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생각한다 - 집이 갖추어야 할 열두 가지 풍경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다빈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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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무척 작다.
이곳에 이사오면서 모든 것이 미니어처처럼 되어버렸다.
텔레비전이나 소파나 피아노가 작아진 게 아닌데도
워낙 작은 곳에 오밀조밀 모여 있게 되니
마치 작은 상자 안에 만들어놓은 집 모양 미니어처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사실 서글펐다.  

한데 무엇보다도 이 집은 동쪽으로 앉았다는 데 장단점을 함께 안고 있었다.
겨울에 집을 보러 와선 베란다 바로 앞에 앙상한 나무가 서 있어
앞이 훤히 보이는구나 싶어서 좋았는데, 알고 보니 겨울에만 그랬다.
나머지 계절에는 나무의 잎이 무성해지는 바람에 앞이 턱 막혔다.
시선을 가로막은 반 고흐의 아이리스 그림이 떠오르리만치 폐쇄적인 느낌이 강했다.
대신, 아침은 눈부셨다.
아침밥을 먹으며 해를 바로보는 자리에 앉은 나는
어떨 땐 손차양을 만들어가며 먹기도 했다.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눈부신 아침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매해 꽃이 만발하던 작은 철쭉나무도 이 집에 와서는 햇빛을 적게 받아
딱 하나의 꽃만 피웠지만 그래도 눈부신 아침식사를 하는 게 어디야, 스스로 위로했다.  

나는 집에 욕심이 별로 없지만,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집이라는 것에 여러 가지 사심을 두고 있었다.
아파트 평수라는 게 비교할 수 있는 소지가 된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하지만 가끔 속 긁는 소리가 들려도 집에 대한 생각은 여전하다.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면 되는 것이다, 집이란 것은.  

이 책은 내가 사는 집을 정말이지 꼼꼼이 생각하게 한다.
정신없이 책만 쌓여 있는 곳이 정말 편한 쉼터인가, 도 생각해보게 된다.
남들처럼 화려한 조명도 없고 세련된 싱크대도 없고, 반짝거리는 화장실도 아니지만,
사실 아늑하다기보다는 두서없이 쌓여 있는 책뿐인 집이 그리 자랑스런 곳인가, 생각해보았다. 
물론 이 책 속의 집들도 모두 돈을 들여 만든 공간들이다.
책 읽는 방, 이라는 벽장 속 방 같은 공간,
책장이 가지런하게 놓여 책을 읽을 수 있는 햇볕 좋은 툇마루, 
사람도 함께 벽을 뚫고 들어가 있을 수 있는 작은 벽난로 공간,
아이들이 정원에서 숨바꼭질하며 놀 수 있는 카멜레온의 장난감집...
아담하고도 품위있고 사람의 포근한 마음과 따듯한 손길도 함께 묻어나 있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하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나만의 공간은 만들기 나름일 것이다.
그야말로 온전한 원룸 속에서 자신만의 산해진미를 만들어 먹는
어느 일본인 소설가의 이야기는 웃음이 터지게 한다.
그의 집을 그려놓은 그림을 보자면, 불량한 조리대, 방랑하는 싱크대 등의
수식어구를 쓸 수밖에 없다. 가진 것 하나 없지만 재치만점의 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건축가인데 조명, 이라는 것에는 남다른 생각을 풀어놓는다.
조명보다는 점등, 그러니까 촛불이나 등잔처럼
어둠 속에서 한 점 불빛을 밝힌다는 데 그의 생각이 담겨 있었다.
불빛이 완전히 어둠을 몰아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둠도 함께 품고 있는 불빛, 마치 벽난로의 마지막 장작이 재로 변하고
불빛이 사라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소등을 그는 조명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은 휘황찬란한 조명기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고요한 어둠도 한켠에 마련해 놓아 빛과 어둠이 서로 사이좋게 공존하는 공간,
그것도 참 따듯한 집이 될 것이다.  

