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은 노목에게서 나이 듦의 자세를 새삼 깨우치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 속을 비우고 작은 생명들을품는 나무를 보며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삶, 비움으로서 채우는 생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평생을 나무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먹고 병든 나무를 고쳐 왔지만, 실은 나무에게서 매 순간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 P7

누구에게나 오로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무게가 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저마다 생의 대가로 무언가를 책임지고 감내하며 살아야 한다. 백창우 시인이 표현했듯 ‘날마다 어둠 아래 누워뒤척이다 아침이 오면 개똥 같은 희망 하나 가슴에 품고 다시 문을나서는 것이 인생일지 모른다. 때로 넘어지고 때로 좌절하는 쉽지않은 일상에서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고 마음을 오롯이 나눌 그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만으로 인생은 살 만한 것일 게다. 내게는 나무가 그런 존재였다. - P7

생각해 보면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는 건오직 인간뿐이다. 더 큰 문제는 선택 앞에서 지레 겁을 먹고 고민만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오늘을 희생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청계산의 소나무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소나무는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어야 하면 미련 없이 바꾸었고, 그 결과 소나무는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 P21

 어떤 어려움이 닥치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는 척도는내게 달렸고, 정말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 보는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최소한 나를 옥죄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옮겨 간 곳에서 이전에는 미처 몰랐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된다는 것이다.
- P27

막 싹을 틔운 어린나무가 생장을 마다하는 이유는 땅속의 뿌리때문이다. 작은 잎에서 만들어 낸 소량의 영양분을 자라는 데 쓰지않고 오직 뿌리를 키우는 데 쓴다. 눈에 보이는 생장보다는 자기 안의 힘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떤 고난이 닥쳐도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시기, 뿌리에 온 힘을 쏟는 어린 시절을 유형기‘라고 한다.
- P32

나무는 유형기를 보내는 동안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인다. 따뜻한 햇볕이 아무리 유혹해도, 주변 나무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나도, 결코 하늘을 향해 몸집을 키우지 않는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 물길을 찾아 더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그렇게 어두운 땅속에서 길을 트고 자리를 잡는 동안 실타래처럼가는 뿌리는 튼튼하게 골격을 만들고 웬만한 가뭄은 너끈히 이겨낼 근성을 갖춘다. 나무마다 다르지만 그렇게 보내는 유형기가 평균 잡아 5년, 나무는 유형기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을 향해 줄기를 뻗기 시작한다. 짧지 않은 시간 뿌리에 힘을 쏟은 덕분에 세찬바람과 폭우에도 굳건히 버틸 수 있는 성목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 P32

어린 전나무는 다른 큰 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까지1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필요로 한다 - P33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깊은 산중에 싹을 틔운 야생의 나무들은언젠가 하늘을 향해 마음껏 줄기를 뻗을 날을 기다리며 캄캄한 땅속에서 뿌리의 힘을 다지고 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을 기꺼이 감수해야 더 높이, 더 크게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 P35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자라는 데 총력을 기울이던 나무는 여름이깊어질수록 조금씩 성장을 멈추기 시작한다. 햇살이 여전히 머리위에서 작열하고 있고, 날이 추워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도더 이상 뻗어 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멈춘 가지는 그 끝에 꽃을피운다.
한여름 우리의 눈을 기쁘게 하는 형형색색의 꽃들은 가지가 성장을 멈췄다는 증거다. 멈추지 않고 계속 자라기만 하면 풍성한 꽃도,
꽃이 진 자리에 달리는 튼실한 열매도 볼 수 없다. 내처 자라기만 하면 하늘에 가까워질 수는 있어도 뿌리로부터 점점 멀어져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는 스스로 멈춰야 할 때를 잘 안다. 지금까지최선을 다해 성장했고, 욕심을 내면 조금 더 클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나무들은 자라기를 멈춘다.  - P38

본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보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관심의 문제이기때문이다. 관심이 없으면 나무가 바로 옆에 있어도 있는 줄 모른다.
어떤 존재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지않다는 말과 같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보고 있어도 보이지않는 것이다.  - P45

