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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조 사코 지음, 정수란 옮김 / 글논그림밭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유태인은 가엽게 여기고 동정하며 돌보아 주어야 할 보석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추산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고통을 겪었으며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유태인의 무고함과 소중함은,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게 저지른 잘못의 반성과 그에 대한 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공감은 세계인의 보편적인 감정이다.
난 오늘까지 위와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유태인들의 수난에 쉽고 충실히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유태인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가스실에서 죽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영웅이 나치를 물리치는 것에 환호하고 (1967, The Dirty Dozen), 자기 욕조 청소를 게을리 했다고 유태인 소년을 총으로 쏘아 죽인 나치 장교는 죽어 마땅하며 (1994, Schindler`s List), 전쟁의 고통과 잔혹함을 인내하고 결국 생존의 승리를 거둔 유태인 생명의 가치를 숭고한 예술의 가치와 동일시하였다 (2002, The Pianist). 용서와 참회는 유태인의 몫이지 다른 이의 몫이 아니다 (2006, Munich). 하지만 이 책을 본 후, 지금부터는 더 이상 유태인을 동정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에 대한 유감을 취소하겠단 말은 아니다. 그 동안 할리우드 영화며 서양의 문화를 통해 주입되고 학습하였던 그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정과 연민을 철회하겠단 뜻이다. 예를 들어, 뮌헨 (2006, Munich,
링크) 을 보면서 은연 중에 모사드의 작전이 성공하고 주인공들이 명분이 충분한 '작전'을 무사히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길 응원하는게 올바른 감정이입인줄 알았던 것을 반성하고 후회한다.
조 사코 (Joe Sacco)는 만화라는 매체로 저널리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코믹 저널리즘(Comic Journalism)’의 선구자로서 만화라는 장르의 표현 영역을 넓힌 이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전작 [팔레스타인] (2012, 글논그림밭,
링크)으로 1999년 미국 도서출판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취재하여 그린 작품 [팔레스타인]은 사진이나 TV 취재 보도와는 다른 생생하고도 충격적인 메시지로 현대 만화사에 큰 전기를 만들었단 평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이후 다시 한번 그 세계를 조명한 이 작품은 1956년 수에즈 전쟁 때 있었던 칸 유니스와 라파 대량학살에 집중하며 당시와 현대의 상황을 병치하고 대조한다. 주류의 역사가 되지 못하고 역사의 각주(footnote, 이 책의 영문 제목은 'FOOTNOTES IN GAZA'이다)로 남으며 철저히 소외당했던 사실들을 밝히기 위해, 아직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살아 남아 있는 증인들에게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증언을 듣고 기록하며 각주를 역사서의 본문으로 이동시키고자 노력한다. 당시와 현대의 병치는 당시의 만행과 야만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고발하며, 각주의 본문화 시도는 그 동안 '중동문제'를 등한시 해 왔거나, 무관심하였거나 피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쪽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래서 결국 야만과 만행을 묵인하며 동조하였던 팔레스타인인 이외 모든 사람들의 각성을 고무한다.
큰 다행감을 느낀다. 현대에 대한 그리고 세계 한 켠의 사정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수치심에 가까운 심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가 누군가의 의도대로 묘사되고 있다는데 공포감을 느낀다. 과학과 달리 역사는 관찰하고 싶은 때의 사실을 절대 드러내지 않을거란 생각도 든다. '토끼처럼 많이 많이' 후손을 낳겠다는 노파의 다짐이 앞으로의 세계를 짐작케 하는데 911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느낌에 몸서리가 끼친다.
"여긴 우리 땅이고 저들은 적이라 가르칠 겁니다. 우린 애들을 계속 낳을 거예요. 토끼처럼 많이 많이. 아들을 17살에 장가보낼 거요." (189쪽)
"저놈들은 인간도 아니야! 짐승이야 히틀러도 저놈들한테 이러겐 안 했어! 히틀러도 살던 땅에서 추방하진 않았어. 히틀러도 살던 집을 부수지 않았어! 하나님께 이스라엘, 미국 애들을 우리처럼 만들라고 기도할 거다!" (210쪽)
덧 1. 이 책은 분명 아트 슈페겔만의 [쥐](1994, 아름드리미디어, 링크)를 떠올리게 만든다. 유태인의 피해와 피의가 모두 코믹 저널리즘의 형태를 띄고 있는게 흥미롭다. 하지만 [쥐]는 대단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내용이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은 그보다 포괄한 사실의 수집이 광범위 하다.
덧 2. 르포가 전하는 역사는 주관적 시각이 흠뻣 개입될 여지가 있으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취재의 한계와 전달매체의 한계를 독자 스스로 자각토록 사전에 경고하고 있다.
덧 3. 연속해서 접한 지젝의 철학서, 전쟁영화들, 전쟁 다큐멘터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동문제'에 대한 호기심의 첫 발로가 되었는데 그 동안 (아주 오랫동안) 왜 '보편적인 감정'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의아하다. 나는 왜 열강의 의도에 동조하고 있는거야?! 이 각성을 일깨워 준 것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