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프린세스 - 화성의 존 카터 시리즈 제1화 클럽 오딧세이 (Club Odyssey) 3
에드거 R. 버로즈 지음, 백석윤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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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성의 존 카터 시리즈중 첫번째로 나온 화성의 프린세스. 스토리 자체는 아주 단순하다. 군인출신의 미국인 남성 존 카터가 어느날 갑자기 시공을 초월해 화성으로 날아가고 이곳에서 초인적인 능력과 매력적인 외모로 적들을 물리치고 미인을 얻는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일단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연상 되는 영화, 소설, 만화가 한둘이 아니다. 스타워즈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 아바타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중/고등학생이 한순간 이계의 영웅이 된다는 스토리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물론, 20세기 초에 출간된 이 책이 그 이야기들 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 있다.

존 카터가 화성에 떨어진 직후 말이 안 통했다는 점은 좀 의외라면 의외였다. 이런 경우 아무렇지도 않게 이계의 말을 술술하는 주인공들도 많지 않던가. 좀더 빠르고 단순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는 이게 편할 것 같고 말이지. 그런 천재 주인공들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의 영웅 존 카터는 단기간에 화성인의 문화와 언어를 마스터했다. 순식간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이대로 가다가는 우주 정복이라도 할 기세다.

화성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나 존 카터를 대하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도 종종 어이없다 싶을 만큼 맹목적이고 진도가 빠르다. 어쩔 수 없다. 그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적의 "주인공 파워"인 거다. 주인공이니까. 주인공을 위해 조연들 희생시키는 거 어디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기발하고 화려한 설정,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치밀한 복선과 잘 짜여진 스토리를 원한다면 미국인 아저씨의 화성 모험담이 식상하고 황당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수많은 우주 모험담과 그 이야기들의 원류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에 이미 식상해진 독자라면 좀 따분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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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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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작인 〈안녕, 인공존재!〉는 저자에게 2010 젊은작가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작가 배명훈은 그전에 과학기술창작문예에 당선된 경력이 있고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이미 SF독자들 사이에서는 꽤 알려져 있다. 그런 와중에 젊은작가상 수상은 그가 장르와 문단을 뛰어 넘어 폭넓게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성 문단에서 SF에 상을 주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SF단편 〈종이냅킨에 대한 우아한 철학〉(조현)이 언론사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도 했다.

기성 문단이 다른 장르소설에 비해 SF에 비교적 관심을 많이 갖는 듯 보이지만, 그 뒤를 살펴면, "대중성이 별로 없는 장르" (창작과 비평, 2008 여름호)라거나 관련 분야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몇몇 사람들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소설 쯤으로 아는 경향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인식이 안 그래도 어려운 책, 기피 장르로 취급받는 국내 SF에 또다른 편견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으면 좋은 거겠지.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과학소설이라고 해도 배명훈의 작품들은 과학지식보다는 철학적 지식과 사고를 요하는 듯 보인다. 등장하는 과학기술이라고 해봤자 휴대폰 매뉴얼 처럼 현대인이라면 (산간 오지에서 은둔생활이라도 하지 않는 다음에는) 대부분 익숙할 법한 소재들이다. 그에 비해 작품의 주제는 〈안녕, 인공존재!〉의 존재에 대한 화두처럼 다분히 철학적이다.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무겁거나 난해한 것도 아니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처럼 아예 제목에서부터 만화나 특촬물을 연상시키는 발랄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크레인 크레인〉의 황당한 전개에서는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이없다 싶으면서도 은근히 공감이 간다는 게 더 재미있다.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종종 과학이 종교인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들은 신을 부정하고 현대문명과 과학기술을 찬양한다. 유일신을 부정할 뿐이지 과학기술에 대한 그들의 신봉은 종교인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루종일 휴대폰액정만 들여다보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클릭 몇번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모니터 앞에 앉는 사람들과 기중신이 자기 기도를 들어주리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보였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중 상당수는 이미 다른 책에 실렸던 작품이다. 배명훈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접해온 독자라면 그점에서 조금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기성 문단이 주목하는 이 별난(?) 작가를 새롭게 알고 싶은 독자라면 충분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추가 정보를 알고 싶다면 검색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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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千년의 우리소설 3
박희병.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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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라길래 화려한 밀리터리 액션이나 영웅들의 자뻑 퍼레이드를 보나 했는데, 책의 내용은 그런 기대와 조금 많이 달랐다. 전투 자체 보다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의 비참한 삶, 전쟁속에서 비틀린 개인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최척전은 전쟁통에 산산조각난 한 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전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 가족의 아픔은 지금 이 시대에도 무관치 않은 일이리라. 생사조차 모른 채 헤어지고 고향을 떠나 먼 외국 땅을 떠돌며 겪는 온갖 고난들이 절절하게 펼쳐진다. 김영철전도 전쟁포로로 끌려간 한 남자의 비참한 삶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전쟁속에서도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고 애도 낳고 하는 걸 보며 사람은 저렇게도 사는구나 싶다. 정생기우기도 짧은 이야기속에 전쟁으로 헤어졌다가 수십 년후 재회한 가족의 사연을 담고 있다.

