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로이카 > [레디앙] 민중-민족민주운동은 퇴조하다 사멸할 것

헉, 난 제목만 보고, 무슨 우파 인사가 한 망언을 레디앙에서 실었나 싶었다. 그런데 이재영 전 민주노동당 정책국장의 글이다. "맞는 말 했네"...하고 돌아서려다... 그러지 못하겠다. 반대나 비판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 글이 불러올 반향이 두렵기 때문이다. 당장 전농이나 민중연대 같은 데에서는 난리가 나지 않겠나? 이재영, 정말 칼날 같은 양반이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아쉬운 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나와바리 바깥의 영역들(예컨대, 인권운동[재소자, 장애인, 동성애자 운동등을 포함하여], 부문운동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이나 진보적 종교세력)을 어떻게 사고할지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민중/민민운동에 복무하는 이들을 사멸하는 세력 쯤으로 치부했지만, 현실 속에서 그 반경향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재영 국장이 왜 민주노동당을 나왔는가? 이 사멸하는 세력에게 좋은 숙주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재영 국장이 창당과 초기 기반 다지기에 열심히 참여했던 '민주노동당'이라는 숙주가... 자기가 NL이라고 흥분하시거나, NL 싫어한다고 맞장구부터 치지 말고... 이 글이 제기하는 첨예한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를... 행여나 '운동권은 왜 맨날 지들끼리 싸우고 지랄이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읽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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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민족민주운동은 퇴조하다 사멸할 것
[시민단체 정책비평]노동운동 시민운동 연대에서 희망 찾기
2006년 07월 26일 (수) 09:26:12 이재영 기획위원

지난 21일 있었던 대화문화아카데미 시민운동 포럼에서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가 자주 거론됐다. 당일 포럼에서 묘안을 찾지는 못했지만,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연대가 위기에 처한 진보적 사회운동의 미래상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과 연대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시민운동 이외에는 이렇다 할 협력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민중운동이나 민족민주운동이라 일컬어지는 경향 또는 조류는 이미 퇴조하고 있고, 멀지 않은 미래에 사멸할 것이다.

종교운동과 학생운동이 주도하던 민중운동의 핵심은 이미 노동조합운동으로 변화했는데, 이는 노동조합운동이나 농민조합운동과 같은 생산자운동 이외의 민중운동 조류, 자본주의 사회 문제를 일차적으로 다루지 않는 운동 조류가 급속히 축소될 것임을 예고한다.

20세기 제3세계에서 맹위를 떨쳤던 노농동맹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현대 한국에서 농민 인구는 7%, 농업 GDP는 3%에 불과하고, 더욱 급속히 해소돼갈 것이다. 인구 구성에서 그리고 경제적 영향력과 정치적 비젼에서 노동자의 동맹세력이 됨직한 사회집단은 도시중간계층의 하층 뿐이다.

문제는 도시중간계층이 통일된 조직을 만들거나 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도시중간계층 지식집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운동이 바로 시민운동이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연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두 운동이 다루는 의제의 비슷함으로부터 비롯된다. 민족민주운동이 민주-반민주라는 낙후된 인식에 기초하여 미분화된 전일적 이상을 추구하는 데 비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은 공히 집단 또는 개인의 사회적 권익 확대를 목표로 삼아 일한다.

민주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동시에 확립된 것은 당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제기되기 시작한 진보적 세계관을 함께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시민운동이 자유주의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시민운동의 문화적 자유주의 경향은 민족민주운동의 완고한 정치적 자유주의보다는 훨씬 덜 해롭다. 시민운동이 자유주의적이어서 연대를 꺼려야 한다면, 노동운동 스스로 자신들이 자유주의를 넘은 다른 무엇에 도달해 있는가를 되물어 보아야 한다.

시민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편들어주기’이다. 그런데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더러는 지지 논평 발표를 거부하거나, 연대단체에 노동조합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노동조합의 행동이나 주장이 언제나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시민운동의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는 그 옳고 그름보다는 인기 없는 노동운동과의 ‘거리두기’ 혐의가 더 크다. 노동권을 옹호하지 않고 어떻게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을까?

노동운동은 시민운동의 의제를 수용하며 연대해야 한다. 아직 노동운동은 의제의 다양성이나 선도성에서 시민운동에 못 미친다. 임금과 고용은 노동조합이 다루지만, 그 이외의 노동자 삶은 시민단체들이 다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시민운동의 노동 관련 의제가 노동조합에 제대로 전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민단체 → 언론 → 국민 → 노조'로 이어지는 현재의 사회의제 전파 경로를 '시민단체 → 노조 → 언론 → 국민'으로 바꾸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정보와 정책 공유, 인력 교류과 일상 접촉을 훨씬 늘려야 한다.

시민운동이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럴듯한 연대단체나 어거지 연대사업을 작위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시민운동 그 자체가 분화 발전하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 한국처럼 ‘그냥 시민단체’가 있던가? 중립의 지향 또는 가장은 당장의 운신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시민운동의 애초 목적인 시민사회의 분화와 발전에는 곧 장애로 등장할 것이다.

건설노조의 포스코 점거를 ‘궐기 규탄’하는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있는 것처럼, 일관되고 용기 있게 노동자 투쟁을 옹호하는 진보 시민단체도 분명히 서야 한다. 고위 공직 여성 할당을 확보하는 여성운동도 필요하지만,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을 위해 대중사업을 펼치는 여성단체로의 분화도 필요하다.

소박한 자연보호운동으로부터 생태근원주의까지가 한 단체에 공존하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다. 사상적 지향과 계층적 기반에 따라 분별 정립하는 것이 시민운동의 진정한 발전이고, 노동운동과 연대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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