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千년의 우리소설 3
박희병.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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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야기라길래 화려한 밀리터리 액션이나 영웅들의 자뻑 퍼레이드를 보나 했는데, 책의 내용은 그런 기대와 조금 많이 달랐다. 전투 자체 보다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의 비참한 삶, 전쟁속에서 비틀린 개인의 모습들이 그려져 있었다.

최척전은 전쟁통에 산산조각난 한 가족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전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 가족의 아픔은 지금 이 시대에도 무관치 않은 일이리라. 생사조차 모른 채 헤어지고 고향을 떠나 먼 외국 땅을 떠돌며 겪는 온갖 고난들이 절절하게 펼쳐진다. 김영철전도 전쟁포로로 끌려간 한 남자의 비참한 삶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그리고 있다. 전쟁속에서도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고 애도 낳고 하는 걸 보며 사람은 저렇게도 사는구나 싶다. 정생기우기도 짧은 이야기속에 전쟁으로 헤어졌다가 수십 년후 재회한 가족의 사연을 담고 있다.

강로전의 강홍립은 영웅이 아닌 기회주의자에 간신배로 등장한다. 끝까지 조국을 배신하고 신의를 저버린 비굴하고 비겁한 간신배로 몰아붙지만 정작 글쓴이 자신도 중국식 연호를 사용하는 등 사대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뒤에 해설을 보니 실제 인물은 저렇지 않았는데 자신의 정치 노선과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그려놓은 모양이다. 본문의 내용만 놓고 보면 사악하고 간사한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어찌보면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개인의 인생이 비틀려버린 또다른 비극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을 테마로 하면서 네 편의 이야기는 대부분 임진왜란-병자호란 시기를 다루고 있다. 전쟁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조선뿐만 아니라 명과 청, 일본, 동남아 등을 오가며 당시의 정치 상황을 엿볼 수도 있어서 흥미로웠다.

앞서 봤던 〈사랑의 죽음〉이나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뭔가 먼 얘기 같고 딴 세상 얘기 같았는데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어쩐지 굉장히 가깝게 느껴졌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면서 전쟁이 남일 같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전쟁이라는 비인간적인 상황이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 1-3권은 각각 요즘 식으로 말하면 로맨스소설, 판타지소설, 역사소설 쯤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이 우리 소설이지 시대적으로 좀 멀게 느껴지는 감도 있지만 고전소설의 또다른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1-3권에 이어 얼마전 4-6권이 출간되었던데,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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