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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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어제의오렌지 > - #후지오카요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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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제 인생이 짧아 가여우신가요?"
'암 선고를 받은 료가와 그의 곁을 지키는 가족, 친구의 이야기이다.

죽음이 내 삶에 드리워져 있을 때 내 곁을 남아 지켜주는 이들의 존재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되어줄 것이다. 주인공 료가는 비록 서른세 살이라는 한창일 나이에 암에 걸렸으나 이겨내리라는 오렌지빛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과거의 자신도 눈보라 속에서의 죽음을 이겨내었기에 이번에도 할 수 있다는 마음을 품으며.

죽음을 각오한 열다섯 살의 그는 대체 어떤 말을 적었을까. 암 환자가 된 료가는 눈보라 속에서 죽을 뻔했던 자신의 과거를 찾아, 그때 쓴 편지를 읽고 힘을 얻으려 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에서 피어난 오렌지빛 희망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순간, 사람은 오직 하나의 감정만을 지닌 채 떠나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감정은 어쩌면 이 생에 함께한 이들에 대한 감사가 아닐까.

어제의 오렌지, 지난날의 오렌지빛은 우리 마음에 불그스름한 사랑의 자국을 남긴 채 또 하루를 살아내게 할 것이라 말하는 감동 스토리, <어제의 오렌지>이다.'

💬
"악성이었어요. 악성 종양입니다. 정밀 검사를 받으셔야 해서. 가능하면 내일이라도 입원을-."
대학병원에 의사로 있다 보면 암 환자쯤이야 놀랍지도 않을 것이다.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토록 느닷없는 선고는 너무 비정하지 않는가. 어떻게 선고받는다 한들 악성은 악성일 테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고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더욱이 내일 당장 입원하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입원 검사, 받으시는 게 좋아요. 하루라도 빨리요, 그건..."
"그래. 조만간 본사랑 상의해 볼게. 점장 대타 정해지고 인수인계 끝나면 입원하려고. 너희 아르바이트생들한테도 민폐네."
"그런 게 뭐가 중요해요."
"어?"
"민폐라느니, 그런 게 무슨 상관이에요. 첫째는 자기 목숨이잖아요."

이 애라면 걱정 없겠지 하고 믿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이 어느 날 갑자기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손님 응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며 채용한 다카나 같은 애가, 지각도 결근도 없이 몇 년이 지나도록 가게를 떠받쳐주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채용하는 입장이 되어보고 알게 된 것은, 이력서에 쓰인 학력이나 자격증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이다.

선잠이 든 탓인지 꿈을 꾸었다. 그립고, 무서운 꿈이었다. 꿈속의 료가는 열다섯 살이고, 아빠가 사준 오렌지색 등산화로 얼어부은 눈을 힘껏 밟고 있었다. 옆에는 자신과 똑같은, 열다섯 살의 교헤이가 있었다.

"료가, 괜찮아. 무조건 나을 거야."
오랜 정적이 이어져 무슨 일인지 걱정이 될 즈음, 교헤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뭐야, 그 근거 없는 격려는."
"내가 낫는다면 낫는 거야."
교헤이가 너무도 강력히 단언하기에 "그래" 하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 신발을 보내온 교헤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까스로 그쳤던 눈물이 또다시 차올랐다.
그랬다. 그날의 나는, 살기 위해 눈보라 속을 헤쳐 나갔던 것이다. 열다섯 살의 나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 따윈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 신발을 신고, 병원으로 돌아가자.

주위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한 눈에 띄는 재능은 없었지만, 엄마인 자신은 료가라는 사람의 좋은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점을, 그 애가 어릴 적 더 많이 칭찬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주변을 깨끗이 정리할 줄 아는 깔끔함을. 약속 시간에 늦지 않는 착실함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실함을. 무언가에 대한 좋고 싫음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진중함을. 자신의 의견을 구태여 내놓지 않는 상냥함을. 엄마인 내가 제대로 입 밖에 내어 인정해 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는 점장님의 인품을 좋아하는 거예요."
다카나가 선뜻 그런 말을 내뱉기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료가를 그렇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엄마인 자신까지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여동생은 여동생 나름대로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써왔는지도 모른다. 오토는 오토만이 알 수 있는 노력으로 오늘 이때까지 살아온 것임을 그제야 이해했다. 어릴 적부터 '오래 살 수 없다'라는 말을 들으며 여동생 나름대로 많은 것을 포기하고, 꿈이나 희망을 일부러 가지지 않은 채 살아왔다는 것도 비로소 깨달았다.

"그날처럼, 나는."
나는, 하고 료가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꼭 엄마 곁으로 돌아갈 거야."

치료를 받는 환자도, 환자를 보살피는 가족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다. 그 터널의 길이를 처음투버 드러내놓지 않으면, 터널 속 짙게 깔린 어둠에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는 수가 있다. 더구나 교헤이처럼 젊고, 대부분의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는 건강한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정표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건 그렇고, 병원에서 오래 일 하고 있는 네가 대단해."
"뭐야, 갑자기."
"난 아픈 사람들을 매일 상대해야 하는 일은 못 할 것 같아. 나아서 건강해지는 사람만 있으면 괜찮은데 안 그런 사람도 있잖아? 그런 사람을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하는지, 난 잘 모르겠거든."

"너라면... 너와 함께라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곳에서든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고. 나랑 같이 가는 게 어때?"

