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비전을 공유하지 못하는 자들의 역사문답엔 도리가 없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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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가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짊어진 책무를 다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잠시 짬이 나기에 헌책방에 들렀다가 몇 권의 책을 주워 담았는데, 그 중 하나가 김태완이 엮은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이었다. 책 읽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가장 즐거운 책 읽기는 마땅한 용처가 없는 독서다. 의무감에 쫓기지 않는 책 읽기야 말로 책 읽는 즐거움의 백미인 셈이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를 소파에 누웠다 바로 앉기를 반복하며 반나절 만에 다 읽었다. 연휴 끝에 다시 회사에 출근하였다가 우연치 않게 2004년 9월호 『한국논단』 창간15주년기념호가 꽂혀 있는데 책등에 「역사에서 배우자. 천도(遷都)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라고 쓰여 있다.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가 쓰인 목적도, 역시 “역사에서 배우자”일 텐데 『한국논단』에서 말하는 「천도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지가 궁금해졌다. 내용인 즉 신라는 계림(경주)을 수도로 한 이래 한 번도 천도를 하지 않아 삼국을 통일했고, 고구려는 졸본부여에서 국내성으로 다시 평양으로 천도한 탓에 멸망했다. 백제 역시 위례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천도했다가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하면서 멸망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었다. 『한국논단』에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발간 무렵의 행정수도 이전 문제였으리라. “천도하면 나라가 멸망했다”는 말인 즉 옳은 말이다. 이 글에서 다뤄지고 있지는 않지만 고조선 역시 천도한 뒤에 멸망했다. 그것이 한반도의 역사에 드러난 사실(fact)이긴 하다.

그것이 사실(fact)이긴 하지만 과연 진실(truth)일까? 소박하게 생각해서 한 집안이 어딘가로 이사할 때의 번거로움이나 비용, 그에 따라 불편할지도 모를 가족 구성원의 심사(예를 들어 스스로를 어느 날 갑자기 전학가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해보자)를 생각해보면 국가의 수도를 옮기는 것은 당연히 그보다 더한 번거로움과 비용, 이해의 격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이사를 다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기 어려운 여러 조건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조선, 고구려, 백제는 왜 천도를 했으며, 고려는 왜 평양으로의 천도를, 정조는 수원 화성으로의 천도를 꿈꿨던 것일까? 그 이유는 외침을 비롯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발적인 천도의 핵심은 언제나 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귀족 계급(기득권 계층)의 보수화된 권력을 약화시키고 체제를 혁신하여 국가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였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고조선, 고구려, 백제가 천도로 인해 망한 것이 아니라 천도로 인해 거대제국 한나라와 수. 당의 침략을 그나마 견뎌내고, 고구려에서 이주해온 열악한 권력 토대를 지방 토호로부터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 고려가 평양 천도를 꿈꿨던 까닭 역시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가를 쇄신하려는 목적이었고, 정조 대왕이 수원 화성으로 천도하고자 했던 이유도 거대해진 신권을 억누르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고려가 평양 천도에 실패한 결과가 무인정권의 출현이었고, 정조의 수원 천도가 실패한 결과가 세도정치의 발호를 막지 못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진실(truth)이다. “역사에서 배우자”는 의도의 순수함은 인정하더라도 질문의 전제나 방향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사실이 꼭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천도 문제에서 살필 수 있듯 각각의 시대는 당대가 짊어진 시대적 소명과 한계,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는 조선시대 최고 통치자가 짊어졌던 고민들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책문(策文)은 말 그대로 당대의 고민에 대해 최고통치자가 이제 막 출사표를 던진 젊은 도학자에게 직접 그 정책 대안을 묻는 것이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를 묻는 광해군의 책문에 대해 임숙영은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라는 내용으로 답하여 왕의 진노를 사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대학에서 학문을 위한 학문을 추구하며,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있는(둘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지식인들과 달리 현실 참여 그 자체를 목적으로 공부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자신이 배운 학문을 실천하는 하나의 정치적 주체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김태완은 「책문을 읽기 위해」란 저자 서문에서 현실과 문화 그리고 정치를 이렇게 정의한다.

