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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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이야기

엉뚱한 생각은 그냥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때로는 우주를 가로지르는 스케일 큰 상상보다는 일상을 비추는 작은 상상이나 자신의 추억과 얽힌 공상이 더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버스 좌석에 붙어 있는 점술가에 대한 광고를 보고 실제로 전화를 걸면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궁금해한다든지, 어제 밤 꿈을 5분전에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엄마한테 다시 이야기 해 주려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든지. 평소랑은 조금 다른 시선과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집集은 그런 맥락에 닿아 있습니다. 일상을 비추는 엉뚱하거나 조금은 삐딱한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일상을 비추기 때문에 많이 공감할 수 있고, 조금만 삐딱한 시선 덕분에 부담이 없으며, 엉뚱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1Q841)를 그렇게 재미있게 읽진 않았기 때문에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인식은 제법 괜찮은 이야기를 다소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평범한 일상을 이렇게 재치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인기가 좋겠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과연 책의 제목을 꼭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으로 정했야 했는지입니다. 

저는 에세이집을 읽게 되면 책 제목에 쓰인 꼭지는 어디 쯤에 있는지 꼭 찾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먼저 그 꼭지부터 먼저 읽어 보게 됩니다. 물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2)과 같이 제목과 에세이가 나란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꼭지의 제목을 가져와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제목으로 나온 에세이부터 먼저 읽게 되지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으로 쓰인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이 책에서 가장 추천할만한 꼭지는 아니에요. 이 책엔 깊이있는 고찰까진 아니더라도 꽤 재치있는 생각들을 생각들을 담은 글도 많이 있는데,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재미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인 꼭지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굳이 이 책의 제목으로까지 삼은 걸 보면 글은 읽지 않고 가장 어감이 좋은 문장만 단순히 찾은 건 아닌가 아쉬움이 듭니다. 

물론 책의 제목으로 찾을 만한 에세이 제목이 마땅치 않아 보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렇다면 ‘하루키 대표 에세이집’이라는 제목을 삼아서 커다랗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런 제목은 너무 쿨하지 않았던 걸까요.


껍데기 이야기

검색을 해보니 문학동네의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집3)은 표지가 통일되어 참 예쁩니다. 사고 싶게 만들어 놓았어요.

다만 아쉬운 점이은 검은색에 보라색 폰트를 쓴 제목 글자인데 제목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책의 제목으로 뽑힌 꼭지의 내용처럼 먼저 접한 얼굴인 제목 폰트의 색깔이 이 책의 다른 좋은 에세이들을 숨기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주렁주렁 굴비

  1.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출판, 2009
  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출판, 1998
  3.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벨런타인 데이의 무말냉이, 해뜨는 나라의 공장, 세일러복을 입은 연필, 모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 출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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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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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이야기|

읽을 거리, 놀거리, 먹을 거리 같이 뭔가 '거리'라고 부를 것들은 모두 부족했던 군대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들 중 하나에 '에세이'라는 이름의 월간 수필집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수필들을 묶어서 만드는 월간지인데, 특히 이윤기 선생님의 수필이랑 심영섭님의 영화 이야기 그리고 이지애 아나운서의 웃는 사진은 정말 좋았지요. 그 중엔 누군가의 독서감상문도 몇몇 있는데 이 책 역시 유정아님이 이 잡지에 실은 글1)로 소개 받은 거예요.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책 제목은 충분히 기억에 남았고 흥미도 갔지요. 휴가 나가면 꼭 보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또 힘들었던 군생활을 조금 버티기도 했었어요.

 

그러고 보면 큰 이유 없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것들이 몇몇 있어요. 연필로 글 쓰는 것들이라든가, 학교 앞 까페에서 파는 딸기 주스라든가, 첫눈에 반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같은 것들 말이지요. 이 책도 그랬어요. 

휴가 나오자마자 대전역 서점에서 책을 사 들곤 기차 안에서 다 읽었는데 읽고 난 후에 특별한 이유는 들 수 없었지만 처음부터 푹 빠지게 되었어요. 그나마 여러 번 읽고 난 지금에는 조금 뚜렷하게 이유를 꼽을 수 있게 되었네요.

 

일단 힘든 날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작은 기대감이었으니까요, 아주 사소한 즐거움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편이잖아요. 사람으로 따지자면 만나기 전부터의 설렘이 무척 컸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첫인상도 좋았어요. 물론 책 전체의 내용이 편지 글이지만 책의 처음을 편 순간 편지의 내용이 있기에 깜짝 놀랐어요. 물론 좋은 쪽으로 놀란 거지요. 편지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느껴졌거든요.

'이 글씨를 그 사람이 알아볼까?' '이 문장에 담은 마음은 잘 전해질까'같은 고민에서부터 빨리 내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답장을 바라는 기대에 전전긍긍하며 편지를 쓰던 기억이 나니까, 편지 안에 적혀있는 구절 하나 하나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져요.

 

게다가 나오는 인물 한 명, 한 명 그리고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어떤 역경에도 따뜻함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고,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여자아이와 고마운 친구들도 있지요. 전쟁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불쌍한 사람들도 있고, 인간성을 잃어가는 시대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눈쌀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요.