하지만 생존만을 위해 경쟁하는 숲은 죽어 간다. 햇볕이 바닥까지 닿지 않으니 온기가 부족해 어린 생명이 싹을 틔울 재간이 없다.
어린 나무와 풀꽃, 그들과 함께하는 작은 곤충들이 살아갈 공간이생기지 않는 것이다. 겉으론 완벽해 보일지 몰라도 그런 숲은 결국희망이 없는 불임의 땅과 다르지 않다.
숲이 새 생명을 품을 수 있는 희망의 땅으로 거듭나려면 틈이 필요하다. - P49

완벽을 목표로 삼고 부족한 것을 모두 채우려고 무리하는 순간부터 찾아드는 건 불안과 초조뿐이다. 오래된 숲의 틈이 말해 주지 않는가. 비움으로써더 좋은 것을 채울 수 있는 법이다.
- P53

그러고 보면 나무의 삶은 결국 버팀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버틴다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 P57

정호승 시인은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나무나 삶을 제대로 살아 내는 과정에는 오로지 버텨 내야하는 순간이 있는 듯하다. 나는 오늘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투를 빈다.
- P59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챙겨 온 물건들이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마음의 평정을 깨뜨렸다는 것을 짐은 곧 두려움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걷다 보니 걷는 것이 마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욕심으로 무겁게 배낭을 메고서는 절대 멀리 가지 못하는 것처럼, 인생도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는 진정 원하는 곳에 이를 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였다. 마음을 낮추고 가진 것을 내려놓을 때 인생길이든 여행길이든 비로소 가볍게 걸을 수 있다는 걸 왜 진작에 몰랐을까. - P64

신기한 것은 나무가 제 자식 키우는 법도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육아 원칙은 하나, 최대한 멀리 떼어 놓기‘다. 자신의 그늘 밑에선 절대로 자식들이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까닭이다. 보호라는 미명 하에 곁에 두면 결국 어린 나무는 부모의그늘에 가려 충분한 햇빛을 보지 못해 죽고 만다.
그래서 나무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식을 되도록 멀리 보내려한다.  - P69

한 예로 햇볕을 좋아하는 소나무는 씨앗이 최대한 멀리 갈 수 있도록 가지 제일 높은 곳에 열매를 맺고는, 바람이 세게 부는 날 미련 없이 씨앗을 날려 보낸다. 다만 어미 나무는 싹이 제대로 틀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을 챙겨 줄 뿐이다. 그러니까 씨앗을 감싸고 있는 배젖은 먼 길 떠나는 씨앗에게 어미 나무가 챙겨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시락인 셈이다. 그렇게 멀리 떠난 어린 씨앗은 싹을틔우는 순간부터 오직 제 힘으로 자란 덕에, 죽을 때까지 저만의 삶을 씩씩하게 꾸려 간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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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저 향유를 쥐어 짜고 있을 수 있다면, 그 뒤 내가 오랫동안 되풀이된 경험을 거쳐 알게 됐지만, 인간이란 모든 사물에 있어서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관념을 실질적으로 낮춰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지혜나 상상 속에놓일 것이 아니라, 아내, 심장, 잠자리, 식탁, 안장, 화롯가, 전원(田園)에 놓여야 할 것이다.
- P239

하지만 그 태양도 버지니아의 대습지, 로마의 저주받은 황야, 또는 광막한 사하라, 그리고 이 세계에 몇백만 마일이나계속되는 황폐와 비애를 감추지는 못한다. 태양도, 빛이 못 미치는 지구의 암흑면과 지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바다를 감추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만일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이 그 마음속에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가진다면 그 사람은 진실할 수 없으며, 진실하지 못한 사람, 또는 미개인이라 할 수 있다.
- P252

그러나 솔로몬도 말했다. 깨달음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살아있을 때에도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구약성서》 〈잠언 21장16절) 그러니 그대는 불에 패배하여 한때의 나처럼 등을 돌리고 서서 죽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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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을 조금 작은 것으로 바꿔 들고 조각을 시작한다. 도안은단순하다. 서로 이어진 타원 세 개, 사슬이다. 그 사슬은 대륙 두 개와 대도시 세 곳을 하나로 묶는 고리이자, 목소리를 영원히 묵살당한 채 이름마저 잊히고 만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던 족쇄이다. 그 사슬 속에는 아름다움과 경이가, 공포와 죽음이 있다.
- P429

