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제일 걱정했던 것, 가장 먼저했던 것이 '귀밑 3센티'로 머리를 자르는 것이었다. 세상에. 지금생각해도 강압적으로 전부 3센티의 규정을 지키라고 한 건 너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는 전반적으로 '통일화'를 강조했다. 규정이 유난히 강한 중, 고등학교를 거치긴 했지만 같은 교복, 같은 체육복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음에도 귀밑3센티, 굽3센티 정도의 검은단화, 교복치마의 폭, 길이까지 전반적으로 일정한 수치에 제한을 두었다. 그것이 입학식 안내문에 함께 기재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교 3년을 그렇게 보내고 다시 맞은 고등학교 입학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등교길 매일 같이 선도부 열댓명이 교문앞에 서서 뱃지, 넥타이, 치마길이, 두발 등을 단속했다. 심지어 불시에 선도부 선배들이 교실로 들어와 분무기로 머리에 물을뿌려 숨긴 펌을 확인하기도 하고, 화장솜으로 피부를 닦아보기도 했다. 쭉 새워놓고 치마길이를 자로 재는건 기본이었고, 교복 상의의 작은 비침을 지적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모든 지적은 벌점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의 일탈을 제한하고 온전히 학업에 충실하기를 위함이라 말하겠지만 학교에서 우려하는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들은 극히 소수였고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그런 불편한 단속에 응해야했다. 모두가 불만이었지만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은 없었다. 어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때의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고, 혹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교복치마를 둘러싼 싸움>이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님의 고등학생 딸이 교복치마 길이로 인해 겪은 일들을 이야기해주신다. 당차게 싸워보겠다고 한 학생과 그런 일을 그런식으로 실망스럽게 대처하는 교장선생님의 행동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희도 동의했어요. "지금이 유신 시대도 아니고, 교복을 가지고 복장 검사를 한다는 건 엄마 아빠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네가 그냥 다른 애들처럼 옷을 새로 맞춰서 입겠다면 그렇게 해주겠다, 하지만 네가 여기에 굴복하지 않고 문제 제기를 하겠다면 엄마 아빠가 돕겠다. "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딸이 싸워보겠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각오가 필요할 거라고 말했어요. 일이 생각보다 커질 수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보를 해야 할 수도 있다고요. 선생님들이 고작 교복 문제에 이 난리 법석을 떠느냐고 안좋은 시선을 보낼 수도 있다고도 했어요. - 54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에는 지렁이처럼 밟히자 한 번 꿈틀해 본 거다, 이렇게 한 번이라도 꿈틀하는 경험을 가진 아이가 나중에 사회에 나가 더 큰 힘을 가진 부당한 세력과 싸울때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실패한 경험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강압적인 규칙에 반대합니다."라고 한번이라도 말해 본 경험이있다면 사회에 나가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 58


같은 생각이다.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요즘 아직은 어린 준이에게 종종 말하고 있다. 무언가 친구와 마찰이 생겼을때는 무조건 속상해하고 참을것이 아니라, 무엇이 화가나고, 무엇이 억울한지 정확하게 생각을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처음부터 잘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작가님의 이야기처럼 한번이라도 꿈틀하는 경험을 가져본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비단 준이에게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꼭 필요한 꿈틀일것일테고.


 


이 책은 <괭이부리말 아이들> <종이밥> 등으로 잘 알려진 김중미 작가님의 새 책이다. 지난 2년 동안 전국을 누비며 청소년들과 만나 나눈 이야기를 모아담은 학교강연집이다. 실제 작가님이 내놓은 소설들의 모티브가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가님의 마음에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