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맹이 이야기|

읽을 거리, 놀거리, 먹을 거리 같이 뭔가 '거리'라고 부를 것들은 모두 부족했던 군대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었던 것들 중 하나에 '에세이'라는 이름의 월간 수필집이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의 수필들을 묶어서 만드는 월간지인데, 특히 이윤기 선생님의 수필이랑 심영섭님의 영화 이야기 그리고 이지애 아나운서의 웃는 사진은 정말 좋았지요. 그 중엔 누군가의 독서감상문도 몇몇 있는데 이 책 역시 유정아님이 이 잡지에 실은 글1)로 소개 받은 거예요.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책 제목은 충분히 기억에 남았고 흥미도 갔지요. 휴가 나가면 꼭 보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또 힘들었던 군생활을 조금 버티기도 했었어요.

 

그러고 보면 큰 이유 없이 처음부터 호감을 가지게 되는 것들이 몇몇 있어요. 연필로 글 쓰는 것들이라든가, 학교 앞 까페에서 파는 딸기 주스라든가, 첫눈에 반하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같은 것들 말이지요. 이 책도 그랬어요. 

휴가 나오자마자 대전역 서점에서 책을 사 들곤 기차 안에서 다 읽었는데 읽고 난 후에 특별한 이유는 들 수 없었지만 처음부터 푹 빠지게 되었어요. 그나마 여러 번 읽고 난 지금에는 조금 뚜렷하게 이유를 꼽을 수 있게 되었네요.

 

일단 힘든 날을 버틸 수 있게 해준 작은 기대감이었으니까요, 아주 사소한 즐거움이었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 편이잖아요. 사람으로 따지자면 만나기 전부터의 설렘이 무척 컸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첫인상도 좋았어요. 물론 책 전체의 내용이 편지 글이지만 책의 처음을 편 순간 편지의 내용이 있기에 깜짝 놀랐어요. 물론 좋은 쪽으로 놀란 거지요. 편지가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느껴졌거든요.

'이 글씨를 그 사람이 알아볼까?' '이 문장에 담은 마음은 잘 전해질까'같은 고민에서부터 빨리 내 소식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과 답장을 바라는 기대에 전전긍긍하며 편지를 쓰던 기억이 나니까, 편지 안에 적혀있는 구절 하나 하나가 무척이나 사랑스러워져요.

 

게다가 나오는 인물 한 명, 한 명 그리고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어떤 역경에도 따뜻함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고,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여자아이와 고마운 친구들도 있지요. 전쟁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겪어야만 했던 불쌍한 사람들도 있고, 인간성을 잃어가는 시대에서도 인정을 잃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요. 물론 눈쌀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요.

막 시작하려는 사랑이 가지는 풋풋함과 아슬아슬함도 있고, 가슴 짠해지는 슬픈 모성애도 있어요. 조금 어설픈 추리물도 끼어있고 나름의 배신과 음모도 있어요. 그리고 아주 따뜻한 해피엔딩이 마련되어있구요.

 

책 전체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요.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물씬 나지요. 요즘은 이런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기도하고 고맙게 마저 느껴져요. 

 

 

껍데기 이야기|

편지글로 디자인한 표지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최근에 접한 책 디자인 중에선 가장 예쁜 편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번역에 정말 좋아요.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 인물의 개성을 정말 잘 살리고 있거든요. 신선해님의 번역본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에 이어 두 번째인데 감수성이 필요한 문장을 정말 잘 살리시는 것 같네요.

 

 

주렁주렁 굴비|

1) 월간 에세이 2009년 3월호, Kiss the book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클럽, 유정아

2)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바바라 오코너 지음, 신선해 옮김, 다산책방 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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