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 인디영화의 대명사, 짐 자무시 인터뷰집 마음산책 영화감독 인터뷰집
루드비그 헤르츠베리 엮음, 오세인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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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루한 광고와 예고편이 끝난 후, 영화가 시작되기 전 불이 꺼지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그 짧은 순간의 어둠. 그 긴장되면서도 편안한 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가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영화 속으로 빠져들 준비를 하는 그 짧은 순간의 고요. 짐 자무시의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캄캄한 순간. 고요한 정적의 순간. 그 나른하면서도 편안한 순간의 느낌은 그의 영화들을 닮았다.

삶의 순간들에 관해 무채색빛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짐 자무시. 그의 인터뷰집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강렬한 순간들의 모음 같다. (인터뷰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인터뷰집을 읽게 된 건 순전히 브로큰 플라워 DVD에 수록되어 있었던 감독 인터뷰 때문인데, 좀 더 흥미진진한 그의 이야기들이 더 남아 있을 거라는 나의 예감은 들어맞은 셈이다. 자신을 겉으로 드러내기를 꺼려하는 사람이 자신이 품고 있던 이야기들을 들려줄 때 더 귀를 기울여 듣게 되는 것처럼, 영화의 바깥에서도 만나고 싶었던 그이기에, 그의 이야기들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천천히 읽었다. 그의 영화에 숨어 있는 고요한 언어들을 이해하고 싶은 욕심으로. 기대했던 대로,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넘쳐날 정도로 천천히 읽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다.

“전 어떤 것들 사이의 순간에 더 관심이 있어요. 택시 안에 있는 사람보다는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더 흥미롭죠. 저는 늘 작고 평범한 것들에 더 관심이 있어요.”

 

누군가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순간들.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 그리고 대화 중 이야기가 끊어진 그 짧은 순간, 침묵의 순간들,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고 무슨 말을 할 지 생각하는 순간들. 그러한 삶과 삶의 순간들에 관해 관심이 많다고 하는 짐 자무시. 영화 속에선 쉽게 삭제되고 편집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변함없이 계속되는 그러한 순간들. 그래서 자신의 영화들은 삭제되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그.(그의 영화를 보면서 지루한 우리의 일상과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건조하고 나른하면서도 보고 난 후, 무언가 알 수 없는 마음의 울림을 남겼던 그의 영화처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의미 있는 대사처럼 들렸다. 많은 것을 말하지 않지만 더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대사처럼, 그의 이야기들은 삶과 영화에 관한 나른하면서도 매력적인 사유의 단편들 같다. 이 감독의 매력에 더욱 반하게 되는 건 다음과 같은 말들 덕분이다.

“단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웃기지 마쇼. 난 못해. 관두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많지 않다는 거죠. 그게 바로 저의 태도인데, 거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이에요. 전 관두는 쪽을 택하죠. 인생은 너무 짧거든요. 물론 계속 일을 하고 싶죠. 얼마나 길지 모르지만 평생토록 하고 싶어요. 그와 동시에, 제가 어떤 특정한 시스템 아래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저는 제 작업을 하기 위해 저만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죠. 잘 진행되기를 바라고요. 만일 프로듀서가 저에게 “이러 이러한 스타 배우를 이번 영화에 꼭 출연시켜야 해. 무난하게 얀 해머의 음악을 써야 해. 촬영이 끝나면 우리가 편집을 할 테니 자넨 그저 어디 여행이나 다녀오게. 걱정할 거 없어”라고 말한다면 전 아마도 누군가를 총으로 쏴서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 거예요.”

 

자신의 신념대로 영화를 만들기를 원하는 감독, 짐 자무시. 이 배짱 두둑한 감독의 신념을 마주할 때 약간의 감동마저 느끼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쩐지 그가 더 마음에 든다. 거창한 서사보다 아주 작은 것들에 더 관심이 많은 이 사람. 그래서 자신을 “그저 소소한 시를 쓰는 마이너 시인”으로 생각한다는 그. 심지어 인터뷰 후,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다시 전화를 걸어 빼달라고 말하는 소심함(?)마저도 마음에 들었다. 돌아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자신의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다시는 보지 않는다는 짐 자무시. 그의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외로움과 우울함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언어의 문제들이 이 행성을 그토록 아름답고 낯설게” 만든다고 말하는 이 감독의 다음 작품에선 또 어떤 고요하고 아름다운 언어들이 숨겨져 있을까. 단순하고 작은 것들이지만 아름답고 깊은 울림을 가져다주는 이야기들, 소소한 일상이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들, 바로 우리 삶의 순간들에 관한 그의 영화가 더욱 더 기대되는 건 순전히 이 책 덕분이다. 너무 황량해서, 너무 외롭고 우울해서, 너무 나른하고 건조해보여서 때로는 낯설게 느껴졌던 그의 영화들이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왜, 원서에 있는 2편의 인터뷰를 빼버린 것일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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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8-03-2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브로큰 플라워가 이분 영화가.. 맞지요? 이 책을 읽으면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 -_-

ALINE 2008-03-24 23:42   좋아요 0 | URL
아쉽게도, 브로큰 플라워에 관한 인터뷰는 실려 있지 않아요.^^;
책이 나오고 난 후 영화가 개봉했다고, 적혀 있네요.
브로큰 플라워에 관해서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현란한(?) 영화평이 실려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