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드 씨의 기묘한 저택 이타카
하지은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삶이란 "바람"들의 집합체다. 밥을 원하고, 휴식을 원하고, 누군가와의 소통을 원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고, 사랑하며 사랑받기를 원한다. 욕구의 정당성이나 경중을 떠나 끊임없이 뭔가를 바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회 안에서 개인의 바람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하다. 누군가의 바람은 다른 누군가를 향하기도 하고,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마치 박제사의 살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 소녀의 누더기 얼굴처럼 질긴 욕망의 조각들은 서로 맞닿아 있다. 정작 박제사와 소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 탐미 공작이 찾아와 그 일을 의뢰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언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놓은 듯 한 이야기. <보이드씨의 기묘한 저택>이 그랬다.

이야기는 저택 입주자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일상을 나열하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들처럼 같은 도시, 같은 건물에 살지만 서로 교류가 없거나 이름 조차 모르고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 인연의 거미줄로 얽혀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소원을 하나씩 말한다. 더 큰 그림의 한 조각이 될 소원을.

라벨은 어떤 소원이라도 들어준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단 하나"만.

이런 식으로 한 가지 혹은 두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식의 설정은 동화나 설화에서 곧잘 나온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원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오직 하나의 소원만 들어준다는 말은 결국 나머지 소원들은 들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무리 간절하고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다면 그를 과연 소원 들어주는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 그의 존재는 소원을 들어준다기 보다 사람들의 욕망을 더 자극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는 탐미 공작이다. 사람들이 떨어뜨린 욕망의 조각들을 이어 붙여 예술작품을 만드는 남자. 어떤 면에서 그는 욕망의 화신인 동시에 누구보다 욕망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작고 초라해도, 아무리 추하고 더러워도, 그의 손이 닿으면 콜라주의 일부가 되어 기묘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얼음나무 숲>이 음악, <모래선혈>이 문학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미술이라고 해야 하려나. 갤러리를 거닐 듯 사람들의 삶과 욕망이 차곡차곡 쌓인 7층 저택의 계단을 하나씩 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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