좀 더 많은 집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별 다섯은 줄 만한 책이다.
나의 집과 삶을 함께 둘러볼 시간도 주는 책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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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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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소설을 다시 읽고 싶었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본다.
어릴 적 내가 읽었던 소설은 아마 축약본이기 쉽다.
책이 별로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나는 읽고 또 읽었다. 
폭풍의 언덕은 그렇게 많이 읽고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소설이었다.
순하고 가볍고 일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폭풍의 언덕에서 폭풍처럼 몰아쳤다 가라앉은 사랑, 이라고 나름 기억했던가 보다.
그 어른거리는 소설의 아우라가 좋아서 별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던 영화까지
예전에 굳이 영화관을 찾아가며 보았던 기억도 있다. 
솔직히 감성이 이만큼 둔해진 나이에 다시 읽는 소설에서 얻는 감동은 
오랫동안 품어왔던 것보다 훨씬 미약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격정적인 사랑이 그리 폭풍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아름답지만 안하무인의 캐서린, 삶의 근성이 강한 만큼 사악함까지 강력한 히스클리프.
이야기의 시작은 그들로부터 나왔고, 그들 안에서 종결되지 못한 이야기는
결국 후대에까지 끈덕지고 어리석게 끌어가다 끝난다.
캐서린의 어리석음과 히스클리프의 부지런하리만치 끈질긴 사악함에
나 같은 독자는 흥미를 잃기 딱 좋다. 
하긴 모든 이야기는 어리석고 끈질긴 인물들이 있어야 발군의 힘을 가진다.
그런 인물들의 보기 딱한 사단이 있어야
이야기는 거미줄처럼 만들어지고 또 허물어진다.
그런 점에서 비운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는 천재적이다.
독자에게는 속터지도록 미련하고 결단성 없는 인물이 
고약하게 넘어지고 굴러떨어져 저 스스로 진흙탕에 온몸을 희생하는 것이다.
마치 골도 제대로 못 넣는다고 욕하면서 보게 되는 축구와 흡사하지 않은가.  

결국 폭풍처럼 일던 사랑은 그들의 자식들에게까지 미치도록 일어나다가
한순간 맑아지는 하늘처럼 가라앉는다. 
원래 모든 것은 그렇다.
폭풍처럼 일어난 일은 뻔뻔하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라진다.
물론 폭풍 속에서 피도 보고 살도 찢어지고 뼈도 부러진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소설 속에서 화자가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대화체 속에서 마치 연극을 하듯 상황을 전달해주는 게 왜 이리 어색한지.
예전의 고전들은 다 그걸 감안하고 읽는 게 당연할까.
마치 영국식 발음과 억양이 강한 (어찌 보면 한국식 발음 같기도 했던) 
교수의 영어를 듣던 기억까지 덩달아 건져지는 걸 보면
지금 다시 읽는 소설이 예전의 감동을 오롯이 떠올리기는 역시 무리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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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 렘브란트의 성서화 미학
김학철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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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위대한 화가지만 그리 존경받을 만한 행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사생활에 대한 지저분한 루머가 나돌았고 법정에 소환까지 받았지만 
응하지도 않던, 꽤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성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놀라운 그림들의 해석이 수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먼저, <선한 사마리아인>부터.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나 사람을 구해 여관에 몸을 누이는 장면에는, 
놀랍게도 개 한 마리가 똥을 누는 모습이 버젓이 있다. 
미천한 사마리아인이 선행을 베푸는 왼쪽과
똥 눌 자리도 구분 못 하는 개가 자리를 차지한 오른쪽.
마치 선과 악, 혹은 미와 추가 나란히 놓인 듯한 구조다.
하지만 선하다는 레위인이나 제사장들은 강도 만난 이를 못 본 체했고,
악하고 추하다는 사마리아인은 그를 구해낸다.
과연 누가 선하고 아름다울까.
위선적인 사람들도 똥은 누겠지만, 가리고 감추느라 변비의 통증에 시달릴 것이다. 
반면 사마리아인은 똥 같은 처우를 받는 사람들이지만
강도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더럽고 추한 건 누구인가, 하고 렘브란트는 묻는다.
생뚱맞게도 똥 누는 개를 또렷이 그려넣음으로써.  