유가적 관념에 따르면 현실은 도리를 실현하는 장소이다. 정치는 바로 그 도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행위이다. 하늘과 땅은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만물을 낳기만 했을 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만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연을 다듬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이 문화를 창조함으로써, 비로소 하늘과 땅의 만물창조가 의미를 갖게 된다. 문화를 창조하는 이런 행위가 정치이고, 정치가 바로 도를 실현하는 행위이다. <본문 22쪽>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책문’.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에는 세종 임금과 강희맹의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문과 성삼문, 신숙주, 이석형의 책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중종과 명종,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책문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아마도 엮은이 자신이 느끼기에도 이 시기가 우리 당대의 현실에 빗대어 느껴볼 대목이 많다고 생각한 듯싶다. 광해군의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위기를 구제하려면”과 같은 책문에서 우리는 개혁군주 광해군이 갈급하게 느꼈던 당대의 현안들을 엿볼 수 있고,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와 같은 책문에서 정통 계승자가 아닌 그의 처지를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외에도 도학 정치를 꿈꿨으나 결국 보수화로 회귀하고 만 중종의 “술의 폐해를 논하라”, “그대가 공자라면 어떻게 정치를 하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과 같은 중종의 책문에서 우리는 개혁정치가 좌절되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왕들의 책문이 당대의 현실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면 이에 답하는 젊은 도학자들의 답변은 대부분 “역사에서 배우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숨을 걸고 패기 있게 답한 이들도, 왕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의중을 고스란히 전한 이들도 대개는 요순시대와 삼대의 역사를 기록한 『서경(書經)』을 비롯해 『춘추』 등을 인용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역사와 시문을 인용해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정책과 대안을 왕에게 진언했다. 그러나 한 사회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구성원들 사이에 비전의 공유가 필요하다.

비전이란 미래를 상상하는 힘과 그와 같은 미래를 만들어야하는 타당성, 그리고 실천력이 요구된다. 공동체 구성원간 사이의 비전이 공유되지 못할 때, 정치가들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할 때, 공동체는 같은 침상 위에서 다른 꿈을 꾸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한국논단』이 가르치고 싶어하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같은 역사를 공유하더라도 결국 만날 수 없는 다른 해석자가 되고 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과연 오늘의 위정자는 시대의 물음에 답하고 있는가? 아니, 역사에서 배우려는 시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같은 비전을 공유하고 있는지 반문하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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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막부나 번말고 ‘일본이란 나라’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바람의 검심 1~28(완결) 세트
와츠키 노부히로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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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검심"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존왕파 혹은 반막부파와 막부파 사이의 대결,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 일본의 형성기라는 실제하는 역사를 배경으로 꾸며 낸 가상 극화다. 작가인 와츠키 노부히로는 실제 인물과 사건, 가상 인물과 사건을 적절히 배합함으로 극화에 리얼리티를 부여하고 있다. 흔한 수법이긴 하지만 "바람의 검심"에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송두리째 흔드는 계기가 되었던 '메이지 유신'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각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읽을 수도 있는 좋은 만화이다.

일본의 근대화 동력이 되었던 "메이지 유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멀리 임진왜란 부근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야 한다. 임진왜란에서 패한 도요토미는 자신이 세운 막부(바쿠후)를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대를 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도요토미파를 숙청하고 쇼군의 지위를 빼앗는다. 이때 끝까지 도요토미 히데요리에게 충성하며 도쿠가와 막부에 저항하던 세력은 일본의 서쪽 끝 큐슈 지방의 사츠마 번(薩摩藩)과 초슈 번(長州藩)까지 밀려나게 된다. 가장 오랫동안 도쿠가와에게 저항했던 도요토미 파벌들은 이후 300여년 간 도쿠가와 막부로부터 갖은 고초와 감시를 받으며 사츠마와 초슈에서 겉으로는 충성을, 속으로는 복수를 외치며 와신상담의 과정을 겪는다. 한편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에도 300년의 평화시대를 여는 비법으로 일본 내 각 지역의 물류 이동과 거주 이전을 제한하고, 반란을 사전에 봉쇄하는 감시체제로 봉건제를 이용하며, 각각의 지역을 분리해 경계하며 차별한다.

