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옷을 입은 아이들 보름달문고 36
김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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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옷이라는 장치가 재미있으면서도 어렵다.
거울로 둘러싸인 옷은 보는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면 그 옷을 입은 사람은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입은 채 정작 자신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지독한 아이러니다.
내 얼굴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덧입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작가는 자기 안을 바라볼 수 있는 문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모습은 보지 못하면서 다른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은 어떨까.  

이를테면 소설 속의 지희는 가족을 배신한 아버지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자기를 제외한 가족은 모두 아버지에게 매달리고 있다며 화를 낸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을 오히려 식구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로 돌려
겨냥하고 있다는 건 깨닫지 못한다.
아버지의 빈 자리에 자기 몸을 넣어두고 허우적대고 있는 건 정작 자신인데도
그 모습을 엄마나 언니에게서 보고 있다며 화를 내는 것이다.  

어쩌면 학교라는 공간은 너무나 위험할 수도 있겠다.
비난의 화살을 예리하게 벼릴 줄 아는 존재도 있고,
툭 하면 그 화살에 맞아 살이 찢기는 존재도 있는 공간이다.
그 존재들은 아직 여물지 않았으면서도 스스로 여물었다고 자신을 독려하고
그 증거로 가장된 힘을 휘두를 수 있다.
절망에 허우적대는 자신의 감춰진 모습이 다른 이에게서 조금이라도 보이면
아무 피해도 주지 않는 작은 벌레를 일없이 눌러 죽이듯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  

그 공간 속에서는 어른은 한참 밀려나 있다.
일례로 아이들의 알력이 심해지고 왕따라는 날것의 모습으로 드러날 때
담임의 일처리는 지나치게 유아적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가해의식을 한층 부채질해댄 꼴이 되었다.
물론 상처를 다스릴 줄 모르는 부모들도 아무 도움이 못 된다.
아이들은 어디에도 마음을 열어둘 곳을 찾지 못하고
스스로 닫아걸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아마도 이런 문제제기를 한참 웃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제기가 지나치게 어려운 비유로 둘러싸여 있다. 
조금 조숙하다 싶은 4학년 아이는 이 소설을 후딱 읽고나서도
별 재미가 없다는 말로 잘라 말했다. 
부피는 얄팍하지만 문제제기는 무거운 소설인데도
더는 생각을 열어놓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그건 생각의 힘이 아직 여물지 못한 아이들의 몫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쉽게 생각의 문을 열게 하는 작가의 몫이 아닐까. 
(하긴 여기 주인공들은 모두 6학년 13세 아이들.
4학년이면 아직 문제를 깨닫기에는 좀 이르긴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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