<탕자의 귀환>이라는 흔한 소재의 그림에서는, 놀라운 표정을 읽을 수 있다. 
탕자를 맞이하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기쁨보다 서글픔이 짙었던 것이다.
아들이 돌아왔는데도 왜 아버지는 서러워할까.
큰아들은 당돌한 둘째아들의 요구로 인해 어부지리로 자기 몫의 유산을 챙겼다.
하지만 탕자가 돌아와 잔치를 벌이려는 아버지에게 대든다. 
아버지를 위해서 일한 나에게는 어린 양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으면서
어째서 저런 놈을 위해서는 잔치까지 벌여주냐며 화를 낸다.
또 탕자는, 자신은 아버지라 부를 자격도 없으니 하인으로 받아달라고 한다.
그는 아버지가 그리워 돌아온 게 아니라, 아쉬운 게 많아 귀향한 것이다.
아버지도 사랑이 필요한 존재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화살촉처럼 다가오는지 한동안 저릿했다.
작은아들의 패륜과 큰아들의 불경을 품으며 아들들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아버지, 라는 해석이다.  

<십자가에서 내리다>라는 그림에서는 못 박힌 예수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다.
루벤스 같은 화가에게서는 늠름한 예수의 죽음이었건만
렘브란트에게는 허약한 인간의 모습 예수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은 부활을 확신한다기보다 
솔직히 뜻밖의 처참한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시신 옆에는 흥미롭게도
렘브란트의 얼굴을 한 사람이 물끄러미 예수를 쳐다본다. 
'지극히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예수,
초라하고 힘없는 인간이 된 예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예수의 죽음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론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주리라 한껏 기대했던 강한 구원자가 아니라서 실망스럽다.
하지만 나의 구원자 예수는 힘있고 강하여 칼을 든 자가 아니라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과 함께하다 죽는 이였다.
그것만으로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예수는 비천한 우리 가운데 있는 자, 우리를 위해 기도하는 자인 것이다.  

저자가 친절하게 읽어주는 렘브란트의 그림은 모두 놀랍고 감동적이다.
그 속에는 너무도 거룩하여 저 멀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예수가 아니라
너무도 친근하고 초라하여 나와 함께 먼지 나는 주머니를 위로하는 이웃 예수가 느껴진다.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려고 읽었던 책이지만,
사실 그림 속의 렘브란트보다는,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성서를 가슴에 안을 수 있었다.  

쓸모없는 말이지만 굳이 덧붙이자면,
나는 <탕자의 귀환>을 본 다음날 모친을 찾아갔다.
딸은 당연히 어머니의 사랑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놓고 딸의 사랑을 요구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옆집의 딸이 뭘 해준다더라, 하고 은근히 말할 뿐이다.
어머니도 사랑이 필요한 존재다, 라고 내게는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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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렘브란트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이거 원, 이렇게 맞춤한 책을 골랐다니!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니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다.  
또다시 앞날개를 보니 당연히 이런 글을 쓸 만한 저자.
근래에 이처럼 기대에 벅찬 책을 만난 적이 없다.
그래도 조금씩 아껴먹듯 읽는다.  

2. 폭풍의 언덕
예전에 읽은 책이라 다시 안 사려고 버티다 못해 결국 샀다.
간만에 중고샵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다. 이러기 쉽지 않은데.
도서관에선 왜 이 책이 한 번도 꽂아 있지 않을까. 
다들 폭풍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거야?
완전 새 책이 와서 고마웠다.  

3. 고흐의 드로잉 
다시 본다. 읽는다, 가 아니라.
그의 그림은 유화도 좋지만 드로잉은 더 좋다.
물론 색을 사랑한 화가지만 물감 살 돈이 없어
드로잉을 많이 그렸다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은 눈물겹지만
그의 그림이 더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4. 집을 생각한다
어릴 적에 잠시 살던 집은 언덕 위에 있었다.
그렇다고 가파른 경사 위에 지은 집은 아니었고,
언덕 위에 올라 조금 더 나가면 뒷동산도 있었던 게 기억난다.
잠옷 입은 채로 나가 놀았던 기억은 떠올리기만 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집이란 그런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고 힘도 나게 하는 공간.  

5. 설계자들 
어쩌다 보니 정말 계획없는 독서들을 하고 있다.
하긴 사실 그때그때 눈에 들어오는 책을 집는다.
읽고 싶어 당장 책장이 찢어지도록 넘길 것처럼 주문하다가도
일단 도착하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새로 부풀어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이 소설은 어느 카페에서 들여놓은 책을 보면서 탐이 났다.
덕분에 그 카페의 첫인상이 무척 좋아져서 어디를 가나
그 프랜차이즈 카페가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쨌거나, 이 소설, 손에 우연히 들어왔는데 한참을 쓰다듬다가 읽었다.
작가의 첫 소설보다 좋았다. 정말, 좋았다.
설계없는 삶을 산다고, 대체로 생각하는 독자들의 눈에 단박에 들 만한 제목.
그리고 띠지의 우월한 글귀.
덕분에 추천사를 넣은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까지 읽을 준비 완료. 
(설계자들, 탓일까. 여기다 웬 잡담을 이리 쓰게 됐는지 모르겠다.)  