막부 말기에 이르러 흑선(黑船, 구로후네, 서양 배)의 출현과 잇따른 외세의 진출에 노쇠한 막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사츠마와 초슈 지역의 지사들이 '막부타도와 존왕양이'를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킨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출현한다. 그는 막부타도파였던 사츠마와 초슈 사이의 오랜 반목을 봉합하고, 막부에 저항하여 메이지 유신의 기초를 다진다.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은 우라가(浦賀)에 흑선이 출몰하면서부터 이미 정책으로서의 힘을 잃었고, 쇄국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도, 그렇다고 개혁을 선두에서 이끌 추동력도 상실한 막부는 점차 약화되어간다. 이때 막부의 감시 대상이자 오랫동안 견원지간이었던 사츠마와 초슈 사이의 삿쵸 동맹(薩長同盟)을 체결시키며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원동력이 된 사람이 바로 사카모토 료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 드라마틱한 인물의 이야기들은 일본인들의 영감을 자극했고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막부파와 반막부파, 반막부파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배신과 모략을 일삼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과 모략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시대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도 33세의 나이에 암살당하고 만다. "바람의 검심"에는 '메이지 유신'에 대한 수많은 단편적인 지식들이 가상의 설정들과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어서 팩션의 범주에 넣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 만화의 진정한 가치는 현대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메이지 유신의 의미이다. 물론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인기에 편승하여 억지로 이어붙인 듯한 설정들(인벌편)이 재미를 반감시키긴 했지만 사회과학, 역사학 서적에서는 느끼기 힘든 당시 분위기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한 뒤의 일본인들이 느꼈을 심정과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혼란 같은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다.

일본의 개항과 우리의 개항의 과정이 처음 시작은 비슷했음에도 일본은 유신에 성공했고, 우리는 실패한 까닭을 생각하면서 본다면 더욱 유익한 일일 것이다. 료마는 “막부나 번말고 ‘일본이란 나라’를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며 일본에 근대적 민족국가 수립의 이상을 설파한 인물이다. 물론, 이 만화의 주인공 '히무라 겐신(일명, 칼잡이 히무라 발도제)'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바람의 검심"에는 사카모토 료마와 같이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들이 무수하게 등장하고 있다. 후반부에 이를수록 일본 만화 특유의 과장과 억지스러운 이야기 늘이기가 재미를 반감시키기는 하지만 히무라 겐신과 그의 친구들을 따라 가노라면 저도 모르게 일본의 근대, 메이지유신을 전후로 한 일본 사회와 현대 일본인들이 메이지 유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한중일 3국은 모두 근대화 과정에서 내전을 경험한다.

한국전쟁, 국공내전, 그리고 일본의 "타이세이 호칸(大政奉還)"은 그 진행과정과 주체는 각기 달랐으나 본질적으로 근대민족국가 수립을 위한 과정에서 치러진 내전이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궁극적으로 내전을 통한 새로운 정권 수립이란 점에서 비록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란 한계가 있으나 이후 혁명에 버금가는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다. 일본의 타이세이 호칸이 한국과 중국의 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발생하기 전에 벌어진 내전이었다는 것 - 그 덕분에 일본인들은 근대화 과정을 선과 악의 대결로 보기 보다는 애국적인 지사들이 벌인,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한 권력 투쟁으로 볼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 이고, 다른 한 가지는 국공내전과 한국전쟁이 국민만들기(state building) 과정에서 전국민이 총동원되었던 총력전이었던 반면, 일본은 지배계급 사이의 내전 - 한중의 경험이 국민 사이의 원한을 축적한 반면, 일본의 경우엔 내전 기간이 짧고, 지배계급 사이의 충돌이었던 탓에 그와 같은 내전의 후유증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대신 근대화 과정에서 민중의 참여가 배제되어 이후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 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전통은 이후 일본과 한국, 중국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근대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만든다. 이런 점들에 주목해가며 "바람의 검심"을 읽는 건, 확실히 즐거운 경험이다.

