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물리학 -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해리 클리프 지음, 박병철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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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은 정이 많다는 뜻이고, ‘()’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끼는 마음이다. 그렇다면 다정한 물리학이란 물리학에 사랑이나 친근함을 느낀다는 뜻인데 내게는 전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요즘 여기저기서 다정한 ○○○가 유행이다보니 나온 제목 같은데, 독자에게 혼란만 일으키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처음부터 나오는 사과파이 얘기가 뭔가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제가 <How to make an apple pie from scratch>. 사과가 뭔가. 과학과 담쌓고 사는 나조차도 사과는 뉴튼, 애플의 사과, 즉 과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의 아이콘임을 알고 있다.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데 몰두한 물리학계에서 힉스 입자의 발견이 엄청난 성과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세계 최대 규모의 입자연구소 CERN의 지하실험실 그랑사소 연구소에는 사과파이의 달콤한 다정함 따위는 없다.

이 책의 저자 해리 클리프는 힉스 입자를 발견한 CERN 소속 실험물리학자다. 그는 사과파이 만드는 법을 예로 삼아 우주의 기원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입자연구소 CERN에서의 실험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하지만 글만으로 그가 느꼈던 경이, 좌절, 설렘 따위를 느끼기 어려웠다. 아주 작은 입자를 통해 우주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지하에 벙커를 만들어 빅뱅을 재현하는 실험이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내게 입자란 마블의 영화 <앤트맨> 수준으로 이해하는 개념이다. 극소립자에 갇힌 앤트맨을 보면서 더는 잘게 쪼개지지 않는 입자란 저런 거구나 싶었다. 비교적 최근에 본 <만달로리안> 시리즈도 떠올랐다. 먼 미래의 인류는 21세기에는 가늠할 수 없는 환경과 시스템에서 지구 외에 수많은 행성과 종족 사이에서 살고 있다. 우주란 인간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재밌어지는 장르다. 물리학이란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학문인건가?

이 책의 부제는 거대한 우주와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선택하기에 앞서 이 부제를 꼭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P. 451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우주가 탄생한 순간(중력, 시간, 공간, 양자장 등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던 순간)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실망스러운가? 그럴 필요 없다. 사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과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 꽤 먼 길을 걸어왔지만, 플랑크 규모에 도달하려면 아직 멀고도 멀었다. 궁극의 이론을 논할 때가 아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사방에 널려 있다. 암흑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빅뱅의 와중에 물질은 왜 반물질보다 많아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는가? 힉스장이 기적과 같은 값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다행히도 과학은 미스터리가 많을수록 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방금 열거한 미스터리가 앞으로 몇 년 안에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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