6. 오늘의 날씨는
작가의 팬은 아니지만 로봇의 별, 빼고는 다 읽었다.
이현 작가 특유의 문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요즘 잘나가는 동화작가들,
그러니까 김려령 같은 작가도 이렇게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를 구사하니,
그걸 대단하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가볍고도 진중한
(두 가지 상반된 단어가 동시에 쓰일 수 있다는 데서 대단하지 않을까) 
노련미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연작소설이라 한 편씩 읽는 맛이 있다.
한데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  

7. 소나기밥 공주 
작가가 설정한 결말은 너무 쉬운 것 아닐까.
뭔가 주인공 안공주를 위해 주변 인물들이 착착 준비해놓은 결말.
물론 이래야 동심이 꺾이지 않겠지. 
한데 현실은 정말 동화처럼 낙관적일까.
뭐라고 비틀어대냐고 꼬집는다면, 글쎄, 나도 왜 이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
왠지 편리한 결말을 만들어놓고 희망을 가져라, 하고 말하는 것 같은
괜한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8. 대지의 기둥 1 
오랜만에 세 권을 연이어 읽어야 하는 장편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취향에 맞지는 않으나 재미있는 소설임에는 분명.
여러 주인공들이 얽히며 나와 여러 인물에게 마음을 둘 수 있어 좋았다.
책 만듦새는 종이질이며 부담없고 가벼워 좋은데,
표지의 1,2,3권 표시는 왜 이리 눈에 띄지 않을까.
색이라도 다르게 하든가, 아님 로마숫자를 좀 더 크게 하든가.  

9. 대지의 기둥 2 
감기약의 기운 때문에 우울하게 읽었다.
작가는 일부러 의도했을까. 
몇 안 되는 남자들만이 사람, 같다.
나머지는 비열하고 우둔한 들짐승이거나,
야욕에 가득찬 더러운 내장까지 드러낸 인간 아닌 그 무엇 같다.
시대가 그처럼 미련하기 짝이 없었겠지만
남자 인물들을 그처럼 가치없는 존재로 그리기도 어려울 텐데...
어쨌거나, 난 이렇게 두툼한 소설을 왜 이렇게 열심히 읽고 있을까...  

10. 대지의 기둥 3 
드디어 모두 읽었다.
3권을 읽으면서 성당에서 조금 봉사할 일이 있어 참여했다.
무척이나 일하기를 아끼는(?) 나.
대지의 기둥이 성경도 아니건만, 왠지 감화받은 기분이 들어
나도 일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고 웃었다.  

 


10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렘브란트의 성서화 미학
김학철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0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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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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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드로잉
재원 편집부 엮음 / 재원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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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생각한다- 집이 갖추어야 할 열두 가지 풍경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다빈치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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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스페셜 세트 - 전5권 - IQ 148을 위한 멘사 세트 시리즈
브리티시 멘사 지음 / 보누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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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베이직 세트 중 한 권을 산 적이 있는데, 아이가 며칠을 끼고 살았다.
그리 수월하게 풀리는 문제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냥 즐거워했다. 
알아맞추지 못해도 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게 좋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이 세트를 보고 아이에게 줄 요량으로 사놨다.  
이 책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나름 기대하며 숨겨뒀다가 짜잔, 하고 건네줬다.
아이의 입이 함박 벌어지는 건 당연했다.
사실은 추석에 할머니댁에서 주구장창 텔레비전 보는 게 영 마뜩찮았기 때문인데
아이는 이 세트를 몽땅 들고가서 자기 전에도 열심히 들여다봤다.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너무 좋겠다. 
추리 좋아하는 아이라면 넉넉히 즐겨 읽을 만큼 퀴즈가 충분히 많다.
아이도 실은 시중에 나온 어린이용 추리소설은 거의 독파했다. 
방학에 짧은 소설이랍시고 이야기를 쓴 적도 두어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추리 퀴즈들이 감초처럼 들어가 있었다.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추리 퀴즈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듯해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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