어떤가? 재미로 읽고, 의미로 읽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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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아버지가 꿈꾼 대한민국과 내가 꿈꿔야 할 대한민국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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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박태균의 『우방과 제국』보다 먼저 읽었지만 정리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뒤로 밀렸다. 비교적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편이긴 하지만 유독 약한 분야(그렇다고 다른 분야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를 꼽자면 경제와 자연과학 분야이다. 아마도 그런 까닭에 유물사관의 정치적 대의에 비교적 동의하면서도 스스로 유물론자로 단정 짓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우방과 제국』이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모두 미국과의 직접적인 관계 속에 살펴야 하지만, 문제의 복잡성을 따지자면 후자가 훨씬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유물사관의 정치적 대의를 “인간은 먼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로 거칠게 정의하고 있으므로, 미래의 우리들이 먹고 살 문제를 좌우할 것이라는 한미FTA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인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내가 고민에 빠진 것, 헷갈리는 부분은 경제에 대한 문외한이기 때문이고, 다른 한 가지는 생산력 중심의 유물사관 혹은 진보사관의 입장이라면, 만약 “한미FTA”가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에 도움이 된다면 이것을 추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이 현재 한미FTA문제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선이고, 이전에 벌어졌던 황우석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진실이야 무엇이든 그것이 국익에 도움만 된다면 상관없다는 대중의 태도였다.

이때 말하는 국익이란 현실정치에서 그것을 무엇으로 표현하든, 표현되든 상관없이 대중이 먹고 사는 문제에 무엇이 더욱 보탬이 될 것인가 판단한 결과물이다. 대한민국의 2006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적게는 3~4% 정도가 될 것이라 한다. 세계 12위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에서 3~4% 성장이라면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못 먹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배부른 이의 안이한 판단이란 비난을 감수하고 말해보자. 정말 우리는 못 먹고,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쳐야 할 만큼 가난한가? 문제는 이와 같은 대중의 생존전략(혹은 생존감각)이 틀린 것만은 아니란 점이다. 우리 경제가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내부에 깊이 선을 대고 있는 한 그것은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다만 그와 같은 선택이 정말로 미래의 우리를 먹고 살만하게 해줄 것인가? 하는 질문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예측은 두 가지 차원에서 “No”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첫 번째는 내가 지향하는 삶의 패러다임이 물질적 풍요의 패러다임이 아니기 때문이지만, 두 번째는 그와 같은 차이를 무시하더라도 현재의 시스템과 한미FTA가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미래의 우리가 여전히 먹고 살만할지 미지수라는 것이(이 문제는 찬성론자도 반대론자도 확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 나의 고민이다. 이와 다른 고민거리 하나는 우리가 현재 과도기에 서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해방 이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를 붕괴시키고 등장한 문민정부의 민주주의 체제가 도전받고, 경제적으로는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에서 세계경제질서 내부로 포섭된 경제가 아직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다.

