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창훈의 향연 - 끝나면 수평선을 향해 새로운 비행이 시작될 것이다
한창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가 너무 좋아서 한창훈의 다른 책들을 찾아 보다가
작가의 유일한 산문집인 이 책을 발견했다.
처음엔 작가들이 흔히 때 되면 이런 저런 조각 글 모아 출판하는
산문집 나부랭인 줄 알았다.
이런...! 아니었다.
심드렁하게 회의실 구석자리에서 늘어져 이리저리 뒤적이다
벌떡 일어나 정좌하고 읽었다.
<디시인사이드> 애들 어법을 빌려서 말하자.
'궁서체'로 이 책 좋다. '지금,진지하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라 어부로, 선원으로, 노가다꾼으로, 홍합공장 공원으로
그리고 작가로 한 시절을 살아 낸 한창훈의 지난 날과 사람들의 기록이다.
작가 공선옥이 발문을 썼는데 이렇게 적었다.
그처음 한창훈을 만났을 때 나는 그가 글을 쓰는 사람인 것이 좀 낯설고 글만 쓰는 사람이기에는 뭔가 좀 아까운 사람 같았다. 말하자면 그는 글만 쓰고 살기에는
지나치게 튼튼하고 멋있는 외모를 가진 사나이였다. 그때까지 내가 보아 온 글 쓰는 아저씨들은 모두 글쓰는 일 이외에는 도무지 소질도, 능력도, 체력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글쓰는 한창훈'과 첫 대면하는 순간 나는 그가 이제 방금 먼지 풀풀 날리는 공사판이거나 먼 바다에서 만선한 배를 타고 귀환한 어부 같았다.(p08)
두 번째 발문은 극악의 난해함을 자랑하는 <죽음의 한 연구>로 명성 만큼의 악명을 떨친
박상륭 선생이다.
그는 돌고래 냄새를 풍긴다. 그는 이미지의 물고기들을 사랑하는 돌고래이다. 바다는 그리고 끝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외롭다. 외로울 때 바다도 운다. 이 바닷 사내도 외로워 보인다. 그런 울음하기의 悲悅이, 한 보따리 싸여, 여기에 있다.(p07)
섬 소년으로 산 세월, 섬과 섬 사람들, 항구와 육지 곳곳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살아 온
시절의 삶과 오고 가며 스쳤던 사람들, 그리고 바다, 절대 떠나 살 수 없는 바다를 담담하고
정감있게, 그러나 붓자락 이면에 쓸쓸함과 비애같은 것이 아른거리는 문체로 그렸다.
이 산문집이 주는 매력은 '창천의 뜬 구름을 잡아서 귀신에게 먹인 다음에 명년 씨나락을
까먹게하는' 알량한 고담준론이나 신변잡기가 아니라 작가 자신의 노동에 기반한
당대의 삶과 섬과 바다라는 구체적 자연의 삶에 글이 닿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가난과 바다 그리고 항구에서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없는 연민의 시선 때문이다.
보드라운 손과 하얗고 가는 팔 다리로는 쓰지 못할 글이라는 것이다.
한창훈이 책 어디에선가 이렇게 적었다.
가난의 외곽을 그리는 소설은 의미를 잃은 시대에서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몰아
넣고 체크 인 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토속적이다, 질펀하다, 한 마디 내뱉어 주면 된다고 여긴다. 평론가들의 모국어 기피, 근친혐오. 그 배경 속에서 쓰고 있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대부분이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적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 버린 것, (p99)
한 권 구해다 느지막한 여름 밤에 슬금 슬쩍 읽어보시길.
찬 소주 한 잔 생각이 절로 들 터이다.
한창훈은 고향 거문도에서 '생계형 낚시'를 하며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