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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평점 :
품절
나를 가두고 있는 새장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새장을 가까이 보면 철장이 한 줄씩 보인다. 철망은 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얇은 선 하나가 새의 비행을 방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새장에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아야만 새장이 새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작가, 메릴린 프라이
철망 사이로 새장 안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철망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철망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를 빼앗긴 채 억압받는다. 날개를 퍼덕일 수는 있지만 날아오를 수는 없다. 새장 안에서의 비행은 제한을 받는다. 새가 마음껏 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새장 안에 갇힌 새는 날아도 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엔 차별이 만연히 퍼져 있다. 마치 철망처럼 우리를 가둔다. 다만, 인지하지 못할 뿐. 차별과 차이를 제대로 보려면 내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나를 가두고 있던 철망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새장처럼, 보이지 않는 벽은 우리의 사고를 제한하고 자유를 속박한다.
차별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차별받는 이들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저자는 세상을 자각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평등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라는 헛된 믿음보다 훨씬 값지다고 말한다. 과연 나도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당연하게 여긴 것들을 의심하고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려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성찰을 통해 나를 점검한다. 나에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겐 장벽이 되고 족쇄가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마주했을 것이다.
저자는 혐오 표현에 관한 토론회에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채 차별적 언어를 사용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때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 질문이 결국, 이 책을 쓰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나 또한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놀랄 만큼 똑같은 상황이었다. 장애인복지시설에서 봉사하며 점심 메뉴를 고르던 중, 무심코 ‘결정장애’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평소엔 전혀 거부감 없이 썼던 단어였지만,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장애’라는 말이 들어간 표현을 사용하고 나서야 그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언어를 더욱 신중히 사용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어떤 말을 조심해야 하는지 성찰을 통해 돌아본다.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나를 가두고 있던 철망의 존재를. 자유롭게 날아오르려면 철망의 존재를 먼저 인식해야 한다.
자기 성찰이 철망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라면, 다음 단계는 나를 가두고 있는 철망을 절단하는 일이다. 차별을 타파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철망을 절단할 수 있다. 위기의식을 갖고 기존의 불평등한 세상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것. 차별받지 않으려는 노력보다 차별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마침내 나를 옥죄는 철망이 한 꺼풀 벗겨질 것이다.
“평등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변화가 현재의 불평등보다 더 부담스럽고 불편한 걸까? 다른 말로, 현재의 불평등은 우리에게 편안한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불편함에 맞서기. 웬만한 용기와 결단이 아니고선 쉽사리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익숙함과 편안함을 유지하려 한다. 만약, 불평등의 대상이 내가 된다면 그때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아마 변화를 외치게 될 것이다. 목소리를 권리를 주장할 것이다. 특권이 사라지고 더 이상 주류가 아니게 될 때, 그제야 불평등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차별과 불평등이란 새장 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철망의 존재를 알았으니 행동을 통해 철망을 제거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새장은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언젠가 새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비상하는 날을 꿈꾼다.
💬 주요 문장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 '열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진다.
차별에 관한 책을 한 권 마치는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차별을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나를 둘러싼 세상을 자각하고 나 자신을 성찰하며 평등을 찾아가는 이 과정이 나는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헛된 믿음보다 휠씬 값지다는 것은 분명하다.
토크니즘은 차별받는 집단의 극소수만 받아들이고서도 차별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구조물이나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리는 특권을 발견할 수 있다.
특권을 알아차리는 확실한 계기는 그 특권이 흔들리는 경험을 할 때이다. 더 이상 주류가 아닌 상황이 될 때, 그래서 전과 달리 불편해질 때, 지금까지 누린 특권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메릴린 프라이는 억압의 상태를 새장에 비유한다. 새장을 가까이에서 보면 철망이 한 줄씩 보인다. 철망은 하나씩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얇은 선 하나가 새의 비행을 방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새장에서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아야만 그 철망들이 모여 새장을 이루고 있으며 이 새장이 새를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새장도 뒤로 물러나야 불 수 있다. "구조적으로 연결된 강압과 장벽의 네트워크"가 우리의 날갯짓을 방해하고 있음을 말이다.
유머,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 우리가 누구를 밟고 웃고 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이다.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
- 대법관, 아서 골드버그
평등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변화가 현재의 불평등보다 더 부담스럽고 불편한 걸까? 다른 말로, 현재의 불평등은 우리에게 편안한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소속되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거나 그런 사람인 척 가장하는 대신, 모두가 있는 그대로 어울리는 사람으로 환영받는 세상을 상상하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 참고 서적
부정의: 복종과 반역의 사회적 토대, 편견의 본질, 마인드버그, 여론, 커버링, 정의론,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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