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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SF를 보다보면 미래의 진화한 인류 혹은 지구인보다 진보한 외계인의 모습으로 뇌가 발달해 머리만 열라 큰 생물들이 등장하곤 한다. 현대인들이 뇌라는 기관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에서 우월성을 찾기 때문일 거다. 그에 비해 이 책에서 백만년 후의 인류는 쓸데없이 큰 뇌는 쪼그라들고 새로운 환경에 멋지게 적응한 생물들로 그려진다.
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유령이라는 점도 그렇고, 시종일관 인간의 커다란 뇌를 비꼬는 문장들은 마치 과학과 인류 지식의 진보를 비웃는 듯 보이기도 한다. 백만년이라는 시간을 오가며 중구난방으로 내용이 끊어지는 감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나름의 과학적 시각으로 일관되게 끌어가고 있다. 치명적인 유전병들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확율은 반반이며, 이 또한 자연 선택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용한 기관은 발달하고 불필요한 기관은 퇴화된다.
자연 선택. 얼마나 잔머리를 잘 굴리고 얼마나 남을 잘 속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하느냐가 종의 생존을 결정한다.
순식간에 수많은 생명을 전멸시키고 지구를 두 쪽 낼 수도 있을 만큼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고, 세계 경제를 파탄 낼 정도의 탐욕에 찌들어 남을 속이기에 급급한 인간의 뇌가 과연 인류라는 종의 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전쟁 때문이든, 환경 파괴 때문이든, 인류가 이러다 자멸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기 하게 만든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 뿐이라면 본문의 내용처럼 그것은 도태 되어야 할 쓸데없이 크기만 한 기관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발하고 발랄한 발상을 끄집어 낸 것도 커트 보네거트라는 인간의 뇌였다. 뇌에도 종류가 여러가지이니까 커다란 뇌가 정말 자기 파괴적이고 불필요한 지를 확인하려면 좀더 실험이 필요할 것 같다. 한... 백만 년 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