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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구경하는 사회 - 우리는 왜 불행과 재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가
김인정 지음 / 웨일북 / 2023년 10월
평점 :
https://youtu.be/bdi519bE8dM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
신형철님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신형철님께서 말하는 우리가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이유는
자기가 모르는 슬픔은 공감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슬픔을 공부해야 타인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다른 감정과는 조금 달라서,
타인의 슬픔에 둔감하면 상처와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려면, 성숙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타인의 슬픔에 민감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읽은 이후로
타인의 슬픔을 공감해야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저는 이 책을 신형철님의 추천사 때문에
읽기를 결정했습니다.
이 책은 정확한 질문들로 현지화된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의 속편 같다고 이야기하셨죠.
이 책에 의지해 '우리'와 싸우자구요.
타인의 고통은 정확하게 알아야만
그가 필요한 위로를 건낼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났어요.
이 책을 소개하면서 말씀하신
정확한 질문이 무엇인가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김인정 기자입니다.
광주MBC 보도국에서 사회부 기자로
10년 동안 일하셨다고 하네요.
이 책은 간단히 말하면
뉴스, 언론, 기자윤리에 대한 고민을 쓴 책입니다.
뉴스와 언론이 사회의 고통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기자님은 어떻게 다루려고 했는지를,
그리고 요즘엔 뉴스가 어떻게 소비되는지를
들여다보는 내용이 가장 큰 뼈대이죠.
뉴스가 언론 혹은 포털의 중요 콘텐츠로 자리잡은 시대에,
이젠 광고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됐죠.
디지털 시대에 사람들의 뉴스 접근성이 올라가고
소모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더 빠르게, 더 자극적으로 뉴스를 만들게 됐다는 말은
일견 뻔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그 산업종사자가 전해주는 말에서 오는
남다른 깊이와 울림이 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이 요즘엔 욕을 많이 먹고 있는만큼
거꾸로 올바른 기자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고 있죠.
올바른 기자라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기자의 직업 윤리는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꼭 추천해드리고 싶은 이유는
언론인의 자아성찰이나
심층적으로 다루어진 현대사회의 뉴스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자의 직업윤리는,
사회의 슬픔을 어떻게 기사로 쓸 것인가로 결정됩니다.
타인의 슬픔을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계속 고민하는 것이죠.
그 질문은 '우리'를 향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누구나 뉴스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타인의 고통을 다룬 기사를
편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 책은 이태원 참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세월호 이후 올바른 재난 보도에 대한 지침이 생겼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의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본질과 관련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는 내용이죠.
하지만 이태원 참사에서 이 지침은 얼마나 지켜졌나요.
희생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반복적으로,
쉽게 눈이 닿는 모든 곳에 퍼져버렸죠.
작가님은 이태원 참사를 다룬 보도를 통해
언론과 뉴스의 역할과 기능을 다시 반추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참여했던 많은 취재 이야기를 통해
기자의 직업윤리를 계속 이야기하시죠.
많은 생각 속에 책 속에서 읽을 수 있는
작가님께서 내린 기자의 정의를 소개해드리자면
고통의 총량이 높은 사회에
고통을 파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나마 요즘은 뉴스를 찾아보는 사람이라면
주위의 고통을 읽으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기에
그들에게 고통의 목격을 전달하는 사람이 기자란 것이죠.
다만 작가님께서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뉴스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온라인 논쟁에 참여하고,
소식을 나르고, 기부를 인증하기도 하는
선한 사람들에게 기사가 가닿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뉴스가 그런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주길 바라기에,
자기는 끝없이 조심하며 고통을 판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결국 기자가 쓴 기사의 완성은
행동하는 시민이라는 말인 것이죠.
기사가 전달하는 고통에 크게 가담하지 않더라도,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다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그 고통의 해소를 위해 행동에 나섬으로써
기자가 쓴 기사가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닐까요.
고통의 목격을 전달하는 기자,
그리고 목격을 행동으로 옮기는 독자.
작가님은 이를 통틀어서 '우리'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서 기자님은 끝없이 질문합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뉴스는 비극을 담고 있기에 질문은 자연스럽게
어떻게 슬픔을 바라볼 것인지,
어떻게 슬픔에 공감할 것인지,
어떻게 슬퍼할 것인지를 묻고 있지요.
이런 질문들이
이 책을 덮고나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언론이나 뉴스에 관한 고민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 책을 소중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가 왜 슬픔을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작가님의 답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이의 슬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기 위해서라구요.
느슨하더라도 우리가 공동체로 묶임으로써,
비슷한 아픔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기자다운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리가 슬픔을 공부해야하는 이유에
결코 빼놓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슬픔은 내가 아는 슬픔에만 공감이 가능하다는
신형철님의 문장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 문장을 읽고선
다른 슬픔을 계속 공부해서,
많은 슬픔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 책의 작가님은,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계속 고민합니다.
언어, 인종, 계급이나 격차, 성별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거리감은 어떻게 해야하나.
어떤 고통은 너무 멀게 느껴지고,
어떤 고통은 나를 관통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해야 고통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지요.
기자라는 직업은 공동체에 닿을 수 있을
보편의 언어를 발견하는 직업이라는 말도 좋았습니다.
여러 문장에, 여러 고민에
생각이 가서 닿는 책이었어요.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구경이 쉬워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목격을 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하지만 그 속에서 그저 구경으로 끝내지 않게,
고민을 시작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응원을 전하는 책이었습니다.
많은 분들께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