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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 - 인간 성찰의 5천 년 간신 고증 ㅣ 고전과 인간의 길 2
징즈웬.황징린 지음, 김영수 편역 / 왕의서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정의가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내용에서, 악역인 조조(曹操) 조차 악인이라기 보단 영웅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란 점에 있어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역사의 흐름은 다행히 정의를 좇는다고 위로한다. 삼국지연의를 통틀어 가장 안타까운 장면을 꼽으라면 관우(關羽)의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 이유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모든 (정의의) 미덕을 갖춘 이가 계책에 휘말려 결국 그 끝을 이루지 못하고 또 목격하지 못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는 까닭일 것이다. 줄곧 유비(劉備), 관우와 장비(張飛)의 편이었던 읽는 이가 느끼는 좌절감은 '관우마저 그렇다면 누가 그 자격을 가질 수 있느냐'는 의문을 동반한다. 관우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불지펴지는 의협심의 추구는 읽는 이로 하여금 복수와 위로의 장면을 기대토록 하다가 결국 도원에 있던 형제들이 모두 같은 운명을 나누어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마침내 등장하는 황호(黃皓)란 간신은 유선(劉禪)과 강유(姜維)에게 전가된 유비, 관우, 장비의 역할마저 좌절시키며 그나마 남아있던 기대마저 무너뜨리고 "천하를 망치는 것은 소인 하나면 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각인한다. 절반이 허구라는 연의지만 현실이 허구보다 더 허구적일 수 있음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우리는 이와 같은 공분(公憤)의 소재가 정사(正史)에서도 비일비재했음을, 그리고 현재 일상에서도 빈번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역사는 단 한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간신배들에게 고초를 당한 숱한 의인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더 그런 것 같다. 역사가 행복해지는 날, 역사는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칸으로 남을 것이다. (387쪽)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2011, 왕의 서재)는 중국사에서 정의, 도리, 자연, 진리를 반하고 대신 사리와 사욕을 채우는데 제 명을 다하며 참상과 비극을 초래하는 위 황호와 같은 인물의 정체를 파헤치고 왜 역사에서 이들 간신의 등장이 반복되며 우리는 왜 그것을 막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에 답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제는 충분한 과오의 원인을 파악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전파한다. 중국의 대동 광무국 부국장을 역임한 1급 경제전문가로 문학과 역사를 두루 섭렵하여 많은 글을 발표한 징즈웬(景志遠)과 역시 광무국 선전부 부국장을 역임한 경력이 있는 황징린(黃靜林)이 공동으로 엮은 이 책은 중국이 가진 그 역사의 무게에 대한 중국인 저자들의 책임감이 눈에 띄게 드러날 정도로, 두꺼운 만큼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 그야말로 역사의 정도(正道)를 방해한 모든 이를 색출하여 현재에 대한 간신들의 죄를 철저하고 가차없이 평가함으로써 부관참시(剖棺斬屍)의 형을 글로써 재연하겠다는 의지를 느끼게 한다. 이들 간(간행, 간인, 간신, 간군)들을 미리 알아보지 못한 까닭, 간을 알아보는 방법('변간이론'), 그들의 정체성 ('젖 주는 사람이 곧 나의 어미'), 간을 잉태하는 사회의 상('봉건적 사유제' 혹은 '권력의 집중'), 간을 이기고 근절하는 방법('도덕의 추구')을 안록산(安祿山)과 양국충(揚國忠), 주원장(朱元璋)과 같이 이미 간의 모범으로, 교훈의 반례로 회자되었던 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북송(北宋)의 진회(秦檜), 청(淸)의 화신(和珅), 원세개(袁世凱) 처럼 다른 역사의 인물이라 낯선 인물들도 부각시키며 치밀하고 샅샅히 반성한다. 이들의 대척점에 있는 북송의 악비(岳飛), 송의 조광윤(趙匡胤) 서촉(西蜀)의 제갈량(諸葛亮), 당(唐)의 송경(宋瓊)의 예는 정례로서 무수히 반복되고 강조되어도 좋을 충신과 영웅의 모범으로 다시 빛을 발한다.
이 책의 목적은 정확한 입장에 서서 그러한 간신의 본질, 특징 및 그 활동규율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여 과학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158쪽)
역사는 각종 질병, 특히 전염병을 예방하는 백신과 같은 역할과 작용을 한다. 이제 내 안의 간신과 치명적인 간행의 유혹을 물리치는, 한 번 제대로 맞으면 평생 유효할 뿐만 아니라 대를 물려서도 유효한 백신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바이다. (역자서문, 9쪽)
일말의 양해도 없이 '간'에 대한 처단의 날을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글쓴이들의 서슬퍼런 의지는 읽는 이에게도 스스로의 '간'을 돌이켜보게 하고 수양과 정화를 고무한다. 2012년에는 내게 사람을 고를 선택의 기회가 두 번있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 경우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미련하단 변명으로 합리화 시킬 수 없는 결과가 실현(재현)될 것임을 이미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독서는 곧 의무감과 책임감이 되었다. 나뿐 아니라 같은 기회를 갖게된 사람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정치역사에 국한하지 않고 '간'이 출몰하는 사회의 많은 장면에서도 그들을 구별해내는 지혜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덧1. 안철수가 본인 아니게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추세에서 '간'을 검출하고 치료하는 힘으로서, 역사를 백신에 비유하고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묘한 우연이 발견된다(나는 안철수를 무턱대고 지지하지 않는다).
덧2. 중국고전, 중국역사의 반성이 가져다 주는 앎의 기쁨이 충분하긴 해도 우리나라 고전과 우리 역사의 반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그립다.
덧3.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2010, 김영사)란 책에서 찾지 못했던 답들을 지난 9월 부터 시작된 삼국지, 수호지, 사기, 그리고 이 책들로부터 그나마 찾게 되었는데 아마 [정의란..]의 판매고를 늘려준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들이 원하는 답들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