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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통찰 - 폄하와 찬사로 뒤바뀐 18인의 두 얼굴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깨끗한 인물이라 하여 어찌 어질다 할 수 있겠느냐?’
책의 서문은 본문의 아우트 라인Out-Line을 대략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서문을 보면 저자가 책을 통해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를 다소 솔직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깨끗한 인물이라 하여 어찌 어질다 할 수 있겠느냐?’ 라는 공자와 제자 자로의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 아무런 비판의식 없는 고정관념처럼 - 가지고 있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는 (의외로) 매우 또렷하다. 흔히 철수는 착하고 영수는 나쁘고 식의 선악을 구별하는 이분법적 논리의 아동용 만화의 이미지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을 무의식적으로 항상 그렇게 받아들여 왔고 훈련되어 왔다.
위의 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면, 우리는 역사 속 한 인물들을 그다지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았다는 반증이 된다. 저자 김종성 선생님은 일상생활의 한 단면에 비교하며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쉽게 말해주고 있다. 평소에 자주 접촉하는 가족, 친구, 또 오다 가다 접하는 슈퍼마켓 아저씨까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사람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간헐적인 접촉이나 몇 계단 건너 전해들은 이야기, 또는 사회적 지위에 의한 피상적인 선입견 등이 우리가 상대방을 ‘어떤 사람일 것이다’ 라고 대충 규정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현상은 우리가 역사적 인물을 바라볼 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역사인물에 대해 교과서 등을 통해 학창시절 배우고, 어디서(주로 사극 드라마, 소설, 만화 등) 주워들은 이야기 등으로 충분히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인물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그래서 충성됨이나 깨끗함 같은 외면적인 특징을 넘어 인물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아울러 균형적 시각 또한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역설하고 싶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독자들에게 ‘가끔 만나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이 아닌, ‘너무나 친숙한 사람의 새로운 모습’. 소위 “깬다” 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으리라 보인다.
‘너무나 친숙한 사람의 새로운 모습들’
소개되어 있는 역사 속 인물 18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던 인물의 기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반대의 시각으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 객관적 사료를 분석한다. 우리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뉘앙스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형 양녕대군이 자신의 누이 정순공주의 집에서 연회를 즐기며 취중진담인 듯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
충녕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흔히 양녕대군이 자신의 동생 세종대왕인 충녕대군에게 세자의 자리를 양보했다고 우리는 안다. 하지만 양녕대군이 세자 시절 이런 말을 남겼다는 기록을 통해 저자는 양녕대군이 적어도 세자 시절 비범함을 보였던 자신의 셋째 동생에게 분명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그 말을 전해들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이런 말을 남겼다.
임금께서 그것을 듣고 기뻐하지 않으며 “세자는 여러 동생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예를 마쳤으면 돌아오는 것이 옳거늘, 어째서 이같이 방종하게 즐기었느냐?” 라고 말하였다.
저자는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분석한다. 기뻐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세자가 그 말을 내뱉었다는 것과 세자의 입지로서 밤늦도록 유흥에 빠졌다는 것 두 가지 때문일 수 있는데 아마도 전자일 것이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 아버지 태종 역시 첫째아들과 셋째아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계의 눈초리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반대로 형 양녕이 동생 충녕을 칭찬한다는데 왜 아버지가 기뻐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해보면 된다고 분석한다. 또한 형이 동생을 칭찬하는 행동. 즉 화목하게 지낸다는 것은 유교적인 조선 사회에서 당연한 이치거늘 왜 그것이 굳이 기록으로 남겨지느냐는 것은 사관들 조차 보이지는 않지만 당시 모두들 느끼고 있던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덧붙인다.
또한 태종의 발언. “세자는 여러 동생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라는 말은 아버지가 보기에 큰아들이 그다지 속이 넓지 않다고 평소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과 자신의 큰 아들이 동생들에게 열등감을 갖지 않고 동생들을 안아줄 수 있는 여유를 좀 더 가졌으면 하는, 한 아버지의 바램을 보여주는 것 두 가지를 내포한다고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이 재미있는 또 다른 이유다.
이처럼 저자는 객관적 사료에 근거해 일상생활 속 우리가 겪는 다양한 관계에서 갖게 되는 희노애락을 인용,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분석법을 보여준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를 또 한 가지 소개한다.
“일반인들의 상식과 달리 역사학계에서는 ‘조공은 일종의 무역이었다’고 인식되고 있다. 조공은 일방적으로 바치는 게 아니었다. 조공은 예물 증정의 형식을 띄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가성을 수반했다.” -p.31, 고구려 장수태왕 편.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무인 강감찬을 띄웠지만, 그것이 도리어 강감찬의 ‘국제화’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국제적인 ‘관광상품’이 될 수도 있는, 강감찬이,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좁은 틀에 갇혀 더 이상 크게 뻗어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p.41, 고려 강감찬 편.
“두 차례나 중원을 지배한 여진족이 야만족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목민족이나 반농반목 민족을 천시하는 농경민족의 세계관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볼 수 있다...(중략) 하지만 유목민들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농경민들은 정처가 없다는 이유로 유목민들을 멸시했지만, 유목민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농경민들을 멸시했다. 땅에 얽매여 자유도 없이 사는 종족이라고 무시한 것이다.” -p.73, 조선 태조 이성계 편.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상식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역사학자들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학술적 의미일지 몰라도 일반인들은 모를 수도 있는 그런 내용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때론 파격적이다. 그래서 극과 극의 평가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도 당연히 든다. 대표적인 예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또 다른 시각이다. 바로 이성계가 고려인이 아닌 여진족 엘리트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사 전반을 흔들수도 있는 이 이야기 또한 저자 특유의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분석법을 통해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읽으면서도 옳다 싶으면서도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쉽지 않은 주제일 것으로 보인다.
18인의 분석에 따라 더러 ‘이 정도 가지고 사람을 이래 판단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다. 저자가 겸손하게 말했듯 아직도 학문적 소양과 분석이 부족하다 라고 할 수도 있고 독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 속 18인의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반대의) 시각은 무작정 나쁜 놈으로 규정하거나 위대한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이분법적인 우리의 사고와 시각을 조금은 넓힐 수 있는 조심스러운 가능성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개혁정책을 수행하고 수원 화성을 축조하는 등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조선시대 정조도 한,중,일 세 나라의 국제적인 시각으로 관점을 넓혔을 때 한 국가의 성적표로서는 꼴찌였다는 분석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