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죽음 千년의 우리소설 1
박희병.정길수 편역 / 돌베개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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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천년의 우리 소설 시리즈중 첫번째로 출간되었다. "우리 소설"이라지만 솔직히 별로 우리 소설, 한국 소설이라는 느낌이 안 든다. 고려시대 이전이라면 당연히 한문으로 쓰여졌을 것이고, 훈민정음이 발명된 후라고 해도 한글 소설이란 보장이 없다. 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데다가 한문으로 쓰여졌다면 당연히 "번역"이 필요하다. 당시 시대상도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고 공간적으로는 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시간적 간극이 너무 크다. 결국 또다른 번역 소설, 멀리 딴 세상의 소설들을 읽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우리말로 번역하고 주석도 나름 친절하게 달아주어 읽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사랑의 죽음〉이라는 책제목에서부터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나 네 편의 이야기중 해피엔딩은 하나 뿐이었다.

아무리 사랑이 동서고금을 막록하고 소설에서 가장 흔한 소재이고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이라지만 여기에 그려진 사랑이야기들은 그닥 공감이 가지 않았다. 정작 사랑의 감정 자체보다 오히려 그 어이없는 행각과 황당한 전개가 재미있다고 느껴질 정도. 물론,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사회상을 생각하면 그럴만 하다 싶지만 그런 만큼 공감은 안 갔다. 내가 현대문명의 홍수속에 살면서 감성이 메말라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여자를 쫓아다니고 매일 여자 방문을 지켜보는 짓거리는 그냥 스토커로 밖에 안 보였다. 이건, 뭐,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10대 소년 소녀들의 목숨건 사랑 놀이는 유치하기까지 하고. 〈운영전〉만 해도 여자들 사이의 의리를 그리는 건 좋았지만, 열 명이나 되는 궁녀들 중 대놓고 시기하거나 적대시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건 좀 의외였다.

단지, 이때까지 알고 있던 고전소설과는 다른 이야기를 접해 볼 수 있는 건 좋았다. 춘향전, 홍길동전... 이런 것만 알다가 또다른 이야기도 읽을 수 있다는 건 반가웠다. 더군다나 읽기 쉽게 "우리말"로 번역까지 해서.

본문 내용과는 별개로 책 자체는 예쁘게 잘 만들었다. 표지의 재질, 디자인, 제본 상태 등이 꽤 마음에 들었다. 소설책 치고는 적은 분량에도 가격이 좀 높은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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