비밀을 지키기가 조금이나마 힘들어지게 하는 것. 그건 의미 있는 일이야.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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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種)으로서 인간은 위대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인간은 미약하다. 그 미약한 개인이 위대한 인류가 되는 놀라운 마법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감 능력이다. 타인의 문제를 나의 것으로 인지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지식과 지혜를 모아 이루는 집단 지성은 사실 약한 존재들의 생존 전략이었다.
- P7

『레 미제라블』에서 은촛대를 훔친 장 발장을 용서하고 그에게다른 삶을 열어 준 감동적인 인물 미리엘 주교에 대해 빅토르 위고는한마디로 "그는 의견이 없었고, 그는 공감을 갖고 있었다."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의견이란 사실 경험과 지금까지의 학습을 통해서 형성된것이다. 헤겔의 말대로 모든 규정은 부정이니, 내가 A는 B다.‘라고 말하는 순간 A가 C일 가능성은 배제된다. 나의 의견은 일면 옳은 것이지만, 새롭게 닥친 상황에서는 사물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편뎐으로 전략할 위험이 얼마든지 있다. - P8

인간을 약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선한 존재로 보는 관점, 이것이 내가 아는 예술의 출발점이고 인문학의 출발점이다.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내가 생각하는 자유주의 사회는 모든 개인의 평등한 존엄과 공통의 인간성에 내재된 취약성을 인정하는 기반 위에 있는 사회"라고 말한다.  - P8

아르노 브레커(Arno Brecker, 1900-1991)가 남긴 강인한 남성 조각품은 히틀러의 이념을 대변한다. 그 힘찬 근육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반인륜적인 범죄를 서슴지 않았던 인간 병기의 몸이었다. 동시에 이상적인 게르만족의 표본이 되어 이보다 함량미달이라 여겨지는 유대인, 타민족 그리고 독일인 내에서도 여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살상에 동의하는 미적인 기준이 되었다. 강한 자는약한 자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타인의 행복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 인간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은 파멸이다. 인간이 서로 노력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 통치자의 눈에 인간은 그저 다스려야 할 개, 돼지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읽고 감상할 위대한 고전 문학과 미술은 이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 P9

본문에서도 말하지만, 다만 태어나서 죽을 뿐인 인간, 제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120년밖에 못 사는 인간이 시간 속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성숙이다. 아이가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가 노인이 되는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시간의 호름 속에 단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는 것, 더좋은 인간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면서 해야할 유일한 일이다.
- P10

성숙을 위한 공부나노력을 멈추는 순간 우리의 정신적인 죽음은 시작된다. 자연의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끊임없이 성장, 성숙,
변화해야 한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가 그러하듯이 성숙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자기 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개인은 언제나 소중한 존재지만, 개인이 고립되어 절대화되면 그는 길을 잃고 덜 자란 아이로 남게 된다. 
- P10

그래도 읽기를 권하는것은 고전이 좋은 삶을 위해 반드시 숙고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3800여 년 전에 쓰인 『길가메시』서사시가 다루는 죽음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문제이며, 2800여 년전에 쓰인 아킬레우스의 공감과 성숙의 문제도 여전히 우리의 문제이다.
- P11

르네상스 미술이 위대하다고 해서 그 뒤에 따르는 마니에리슴 미술을 미술관에서 제거하지 않는다. 모든 미술 작품은 시대의 산물이고, 그려질 이유가 있어서 그려진 것이다. 미술관은 존재의 이유가 있는 모든 것들의 집합소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는 사회는 존재의 이유가 있는 모든 사람들의 집합소이다. 존재 이유가 있는 모든 것들의 존재 방식은 존중되어야 한다.
- P13

경쟁이 심한 사회는 폐쇄적인 문화를 만들어 낸다. 경쟁 사회에서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앞선 사람도 싫지만, 경쟁의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압도적 우위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보다 뒤처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고, 이 힘든 경쟁에 뛰어든 것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프레임을 다른 사람들도 악착같이 넣으려고 한다.자신의 관점을 강요하고 다른 생각을 배격한다.
- P13

여름날 푸른 저녁에, 들길을 걸어가리라.
밀 잎에 찔리며, 잔풀을 밟으며
꿈을 꾸듯이 발끝에는 차가움을 느끼리 .
맨머리에는 바람이 감싸는 것을 느끼리.

