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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
펄 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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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요약

소설 대지는 주인공 왕룽이 빈농에서 시작하여, 부농이되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다. 빈농에서 시작하는 착실한 농부 왕룽에게는 늙은 아버지와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헌신적인 아내 오란이 있다. 황씨 댁에게 착실하게 땅을 사모으는 왕룽은 도중에 아들들과 딸들을 낳지만, 도중에 커다란 기근을 맞게 되고, 넷째 딸은 먹고 살기가 워낙 힘들어서 아내가 낳자마자 죽이고 만다. 왕룽은 눈물을 머금고 집안 일부를 정리하고, 최후의 보루인 대지는 차마 팔지 못하고 남방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 시기에 구걸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지만 도중에 전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오란이 부잣집의 보석을 슬쩍하여 다시 북방으로 올라와 화려하게 귀환을 한다. 그 보석을 밑천으로 삼아 다시 농사를 지어 탄탄히 자신의 대지를 점점 넓혀간다. 마을에서 추앙을 받으며 큰 부자로 성장한 왕룽은 그에 맞게, 자신의 자산을 확보하여 부자는 부자답게 살아야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게 된다. 자신의 집안의 지체를 높이기 위해서 아들들을 공부를 시키고, 재능을 키워주고자 한다. 부자마인드에 익숙해진 왕룽은 다른사람들도 다 첩을 두고 사는데, 나라고 첩을 못 두고 살까라는 마음과 여자에 눈이 멀어 첩을 두게 된다. 오란이 남방에서 가져온 소중한 진주보석 조차도 빼앗아 첩에게 주고, 오란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오란은 병에 걸려 손을 쓸 수 없게되고, 왕룽은 살면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깨달으면서 후회하게 된다. 항상 군말없이 집안일을 해주던 것과 연로하신 아버지를 챙겨드리는 것 항상 모질게 굴어도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며, 자신의 자식들을 낳아준 고마운 사람이 였다는 사실을 오란이 죽게 되자 깨달은 것이다. 그 이후에 자연재해에도 끄딱 없는 대지를 소유하게 된 왕룽은 예전에 황씨댁이 살던 큰 저택을 구입해 모든 것을 아들들과 하인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원래 살던 집에서 농사를 관리하면서 조용히 살아간다. 그러한 도중에 아들들이 찾아와 광활한 대지들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일정하게 나누어 가지고 모든 대지를 팔것이라는 비보를 들으며 왕룽은 자신이 어떻게 지키고 일구어낸 대지들을 파냐고 노하면서 소설은 막이 내린다.

 

 

대지는 우리의 생명이 태어나는 곳이며, 다시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시작이라는 의미에는 끝이 포함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우리의 삶이란 언젠가 죽음이라는 마지막 여정이 남겨져 있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도 결국은 어떻게 잘 살아볼까라는 문제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라는 결론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언젠가 잃게 된다는 자명한 진리를 알고 있으면서 그러한 문제를 곧장 닥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왕룽은 광활한 대지를 소유하게 되지만, 언젠가는 자신의 땅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 자신이 씨를 뿌려 낳은 자식들조차 끝에서 아버지가 죽게 되면 땅들을 팔 것이라며 배신하지만,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안겨다 주는 대지만이 왕룽을 배신하지 않고 남아있다. 소설속에서 기근을 겪고, 전쟁을 겪고, 홍수를 겪지만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대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아내 오란이다. 왕룽이 부농이 된 것은 오란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러한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오란이 죽고나서야 깨닫게 된 왕룽은 후회하고 만다. 자신이 소중하게 아끼는 대지는 결국 오란과 함께 일구어낸 것이지 자신만의 힘으로 일구어낸 성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자신의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이 얼마나 될까? 요람에서 무덤까지 오로지 100%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인 가족, 친구, 연인 그리고 나를 지지해주는 모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던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돌을 맞이하기 되기까지, 자신의 몸을 스스로 뒤집고 걸음마를 떼어내는 과정,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였고, 학교를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는 과정도 나 스스로 해낸일은 하나도 없다. 나를 가르쳐주신 선생님, 나의 친구들, 그리고 경제적으로 지원해주신 부모님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현재의 주어진 상황에 불만을 갖지 않고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을  모두가  되돌아 보았으면 한다내가 되기까지에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 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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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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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두부류로 나눌 수 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운영하는 무레와 같은 인물과 기존 부티크라는 형태의 소매업자들인 보뒤, 부라영감 등의 인물들이 있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 정가제 판매, 반품제도, 세분화된 상품진열, 통신판매, 바겐세일 도입, 매출에 따른 수당지급으로 인해 부티크를 운영하는 업자들은 불행해져 간다. 소매업자들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가격경쟁, 품질경쟁, 인테리어 등) 거대자본의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게 모든 손님들을 빼앗기고 만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물질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에 부티크로 시작한 무레가 자신이 취급하던 섬유업종 뿐만 아니라, 잡화, 신발, 우산 등 다양한 업종까지 차지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자산가가 되고, 모든 여인들의 마음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손에 넣을 수 없는 인물이 있는데 그것이 드니즈이다. 무레가 ‘드니즈를어떤식으로도 유혹하려고 하지만 계속 거절당한다. 모든 여성들의 마음을 정복하는데 성공한 무레지만, 평범한 판매원의 마음을 손에 넣지 못하는 무레는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면서 절망하고 만다. 자신의 곁에만 있어달라고 애원하는 무레 앞에서 결국 드니즈는 그 고백에 응하고, 소설은 행복하게 막을 내린다.

