일을 삭제하더라도 ini 파일 등에 사용 기록을 남겨 두기도 한다. 특히 회계 관련 프로그램이나 회사 내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 혹은 대중적으로 사용되지 않기 때문(인트라넷웨어 등)에 보안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프로그램은 절대 PC방에서 사용해서는 안된다.

5. 새로운 프로세스 확인하기

이 방법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약간의 컴퓨터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겐 용이한 방법이다. 윈도2000 이상, XP 이상의 운영체제가 설치된 컴퓨터는 Ctrl+Alt+Del 키를 동시에 눌러서 "작업 관리자" 를 열 수 있다. 이것을 통해 현재 실행 중인 프로세스(프로그램)의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윈도 시스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프로세스 외에 실행 중인 것을 발견하면 검색엔진에 프로세스 이름을 입력하여 상세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림 5] 윈도 작업 관리자

윈도에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 프로세스는 blog.naver.com/kickthebaby/20007714481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블루문 (ZDNet Korea 대화형 컨텐츠 아스피린 하우스 운영)

* 이 기사는 제휴 컨텐츠 제공업체인 ZDNet Korea의 대화형 컨텐츠 사이트 아스피린 하우스에 게재된 내용을 각색, 정리한 것이다. 문의사항이 있으면 블루문의 이메일 bluemoon@tracezone.com로 보내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에로이카 > [레디앙] 민중-민족민주운동은 퇴조하다 사멸할 것

헉, 난 제목만 보고, 무슨 우파 인사가 한 망언을 레디앙에서 실었나 싶었다. 그런데 이재영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의 글이다. "맞는 말 했네"...하고 돌아서려다... 그러지 못하겠다. 반대나 비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이 불러올 반향이 두렵기 때문이다. 당장 전농이나 민중연대 같은 데에서는 난리가 나지 않겠나? 이재영, 정말 칼날 같은 양반이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아쉬운 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나와바리 바깥의 영역들(예컨대, 인권운동[재소자, 장애인, 동성애자 운동등을 포함하여], 부문운동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나 진보적 종교세력)을 어떻게 사고할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민중/민민운동에 복무하는 이들을 사멸하는 세력 쯤으로 치부했지만, 현실 속에서 그 반경향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재영 국장이 왜 민주노동당을 나왔는가? 이 사멸하는 세력에게 좋은 숙주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재영 국장이 창당과 초기 기반 다지기에 열심히 참여했던 '민주노동당'이라는 숙주가... 자기가 NL이라고 흥분하시거나, NL 싫어한다고 맞장구부터 치지 말고... 이 글이 제기하는 첨예한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를... 행여나 '운동권은 왜 맨날 지들끼리 싸우고 지랄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지 마시기를...  
> 뉴스 > 칼럼
민중-민족민주운동은 퇴조하다 사멸할 것
[시민단체 정책비평]노동운동 시민운동 연대에서 희망 찾기
2006년 07월 26일 (수) 09:26:12 이재영 기획위원

지난 21일 있었던 대화문화아카데미 시민운동 포럼에서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가 자주 거론됐다. 당일 포럼에서 묘안을 찾지는 못했지만,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가 위기에 처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미래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과 연대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시민운동 이외에는 이렇다 할 협력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이나 민족민주운동이라 일컬어지는 경향 또는 조류는 이미 퇴조하고 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 사멸할 것이다.

종교운동과 학생운동이 주도하던 민중운동의 핵심은 이미 노동조합운동으로 변화했는데, 이는 노동조합운동이나 농민조합운동과 같은 생산자운동 이외의 민중운동 조류, 자본주의 사회 문제를 일차적으로 다루지 않는 운동 조류가 급속히 축소될 것임을 예고한다.

20세기 제3세계에서 맹위를 떨쳤던 노농동맹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현대 한국에서 농민 인구는 7%, 농업 GDP는 3%에 불과하고, 더욱 급속히 해소돼갈 것이다. 인구 구성에서 그리고 경제적 영향력과 정치적 비젼에서 노동자의 동맹세력이 됨직한 사회집단은 도시중간계층의 하층 뿐이다.

문제는 도시중간계층이 통일된 조직을 만들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도시중간계층 지식집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운동이 바로 시민운동이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연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두 운동이 다루는 의제의 비슷함으로부터 비롯된다. 민족민주운동이 민주-반민주라는 낙후된 인식에 기초하여 미분화된 전일적 이상을 추구하는 데 비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공히 집단 또는 개인의 사회적 권익 확대를 목표로 삼아 일한다.

민주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동시에 확립된 것은 당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기되기 시작한 진보적 세계관을 함께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운동이 자유주의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민운동의 문화적 자유주의 경향은 민족민주운동의 완고한 정치적 자유주의보다는 훨씬 덜 해롭다. 시민운동이 자유주의적이어서 연대를 꺼려야 한다면, 노동운동 스스로 자신들이 자유주의를 넘은 다른 무엇에 도달해 있는가를 되물어 보아야 한다.

시민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편들어주기’이다. 그런데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더러는 지지 논평 발표를 거부하거나, 연대단체에 노동조합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조합의 행동이나 주장이 언제나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시민운동의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는 그 옳고 그름보다는 인기 없는 노동운동과의 ‘거리두기’ 혐의가 더 크다. 노동권을 옹호하지 않고 어떻게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은 시민운동의 의제를 수용하며 연대해야 한다. 아직 노동운동은 의제의 다양성이나 선도성에서 시민운동에 못 미친다. 임금과 고용은 노동조합이 다루지만, 그 이외의 노동자 삶은 시민단체들이 다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운동의 노동 관련 의제가 노동조합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민단체 → 언론 → 국민 → 노조'로 이어지는 현재의 사회의제 전파 경로를 '시민단체 → 노조 → 언론 → 국민'으로 바꾸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정보와 정책 공유, 인력 교류과 일상 접촉을 훨씬 늘려야 한다.

시민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럴듯한 연대단체나 어거지 연대사업을 작위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시민운동 그 자체가 분화 발전하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 한국처럼 ‘그냥 시민단체’가 있던가? 중립의 지향 또는 가장은 당장의 운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민운동의 애초 목적인 시민사회의 분화와 발전에는 곧 장애로 등장할 것이다.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를 ‘궐기 규탄’하는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있는 것처럼, 일관되고 용기 있게 노동자 투쟁을 옹호하는 진보 시민단체도 분명히 서야 한다. 고위 공직 여성 할당을 확보하는 여성운동도 필요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해 대중사업을 펼치는 여성단체로의 분화도 필요하다.

소박한 자연보호운동으로부터 생태근원주의까지가 한 단체에 공존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사상적 지향과 계층적 기반에 따라 분별 정립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진정한 발전이고,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