아뭇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내 영혼 깊은 곳에서는 끝없는 사랑이 샘솟으리.
그러면 나는 집시처럼 멀리, 아주 멀리 떠나리.
자연 속으로 마치 한 여자와 함께인 듯 행복하게.
- 아르튀르 랭보, 「감각」, 『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 P29

사랑은 가장 은밀하고 가장 개인적인 감정이다 누구에게나 이름과 얼굴이 있듯이 자기만의 사랑이 있다. 남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보고 울고 웃는 것은 그 사랑이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랭보는 그저 "한 여자와 함께인 듯 행복하게"라고 노래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연인과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시의 마법이다. 나만의 행복 동력으로, 나만의 마법으로 삶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 이것이 시인 랭보가 제시하는 살아가기의 기술이다.
- P37

디에고 로드리케스데 실바 벨라스케스Diego Rodriquez de Silva Velázquez,
1599-1660

17세기 바로크미술을 대표하는 스페인 화가이다. 펠리페 4세의 수석 궁정화가였으나 그의 작품 세계는 절대왕정의 미화에 복속된 여느 궁정화가와 비교할 수 없이 다채롭고 심오하며 그 영향은 후대 미술사에서 두고두고 발견된다. 특히 빛의 시각적인 효과에 대한 벨라스케스의 이해는 마네와 인상주의자들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한 장을 할애해 벨라스케스의 대표작 「시녀들」에 관해 분석하면서 그 진가가 다시 조명되었다.
- P39

아르투르 랭보
Arthur Rimbaud, 1854-1891

랭보는 전형적인 조숙한 천재였다. 폴 베를렌이 "엄청난 힘과 퇴폐로 가득 찬 상상력을 지닌 아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던 랭보는 열일곱 살에 이미 주목받는 시인이었고, 스무 살에는 문학을 떠난다. 시민사회에서의 영원한 사보타주를 선언한 그는 가출과 방랑을 반복하다 미지의 먼 곳으로 떠난다. 세계각국을 떠돌며 사업을 하던 랭보는 서른일곱 살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 - P40

안나의 비극이 제대로 이해되기 위해서, 제대로 된 대안적인 사랑과 삶을 찾기 위해서는 깊고 친절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서 『안나카레니나』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선, 19세기 말 러시아에 대한장대한 사회사적인 보고서가 된다. 러시아 사회를 관통하는 장대한스토리라인뿐만 아니라 장면 구성의 정교함, 심리를 전달하는 미묘한 동작의 묘사, 각 인물들이 스치듯 주고받는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기까지…… 소설의 모든 장면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이런 폭넓음이 1878년에 처음 발간된 소설 『안나 카레니나』가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 P43

사실 톨스토이는 궁극적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천재이다. 전지전능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그가 내세운 인물들 중 누구도 흠이 없는 인물이 없다. 안나와 브론스키뿐만 아니라 톨스토이의 분신으로알려진 레빈 역시 그렇다. 각 개인은 모두 불완전하고 자기 위치에서만 세상을 볼 뿐이다. 다만 경우에 따라 사물의 모습이 가장 제대로보이는 위치에 선 인물이 있을 뿐이다. 부족하고 조금씩 흠 있는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시점으로 사태를 풍부하게 묘사함으로써 소설에는 역설적으로 가장 종합적이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세상이 얻어진다.
- P44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이 시작되었던 1873년 그해, 화가 크람스코이는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렸다. 당시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정신적인 차르였다. 많은 화가들이 톨스토이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크람스코이가 그린 농민복을 입은 톨스토이의 초상화는 도덕주의적이고금욕적이며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고뇌하던 작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준다. 후에 톨스토이는 소설 속에 크람스코이를 모델로 한미하일로프라는 화가를 등장시킨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화가 미하일로프는 안나의 초상화를 그렸다.
- P46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
 1828-1910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러시아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계몽주의와 비폭력 인도주의를 설파한 그는 정부와 대척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가 죽었을 때 러시아의 실질적인 차르는 니콜라이 2세가 아니라 톨스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미쳤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안고 있다."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1878년에 처음 발간된 이래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P53

따뜻한 인간애로 무장한 냉소주의자 체호프는 이런 우리 생각의 허를 찌른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는 늘 ‘운명 같은 사랑‘
을 꿈꾸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끝나게 되는 사랑의 메커니즘이 까발려지고, 상투적인 사랑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연애 중독자의 특별한 연애 기술도, 거기에 빠져드는 여성의 심리도 혀를 내두를정도로 상투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 P58

