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고 듣고 읽고 이해하고 알게 된 것이 사실인지 계속 의심하지 않으면, 속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인지 따져 보지 않으면 그것을 보게 하고 듣게 하고 읽게 하고 이해하게 하고 알게 한 이들에게, 속는다. 


베이컨이 지적했다시피 대게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이론을 뒷받침해 줄 만한 예시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는 반면, 자신의 믿음과 상반되는 것들은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이를 확증 편향 (confo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와이즈베리, 2012) (281쪽)


그러나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은 풀리지 않거나 설명되지 않은 신비들을 그대로 두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제아무리 설익었다 할지라도 확신을 가지는 것들 더 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2007) (113쪽)


정치의 계절이다. 햇볕이 따뜻해진 것을 반겨 맞이해야겠지만 이토록 치열한 정치의 시간을 소홀히 할 순 없으므로, 아직 물러가지 않은 겨울의 한기를 빌어 이성을 차게 해두어야 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기,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비슷한 제목을 달고 출간된 두 책이 시끄러운 시사의 소용돌이에서 멀미를 일으키지 않고, 휩쓸려 수장되는 대신 가능한 수를 찾아 탈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는 [돼지가 철학에 빠진 날] (김영사, 2001) 로 알려진 스티븐 로 (Stephen Law) 의 신작으로 현대에 만연한 헛소리를 다루며 그것을 분별할 줄 아는 우리로 하여금 철학과 논리를 연습해 대처하고 물리칠 수 있는 지혜를 갖출 것을 강조한다. 어떤 허튼 소리들은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춘 채 아직 준비(정보의 수집이나 심지어 관심)가 덜 되어있는 우리를 지적 블랙홀에 빠뜨리는데, 그들이 동원하는 수법을 여덟 가지로 정리하고 각각의 수법에 역시 합리와 논리로 대처하며 반박하는 법을 알려준다. 

 [왜 사람들은...]는  마이클 셔머 (Michael Shermer) 가 더 이상 봐줄 수 없을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닷고 있는 허튼 소리의 전파를 저지하고자 과학적 회의주의(skepticism)를 동원하며 각성을 촉구한다.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 창조론, 창조과학의 위험성,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 홀로코스트가 역사적 허구라고 주장하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끼치는 악영향을 분석하고 앞서의 책과 같이 합리와 논리를 연습해 적극적으로 이런 허튼 소리의 전파를 저지하는데 동참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믿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믿는 것이다, 나의 믿음을 부정하는 당신은 그러면 다른 사람의 믿음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냐, 그들이 충분하고 필요한, 그만한 근거로부터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종합한 결과이건만 네가 아는 것이 얼마나 많기에 감히 우리의 믿음을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이냐.' 이에 대해 '너, 개인은 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었느냐'는 반문은 앞선 항의를 던진 자가 믿음의 배경을 잃고, 발가벗겨진 꼴이 되는 식이다. 

Cogita tute! - 스스로 생각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1970, Love Story)

 위 인용구는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의 조사에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장 인상깊은 대사 13위로 꼽힌 영화 러브스토리의 명대사(제니: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거야')다. 이 영화에 연인으로 등장하는 올리버와 제니의 사랑은 제니가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를 선고 받으며 비극으로 변하고 새드엔딩으로 수년간 대중의 가슴을 울렸다. 이처럼 백혈병은 불치의 병으로서, 무엇으로도 극복하지 못할 불행의 씨앗으로 영화와 드라마, 책 속에서 수 많은 연인과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하는 비극을 그려내는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2001년 5월 10일 이후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백혈병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관리와 치료가 꾸준히 이어지면 완치가 가능한 병으로 일순간 변하게 되었다. 이날은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백혈병약 글리벡(Glivec)의 FDA 승인이 공표된 날이다. 


 [마법의 탄환](2005, 해나무)은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는 만성골수성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CML)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는 알약 글리벡의 개발 과정에 얽힌 극적인 에피소드들을 다뤘다. 글리벡이 가지는 의학적 의미, 이 약의 진짜 주인공인 환자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감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책 소개). 

 개인적으로 약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하게 되었는데 공부를 하면 할 수록 궁금해 지는 것은 약이 작용하는 원리이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추신경계 의약품(CNS drug, 우울병이나 정신분열병 등을 치료하는)들은 소개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탁월한 효과를 인정 받고 있는 약들 조차 그것이 어떻게 질병을 개선하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런 약의 개발에 우연과 운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개발과 발견이 과학과 지식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회의를 불러 일으킨다. 약이 어떻게 작용해서 질병을 치료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당장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서둘러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시장대중에게 공급하는 것은 후에 있을지 모를 재앙(유전자 변형과 같은 장기적 부작용 등)을 모른 척하고 당장의 이익을 취하는 매우 이기적인 시장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와 달리 이 책에서 글리벡은 분자생물학적으로 설계(designed)된 그리고 그 설계가 의도된 바를 달성하는 최초의 약으로서 설명되고 있는데, 이 점(연구개발이 신약의 개발에 운이나 우연보다 더 많이 작용한다는 점)은 향후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을 혁신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과학자들과 그들 역할의 결합이 가장 큰 흥미를 가져다 주었는데, 화학자, 생물학자, 의학자와 경영학자까지 개입하는 신약개발과정의 과학, 경제, 사회적 면면은, 연구실에서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 백만 분의 일 단위의 농도를 측정하는 과학자,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 삶의 끝에 서 있는 환자들의 요구와 항의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신약의 안전성과 효과의 입증을 기다리는 경영자들 모두가 신약의 완성으로 가는 길목마다 큰 역할을 해주고 있음 보여준다. 이렇게 극복한다. 인간이 자연을. 