"열심히 치료받아온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우울해할 새도 없이 또다시 침상을 정리하고 새 환자를 맞아들이지.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빠듯해. 여유 따윈 어디에도 없어. 그런데도 말이야, 나는 늘 생각해. 이 환자의 병이 나아지길, 하고. 그 기도만큼은 빼놓지 않고 꼭 해. 왜냐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으니까. 기도하고, 격려하고.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작은 흉터는 누구에게나 있고, 살다 보면 이곳 저곳이 상하잖아. 다들 마찬가지야. 태어난 그대로의 몸과 마음일 수는 없지."

자신이 그저 동창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족에게는 드러낼 수 없는 료가의 고통을 어떤 형태로든 좋으니 받아주고 싶었다. 동창으로서라도, 간호사여서라도 좋다. 그의 '전화 걸 상대'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오늘 벚꽃을 보다가 생각했어. 귀중한 시간을 들여 확률이 반반인 치료를 받는 거라면,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그러고 싶다고."

그 웃는 얼굴을 보고,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잔잔한 강인함으로 병과 맞서는 료가의 곁에 있고 싶었다.

"잡초는 눈에 보였을 때 뽑아두는 게 좋단다. 그러면 정원은 늘 깨끗하게 유지되지. 잡초를 그냥 내버려 두면, 정원은 어느샌가 풀에 집어삼켜지고 말아. 잡초를 뽑겠다는 마음도 시들해져 가고, 잡초가 만연한 정원이 당연해지지. 급기야는 잡초가 잡초로 보이지 않게 돼.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간다는 건, 잡초를 뽑는 일 하고 똑같아. 잡초가 모든 정원에 자라나는 것처럼 가정이라는 정원에도 자라나거든. 그래서 엄마는 매일 이렇게 잡초를 뽑는 거야. 가족 모두의 마음에 언제나 깨끗한 정원이 있게끔."

"조금씩 먹으면 괜찮아. 너, 나가이 가후라고 알아?"
"우리 동창이야?"
"옛날 문호 말이야. 나가이 가후는 위궤양으로 죽었다는데, 죽기 전날 먹은 게 돈가스 덮밥이었대."
"문호 아니랄까 봐 호쾌하네."
"응. 나도 그런 게 좋다고 생각해. 병에 걸렸다고 해서 병자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

"이 대나무 울타리는 할아버지 그 자체거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차에서 내린 료가는 대나무 울타리에 손을 얹더니 한동안 가만히 멈춰 서 있었다.
"자기가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걸 알아서, 그래서 이 튼튼한 울타리를 만든 거야. 앞으로 살아갈 할머니를 보호하려고."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곧바로 남의 탓으로 돌린다. '무서웠다', '상처받았다'고 하소연하면 누구든 피해자의 얼굴을 할 수 있다.

"프로 야구 선수가 안타를 치지 못하게 되면, 투수가 공을 던지지 못하게 되면 은퇴를 합니다. 장인이 좋은 물건을 만들지 못하게 되면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을 테고요. 의사가 병을 진단할 수 없게 되면 더는 환자 앞에 서지 않길 바라잖습니까. 교사는 어떻죠? 교사가 하는 일은 사람을 육성하는 겁니다. 교사가 학생을 진심으로 지도하지 않게 되면 교사를 하는 의미가 없어요. 수업만 잘하는 교사는 교사가 아닙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지식은 필요 없어. 눈을 보고 얘길 해보면 알아."

자신이 무력하다는 현실이 눈앞에 들이밀려 있다. 그럼에도, 이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죽을 힘을 다해 찾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 무언가를 찾고 있다.

"왜, TV 리모컨 같은 데 보면 5번 부분에 작은 돌기가 나 있는 거 몰라? 눈이 불편한 사람도 거기가 5번이라는 걸 알고 조작이 가능하게끔. 그리고 어두울 때도 알아차릴 수 있게끔 말야. 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 료가 군은, 어려울 때 저절로 찾게 되는 사람이야."

힘들게 올라온 후에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이 편지를 쓴 열다섯 살 때부터 19년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에 날 만큼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하지 않고, 크게 눈에 띄는 일 없이 살아가고... 산에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 같은 인생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영락없이 행복했다. 과거의 사사모토 료가가 느낀 행복을, 그 후 19년 동안 고스란히 느껴온 것만 같다.

지금은 그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마지막 순간, 사람은 오직 하나의 감정만을 지닌 채 떠나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산을 오르고 싶었던 이유는 19년 전 자신의 강인함을 떠올리고 싶어서였다. 앞으로 자신의 몸에 일어날 일을 겁내지 않고 온전히 마주할 수 있도록, 열다섯 살의 자신으로부터 힘을 얻기 위해 온 것이었다.

부모도 자식도 '가족으로 있고 싶다'는 마음을 지녀야만 성립하는 것이 가족임을, <어제의 오렌지>에서 그리고 싶었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바탕이 되는 만큼 가족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존재이지만, 가장 가까운 까닭에 도저히 할 수 없는 말과 보이지 않은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환자의 본심을 듣는 건 가족도 의사도 아닌 간호사일 때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야기 속엔 희망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이 여럿 등장한다. 료가가 설산에서 신었던 등산화, 나기 산 정상에 내리깔린 돗자리, 할머니 집 마당과 트리몬토에 맺힌 열매, 병실과 산 끝자락에 내려않은 저녁놀... 이 오렌지색이 진정 의미하는 것은 어쩌면 희망에서 파생된 사랑의 조각이 아닐까. "어둡고 긴 터널 속"에서도 모두의 가슴을 환하게 물들인 건 서로를 향했던 진심 어린 애정이 아닐까.

어제의 오렌지, 지난날의 오렌지빛은 우리 마음에 불그스름한 사랑의 자국을 남긴 채 또 하루를 살아내게 할 것이다.

📚
<아메리카 설화>, <프랑스 설화>, <묵동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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