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베로니카
타카네 준이치로 지음, 민유선 옮김, 토모조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타카네 준이치로 작 [12월의 베로니카]를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좋다. 읽어서 다행이다.

   일본 판타지아 대상에서 8년동안 나오지 않았던 대상을 꿰찬 작품. 꿰찰 만 하구나. 라이트노블을 읽기에는 감성이 닳을 대로 닳아버린(....)내게도 신선하고 감동적으로 읽혔다.

   간단한(?) 트릭이 쓰이는데 간단했지만 효과적이었다. 그런 장치 덕분에 자칫 밋밋하거나 지루할 수 있던 이야기가 입체감을 얻었다. 막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다.

   그것 외에 쓸데없이 기교를 부리거나 되지도 않는 냉소주의를 등장시키지 않는 면에도 호감을 느꼈다. 두번째 읽으며 확실히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군더더기가 없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는지 보이는 것 같다.

   캐릭터와 심리가 뻣뻣하다는 감이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소의 상황묘사와 대사만으로도 인물의 정곡을 찌르는 스킬 같은 걸 라노베에 기대하는 건 띨구짓이다. '이건 이런 캐릭터이다.=>그러니까 이런 짓을 한다.' 는 건 라노베작품과 독자 간의 암묵적인 룰이다. 만약 소설이 개연성을 드러내는 데 좀 미숙하더라도 양해를 해 줘야 한다. 라노베의 인물은 인간이 아니라 캐릭터(성격)이나, 이야기를 위한 도구이다. 그 정도도 용납 못하는 주제에 라노베를 읽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노벨상 받은 거나 읽으라고.

   내용을 요악하자면 평생을 잠에 빠져 보내야 할 운명인, 여신의 무녀 '베로니카'와 그녀와의 약속을 위해 기사가 된 소년의 이야기랄 수 있다. 무녀 후보인 소녀는 '베로니카' 계승식을 위해 성도신가 어딘가를 향한다. 물론 그 과정이 평탄치 않다. 적국의 병사들이 여신의 무녀를 빼앗기 위해 달려들고, 차기 베로니카 수호대인 '영광의 13인'과 그 중 한 사람인 소년은 지키기 위해 싸운다. 빼앗겼다가, 탈환했다가, 배신당했다가, 진의를 깨달았다가, 뭐 그러다가 여신님의 강림이 이루어지고. 과연 소년은 소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내용자체는 그닥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아니 내용이 나빴다기보다는 내가 닳고 닳은 독자라(.........)그랬겠지. 하지만 나보다 어린 놈들의(우리 동생 포함) 감상으론 "형아 이거 초랄 감동이에염" 정도였다. 즉 주타겟층인 10대 중후반 독자에게는 잘 먹혀든다는 소리다.

   [12월의 베로니카] 뿐만 아니라 라노베 작품들은 뭐랄까... 순진해서 좋다. 나쁘게 말하면 진부한 거겠지만. 경험의 부족인가, 재능의 부족인가,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인가 모르겠지만, 라노베들에서 그리는 인간관계나 캐릭터유형은 다들 공장에서 찍어내나 싶을 정도로 엇비슷하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도 엇비슷하거나 어디서 본 것 같은 건 마찬가지다. 부기팝 시리즈에서는 사랑, 우정, 가족애에 대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접근을 보여 주었다. [베로니카] 역시 사랑, 우정 따위에 대한 시각이 엄청나게 진부하다. 그런데 그 진부함이 신선하다. 이 작가와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이렇게 진부할 정도로 낙천적이구나 싶어서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냥 진부한 정도로 끝났으면 아 쉬박 뭐야 이딴 거 써서 돈벌어먹었냐 하고 말았겠지만, 그 진부함이 절절하거나 애틋한 울림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감동을 받는 자신에게 안도하게 된다.

   [베로니카]의 담당 편집자는 '두 번 울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럴 만 하다. 우리 동생니마도 "형아 나 울 뻔했어" 라고 했으니... 그렇다고 좋아 나도 울어보자! 하는 자세로 달려들어선 곤란하다. 울 목적을 갖고 있는 사람은 한국 미니시리즈를 봐라. 이 소설을 한번 읽는 동안 두근두근하다가 후반에는 어라랏 이, 이건! 한 후 막판에선 뭔가 찡 하는 느낌을 받기 위해 읽는 것이다. 어쨌건 시간도 돈도 충분한 사람, 특히 어린 축에 속하는 사람, 사서 읽어. 책 좀 팔아줘. 이 책이 1쇄밖에 못 찍었다니 너무 아쉽다구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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