문제는 비전이다. 나는 어떤 사회가 비전(vision)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덕목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상상력이고, 둘째는 구성원 내부의 합의, 셋째는 실천가능성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위로는 최고 통치자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대중에 이르기까지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갈지 상상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도 없고, 그것이 실천가능한지 진지하게 토론된 바도 없다. 기껏해야 노무현 정권 초반부에 "이 정도하면 막 가자는 거지요." 정도의 토론이 그나마 진지했던 것이고, 나머지는 100분 토론 같이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죽는다는 대결구도만 존재한다. 우석훈이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비전 부재라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것이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라는 제목이 다소 선정적이고, 표지에 사용된 신문 만평의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란 글귀 때문에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지한 문제 제기가 도리어 훼손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 제기 ‘한미FTA를 막아야 한다.’에 국한시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 일차적인 책임은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사용된 다소 충격적인 표현들, 예를 들어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인 사람은 이민가라’거나 ‘미장원이 망하면 대한민국의 서비스산업은 붕괴한다’는 저자에게 있다. 하지만 우석훈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 것인가?', '만들어야 할 것인가?'라는 매우 중요한 이슈를 책 속에 녹여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어떤 국가 시스템을 가질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란 것이 우석훈의 주장이다. 과거 우리의 경제성장 시스템은 누구나 인정하듯 정부가 몇몇 시범 케이스를 만들어내고, 나머지는 이를 그대로 복제하는 시스템이었다. 정부는 먼저 재벌기업에 정책, 차관 지원 등 여러 편의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재벌의 경영방식을 추종한다. 정부는 먼저 강남이라는 성공 사례를 만들고, 나머지는 이를 무한 복제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시스템이란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정부는 갑자기 이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아니 글로벌 스탠더드로 전환하겠다고 나선 것이 한미FTA다. 우석훈은 경제학자이지만 동시에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서 실물경제를 다뤄봤던 - 정부실무자로 근무하고, 직접 협상에 나서봤던 -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우리 경제의 문제점, 철학이 부재한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비판한다.

그는 이와 같은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87년 체제’의 장점과 한계를 세세하게 지적한다.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87년 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마치 로마제국의 호민관과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87년 6월 혁명(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나는 이것을 혁명으로 규정한다)은 결과적으로 체제의 근본을 흔들지 못한 불완전한 타협의 소산이다. 대중은 '혁명' 대신 '개량'을 선택했고, 수구 체제를 견제하는 호민관으로서 끊임없이 보다 개혁적인 대통령을 선출해 왔다. 즉, 대중은 체제를 뒤집어엎는 모험 대신 한 명의 유능한 정치가를 통해 수구 체제를 견제하고, 기존 체제를 보수(補修)하여 민중의 이익을 지켜내길 희망했다.

매번 선거마다 영웅을 불러들이고, 실패한 영웅들은 황금가지의 폭군들처럼 살해당한다. 최장집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줄기차게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결국 이것이다. 87년 체제는 정당과 같이 정책과 이념을 통해 예측 가능한 시스템 정치가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영웅,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정치체제란 것이다. 이와 같은 결과를 빚게 된 것을 단순히 대중이 우매해서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대중은 기존의 지역주의에 뿌리를 둔 정당체제(혹은 시스템)가 신뢰할 수 없으며, 너무나 손쉽게 그들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사실을 잘 학습했고, 현재의 정치 판도는 그와 같은 학습효과에 의한 타협과 투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영웅은 시대를 만들고, 영웅은 대중이 만든다. 그러므로 대중은 언제라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영웅쯤 버릴 수 있다. 어쨌거나 결과는 신뢰할 수 있는 정당체제 없이는 뛰어난 영웅도 결국 소모될 뿐이란 것이다.(자, 이제 대중의 선택은 무엇일까? 그 결과가 자못 흥미진진하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그 대안은 아닌 듯 싶어 씁쓸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에겐 대중적인 정치감각이 전무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문제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한미FTA'의 느닷없는 추진과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도, 세력도 부재한 문제를 지적한다. 국민, 국민의 이해관계를 기존의 수구 체제로부터 지켜내고, 개혁하라는 호명을 받은 호민관 대통령이 갑자기 폭군으로 탈바꿈할 경우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미FTA'라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우석훈은 크게 세 가지 층위의 각기 다른 고민거리를 제기한다. 첫째는 생산력 중심, 발전 중심의 패러다임은 결국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폭주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기존의 87년 체제에 의해서는 어떤 대통령이 선출되더라도 궁극적으로 체제를 개혁하거나 보수하기 어렵고, 호민관으로 선출된 대통령 자신의 폭주를 국민직접행동 이외에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것, 셋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제라도 새로운 시스템을 상상해 내고, 그것을 국민적 합의에 의해 도출해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즉, 우석훈은 우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느닷없는’ 한미FTA 폭주라는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 국가시스템 전반에 걸친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폭주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가 꿈꾸셨던 대한민국입니다.”라는 CF가 있었다. 이 광고에 대해 반감을 품은 이들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이 광고가 호명하는(그리고 스스로 호명된) 아버지들이 우리들의 아버지였던 것은 사실이고, 분명 그들이 꿈꾸었던 대한민국은 배고픔을 극복하는 대한민국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들은 민주주의를 저당 잡히긴 했지만 분명히 성공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들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그 물음에 진지하게 답해야 할 때이다. 87년 혁명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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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수사학과 고전문헌학

