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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대만의 문학 거장 작가의 신작,
#책, < #67번째천산갑 > - #천쓰홍 저
💡
'베스트 셀러, <귀신들의 땅> 천쓰홍 작가의 최신작이다.
울림을 전한다.
보편적으로 생각해 왔던 것을 깨부순다.
보편적인 것을 온몸으로 거부한다.
주인공은 그와 그녀이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가장 친밀하고 의지하고 있던 그의 정체성을 몰랐다.
이 소설의 끝에 가서야 그와 그녀 둘의 이름이 밝혀진다.
어쩌면 그와 그녀의 이름을 끝에서야 공개한 건, 소외받고 있는 이 세상의 많은 그와 그녀에게 바치는 소설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엇이 옳든, 무엇이 옳지 않다고 말하기 어려운 세대를 살고 있다.
맹목적인 비난과 비판이 때로는 상처로 깊게 자리잡을 수 있다.
눈물의 힘이 담겨 있는 이 책은, 긴 분량이지만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매트릭스 광고를 통해 처음 만난 그와 그녀는 떨어졌다가도 자석처럼 어디에 있든 다시 붙는다. 그리고 같은 곳을 바라본다.
그녀의 남편보다 오히려 그가 그녀를 더욱 잘 안다.
둘은 참 우정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중심 소재는 천산갑이다.
천산갑은 주인공인 그를 비롯하여 소외된 이들과 닮았다.
소외된 이들에게 부디 이 책이 위로가 되어주길.
눈물로 지새우는 나날과 잠 못드는 나날이 줄어들길 바란다.
"너 없이, 나는 잠을 잘 수가 없었어.
우리 같이 천산갑을 보러 가지 않을래?"
악의가 가득한 이 시대로부터 '함께 도망치자, 함께 잠들자'라고 말하는, <67번째 천산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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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에 인이 박이다 보니 진실을 경계하게 되었다. 가장 어려운 건 자신을 속여 넘기는 일이었다. 자신도 믿을 수 있어야 완전한 사기극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네트워크가 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는 화살이었다.
진짜 인생에선 원래 선명한 마침표가 없다. 종종 작별인사를 건넬 기회를 놓치고, 눈을 뜨건 감건 영원히 못 보는 경우도 있다.
카메라 테스트가 얼마나 힘든지는 너도 알지? 이런저런 테스트를 받으면서 매번 상대방의 마음에 드는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 정말 피곤해 죽을 지경이라고. 나 자신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잊게 되지.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말다툼 좀 하다가 영화를
한 편 보고 산책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면,
변함없이 계속 가족이다
카메라로 성취를 얻기 위해 인간은 반드시 주재
위에 군림하며 생사를 지배하고 빛과 그림자를
지배해야 했다.
분명히 소년이지만 그 눈빛은 많은 것을 잃어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잃어서
두 눈이 슬품에게 이토록 많은 공간을 내어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그의 말을 잘 듣겠다고 다짐했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 듣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숨소리까지 들을 결심이었다. 그 말 속에, 그 숨결 속에 틀림없이 빵 부스러기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녀는 반드시 귀 기울여 잘 들을 것이다.
내 아들은 결국 도망쳤어. 내가 줄곧 그 애를 찾고
있었지. 그 애를 찾기만 하면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 알겠어. 내가 그 애를 도망치도록 고무한 거였어.
나는 평생 짜릿할 기회가 없었거든. 나는 한 번도 짜릿했던 적이 없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러니까, 지금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내 아이가 짜릿해지는 거야.
그들의 인생은 정말 한 편의 곰팡이 핀 옛날 영화다. 필름에 스크래치가 너무 많아서 화면 전체에 비가 내린다. 내리려면 내리라지 상관없었다. 그 어떤 기술도 없지만, 두 사람의 이 낡은 영화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터에 천산갑이 몇 마리나 있었는지 알아? 세어 봤어? 한 마리, 두 마리, 쉰 마리, 예순다섯 마리, 예순일곱 마리까지 세고 눈을 떴다.
작가의 말
독자들은 늘 글을 쓰다가 벽에 부딪히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은 간단하다. 산책한다. 문학적 사유가 고갈되고 종이와 펜, 컴퓨터가 메말라 버리면 나는 나 자신을 더 밀어붙이지 않는다. 펜을 놓고 컴퓨터를 끈다. 날씨가 맑든 비가 오든 상관하지 않고 밖으로 나간다.
시간이 허락하면 나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기분 내키는 대로 마구 환승한다. 목적지도 없다. 휴대폰에는 36분이라는 스톱워치가 설정되어 있다. 카운트다운이 끝났을 때 열차가 도착하는 역에서 하차한다. 왜 36분이냐고는 묻지 말기 바란다. 내게는 답이 없다. 숫자는 임의적이지만 산책 구간은 휴대폰에 따른다. 때로는 37분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항상 가 보지 않은 역에서 내린다. 거리 풍경이 낯설지만 길 잃을 걱정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길 잃을 것을 갈망하면서 걷는다. 모든 감각기관이 열리고 심호흡을 하면 눈은 포르모사가 되고 귀는 날아다니는 새끼 코끼리가 된다. 그렇게 걸으면서 소리와 색깔과 냄새를 채집한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의 완고한 적체가 서서히
풀리고 벽에 부딪힌 느낌이 사라진다. 계속 걸으면 피부에 가는 비가 내리고 새로운 냄새와 색채
새로운 이야기의 에너지가 생긴다. 그러면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 앉아서 소설의 새로운 단락, 새로운 장절에 시동을 건다. 이 소설은 산책의 결과물이다.
이 이야기의 도로 여행은 파리에서 출발하여 낭트에서 끝맺는다. 이 년 전 프랑스 여행에서도 나는 파리에서 출발하여 낭트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이 작품 속의 그녀와 그는 어려서부터 낭트에 가기로 약속했지만, 어른이 되고 늙어서 함께 길을 가면서도 끝내 그곳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인생의 '도달하지 못함' 아닐까.
옮긴이의 말
핵심은 보편적이지 않은 인간관계에 관한 적극적인 제안과 질의다.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은 소수자들의 소외된 세계의 성격과 의미를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서로 뜻이 통하고 마음이 투영되며 서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서로를 가장 잘 도와주는 '그녀'와 '그'의 관계를 통해 이런 어원적 의미를 증명하고 있다. '그녀'와 '그'는 연인은 아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손을 잡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관계라는 생텍쥐페리의 명제를 완미하게 실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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