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훈민정음]이 밝힌 제자 원리를 확인해 보자. <음>을 나타내는 자모의 게슈탈트는 정말 그 <음>을 발음하는 음성기관의 구조를 본뜬 것이었다. 지독한 고집, 대단한 집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음>을 <형태>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159쪽)


 SBS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는 온갖 드라마의 재미요소가 다 들어있지만 그 중 내가 제일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훈민정음'의 창제에 따른 당대 사대부들의 반대 사상이었다. 그리고 당신도 미리 인지하고 있었을 세종은 어떤 논리로 이 반대를 물리칠 것인가 또한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미 500년이 지난 지금, 그 과정이야 어쨋든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곧 역사가 진리란 생각도 들지만, 역사의 찰나에 불과한 논란의 미소함이 당시의 인물들에게는 얼마나 거대한 충돌이었는지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단 마음이 일었다. 

 이 책은 한국어학을 공부한 일본인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가 민족주의적 맥락을 벗어나 한글을 관찰하고 연구한 바를 쓴 것이다. 앞 부분에는 언어학적으로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가 소개되며, 중간부분부터는 제자의 원리와 한글이 그렇게 된 바를 말하고 있는데  평소 생각치도 못했던 우리말(그리고 주변 나라 말)의 특성을 되새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중간부분부터는 역사에 좀 더 비중을 두고 한글의 운명을 다루고 나머지는 발달과 현대를 설명하며 마무리된다. 

 내 기대와 달리 한글창제를 둘러싼 충돌은, 최만리를 포함한 집단 대 세종 간의 반대와 고수의 입장이 왕권에 의해 한쪽으로 기울어졌단 정사로 서술되고 있다. 하지만 최만리의 상소를 반대파(보수파)의 사대적인 수구의 악덕으로 모함하지 않고 한자문화사회의 질서유지를 위한 지식인의 행동으로 해석하는 부분이있어 이 충돌이 싸움이 아닌 토론의 정체를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세종이 이와 같이 제 재능에 대립할 수 있는 참모들과 함께하고 있었다는게 그의 천재성보다 더욱 부러워해야 할 학자의 환경이다. 

 앞서 말한것처럼 언어학적인 내용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큼지막히 건너 뛰어 읽었는데 그런데도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인용한 부분도 책 앞부분에 포함되는데 한글이 그렇게 된 바를 설명하는, 창제의 사상으로서 '<음>을 <형태>로 구현한다'가 원리의 핵심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뜻밖의 감동을 얻은 것은 원칙과 사상을 꾸준하고 치밀하게 따라 결국 완성해 내는 고집하고 집녑하는, 연구하는 인간의 존경심에 대한 것이다. 한톨 소홀함없이 이후로 미루거나 미완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한 결과물로서 바라보는 [훈민정음]은 문명의 모범이다.

 [훈민정음]의 모양과 형태를 미학적으로 취급한 후반부의 한 문단을 아래 인용했는데 '글꼴'에 대한 호기심 등도 몇몇 해소되며 한글의 문자적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또 다른 재미가 되었다.

붓, 종이, 벼루, 먹 등 문방사우로 상징되는, 문자를 문자로서 성립되게 만드는 <쓰기>의 수련 과정이나 기법은 '어리석은 백성'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 수련 과정과 기법이라는 신체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거기에 담겨 있는 정신성까지도 거부하는 일이다. 정음은, 붓을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뭇가지로 땅에 끄적이기에 결코 부적합한 문자가 아니었다. (32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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