 

 

 

 

로마 최고의 웅변가이자 정치가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의 <수사학>(길, 2006)이 번역돼 나왔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다룰까 했지만, 역자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길래 따로 자리를 마련한다. 키케로의 책으로 오래전에 출간된 <의무론>(서광사, 1989)와 작년 천병희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된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도서출판 숲, 2005) 정도를 꼽아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화술에 대한 책들이 그간에 더 출간돼 있었다. 양태종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화술의 법칙>(유로서적, 2005), <화술과 논증>(유로서적, 2006)이 그것이다. '말하기의 규칙과 체계'란 부제를 달고 있는 <수사학>이 같은 책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얼마간은 겹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수사학에 관한 책들이 아주 드물진 않다. 박성창, 김욱동 교수의 입문서가 각각 <수사학>(문학과지성사, 2000), <수사학이란 무엇인가>(민음사, 2002)로 출간돼 있고, 고전수사학과 수사학의 역사 등을 다룬 번역서들도 여러 종 나와 있다. 물론 아직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도 번역되지 않았으니까 사정이 '양호'하다는 말은 못하겠다. 더불어 서양 수사학의 고전들과 함께 리쾨르의 <살아있는 은유>(영역본은 <은유의 규칙>) 정도까지 출간되어야 어느 정도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해서 갈길은 아직 멀다 하겠지만 이번처럼 역량 있는 전공자들에 의해서 고전들이 번역/출간된다면 먼길의 수고가 그래도 많이 덜어질 수 있겠다. 소개에 따르면 이번 책은 "그리스의 수사학 전통을 집대성한 수사학의 대가인 키케로의 책 <수사학 : 말하기의 규칙과 체계>를 분석하고 라틴어 원문을 함께 담았다. 사론이나 그릇된 내용을 현학적으로 수식한다는 편견을 넘어, 수사학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해 체계로서 전달하고자 하였다."

눈에 띄는 건 책에 들인 공인데, "라틴어 원문과 현대어 해석과 더불어 상세한 옮긴이 주"가 달려 있는바, "일례로 비유법에서 알고 있는 은유, 환유, 제유, 아이러니 등의 기법을 실제 정확히 이용되도록 환유, 제유 등의 실례를 들고 그리스 로마의 학술 전문 용어에 대해서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또한 'stasis'를 '쟁점'으로 바꾸는 등 우리나라 어문학계에서 아직 수사학 전문 용어로 정착되지 못한 것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하였다"니까 여러 모로 눈길이 가는 책이다. 게다가 아래 인터뷰 기사의 사진을 보니 안면도 있는 양반이 아닌가?(나이 들어서 오히려 젊어보이누만.)

경향신문(06. 09. 16) ‘고전문헌학’입각 키케로 원전 번역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서가 있다. 영어판이나 독어판의 ‘이중 번역’이 아니라 그리스어나 라틴어 원전 번역이다. 이쯤 되면 번역서로는 최상급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질문 한 가지. 과연 그 원전이 원저자의 저술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고전 문헌들이 원저자의 필체로 기록되지 않은 데다, 설령 그것이 원저자의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서양 고전문헌학은 ‘주어진 텍스트’를 ‘원전’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합니다. 모든 필사본을 수집해 이들 중 원전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내고, 다른 필사본과 비교해 오류를 바로 잡고 원전을 복원코자 하는 학문입니다.”



