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창 노블우드 클럽 6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 / 로크미디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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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걷다>,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에 이은 노블우드클럽의 존 딕슨 카 시리즈 중 세번째인 <유다의 창>. 밀실 트릭의 대가라는 작가의 명성 그대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을 치밀한 구성과 기발한 발상으로 교묘하게 풀어간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법정 스릴러가 가미되어 또다른 재미를 준다.

법정물이라고 하면 역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며 공방을 벌이는 검찰측과 변호인측의 신경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기에 법정 특유의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 증인을 몰아붙이는 질문 공세, 한순간 전세를 뒤집는 증거와 증언이 만드는 반전도 빠질 수 없다. 이렇듯 절제되면서도 극적인 전개가 법정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김전일의 선배들이 대개 그렇듯 이번에도 역시나 사건은 살인사건. "유다의 창"이라는 말은 뭔가 엄청난 배신과 음모가 숨겨져 있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하지만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에서 유일하게 현장에 남아 있던 피고는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변호를 맡은 메리베일 경은 자신감에 차 있다. 그는 사건을 이미 추리하고 있으면서도 단편적인 정보를 툭툭 던져놓을 뿐 속시원히 털어놓지 않는다. 여느 추리소설이 그렇듯이 적당히 단서들을 뿌려놓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와 제한된 정보에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하는 독자 사이의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적당한 미끼는 흥미를 유지시키지만 이것도 너무 심하면 자칫 독자를 짜증나게 하기도 한다. 메리베일경 앞에서 투덜거리는 켄과 이블린의 기분이 독자의 마음이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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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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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활발한 시장이라고는 못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종종 드라마CD가 제작 된다. 거의 매달 그것들을 구입해 듣곤 하는 것은 이제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나의 즐거운 취미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최근의 드라마CD 시장은 라디오가 대세이던 20세기 중반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내가 즐겨 듣곤 하는 드라마CD의 주구매층은 20대 전후의 젊은 세대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영상물에 익숙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때때로 드라마CD를 "듣는 만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만화라는 건 그림인데 드라마CD는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소리, 즉, 청각으로 만화를 본다? 언뜻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렇게 소리로 만화를 즐긴다.

말하자면, 모델을 안 보고 목소리만 듣고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피암보는 "듣는 만화"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오디오드라마로 만들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적절한 소재다.

즐겨 듣는 드라마CD 중에 <더 자라(The Jara)>라는 시리즈물이 있다. 내용의 대부분은 단순히 성우가 1부터 200까지 숫자를 세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다. 남자 주인공은 가상의 여성을 상대로 대화를 한다. 여성의 목소리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이 여성이 누구인지, 남자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전적으로 듣는 이의 상상에 달렸다. 이 여성은 듣는 이 자신일 수도 있고 혹은 또다른 가상의 존재일 수도 있다. 청자는 자유롭게 자신만의 환상에 빠질 수 있다.

얼굴 없는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화를 그려야 하는 우리의 주인공 피암보도 뭐가 현실이고 뭐가 환상인지 모르는 모호한 세계로 점점 빠져간다. 샤르부크 부인이 들려주는 신비한 이야기들, 도시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들, 마약, 살인, 음모, 질투... 이런 것들이 뒤섞여 돌아간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암보 자신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드라마CD가 끝나면 잠에서 깨어나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듯이, 피암보도 결국은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어지럽게 널려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며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은 그렇게 잘 연출된 공연처럼 모든 요소가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더 자라>의 목소리 없는 여주인공처럼 적당한 여백을 남겨둔다. 그리고 그 부분은 독자가 취향대로 채우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피암보나 다른 화가들이 샤르부크 부인의 외모를 정확히 묘사하려고 혈안이 되는 게 솔직히 좀 답답했다. 샤르부크 부인, 아니, 루시어가 진정 원했던 게 자신의 얼굴을 점 하나 털 하나까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이었을까. 루시어가 자기 생각을 설명해도 물론 피암보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 했지만.


다음 주면 또 한 편의 새로운 드라마CD가 발매될 예정이다. 이번엔 또 어떤 환상을 보여줄지 무척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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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인의 귀향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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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노벨 보다도 작은 사이즈의 조그만 책. 이 책을 받아 들고 "이렇게 작을 줄 몰랐다"고 말하는 독자도 있더라지. 물론, 작다고 내용까지 작으란 법은 없다.