강로전의 강홍립은 영웅이 아닌 기회주의자에 간신배로 등장한다. 끝까지 조국을 배신하고 신의를 저버린 비굴하고 비겁한 간신배로 몰아붙지만 정작 글쓴이 자신도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는 등 사대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뒤에 해설을 보니 실제 인물은 저렇지 않았는데 자신의 정치 노선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그려놓은 모양이다. 본문의 내용만 놓고 보면 사악하고 간사한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어찌보면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개인의 인생이 비틀려버린 또다른 비극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을 테마로 하면서 네 편의 이야기는 대부분 임진왜란-병자호란 시기를 다루고 있다. 전쟁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선뿐만 아니라 명과 청, 일본, 동남아 등을 오가며 당시의 정치 상황을 엿볼 수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앞서 봤던 〈사랑의 죽음〉이나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뭔가 먼 얘기 같고 딴 세상 얘기 같았는데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어쩐지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면서 전쟁이 남일 같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 1-3권은 각각 요즘 식으로 말하면 로맨스소설, 판타지소설, 역사소설 쯤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이 우리 소설이지 시대적으로 좀 멀게 느껴지는 감도 있지만 고전소설의 또다른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1-3권에 이어 얼마전 4-6권이 출간되었던데,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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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세계로의 여행 千년의 우리소설 2
박희병.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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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우리소설 시리즈 두번째, 〈낯선 세계로의 여행〉. 제목 그대로 현실과 이계, 역사와 상상이 교차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앞서 본 〈사랑의 죽음〉에 비해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최고운전의 최치원처럼 역사상 실존인물을 다루기도 하지만 여기에 요괴나 신선 등을 등장시키고 신비한 사건들을 가미해 사실상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고 하겠다. 하지만 단순히 허황된 이야기라기 보다 현실 비판이나 정치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최고운전에서는 중화사상을 비판하기도 하고, 왕건의 아버지라는 왕수재의 이야기에서는 왕건의 탄생을 미화해 권력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요즘 나오는 판타지 소설들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너무 주인공 띄워주기에 몰두하다 보니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건의 흐름이 좀 억지스러운 감도 있었다.

전우치전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능력 배틀물. 전우치가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되고 이것을 다른 사람들과 겨루는 이야기다. 전우치전도 여러가지 버전이 있는 모양인데, 여기에 실린 이야기에서 전우치는 욕심 많고 오만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다. 뭐랄까, 찌질 주인공이 등장하는 라이트노벨을 읽는 기분이랄지.

전우치전도 그렇지만, 거의 모든 이야기에 도교와 불교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라고 하면 유교부터 떠오르는데,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도교와 불교가 많은 영향을 끼쳤던 모양이다.

신선과 초인적인 능력의 주인공, 용, 이무기, 구미호 등의 이종족, 무릉도원과 선계 등 옛사람들이 좋아했던 판타지 세계가 이런 것인가 싶다. 그들이 꿈꿨던 현실과 맞닿은 이상 세계는 대개 자연속에 있었다. 기계문명의 홍수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도시를 떠나 신선의 세계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은 여전히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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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죽음 千년의 우리소설 1
박희병.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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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중 첫번째로 출간되었다. "우리 소설"이라지만 솔직히 별로 우리 소설, 한국 소설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고려시대 이전이라면 당연히 한문으로 쓰여졌을 것이고, 훈민정음이 발명된 후라고 해도 한글 소설이란 보장이 없다. 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데다가 한문으로 쓰여졌다면 당연히 "번역"이 필요하다. 당시 시대상도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고 공간적으로는 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시간적 간극이 너무 크다. 결국 또다른 번역 소설, 멀리 딴 세상의 소설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도 나름 친절하게 달아주어 읽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사랑의 죽음〉이라는 책제목에서부터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나 네 편의 이야기중 해피엔딩은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사랑이 동서고금을 막록하고 소설에서 가장 흔한 소재이고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이라지만 여기에 그려진 사랑이야기들은 그닥 공감이 가지 않았다. 정작 사랑의 감정 자체보다 오히려 그 어이없는 행각과 황당한 전개가 재미있다고 느껴질 정도. 물론,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그럴만 하다 싶지만 그런 만큼 공감은 안 갔다. 내가 현대문명의 홍수속에 살면서 감성이 메말라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여자를 쫓아다니고 매일 여자 방문을 지켜보는 짓거리는 그냥 스토커로 밖에 안 보였다. 이건, 뭐,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10대 소년 소녀들의 목숨건 사랑 놀이는 유치하기까지 하고. 〈운영전〉만 해도 여자들 사이의 의리를 그리는 건 좋았지만, 열 명이나 되는 궁녀들 중 대놓고 시기하거나 적대시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건 좀 의외였다.

단지, 이때까지 알고 있던 고전소설과는 다른 이야기를 접해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춘향전, 홍길동전... 이런 것만 알다가 또다른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는 건 반가웠다. 더군다나 읽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까지 해서.

본문 내용과는 별개로 책 자체는 예쁘게 잘 만들었다. 표지의 재질, 디자인, 제본 상태 등이 꽤 마음에 들었다. 소설책 치고는 적은 분량에도 가격이 좀 높은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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