안재원 서울대 강사(38)는 국내 몇 안되는 ‘고전문헌학’ 전공자다. 최근 키케로의 ‘수사학’(도서출판 길)을 국내 최초로 고전문헌학의 원전 작업 방식에 입각해 번역했다. 한글 번역 아래에 라틴어 원문을 수록하고, ‘비판장치’(다른 판본들과의 비교)를 본문 밑에 넣었다. 또 옆 페이지에는 옮긴이 주를 상세하게 달았다. 이 때문에 원 텍스트는 40쪽 정도지만 번역서는 400쪽이 넘는다. 이처럼 지난한 작업을 자처한 것은 “이제 우리도 우리의 원전을 갖자는 노력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독일·영국·프랑스 등은 그리스·로마 고전의 부활을 외치면서 그들만의 시각으로 원전에 접근했고, 이는 그들 각각의 문화적·사상적·이념적인 고유성과 독창성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정본 텍스트에 대한 주석 작업을 통해 우리 문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모색하자는 거지요.”

그는 “원전 번역 같은 기본적인 것이 안된다면 인문학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원전’들과 그에 대한 지식들이 쌓이면 그것이 우리 사회의 ‘아이덴터티’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인문학이 ‘수입학문’이라고 하는데 이런 작업을 용기내 해보면 더딘 작업과정 중에 그들보다 나은 시각과 깊이를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전문헌학은 글자 하나하나의 해석에 매달린다는 점에서 ‘미시 진리(micro veritas)’를 추구하는 학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 해석 하나 하나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작업이다. “조그마한 미시 진리가 결국 거시 진리와 연결됩니다. 우리 사회는 거대 담론에 강하지만 과연 그것이 구체적인 대안들을 만들어 냈습니까. 거대 담론 하는 것도 좋지만 겸손하게 텍스트를 잘 번역하고 주석을 잘 다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왜 ‘키케로’이고, ‘수사학’일까. 키케로는 단지 빼어난 연설가나 정치가가 아니라 그리스 정신과 사유세계를 서양 사회에 ‘번역’한 인물이고, 보편시민이 가져야 할 덕목을 강조한 인문학자였다. 키케로가 말한 수사학도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수사학은 한 인간이 공동체에서 어떤 입장과 언어 표현을 가지고 갈등을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학문입니다. 이는 보편교양인으로서의 시민사회와 연결됩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시민사회의 진입로에서 개인들이 갈등하고 투쟁하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요. 이런 의미에서 키케로와 수사학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다른 길이 없겠다. 논술과 함께 웅변도 입시과목에 집어넣는 수밖에.)

06.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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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주미힌 > 고래가 그랬어. 3주년 이벤트

 

고래 창간 3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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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그랬어 창간 3주년이다. 실은, 창간 3주년이라는 걸 열흘 전에야 ‘발견’했다.(^ ^) 그만큼 다들 경황이 없었다. 고래는 운영상의 곤란을 한고비 넘기고 전에 없이 힘차게 헤엄쳐나가고 있다. 3년은 그저 특별한 드라마였다. 내 몽상으로 끝날 고래가 실제로 창간한 일, 몇 번의 아무 방도가 없어보이던 위기를 기적처럼 넘긴 일, 그 기적과 관련한 요정 같은 사람들, 광고 한번 없이 모인 수천명의 정기구독자들, 일생의 동무가 된 조중사와 김종현을 만난 일, 들은 나에게 인생에는 굳이 합리나 우연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지점이 있음을 새삼 되새기게 했다. 나는 그 일들을 ‘섭리’라 믿는다. 화이트헤드 선생 말대로 장미 한 송이가 피어나는 일에도 우주 전체가 작용하는 것이다.

3주년 잔치를 준비했다. 차림은 소박하지만 고래 구독을 고려하는 분, 벗에게 구독을 권하려는 분에겐 꽤 근사한 차림일수도 있겠다. (급한 상차림에 도움을 준 사계절 강맑실 선배에게 감사드린다.)

 

http://goraeya.co.kr/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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