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아버지가 꿈꾼 대한민국과 내가 꿈꿔야 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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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박태균의 『우방과 제국』보다 먼저 읽었지만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뒤로 밀렸다. 비교적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편이긴 하지만 유독 약한 분야(그렇다고 다른 분야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를 꼽자면 경제와 자연과학 분야이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유물사관의 정치적 대의에 비교적 동의하면서도 스스로 유물론자로 단정 짓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우방과 제국』이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모두 미국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 살펴야 하지만, 문제의 복잡성을 따지자면 후자가 훨씬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유물사관의 정치적 대의를 “인간은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로 거칠게 정의하고 있으므로, 미래의 우리들이 먹고 살 문제를 좌우할 것이라는 한미FTA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고민에 빠진 것, 헷갈리는 부분은 경제에 대한 문외한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생산력 중심의 유물사관 혹은 진보사관의 입장이라면, 만약 “한미FTA”가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을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이 현재 한미FTA문제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선이고, 이전에 벌어졌던 황우석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진실이야 무엇이든 그것이 국익에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대중의 태도였다.
이때 말하는 국익이란 현실정치에서 그것을 무엇으로 표현하든, 표현되든 상관없이 대중이 먹고 사는 문제에 무엇이 더욱 보탬이 될 것인가 판단한 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의 2006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적게는 3~4% 정도가 될 것이라 한다. 세계 12위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3~4% 성장이라면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못 먹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배부른 이의 안이한 판단이란 비난을 감수하고 말해보자. 정말 우리는 못 먹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야 할 만큼 가난한가? 문제는 이와 같은 대중의 생존전략(혹은 생존감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란 점이다. 우리 경제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내부에 깊이 선을 대고 있는 한 그것은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다만 그와 같은 선택이 정말로 미래의 우리를 먹고 살만하게 해줄 것인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예측은 두 가지 차원에서 “No”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패러다임이 물질적 풍요의 패러다임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두 번째는 그와 같은 차이를 무시하더라도 현재의 시스템과 한미FTA가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미래의 우리가 여전히 먹고 살만할지 미지수라는 것이(이 문제는 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확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나의 고민이다. 이와 다른 고민거리 하나는 우리가 현재 과도기에 서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해방 이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등장한 문민정부의 민주주의 체제가 도전받고, 경제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에서 세계경제질서 내부로 포섭된 경제가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다.
문제는 비전이다. 나는 어떤 사회가 비전(vision)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덕목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상상력이고, 둘째는 구성원 내부의 합의, 셋째는 실천가능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위로는 최고 통치자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상상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도 없고, 그것이 실천가능한지 진지하게 토론된 바도 없다. 기껏해야 노무현 정권 초반부에 "이 정도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정도의 토론이 그나마 진지했던 것이고, 나머지는 100분 토론 같이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죽는다는 대결구도만 존재한다. 우석훈이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비전 부재라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것이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라는 제목이 다소 선정적이고, 표지에 사용된 신문 만평의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란 글귀 때문에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지한 문제 제기가 도리어 훼손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 제기 ‘한미FTA를 막아야 한다.’에 국한시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일차적인 책임은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사용된 다소 충격적인 표현들, 예를 들어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인 사람은 이민가라’거나 ‘미장원이 망하면 대한민국의 서비스산업은 붕괴한다’는 저자에게 있다. 하지만 우석훈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 '만들어야 할 것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이슈를 책 속에 녹여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떤 국가 시스템을 가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란 것이 우석훈의 주장이다. 과거 우리의 경제성장 시스템은 누구나 인정하듯 정부가 몇몇 시범 케이스를 만들어내고, 나머지는 이를 그대로 복제하는 시스템이었다. 정부는 먼저 재벌기업에 정책, 차관 지원 등 여러 편의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재벌의 경영방식을 추종한다. 정부는 먼저 강남이라는 성공 사례를 만들고, 나머지는 이를 무한 복제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시스템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정부는 갑자기 이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아니 글로벌 스탠더드로 전환하겠다고 나선 것이 한미FTA다. 우석훈은 경제학자이지만 동시에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서 실물경제를 다뤄봤던 - 정부실무자로 근무하고, 직접 협상에 나서봤던 -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우리 경제의 문제점, 철학이 부재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비판한다.
그는 이와 같은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87년 체제’의 장점과 한계를 세세하게 지적한다.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87년 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마치 로마제국의 호민관과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87년 6월 혁명(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혁명으로 규정한다)은 결과적으로 체제의 근본을 흔들지 못한 불완전한 타협의 소산이다. 대중은 '혁명' 대신 '개량'을 선택했고, 수구 체제를 견제하는 호민관으로서 끊임없이 보다 개혁적인 대통령을 선출해 왔다. 즉, 대중은 체제를 뒤집어엎는 모험 대신 한 명의 유능한 정치가를 통해 수구 체제를 견제하고, 기존 체제를 보수(補修)하여 민중의 이익을 지켜내길 희망했다.
매번 선거마다 영웅을 불러들이고, 실패한 영웅들은 황금가지의 폭군들처럼 살해당한다.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결국 이것이다. 87년 체제는 정당과 같이 정책과 이념을 통해 예측 가능한 시스템 정치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영웅,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정치체제란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를 빚게 된 것을 단순히 대중이 우매해서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중은 기존의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정당체제(혹은 시스템)가 신뢰할 수 없으며, 너무나 손쉽게 그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사실을 잘 학습했고, 현재의 정치 판도는 그와 같은 학습효과에 의한 타협과 투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영웅은 시대를 만들고, 영웅은 대중이 만든다. 그러므로 대중은 언제라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영웅쯤 버릴 수 있다. 어쨌거나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 정당체제 없이는 뛰어난 영웅도 결국 소모될 뿐이란 것이다.(자, 이제 대중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 결과가 자못 흥미진진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그 대안은 아닌 듯 싶어 씁쓸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에겐 대중적인 정치감각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한미FTA'의 느닷없는 추진과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세력도 부재한 문제를 지적한다. 국민, 국민의 이해관계를 기존의 수구 체제로부터 지켜내고, 개혁하라는 호명을 받은 호민관 대통령이 갑자기 폭군으로 탈바꿈할 경우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미FTA'라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우석훈은 크게 세 가지 층위의 각기 다른 고민거리를 제기한다. 첫째는 생산력 중심, 발전 중심의 패러다임은 결국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폭주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기존의 87년 체제에 의해서는 어떤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궁극적으로 체제를 개혁하거나 보수하기 어렵고, 호민관으로 선출된 대통령 자신의 폭주를 국민직접행동 이외에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것, 셋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제라도 새로운 시스템을 상상해 내고, 그것을 국민적 합의에 의해 도출해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즉, 우석훈은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느닷없는’ 한미FTA 폭주라는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 국가시스템 전반에 걸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폭주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가 꿈꾸셨던 대한민국입니다.”라는 CF가 있었다. 이 광고에 대해 반감을 품은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 광고가 호명하는(그리고 스스로 호명된) 아버지들이 우리들의 아버지였던 것은 사실이고, 분명 그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은 배고픔을 극복하는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를 저당 잡히긴 했지만 분명히 성공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 할 때이다. 87년 혁명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