다시 체호프로 돌아오자. 구로프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어떤 사랑을 이어 갔을까? 그 사랑도 언젠가는 그 설렘의 시간이 지나갈 텐데, 문제는 설렘이 사라지고 일상이 된 묵은 사랑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을 귀하게 여기면서 내 인생의 행복한 일부로바꾸는 기술, 소위 ‘지속 가능한 사랑의 기술이다. 그 답은 루소의 소설 『신 엘로이즈』에서 구해 보자.
- P64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
William-Adolphe Bouguereau,
1825-1905

19세기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에콜 데 보자르 출신으로 결점 없이 완벽하고 이상화된 인물상과 엄격한 원근법을 지키는 아카데미 화가들 가운데 한 명이며 전통적인 신화화나 장르화에 능했다. 관능적이고 풍만한 몸매의 여성들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클래식한 소재를 19세기 중엽 이후의 감각에 맞게해석해 내 당시 큰 인기를 누렸다. 새롭게 떠오르던 인상주의에 반대했던 그의작품은 과거의 원칙을 반복하고 절충한 경우가 많아 사후에는 서서히 잊혔다.
부그로가 눈을 감은 1905년은 야수파 전시회가 열리는 상징적인 해가 된다.
- P65

안톤 체호프
Anton Chekhov, 
1860-1904

할아버지가 지주에게 돈을 주고 해방된 농노였다. 체호프는 아버지의 파산으로 고학으로 공부하여 모스크바 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했지만 가족의 생계를위해 오락 잡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체호프는 작가란 사실에대한 객관적인 증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특유의 담담한 태도로 세기 전환기의 러시아 사회를 관찰하고 주옥같은 명작을 남겼다.
시니컬한 태도 뒤에 몰락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인간 군상에 대한 따뜻한시선이 녹아 있다. 『갈매기』, 『세 자매』, 『바냐 아저씨』, 『벚꽃동산은 체호프의 4대 희곡으로 꼽힌다.
- P66

계몽주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의 소설 『신 엘로이즈의 여주인공 쥘리는 "살기 위해서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대답한다. 젊은 시절의 격정을 넘어선 사랑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근원적인 힘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맹세가 생활이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한 법. 어쩌면 사랑은 긴 생애를 걸고 더디게 만들어내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 P67

루소는 사랑을 남녀 간의 정념의 문제에서 인생을 제대로 잘 살아가기‘라는 실천철학의 실천 과정으로 바꾸었다.

두 사람은 삶의 지극히 감미로운 상태를 조용히 즐기는 법 - 마음과 마음의 결합에서 오는 매력을 향유하는 스토아적인 행복의 단계를 꿈꾸게 되었다. - P70

그들은 소박하면서도 평등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 있고, 권위와돈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했다. "집에서나 공화국에서나 자유가똑같이 넘치고 있으니, 가정이 곧 국가의 상징이 된다. 비록 소설 말미에 여주인공 쥘리가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자연 속에서유토피아적인 공동체를 대안적 모델로 제시했던 루소의 소설은 당시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루소의 자연 예찬은 미술에서 풍경화가 발전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 P71

다. 즉 프랑스 고전주의 정원은 신분제를 기반으로 한 절대왕정의 정치체제처럼 인공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 쥘리의 정원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려는 시민적 취향과 관련이 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 루소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라고 했을 때는 인간의 이러한 자연 상태에 대한 옹호와 인위적인 신분 사회에 대한 준열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었다. 쥘리의 정원은 자연 그대로의 특징을 살린 영국식 풍경 정원(Landscape Garden)‘ 취향에 가까웠다. 루소는 물론 영국식 풍경 정원이 더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루소의 영향으로 이후 이런정원들은 더욱 유행하게 되었다.
- P73

이다. 풍경화는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먼저 발달했다. 프랑스는 루소 이후 대혁명이라는 거센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 역사화와인물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반면 명예혁명으로 완만한 정치적 발전을 이룬 영국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향유하고 즐기는 부르주아 계층이 빠르게 성장했으며, 다른 나라보다 산업혁명이 일찍 시작된 탓에 영국에서 자연은 더욱 그릴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되었다.
- P73

