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을 가르칩니다 - 교실을 바꾸는 열두 가지 젠더 수업 배우는 사람, 교사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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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예민함을 가르칩니다 -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 이 책에 대한 기본적인 소개는 이 책을 쓴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에 대한 소개글로 대신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아웃박스는 고양시 내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연구 모임이다. 아이들의 성 고정관념을 깨고 Thing outside the box 젠더 감수성을 길러 줌으로써
이 모임이 필요 없어지는 그 날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성평등한 세상을 위해 보름마다 모여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그 관점을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오늘의 예민함이 내일의 자연스러움이 되길 바라며, 교사들이 실질적으로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학년별 젠더 감수성 수업 자료 및 학급운영방법을 블로그에 공유하고 있다. - 소개글 중에서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렇게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선 선생님들이 이렇게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위해 앞장서서 움직이는 이야기들을 볼때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지 않고 또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치열한 시간들에 많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예준이의 태권도장에 갔는데 일찍와 수업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보였다. 열명 남짓되는 아이들 중 여자아이는 둘. 관장님과 다른 이야기를 하던 끝에, "여자아이들도 태권도에 많은 흥미를 가지나요?"  라고 물었는데 아마 내 표정에는 분명 '의아하고 새롭다'는 의미가 스며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데 내가 여기던 고정관념들이 그렇게 무수히 쏟아지듯 떠올랐다.
준이가 넘어져서 다리에 상처가 생겨서 제법 놀랐을법한데 벌떡 일어나 '괜찮아' 라고 했던 날, 나는 준이에게 "오~ 우리 준이 남자다운데?" 라고 했다던가.
준이와 쇼핑을 갔던 날, 파란색과 핑크색 가방 중 핑크색 가방을 사고 싶다고 했던 날, 나는 "파란색이 더 좋지 않아?" 라고 여러번 되물었다. 그리고 어린이집에서 자유활동시간에 색칠놀이를 자주 하고 오는데, 어떤날은 선생님께서 공주그림도안을 주셔서 그걸 색칠하고 왔던 준이가 "엄마, 오늘은 여자친구들이 하는 색칠놀이 밖에 없어서 나도 공주 색칠했어" 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생각하면 끝도 없이 떠오른다.
책에서도 아이들이 교실 곳곳에서 평소에 받았던 성차별 발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 있는데 정말 무심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심어주었던건 아닌가, 싶어 여러시각에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 또한 그때의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들로 인해 생겨난 고정관념이 지속되는 것일 수 있겠지만 이제라도, 나부터라도 조금씩 달라지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여자나 남자라는 말은 우리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또 성별에 따라 그에 맞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 29




125페이지에서는 차별에 맞서는 통쾌한 언어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아이들이 써낸 대안이 소개 되는데 이 부분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남자가 운동을 안 하면  쓰냐 -> 운동을 못하면 좀 어때요
여자애가 왜 이렇게 방을 안치우니? -> 아빠가 치우면 저도 따라 할게요
살도 많이 빠지고,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 -> 내 나이 열두 살, 조선시대 아닙니다
남자는 주먹이지 -> 남자는 가위일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르게 태어났으며 각자가 지닌 성격이나 특징은 고유의 매력이다. 단지 어떤 성별에 어울리는 성격이나 능력이 있다고 믿어 버리면 각자가 지닌 성격과 능력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 127



134페이지, 사춘기 맞춤 성교육 편도 기억에 남는다.
어릴적 학교에서 이루어지던 성교육이 생각났다. 뭐 그렇게 조심스럽게, 선생님도 아이들도 부끄러워하던 짧은 시간. 책에서도 이야기 하고 있다. 성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인식은 때때로 다른 성에 대한 '혐오'로까지 표출된다(136p) 라고. 요즘의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어떠한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 현 시대상황에 맞는 제대로된 교육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언제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성인이 다 된 사람들로 모인 어떤자리에서 한 남자가 아주 조심스럽게 "생리한다는건 도대체 어떤느낌이야? 생리통 그건 왜 그렇게 힘이 든거야? "라고 물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자들이 정말 도대체 뭐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타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책에서는  '뜨거운 굴을 낳는 기분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생리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을 이야기 하고 있다. 뜨거운 굴, 이라는 대목에서 웃음이 났다. 거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 그때 그 남자에게 타박대신 이런식의 설명을 보태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생리대를 구입하기 위해 상점에 가면 꼭 생리대만 따로 빼서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종이 봉투나, 검은 봉투에 생리대를 한번 더 넣어 다른 물건들과 함께 담아주는 때가 많았다. 그럴때면 나는 '그냥 주셔도 돼요-' 라고 말을 하며 왜 이걸 굳이 봉투를 하나 더 꺼내 감추듯 넣어주는걸까? 하고 자주 생각했다. 오히려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누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더 중요할 것이다. 분명하게 아는 것, 그래서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조금씩 느껴가는 그런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굳어지기 전에 서로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다른 성별의 상황에 한 번이라도 공감해 보려고 노력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차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히 다르지 않을까? - 153

내가 생각하는 성교육 수업은 '백신'과도 같다. - 160

젠더 교육은 사실 인권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젠더 교육이기 때문이다. 배움과 활동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알고 행사할 수 있으며,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옹호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인권 교육이라 한다면, 젠더 교육은 인권 교육에서 '젠더'라는 주제로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182


 

 



/ 끝부분에 소개된 '녹색 어머니와 마미캅'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도 많은 공감을 했다. 
'녹색 어머니' 와 '마미캅' 모두 어머니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사실. 이것은 전통적인 성 역할(양육의 책임자=어머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한 부모 가정 등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을 전혀 존중해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명칭을 변경하자는 건의를 했는데 학교에서 해 준 답변을 보고는 가슴이 좀 답답했다.
"이것은 전국에서 사용하는 정식 명칭이다, 바꾸고 싶으면 학교가 아닌 정부에 건의하라" 그럼에도 매년 건의한 끝에 이 선생님의 학교에서는 학교 재량으로 변경이 가능하게 되어 녹색 어머니회를 '학부모교통봉사단'으로, 마미캅은 '학부모안전봉사단'으로 바꿨는데 그 이후 작년에 비해 많은 아버지들이 교통 지도를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이런 크고 작은 노력들이 하나 둘 모여 멈춰버린 학교에서의 성평등 시계를 다시 가게 하겠다는 마지막 문장은 정말 마음 깊이 와닿았다.




교실을 바꾸는 열두 가지 젠더 수업을 앞으로도 마음 깊이 응원하고 싶다. 나 또한 왜곡된 고정관념들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시선으로 커가는 아이들을 대하고 또한 그런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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