막 시작하려는 사랑이 가지는 풋풋함과 아슬아슬함도 있고, 가슴 짠해지는 슬픈 모성애도 있어요. 조금 어설픈 추리물도 끼어있고 나름의 배신과 음모도 있어요. 그리고 아주 따뜻한 해피엔딩이 마련되어있구요.

 

책 전체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지요. 요즘은 이런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기도하고 고맙게 마저 느껴져요. 

 

 

껍데기 이야기|

편지글로 디자인한 표지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최근에 접한 책 디자인 중에선 가장 예쁜 편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번역에 정말 좋아요.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인물의 개성을 정말 잘 살리고 있거든요. 신선해님의 번역본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에 이어 두 번째인데 감수성이 필요한 문장을 정말 잘 살리시는 것 같네요.

 

 

주렁주렁 굴비|

1) 월간 에세이 2009년 3월호, Kiss the book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클럽, 유정아

2)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다산책방 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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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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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보낼 예정이거나 휴가를 보내는 중이라면 조금 더 자유롭고 유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겠지만, 힘든 일상을 보내는 중이라면 조르바의 자유로움이 자신을 괴롭힐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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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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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이야기|

책을 읽다 보면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가 자꾸 떠오릅니다. 몸이 스트릭랜드를 통해 그린 자유의 모습을 조르바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묘사되는 방법도,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도 무척이나 다릅니다. 스트릭랜드가 가진 자유의 모습은 고갱이나 고흐 같아요. 원색적이지만 어둡고 조금 일그러져있습니다. 다만 조르바는 샤갈 같아요. 원색적이지만 유머와 재치가 있지요. 자꾸 스트릭랜드와 조르바가 겹쳐 보이는 건 그들이 가진 원색적이라는 이미지, 즉 순수함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인을 이야기 할 때 스트릭랜드보다는 조르바가 되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인데, 이 말만큼 어려운 것 또한 없습니다. 타인이 만들어주는 자신의 모습 또한 중요한 자신의 모습인지라 내가 바라는 데로만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겠지요. 이건, 인류 보편적인 개념인 듯 합니다. 그러니 많은 시간이 지난 고전에서도 지금과 다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 보이듯이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조르바와 같이 뚜렷한 자아를 가지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예나 지금이나 부러워하며 동경하는 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내 뜻하는 데로, 내 원하는 데로 살 수 있을 배짱과 자유를 얻으려면 얼마나 방황하고 표류해야 할지, 책을 읽는 동안 유쾌하고 재미있지만 그 만큼 커다란 벽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껍데기 이야기

처음에는 열린 책들의 양장본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높은 가격으로 인해 고전에 대한 진입장벽을 만든다는 의견이었지요. 하지만 꾸준히 좋은 책들을 양장으로 내어주는 모습에 이젠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조르바의 얼굴이 표지에 없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덕분에 조르바라는 사람을 충분히 마음속에서 상상하며 그와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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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인간의 맛
도올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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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이야기|

감상문을 남길 때엔 오롯이 책에 대한 감상과 경험만을 쓰려고 하기 때문에 책의 인용은 최대한 피하려고 하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면 몇몇 구절들을, 특히 "군자의 중용은 "시중 時中"이고 소인의 중용은 "무기탄 無忌憚"이다."라는 구절을 가져와야만 같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도리를 가지고 중용을 지키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중용을 실행하는 것으로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 중용하는 시時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中은 가운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자라는 것이지요.

소인의 중용인 무기탄에서 기탄이란 거리낌을 의미합니다. 거리낄 안다는 것은 신중할 안다는 것이지요. 신중함이라는 것이 이성의 원형이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거리낌은 인간에게 '거리' '여유' 허락하며 실수의 가능성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겸손인 동시에 인간다움의 강함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삶의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해본 있나 진지하게 반성하게 됩니다.

 

"중中" "시時" 속에 있기 때문에 시간과 상황에 따라 중용할 알아야 한다는 지은이의 말은 감동으로 다가오지만 의미는 타인을 이해할 때에도 중요하게 여겨야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타인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시時"라고 할지라도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중으로 타인을 판단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중과 시만큼 다른 사람의 중과 시를 이해하려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한참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인상 깊은 구절을 빌어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박식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자문한다: "과연 내가 아는가? 아니야!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그런데 말이야! 비천한 아해라도 나에게 질문을 하면, 비록 그것이 골빈 듯한 멍청한 질문이라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양단兩端의 논리를 꺼내어 두드려보고 그가 납득할 있도록, 있는 성의를 다해서 자세히 말해준다. 그래서 내가 아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

 

껍데기 이야기|

마이클 샌델의 책들을 보면 명사 강연을 묶은 책들의 디자인도 예쁘게 하던데 반을 나눠서 디자인을 저렇게 했어야 했을까요. 프레임의 디자인도, 아래 프레임의 사진도 예쁜데 섞이는 바람에 예쁘게 보이네요. 그래서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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