스스로 자연의 제자임을 자처한 컨스터블은 늘 자연을 사랑했고, 자연과 어울려 살 때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했다.  - P75

자연은 늘 그렇게 거기에 있다. 자연은 사랑할 자세가 되어 있는사람에게는 기꺼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통찰할 줄 아는 안목은 "살기 위해서 살고, 자기 자신을 즐길 줄 알고, 참되고 소박한 쾌락을 추구하는사람의 취향"이라고 루소는 말한다. - P7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연은 삶을 사랑하고 좋은 삶을 살려는 사람의 최고의 친구이다.  - P75

좋은 삶을 위한 분투가 바로 좋은 사랑을 위한 가장 훌륭한 노력이었다.
- P76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1837

제분소 집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이으리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화가가 되었다. 스무 살 때 클로드 로랭의 「하갈과 천사가있는 풍경」이라는 작품을 보고 풍경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향인 서포크 지방의 자연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화폭에 옮기는 것을 좋아한 컨스터블은 "자연의 제자로 자처했다. 기존의 아카데미즘 화풍에서 벗어난 그의 그림은 영국보다 1824년 파리 살롱전에 「건초더미 (1821)가 수상을 하면서 프랑스 화단의관심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의 작품은 후에 프랑스 풍경화 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 P77

장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일곱 살 나이에 플루타르코스를 읽었던 명민한 루소는 독창적인 계몽사상가이다. 스위스 태생으로 어린 시절 사랑과 교육을 모두 받지 못하고 방랑했지만, 이탈리아에서 바랑 부인의 후원으로 학문을 익히고 프랑스에 정착하여 디드로와달랑베르 등의 사상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루소의 사상은 프랑스혁명 기간 중매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그의 말은 신분 사회의 모순을 뛰어넘어 가장 자연스러운 사회 형태에 대한 구상을 촉구하는 말이었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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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프루스트 소설의 제목이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제 해석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일상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싶어요. 내가 사는 지금을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나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거죠.
- P38

진짜 아무 것도 아닌 건데, 아무것도 아닌 게 아무것인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  - P53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 P54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들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주들은 자신의배에 어린 시절 고향 동리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젊은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의 이름이나 술 이름을 적어놓은 로맨티시스트도 있다. 먼 이국의항구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그 이름들의 의미를 다 모아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한 포구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가 되리라.
- P56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P57

은 영향을 미쳤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생각의 탄생』에 보면 꽃을 그리는 화가 조지아 오키프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관찰에 대해 이런말을 해요. "꽃을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지" 라고요. 마찬가지로 책도, 여행도, 생각도, 천천히 나의진짜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 P57

꼈어요. 아, 시인이란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견 없이 악惡이라고 여기는 것에조차 이런 따뜻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구나.  - P64

살아 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등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일입니다.

이 글을 보고 저는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것이라고 썼습니다.  - P66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김사인, 「조용한 일 전문,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 2006) - P67

우리는 멈출 줄 모르는 속도와 낮출 줄 모르는 성장에 갇혀 ‘정신없이‘ 세상을 살아간다.

‘정신없이에 따옴표가 있습니다. 여기지기서 쉽게 말하죠. "니무 정신없어!" 이거 자랑 아닙니다. 큰일 난 겁니다. 왜 정신이 없어요. 정신있어야죠. 그런데 요즘 보면 다들 속도, 성장, 성취 이런 것들에 쫓겨서정신없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예요. 이걸 반성하자는 게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얘기의 핵심이 아닌가 합니다. 
- P84

목표가 곧 인생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이런 세상에서 벗어나야 해요. 

서울대학교가 목표일 수는 있습니다.그런데 그것만이 인생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 P86

수행은 늘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일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늘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을 높이며 끊임없이 성숙시키는 것이다. 성찰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피는 것이다. 사색은 사물과 일에서 참되고 깊은 의미를 찾는일이다.

정신을 붙잡고 살며 늘 깨어 있는 삶이 수행이라는 거죠. 성찰이라는것은 내가 누군지,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따지는 것이고, 사색은 곽재구 시인처럼 사물과 일을 자세히 들여다봐서 참되다 싶은 의미를 찾는일이라는 겁니다. 이 성찰과 사색을 위해 우리는 늘 정신을 붙잡고 깨어 있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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