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패밀리즈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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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부터 영화, 소설까지 평행우주는 이제 익숙한 소재다. 평행우주만 놓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 책 『퀀텀 패밀리즈』에서는 여기에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수학적으로 계산되는 양자우주라는 설정을 집어 넣었다.

네트워크가 발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다른 우주와 정보가 뒤엉키기 시작, 어떤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 없는 세계가 되어버린다. 인간의 뇌도 여기에 영향을 받아 양자우주와 연결되고, 오래전 봤던 미국드라마 『Quantum Leap』(국내 방영 제목 "양자인간 샘")처럼 주인공의 육체는 원래 세계에 두고 정신만 이 세계 저 세계로 옮겨다닌다. 갈라진 평행세계의 시간이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라서 어떤 세계는 시간대가 어긋나 있고 이것을 이용해 과거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시간여행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리셋"하면서 비슷한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접촉한다는 점에서 루프물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게 꼬이고 꼬인 양자우주의 세계에서 역시 꼬이고 꼬인 가족사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가족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향해 뻗는 집착과 복수극은 그야말로 아침 드라마 저리가라 수준이다. 전생에 무슨 원한을 졌길래. 이야기는 한 가족에서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세계의 운명을 뒤흔들 대사건으로 이어진다. 황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런 대책없는 콩가루 집안이라면 그럴만도 하다 싶을 정도다. 우리가 믿고 집착하는 가족의 유대라는 게 얼마나 허무하고 허구적인가를 말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저자인 아즈마 히로키는 저서『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으로도 유명한 문화비평가. 그런 배경 때문인지 각종 사회 현상과 문화에 대한 저자의 통찰과 지식을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본인이 알아먹을 만한 내용은 필립 K. 딕이나 아시모프의 작품에 관한 인용 정도였지만. 전반적으로 말이 상당히 어려웠다. "차라리 방정식을 써라" 싶을 정도.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보다도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이번에도 꽤 흥미로운 책이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번역. 104쪽에 등장하는 "혹성"의 공습에서 이미 포기했지만. 출판사 이름도 "자음과모음"이면서 번역을 이따위로 해놓다니...이래저래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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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달
하지은 지음 / 드림노블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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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보고 작품을 고르다 보면 알게 모르게 전작들과 비교하면서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의 작품들이 일정한 테마를 담고 있다고 느낀다면 더더욱.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다뤘던 〈얼음나무 숲〉, 소설가와 독자가 주인공인 〈모래선혈〉의 공통된 테마는 예술. 전작인 〈보이드씨의 기묘한 저택〉은 예술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미술의 향기가 느껴졌던 지라 이번 작품이 화가들의 이야기라고 들었을 때 "역시나" 싶었다.

〈얼음나무 숲〉이나 〈모래선혈〉에서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그를 이해해주는 존재 - 청중, 독자 - 가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에 비해 〈녹슨달〉은 화가들에게 집중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모습도 등장하지만 이야기는 화가들의 내면과 그들의 공방에 무게를 두고 있고 갤러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부분에 그친다.

〈녹슨달〉의 배경이 언제 어디라고 특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중세풍으로 그려진다. 단순히 작가가 중세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화가들과 유럽문명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라는 배경은 그 자체로 극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본문에서도 "신"에 맞서려는 화가들의 저항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의 "신"은 단순히 성스럽고 초자연적인 절대자로서의 신이 아니다. 이미 세속화된 종교안에서 "신"은 신분, 관습, 제도, 권력...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온갖 것들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들에게는 더더욱 괴로운 족쇄다.

파도, 시세로, 레오나드를 중심으로 하는 화가들 그리고 뒤벨, 사라사, 왕세자비 등 귀족들. 그들을 둘러싸고 얽혀가는 꿈과 좌절, 애정과 욕망. 모두 같은 인간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신분과 지위가 다르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자유롭게 욕망을 분출할 수 없었던 것도, 비극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도 바로 그 신분과 관습 같은 "신"이 따라다닌다.

심지어 파도와 레오나드, 시세로도 스승의 그림을 파괴해 버림으로써 "신"의 공범이 된다. 예술가들이 권력에 굴복해 자신과 동료 예술가를 검열하는 또다른 비극이 일어난다. 다들 자신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큰소리 치지만 결국은 그렇게 모사나 하고 "신"이 요구하는 종교화나 그릴 뿐이다. 한때 반짝이던 천재 화가들도 "신"안에 갇힌 채 하나둘 무너져 간다.

주인공 화가의 1인칭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이 녀석이 좀 찌질한 성격이다보니 표현이 유치하고 직설적인 면도 있다. 예술한다고 떠벌이지만 정작 녀석의 삶은 피와 침과 땀으로 범벅되었다. 그래서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짜증나기도 하는 건 어쩔 수 없다. 재능은 있는데 성질은 더러운 그런 화가.

공방에 들어가기 전, 처음에 파도는 흙으로 그림을 그렸다. 고상한 화가들의 관점에서 그것은 그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유치한 장난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이야 말로 파도의 영혼이 가장 자유롭고 순수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먼지처럼 초라하고 바람처럼 허무하면서 그만큼 순수하기도 하다. 흙이야 말로 파도라는 예술가의 인생에 적합한 재료, 아니 인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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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 집단을 벗어나, 참된 개인으로 비상하라
박성현 지음 / 들녘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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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갖고 책을 펼쳐 들었건만 시작부터 어처구니 없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거다. 하마터면 책을 집어 던질뻔 했다. 다행히 바로 뒤에서 그것을 "가짜 개인주의"로 규정하는 대목을 발견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책은 역사부터 철학, 심지어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들을 끌어와 집단과 개인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개인을 타이틀로 내세우지만 동시에 집단에 관해 다루고 있기도 하다. 개인 그 자체보다 "집단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파헤지는 책이다. "개인"이라는 단어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지만 정작 집단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을 받은 듯 싶다.

