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좋아한지 오래됐다. 소니의 PS나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같은 콘솔게임도 좋아하고
문명(CIVILIZATION)같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도 좋아한다. 대신 국민 게임이라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나 WOW나 LOL같은 게임은 아직도 그 원리를 모른다. (내 머리의 한계다)
이십여년 가까운 내 게임 편력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블리자드가 런칭한 디아블로 시리즈이다. 디아블로 1..2 그리고 지난해 근 12년만에 출시한 3까지 디아블로 시리즈는 내 이십대 후반부터 사십대까지를 관통하는 상징이랄 수 있다.
다중접속 롤플레잉게임 (mmorpg)인 디아블로는 자신의 캐릭터(직업)를 정해서 다양한 퀘스트를 해결하며 성장하는 게임이다. 흔한 RPG게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인 "이 중 누가 나인가?" 라는
디지털 호접지몽을 만들어 내는 몽유도원도이기도 하다. 물론 복숭아밭 대신에 낭자한 피와 죽음의 냄새가 가득하지만 말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내가 이 디아블로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위 ' 핵 앤 슬래쉬 hack-and-slash'의 쾌감 때문이다. 나를 위협하고 공격하며 내 길을 막는 몬스터들을 '난도질'하는 쾌감..
현실계에서는 불가능한 은밀하고 금지된 '악마적 상상'이 마우스를 잡은 오른손을 통해 실감나는 타격감과 함께 구현되는 이런 즐거움은 중독성이 아주 세다.
나는 고어- 슬래쉬 무비의 미덕은 인간 본능 깊이 숨겨져 있는 악마적 본성을 어두운 극장에서 추체험적으로 해소시켜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킹의 표현을 빌자면 일종의 '안전벨트'의 기능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십여년 동안 디아블로를 즐기며 숱한 바람불고 거친 들판과 어둡고 컴컴한 던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못된 상사, 계약을 파기한 갑, 내 차 앞에서 급제동한 택시 기사, 내 발을 밟고도 사과없이 지나간 여자... etc
하지만 화면에 스태프 스크롤이 올라가고 극장에 불이 들어오면 구겨진 옷을 추스르고 팝콘 봉투와 콜라컵을 얌전히 두손에 들고 앞 사람을 따라 출구로 나가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게임이 끝나면 나도 두 세시간 전의 정상적인 사람으로 되돌아 가서 지금껏 산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디아블로 북미 서버에 dps 20만, 정복자 레벨 60의 극강 바바리안인 줄 모른다. 참으로 대단한 길티 플레져가 아닌가.
또 하나의 재미는 '파티 party'맺기이다. 각기 다른 직업들이 하나의 패로 묶여 서로의 동료가 되는 이 구조는 툴킨 이래 판타지 소설의 오랜 설정이지만 mmorpg 상에서 이 '파티'는 인간이 가상현실 상에서 얼마나 이타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는 제도이다. 근거리 공격 캐릭터가 원거리 공격 캐릭터를 위해 몬스터 앞줄에서 '몸빵'해주는 것부터 쏟아지는 공격들속에서 이미 죽은 나를 살리기 위해 다가오는 이름모를 동료 캐릭터를 모니터 상으로 볼 때, 자기도 애써 모았을 멋진 아이템들을 뉴비newbie들에 나눠주는 고렙 캐릭터들을 볼 때 마다 나는 이것이 일종이 집합지능(collective intelligence)이 만드는 '화엄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논리가 우습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나는 이에 관련해 아는 사람은 잘 알고 모르는 사람은 영 모르는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역시 mmorpg인 리니지2, 32대의 서버 중 하나인 서버1- 바츠서버에서 일어났던 전설같은 이야기..<바츠해방전쟁>. 가상 현실속에서 세금수탈, 독재와 척살을 일삼는 DK2라는 혈맹에 맞서 아이템도 없는 저렙 유저들이 3년 동안 벌였던 민중봉기인 바츠전쟁을 혹자는 반농삼아 한국전 이후 최대의 전쟁이라고 한다.
당시 그 서버에서 혁명군에 서있었던 작가 이인화가 이 이야기를 가지고 <바츠 해방전쟁 : 돌아오지 않는 전사들>이란 글을 썼다. 나는 그 글을 읽고 울었다. 그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복단'이란 말이 있다. 저렙 유저는 전부 내복같은 속옷만 입고 게임 상에 노출된다. 이들은 무기도, 공격력도 없다. 그런 이 저렙들이 내복만 입고 맨몸으로 화살받이가 되어 독재의 무리에 맞서 싸우며 죽어가는 이야기.
http://blog.naver.com/ststnight?edirect=Log&logNo=20016020766 : 바츠해방전쟁 개요
이 이야기를 베이스로 지난 해 이인화가 책 하나를 냈다. 나는 그의 정치적 입장이라든가 이런 저런 구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권한다. 특히 mmorpg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피가 끓을 듯.
이 비슷한 주제로 권할 만한 책이 하나 더 있다.10년 전 쯤에 <옥스타칼니스의 아이들>이란 이름으로 출간됐다가 2006년에 개정판이 나온 <팔란티어>. 내가 이책을 구판으로 읽을 무렵에 나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읽고 디아블로1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현실감이 오죽했겠
는가.
아이가 아직 제 어미 뱃속에 있을 무렵이어서 아내의 부른 배를 한손으로 만지며 드래곤 라자를 읽었는데 그 태중 아이가 어저께 중학교에 입학했다. ㅎ
또 하나 더 있다. <양각양> <무림사계>로 나에겐 언제나 최고의 작가로 추앙받는 한상운이 지난해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소년 추격전 시리즈 2권 <게임의 왕>.
피시방 차려서 리니지하는 내 친구 하나는 이 책 읽고나서 아주 울고
다녔다. 재미있다고.
게임 서버 내 최고 아이템을 엉겹결에 가지게 된 찌질이들의 고군분
투기. 다른 이야기지만 한상운이 다시 무협으로 돌아오기만 기다린
다.
또 하나 관심을 두고 있던 도시 시뮬레이션 게임인 심시티5가 출시됐다. 기존 심시티 시리즈에 비해 그래픽이나 비주얼이 판타지라고 불러도 될만큼 압도적이다. 이런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은 우리가 그냥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완성도나 디테일이 아깝다. 이번 심시티5도 공개된 트레일러나 플레이 영상을 봐도 그렇다. 당장 구매해 즐기고 싶지만 생업을 파할까 싶어 미뤄둔다. 좀 더 시간이 있을 때, 내 버닝 시즌이 끝나면 그 때.
아이고 오늘이 일이 밀려서 여기까지..2부는 다음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