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
-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카메라 앞에 서면 나는 늘 두려웠다. 나도 모르는 나의 눈빛을, 어디에 닿아 있을지 모를 나의 시선을 들킬 것만 같아서. 이 책을 읽으며 왜 그런 두려움과 비슷한 감정들이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삶의 한 순간을 응시하는 듯한 강렬한 시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공허한 고독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들 때문이었을까.
설치미술가, 개념미술가, 사진작가라는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소피 칼의 작품들은 흥미롭다. 옮긴이의 글에서 발췌하자면, 그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일상을 카메라로 추적”하거나 “호텔의 객실 여종업원으로 일하며, 손님이 나간 객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구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사설탐정을 고용해 자신을 미행하도록 하고, 자료와 사진을 받아” 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특별한 작업들을 통해 그녀는 미술과 문학, 사진의 경계를 없앴는데, <진실된 이야기>도 그러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서 그녀는 사진과 소설이 결합된 독특한 형식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
|
|
|
이 남자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사랑을 나눈 첫날밤부터 그를 쳐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여전히 그렉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내 침대에 있는 이 남자가 평생을 같이할 만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까봐 두려웠다. 나는 눈을 감는 편이 더 좋았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의심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어리석게도 나는 왜 내가 침대에서 눈을 꼭 감게 되는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았다. 몇 달 후 그렉의 유령으로부터 벗어난 다음, 나는 비로소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고 싶었던 사람은 바로 그였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날이 될지 나는 몰랐다. 그는 나를 떠나버렸다.
|
|
|
|
 |
자서전 형식을 빌려온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덧붙여진 사진들은 그녀 삶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마지막으로 훔친 물건인 빨간 구두, 100프랑을 지불하고 얻은 연애편지, 면도칼날에 찢어진 누드화, 첫날밤 입은 웨딩 드레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가 자신의 이니셜로 수놓아준 침대 시트, 비어 있는 침대 위에 걸려 있는 ‘사랑의 편지’라는 그림 등 그녀 삶을 스쳐지나간 이미지들이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미지 덕분일까. 그녀의 글들은 강렬한 마침표를 새겨놓는다. 삶의 어떤 한 순간도 건조하지 않다. 이미지와 이야기 사이의 강렬한 긴장.
그녀는 그렇게 강렬한 이미지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듯 보인다. 우리는 그 이미지들 덕분에 그것이 그녀 자신의 삶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정작 그녀는 웃으며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나를 보았나요?”(“나를 보았나요?”는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소피 칼의 전시회 제목이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묻는다. “나를 (정말?) 보았나요?”
그녀는 이미지들을 통해 “진실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이미지로서 그것이 진실처럼 보이도록 믿게 만든다.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우리는 갈팡질팡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 삶을 스쳐지나가는 만남과 이별, 죽음 같은 사건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우리 삶의 어떤 부분들에 대해. 몇 장의 이미지들처럼 흩어지는 순간들, 그리고 잡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한 순간에 대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이별의 슬픔으로 괴로워하는 미국 청년에게 자신이 쓰던 침대를 비행기로 보낸 것, 그리고 에펠탑의 높은 곳에 꾸며진 방에서 밤을 보내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를 관찰하고,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던 그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허구와 진실 사이에서,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갈팡질팡하는 독자들과의 진실 게임을 계속할 것이다.
그녀의 <진실된 이야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덧붙여진 개정판이 나온다고 한다. 새로 들어갈 그녀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을 보고 싶다고.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