집단과 개인. 대립하다가 개인이 비극적 결말을 맞든, 반대로 개인이 영웅이 되어 세상을 뒤엎어 버리든. 이것은 문학부터 만화까지 온갖 작품에서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로 구성되곤 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다양한 문학작품이 인용되고 있다. 그리스 서사시에서부터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는다. 어찌보면 그만큼 뿌리 깊고 원초적인 화두이면서 끝도 없고 정답도 없는 명제일지 모른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것, 진실을 추구하는 것. 당연한 얘기다. 이 당연한 것이 어떻게 해서 당연해졌는지 이 책은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가짜 개인주의와 떼의 위선을 경고한다.

유럽에서는 400년 걸린 것을 60년 만에 이 땅에서 이뤄냈다고 말하지만, 20세기 말에 PC통신이 나오고 인터넷이 보급된 몇 년 동안에도 개인과 사회, 나아가 세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블로그와 SNS가 등장하며 인터넷이 점점 개인화 되고 있는 현재에도 떼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때로는 권력을 추종하며 그 뒤에 숨어서, 때로는 편을 갈라 대립하면서 열심히 쉴드를 치고 상대를 공격한다. 그러는 동안 한쪽에서는 미숙한 자아의 폭주속에 생겨난 초글링과 중2병 환자들이 굴러다니고 있다. 데스노트만 쥐어주면 당장이라도 키라가 될 기세로.

개인이라는 주제를 나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인터넷 시대의 개인에 관해 좀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익명성과 다중 아이디 뒤에 숨어 자아 분열을 일으키는 아바타들, 무한 복제속에서 개성을 잃어버린 채 네트워크의 부품이 되어가는 개인... "남과 다른 나"를 이뤘다고 믿지만 그마저도 정치적 상업적으로 이용당하는 게 현대인이다.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 하더라도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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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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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냥 평범(?)했다. 어떤 이유로 외딴 산장에 모인 여섯 사람. 이들은 산속에 고립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에 의해 한 명씩 차례로 죽어 나간다. 여기까지는 추리소설에서 몇 번은 봤을 법한 전형적인 세트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여기에 조금씩 변주가 끼어든다. 꿈이 나오고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점점 환상속으로 빠져든다. 뭐가 현실이고 꿈이고 사실이고 상상인지 점점 모호해진다.

〈일곱 개의 고양이눈〉은 네 편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어떤 식으로 이어져 있으면서 다시 이야기속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고...하는 식으로 얽혀간다. 그렇게 파들어가다 보면 이야기를 구성하는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조각은 좀더 큰 조각의 부분이 되고 또 어떤 조각은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마치 레고블럭을 쌓아 올리듯이 조각들을 사용해 집을 짓기도 하고 우주선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이야기란 이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블럭 하나하나는 새로울 것도 없고 대단할 것도 없다. 어디서 본 듯한, 아니 실제로 수도 없이 봤고 사용했던 블럭들. 그걸 어떻게 쌓아 올리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무한히 반복되고 재구축된다.

이 책에는 죽음, 살인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엽기적인 살인을 나열해 놓아도 이미 어디서 본듯한 장면들이 많아서인지 그 자체로 별다른 긴장감이나 공포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과연 정말로 죽는 것은 누구 혹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미 남들이 수도 없이 사용한 레고블럭, 이미 죽어버린 재료들을 우린 이야기로 재조립해 무한히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 그리고 그 다음엔 레고블럭을 어떻게 잘 쌓느냐의 문제가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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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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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이 〈시간의 역사〉를 처음 집필할 당시 방정식이 하나 들어갈 때마다 판매부수가 반으로 줄 거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방정식 없이 〈시간의 역사〉가 쓰여진 평행우주에서는 두 배로 책이 많이 팔렸는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우리 우주의 〈시간의 역사〉에는 방정식이 들어갔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형사 실프와 평행우주의 인생들〉은 과학소설도 아니고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교양서적도 아닌 주제에 방정식들을 박아넣었다. 뿐만 아니라 평행우주나 끈이론 같은 최신 물리이론과 관련 용어들을 마구 쏟아낸다. 이러다 판매부수가 반토막 나는 정도가 아니라 0으로 수렴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간단 명료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그들은 우주가 궁극의 방정식으로 설명되길 원한다. 그런 관점에서 비록 방정식을 사용해도 이 책은 그다지 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수많은 평행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것처럼 이야기는 확장되고 문장은 뒤엉킨다.

추리소설이고 살인사건이 나오지만 대개 그렇듯 범인은 "이 안에" 있었고 누구인지 추측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보다는 인물들의 불완전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를 따라가는 것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각종 물리 용어와 개념과 방정식들. 등장인물 중에 물리학자가 둘이나 있기도 하지만 이 재료들은 그들이 사는 우주, 각각의 인생과 그 상관관계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다. 방정식과 물리개념을 이용한 심리묘사가 이토록 절묘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작가의 발상과 기교에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의 재료들을 빌려쓰고 있지만 이 책의 주된 내용이 누구의 이론이 옳은가의 과학적 증명인 건 아니다. 매력적인 이론임에도 증명할 수 없다는 맹점을 지닌 평행우주 이론에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는 우리의 삶을 빗댄 그냥 소설일 뿐이다. 인간이란 우주의 관찰자이면서 우주의 일부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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