  

150년 전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백화점의 형태가 프랑스에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쇼핑을 할 때, 얼마나 현명하게 구매하는가를 고민해보곤 한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대량으로 구매 하거나, 충동적으로 구매하곤 한다. 소비형태가 우리의 필요로 인한 소비가 아니라 욕망으로 인한 소비로 변했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중립적인 시각으로 상업형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 대기업 형태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에 모습과 소매업 형태의 상인들의 단면들을 어느 한쪽을 옹호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 것이다. 소비자에게 있어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생겼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값싼 가격과, 좋은 품질, 다양한 상품 등을 다양하게 비교하면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종업계에서 종사하던 업자들에게는 큰 불행이다. 가격경쟁, 품질경쟁, 서비스 등 어떤 면에서 경쟁해도 거대자본을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시대의 흐름으로 여기며, 발전가능성이 없는 전통 엘바프와 같은 소매업의 몰락과, 거대 자본화에 따른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또한 소비형태의 변화도 보여주는데기존 소비자들은 부티크 같은 상점에서, 주인과 흥정을 해서 한 상점에서 한가지 품목을 구매하고, 필요한 것을 구매했다. 하지만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생긴 이후로, 필요하지도 않은데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구매하거나, 대량으로 다양한 품목들을 사거나, 단순히 물건을 사지도 않을 건데 구경만 하고 간다거나, 사람이 많은 틈을 이용해 물건을 슬쩍 훔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소비 형태와 150년전에 형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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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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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은 단순히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Skill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단순히 사랑이라면, 남녀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이성과의 사랑 뿐만 아니라, 부모애, 자기애, 형제애, 성애, 신앙심도 포함되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오류를 말한다.

 

첫째,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문제로 생각한다. 사랑의 문제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할 줄 아는 능력보다는, 사랑받길 원하는 대상이 되길 원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하면, 사랑을 할 줄 모르는데, 사랑받길 원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랑을 교환가치로 평가한다. 진열장에 올려져 있는 물건처럼 자신의 외적인 가치를 높이면, 사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을 매력적으로 포장하고, 사교적이고 관대해지면 더 교환가치가 높은 대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자기 자신의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내어, 오로지 조건만을 보고 사랑에 이른다는 것이다.

 

 

셋째, 사랑을 하게 되는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한다는 것이다.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사람이 갑자기 벽을 허물고 일체라고 느낄 때, 가장 격앙된 경험일 수 있으나, 이러한 성적매력과 성적 결합에 의해 시작되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이러한 강렬한 열중은, 곧 서로 미쳐버리는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스스로가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그럼 우리에게 해답은 무엇인가

 

첫째,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준다고 하는 영역은 물질적인 영역이 아니라, 인간적인 영역에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주는 것은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것 중 소중한 것을 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쁨, 자신의 관심, 자신의 이해, 자신의 지식, 자신의 유며, 자신의 슬픔 자기 자신 속에 살아 있는 모든 표현과 현시를 주는 것이다.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그대가 필요하다. 어린아이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르고,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는 원칙에 따른다.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따르고, 타인에 대한 욕구와 흥미는 관심은 없고, 오로지 받기만을 원한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법도 알아야한다. Take And Give가 아닌, Give And Take가 되어야 한다.

- 요약-

 

 


 

 

흥미로운점. 

 

사랑의 책임에 대한 예로 구약성서 요나서를 들은 부분이다. 하느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의 주민들에게 가서 악행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전도하라고 명령했지만, 요나는 니느웨의 주민들이 뉘우치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받을 것을 두려워 전도하지 않은 것이다. 강력한 처벌과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요나는 니느웨의 주민들에 대한 자비와 용서를 원치 않아, 책임을 지지 않고 전도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성경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요나는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자들은, 전부다 말을 듣고 행하는 줄 알았는데, 정의가 행해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행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정의의 실현과, 용서와 자비에 대한 갈등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도 계속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감상평.

 

 

사랑을 단순히 값싼 보상심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인가 해주었으니, 당신도 나를 위해 그 무엇을 달라.” 이렇게 사랑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무엇을 했다면, 무엇을 한 행위는 나 자신을 위해서 혹은 원해서 한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했다는 것에 대한 전제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거나 혹은, 선물을 준다고 해서, 그 대상이, 다시 나에게 돌려주길 바라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끼는 만족감 자체가 나를 위해서 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이익을 얻기 원한다면,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상행위와 사랑이 다를 바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주는 것을 전제로 하는 사랑을 하기가 쉽지가 않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일까, 아니면 아직 성숙하질 못해서 일까 아니면 내가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해서 인가 모르겠다. 현재 사랑을 하고 있다면, 내가 현재를 사랑하는 건지, 과거를 사랑하는 것인지, 미래를 사랑하는 것인지, 한번 쯤 고민해봤으면 하는 문제이다. 과거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 관계가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과거에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미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과의 현재의 관계가 최악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미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관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현재에만 충실하고 살기에도 힘이 든다. 그러기에 현재의 사랑에 가장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사랑을 사랑하는 것인지, 가끔 혼동할 때가 있다. 호감을 갖고 있는 상대에게, 느끼는 설레임을 사랑하는 것인지 정말로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에게 그대가 필요한지를 모르겠다. 사랑을 단순히 내가 외롭기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인지, 정말로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사랑의 기술은, 최고에 지침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랑은 활동이기에 이론만 가지고 이룰 수 없다. 물고기를 낚는 방법을 많이 안다고 해서, 물고기를 실제로 낚아보지 않으면, 낚시를 잘 할 수 없듯이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개인의 사랑의 실천이 적극적으로 요구되겠지만, 적당한 분량과 버릴 부분이 없는 지침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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