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대선 투표 날 저녁. 그 전 주부터 여럿이 모여서 맥주도 한 잔하며
개표 방송을 보기로 했다. 다섯시쯤에 여럿이 모여 sns에 뜬 다양한 소스의 청신호들과
저마다 들은 출구조사들을 나누며 흥겨웠다. 나도 그랬다.
나는 이미 네시부터 소주에 카스맥주를 무려 5:5의 비율로 타서
축하주를 마셔댄 터라 출구 조사가 나올 무렵에는 이미 안드로메다 성단
다섯 정거장 전인 라그랑주 포인트 L2 좌표 쯤에서 헤매고 있었다.
1분여를 남기고 화면에 카운트가 시작됐다. 누군가는 미리 함성을 지르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고 나는 맥주잔에 소주를 부으며 속으로 카운트를 셌다.
...
출구조사가 화면에 뜬 순간.
그 찰나의 정적, 적요, 적막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나는 아까운 소주를 반병 넘게 쏟았고 생전 욕 안하던 金이 한 마디했다.
'씨발'
그 다음이야 뭐 이 땅 48%의 유권자가 그날 밤 경험했던 것들과 대동소이하다.
다들 별 말없이 술만 열심히 마셨다.
나는 라그랑즈 포인트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미아가 됐다..
그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지금도.

아무 생각없이 일만 열심히 하던 그 무렵에 제스 월터의 <시티즌 빈스>를 읽었다.
신용카드 위조범으로 살다가 내부 고발 후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가
낯선 촌 동네에서 도넛을 굽고 사는 한 사내의 이야기.
이 책의 시대적 배경도 1980년 미국 대선이다. 카터 대 레이건.
생전 처음 선거인 등록증을 받아본 빈스가 겪는 일주일간의 '천로역정'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절름발이가 범인'이라고 외칠 수는 없지만
말 그대로 '시티즌'..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시민'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과정에서 그가 마주치는 진실과 비밀 그리고 각성과 화해.
<시티즌 빈스>는 쟝르 소설이라는 범주에만 묶어두기에는 아까울 만큼 미덕이 많다.
단정하고 안정적인 문체 그리고 매력적인 묘사. 부사구문을 최소화한 드라이하면서도
재치있는 문장들.
" 때로는 어둠이 내리면 바깥 세상의 저 많은 불빛 아래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
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 때가 있다. 그리고 삶이 저절로
움트거나 후회라는 감정이 도시 전체를 잘게 나누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
들로 바뀌는 상상으로 밤을 지새울 때도 있다. "
" 따뜻한 입김과 담배연기 사이로 사람들의 외로워 보인 윤곽이 드러났다
그들은 수없이 되풀이 한 거짓말을 또다시 되풀이 하리라"
" 이 세상은 마리화나를 피우는 경찰관, 심일조를 내는 도둑, 곰인형을 안고 자는
부랑자, 도넛을 만드는 범죄자, 부동산업을 하는 매춘부들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
했다."
나는 빈스의 행로를 따라가며 '거듭난다는 것', 즉 '회심'한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클리쉐인 born again이 아닌 한 실존적 존재가 '대자적 각성'을
한다는 것 말이다. 사도 바울과 조지 부시에게는 예수가 거듭남의 포인트였겠지만
우리의 가련한 빈스에게는 난데없이 배달된 '선거인 등록증'이 다마섹 가는 '사울'에게
들이닥친 예수였다.
빈스에게는 '카터냐 레이건이냐'가 아니라 그 '선거인 등록증'이 정상적인 삶,
피크닉 도시락 식당을 열어 그럭저럭 살고 싶어하는 자신의 오랜 꿈,을 향한 열쇠가 된다.
하지만 개심과 회심에 댓가가 없으랴. '공짜 점심'이 있을리가 없잖은가.
조지 부시는 약을 끊고 술도 끊었다. (그래서 더 바보가 됐는지 모르지만)
사울은 바울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혔다. 빈스도 댓가를 지불한다.
갚지 못한 빚unpaid debt은 갚고 은원(恩怨)은 해결하고.
그래서 <시티즌 빈스>는 빈스의 '천로역정'이라고 적은 위의 글이 옳다.
과연 그런지 한번 보시기를.
빈스가 차린 피크닉 도시락 식당에 들러 그와 베시가 만든 도시락 하나를 들고
볕 좋은 강가에 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