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일선 행정부서나 군대에 파견된 미군 고문관(顧問官)은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 첫번째는 최고권력자로서의 면모이다. 모든 부서의 우두머리는 고문관들의 통제를 받았으며, 공문서에는 이들을 위한 영문 해석을 첨부해야만 했다. 미군정청은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건립한 경성제국대학을 ‘친미파 양성소’로 만들기 위해 국립 서울대학으로 개편했는데 일개 고문관인 앤스테드가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이 서울대 개편안에 지식인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던 것이 바로 ‘국대안 파동’이다.
반면 고문관은 ‘어수룩하고 행동이 굼뜬 사람’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당시 미군 고문관들의 권한은 막강했지만 한국어가 서투르고 한국 물정에 어두워 업무수행에서의 실수도 적지 않았다. 고문관들의 이같은 약점을 노려 제 잇속을 챙기거나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약삭빠른 한국사람들도 생겨났다. 행동이 느리거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선임병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병사를 지칭하는 군대 은어인 ‘고문관’은 바로 이같은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문관은 관리자의 능력에 따라서는 조직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경영이론도 있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로버트 서튼은 이미 검증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거나 기존 조직문화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범생이 형’ 직원보다는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보고 행동하며,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우둔하고 고지식한’ 유형의 사람을 중용하라고 충고한다. 이를테면 ‘고문관 우대론’인 셈이다.
군당국이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을 ‘현역복무 부적합자’로 판정해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난해의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 등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조처라는 생각도 들지만 문제는 고문관을 판정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이다. 기준이 애매할 경우 상관이 감정적으로 악용하거나 ‘왕따’가 제도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 건강한 병영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손동우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