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
오선민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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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림동화의 그림이 그림일기의 그림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림동화란 독일 그림(Grimm)형제가 19세기 초반 채록한 독일 민담이라고 한다. 또 동화란 애들 재울 때 읽어주는 이야기, 과자로 만든 집이 나오거나 난데없이 여우가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하고 개구리가 왕자로 바뀌는 등 허무맹랑하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 갑자기 이후로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급마무리되는, 아이들에게나 통할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동화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보살펴주는 부모는 애초부터 없거나 매우 초반에 죽고 아이들은 고아가 된다. 주인공 아이들은 가도 가도 끝없는 검고 빽빽한 숲으로 다짜고짜 던져져서 온갖 간난신고를 한다. 숲은 배고픔, 추위, 피로로 가득찬 통과의례의 장이 된다. 숲을 나오려면 친구를 사귈 수 있어야한다. 친절하고 착한 친구가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 다른 ‘필요’가 있는 친구이다. 작가는 동화는 반드시 집을 떠나 고생하면서 남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깨닫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에 따르면 현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되도록 오랫동안 부모 품안에서 보살핌을 받고 최대한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켜줄 보험같은 부모가 아닌 모양이다.

 

동화는 예쁜 공주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때의 ‘예쁘다’는 비주얼이 인형같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처지에 연연하지 않고 살길만 생각하는 담대한 소녀를 ’예쁘다‘라고 한다’라는 해석도 재미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얼굴이 이쁘다고 어이없는 짓만 하고 자기 이쁜 것만 봐달라고 하는 이를 누가 이뻐하나. 현명하고 담대하게 앞 길을 헤쳐나가는 소녀가 멋진 것 같다. 또 동화는 시작과 끝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다루는 동시에 지금이라고 하는 바로 여기를 크게 강조한다는 해석도 흥미로웠다. 내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란 것이 주로 ‘내 삶을 규정하고 재단하는 심판의 목소리, 사후 세계, 잊히지 않는 과거의 기억, 그리고 자연 안에 회오리치는 무차별적인 우연’ 등 나의 바깥에서 내 삶을 규정하는 요소들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에 따르면 내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내 배를 때리는 이 차가움, 물고기들의 펄떡거림’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먹고 싸는 것, 이 구체적인 순간만이 우리가 정말 예민하게 주시해야 하는 지점이다’

 

이 책의 제목은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동화의 인류학>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지금, 구체적인 순간만 있는 모험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그림동화는 물론이고 레비스트로스, 마르셀 모스, 스티븐 미슨 등의 인류학 저서와 근대 문학과 그 밖의 많은 인문학 책들이 그림동화 해석을 돕기 위해 등장한다. 작가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화를 읽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아이들 덕분에 나도 이런 멋진 해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훌륭한 표지와 목차 디자인에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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