 또 다른 약 이야기를 이 책을 보는 동안 접했는데, 영화 컨테이전(2011, Contagion, 링크)은 갑작스럽게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에 대처해 나가는 사회의 일부일부를 극 형식 보다는 보도 형식을 빌어 담아낸 영화이다. 25%의 치사율을 나타내는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하자 당국(세계보건기구(WHO)와 각 나라의 질병관리통제소 등)은 조사에 착수하고 이 신종 바이러스를 퇴치할 방안을 강구하며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통제하고자 고심한다. 감염자와 가족을 잃은 감염자의 가족들의 삶이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떻게 변(대응)해가는지, 그 집합인 사회는 어떤 현상을 나타내 보여주는지 조망하는 이 영화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질병의 현상을, 결국 방안이 마련됨(신약의 개발)으로써 구제받는 질병에 대한 사회의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컨테이젼을 감독한 사람,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가 또 다른 종류의 약에 대해서도 같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트래픽(2001, Traffic, 링크)은 미국에 만연해 있는 마약문제를 다룬다. 보도 형식 보다는 극 형식의 비중이 더 큰 이유는 마약과의 전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무심자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마약과의 전쟁은 너무 많이 다루어져서 감각이 무뎌진 이들에게 사실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보다 감정적인 부분을 건드리는게 더 나은 전략이 될 수 있겠다 싶었는지 모른다. 한자로 그리고 한글로도 약(藥)와 악(樂)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의 차이를 갖고 있는데 그 차이가  분자적으로도 미미하게 약과 마약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그 둘에 대한 시각과 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셨나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이현우 특강: "2010년이 가기 전, 이 책은 꼭 읽어라", 분당 한겨레교육문화센터 (2010. 11.24)

1. 국민을 그만두는 방법/니시카와 나가오 지음/역사비평사

2.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지음/김영사
3.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스토예프스키 지음/민영사
4. 교양이란 무엇인가?/동경대교양학부 지금/지식의 날개

위의 목록의 역순으로 강의가 진행되었다. 강사와 센터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강의 초반에 강사가 직접 이야기 해주었고 그래서 책의 선정이 반드시 강의의 제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강의 제목을 보면, 이 강의를 듣고 올해 출간 된 책 중 가장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의 목록을 얻을 수 있겠다 싶지만 강사의 기획은 그와 달랐다. 위의 목록이 어떻게 선정된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시점 (2010년 11월) 에서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이 접해보고 독서의 방향을 선택하고 서점가의 추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소개해 준게 아닌가 싶다.


지난 달부터 지금까지,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눈에 띄는 책이라 집어 든 '책을 읽을 자유' (이현우 지음/현암사)에 위 목록의 3과 4가 포함되어 있다. 1과 2는 포함되어 있는지 아니면 내가 아직 그 부분을 읽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책에 실린 서평을 통해 어떤 책에 대해 아는 것과 강의를 통해 어떤 책에 대해 아는 것에 약간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강의를 통하는 것은 책을 통하는 것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변적인 내용까지 알게해준다. 경우에 따라 책 인지라 에둘러 말하느라 모호했던 이해도 말로 쉽게 풀어 던져준다. 내가 잘못 이해했던 부분도 원래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책을 통하는 것은 그와 반대로 관계는 있지만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 제외된 간략하고 정확한 내용을 알게해준다. 대신 잘못 이해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잘못이다. 가끔 내가 읽은 책의 저자가 그 책에 대해 '설명'을 제공하는 강연회 등을 찾아 가는게 좋을 것 같다.


교양의 목적과 방법은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다. 난 아무래도 교양을 쌓기 위해 책을 읽는 것 같진 않다. 난 내가 읽은 책에 대해서 남과 의견이나 감상을 주고 받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심지어 누가 내게 어떤 책을 읽어 보았느냐고 물을 때, 그 책을 읽어 보았고 잘 기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읽었다고 답한다. 내 이해와 감동이 훼손 당할까봐 그러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교양의 원래 목적이 남과의 교류를 위한 것이며 나를 위한게 아니라 남(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므로, 따라서 나의 독서는 교양을 추구하지 않는단 생각이 든 것이다. 드물게 호감을 사고 싶은 상대방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질 때 혹은 관심없는 상대와 이야기 하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며 동시에 나의 '격'을 높이기 위해 내가 읽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곤 한다. '안나 까레리나'를 읽어 보았냐고 묻는 CEO가 있는 회사의 직원이 되는 것은 행운일 것 같다.


방학이 시작되는 때부터 '안나 까레리나'를 읽으려고 했는데, 어제의 강의를 듣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기로 했다. 작품에 대한 설명 중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작중 인물의 다양성과 극단성의 예로, '악령'의 스타브로긴이 소개됬는데 이 소설을 읽어 봐야겠단 생각도 했다.

마이클 샌델 신드롬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출퇴근 버스에서 한두번씩 이 책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으니까. 아직 1/5 정도 밖에 읽지 않았는데 지금 읽고 있는 '왜 도덕인가'와 함께 나중에 시간 나면 볼만한 책으로 분류해 둘 것 같다. 조지 레이코프의 책이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책을 언급하는 방법을 정해 두어야 할 것 같다.

국민을 그만두고 싶진 않다. 하지만 국가가 나를 강제하는 것도 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동안 써놓았던 일기 같은 것들을 나중에 다시 보면 부끄러움이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그것들을 다 지우는 짓은 하지 말아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