인공지능, 로봇, 전자공학 같은 기술적인 설정위에 종교, 인문학, 철학을 끌어와 주무르는 걸 보고 있자면 "역시 젤라즈니"라는 감탄 밖에 안 나온다.

인간이 몸을 만들어 주고, 지식을 전해주고, 마음을 담아준 기계 행맨. 단순히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의 차원을 넘어 그런 존재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 - 앞부분에서는 주로 공포로 묘사 되었지만 - 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문제는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행맨의 자유의지를 인정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그저 인간을 따라하기 보다 스스로 고독을 택하고 다시 별들 사이로 떠난 행맨의 선택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우주로 나가 새로운 것들을 보고, 인간이 가지 못 한 세계에 발을 딛겠지. 그는 이미 여러가지 의미로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별을 보고 신세계를 꿈꾸는 이에게 지상은 그저 우주의 티끌중 하나일 뿐이겠지.

수십 년간 태양계를 가로질러 길고 긴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보이저호나, 우주미아가 될 뻔했다가 기적적으로 돌아온 탐사선 하야부시 같은 친구들을 보고 있자면 어떤 감동과 함께 부러움 마저 느껴진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고독한 여행, 고난을 이겨낸 의지와 용기. 그것이 순전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감정이입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기계에 마음이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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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히메 1
타카노 와타루 지음, 조은경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나나히메는 가상의 세계,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사극 분위기에 전국시대 같은 혼란한 시대를 다루고 있다. 라이트노벨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라이트노벨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인듯 하다. 초능력이나 마법을 써가면서 능력자배틀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군대의 대립과 전투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보다 뒤에서 벌어지는 정치 싸움에 더 비중을 둔 느낌이다. 화려하고 거창한 대결을 기대한다면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읽기 어렵다거나 한 건 아니다. 일단, 주인공이 어린 소녀이고 그 아이의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딱딱하거나 복잡하지 않고 의외로 쉽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다.

제목의 나나히메는 일곱 공주를 뜻한다. 화자는 그중 마지막인 일곱번째 공주이고, 이들 일곱명의 공주를 중심으로 일곱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하는 것이 기본 설정이다.

실상 상황을 주도하는 인물은 어린 공주라기 보다 토엘 타우와 텐 후오우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걸출한 영웅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이 이 책의 재미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기 보다 종종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밖에도 카라를 제외한 다른 공주들의 등장이나 여러 주변 인물들도 흥미롭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 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활약도 놓칠 수 없으리라.

가끔 읽기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전체적인 번역도 나쁘지 않았다. 고유명사에 해당되는 한자어의 일본식 독음을 거의 그대로 옮겨와 어감을 살려준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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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이타카
하지은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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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란 "바람"들의 집합체다. 밥을 원하고, 휴식을 원하고,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사랑하며 사랑받기를 원한다. 욕구의 정당성이나 경중을 떠나 끊임없이 뭔가를 바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회 안에서 개인의 바람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누군가의 바람은 다른 누군가를 향하기도 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마치 박제사의 살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 소녀의 누더기 얼굴처럼 질긴 욕망의 조각들은 서로 맞닿아 있다. 정작 박제사와 소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탐미 공작이 찾아와 그 일을 의뢰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놓은 듯 한 이야기. <보이드씨의 기묘한 저택>이 그랬다.

이야기는 저택 입주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나열하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들처럼 같은 도시, 같은 건물에 살지만 서로 교류가 없거나 이름 조차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인연의 거미줄로 얽혀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소원을 하나씩 말한다. 더 큰 그림의 한 조각이 될 소원을.

라벨은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단 하나"만.

이런 식으로 한 가지 혹은 두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식의 설정은 동화나 설화에서 곧잘 나온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원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오직 하나의 소원만 들어준다는 말은 결국 나머지 소원들은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무리 간절하고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다면 그를 과연 소원 들어주는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그의 존재는 소원을 들어준다기 보다 사람들의 욕망을 더 자극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탐미 공작이다. 사람들이 떨어뜨린 욕망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예술작품을 만드는 남자. 어떤 면에서 그는 욕망의 화신인 동시에 누구보다 욕망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아무리 추하고 더러워도, 그의 손이 닿으면 콜라주의 일부가 되어 기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얼음나무 숲>이 음악, <모래선혈>이 문학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미술이라고 해야 하려나. 갤러리를 거닐 듯 사람들의 삶과 욕망이 차곡차곡 쌓인 7층 저택의 계단을 하나씩 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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