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건축가 없는 건축 - 토속건축의 짧은 소개
Bernard Rudofsky 지음, 김미선 옮김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 2006년 12월
평점 :
『건축가 없는 건축』은 1964년 3달간 뉴욕 소재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전시회 작품집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은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기원후 1,800년 이전, 약 5,000년의 건축 역사를 다룬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남짓 건축을 우리가 아는 ‘건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 또 다른 건축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는 건축물은 작가 미상이며 공동체의 공동작업에 의한 것으로서 건축가라는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 현대 건축이 편리, 안전, 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방해물(자연환경)을 불도저로 밀어서 평탄화시키고 그 위에 비슷한 유형의 건물을 올리는 것과 다르다. 자연이 만든 지형지물을 그대로 둔 채로 인간이 필요한 것을 이용한다.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자연환경과 ‘더불어’ 있는 건축이다.
화폐는 조개에서 지금의 전자 화폐로 ‘진보’했다기보다 조개로 ‘관계’를, 화폐로 ‘등가교환’을 하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은 지형지물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 보는 작가 미상의 건축에서, 뭐든 지을 수 있고 방해가 되면 밀어버릴 수 있는 건축가의 건축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다. 건축가 있는 건축이 진보라면 그 전에 있던 건축물은 자연으로 만들어진 동굴로 들어가거나, 보이는대로 나뭇가지 몇 개를 땅에 ㅅ자로 교차시키고 그 위를 대충 짐승의 가죽이나 덮어 씌우거나, 바닥이나 파서 겨우 몸을 보호하던 낙후한 건축이 된다. 건축가가 있고 없고는 자연환경과 ‘더불어’있느냐 ‘정복’하느냐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산간 오지 높고 높은 곳에 어떻게, 누가, 왜 자재를 나르고 건물을 지었는지 경이롭다. 둘러보면 세상 어디에도 직선은 원래 없다. 곡선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곡선의 자연환경을 ‘직선화’하기 이전, 자연과 더불어 있던 곡선의, 아주 오래된 ‘다른 건축’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